대중음악 100대 명반

61위 작은 거인 김수철 ‘1집’ - 1983│My Favorite Gayo

리차드 강 2009. 6. 15. 08:21

작은 거인 김수철 ‘1집’ - 1983

작은 거인 김수철 ‘1집’ (서울음반 1983)

김수철 金秀哲 / Kim, Soo-Chul 1957 -

Track - 전곡연주

 

1. 못다핀 꽃한송이 3:10
2. 세월                  3:51
3. 정녕 그대를...    4:00
4. 별리                  2:59
5. 두보조개           3:18

 6. 못다핀 꽃한송이 (경음악) 3:10
 7. 다시는 사랑을 안할테야!  4:00
 8. 내일                               3:39
 9. 별리 (경음악)                 10:10
 10. 건전가요 (건전가요)

어리버리 돈키호테는 이렇게 올렸다.

Side B면 트랙 6번 경음악은 김수철 2집(1984)의 Track 1. 왜 모르시나로 대체하고 트랙 7번 다시는 사랑을 ...은 김수철 7집 - 12주년 기념음반(1988) Track 1. 변심 으로 대체하고 트랙 9번 별리(경음악)는 김수철 9집(1991) Track 4. 어디에 살아있나? 로 대체하였다.

왜냐면 내가 듣고 싶었던 것은 못다핀 꽃한송이로 시작하는 한...이 담긴 음에 감정을 두고 김수철의 이 음반을 선택했는데 B면에서는 약간 시끄럽고 별리경음악 같은 경우에는 황병기의 가야금 "미궁" 의 음반처럼 너무 난해하고 기괴해서 듣다가도 갑갑하게 느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그의 애절한 목소리로 불러대는 노래들이 1집 말고 후에 나오는 몇장의 앨범에 포함되어 있는 것을 한꺼번에 듣고 싶은 욕심에서다.

2009년 6월 15일 백수재에서 ...

[대중음악 100대 명반]61위 김수철 ‘김수철 1집’

배순탁 | 웹진 IZM 필자ㅣ경향신문

ㆍ작은 거인 ‘꽃 한송이’ 피우다

1978년 4인조 록 그룹 ‘작은 거인’의 리더로 음악 인생을 시작한 김수철은 같은 해 ‘일곱 색깔 무지개’로 히트의 첫 봉화를 피워 올리며 대중들에게 신고식을 치렀다.

그러나 대중음악인이라는 불투명한 미래에 불안을 느낀 동료들이 주위를 떠나면서 그는 홀로서기에 들어가야 했다. 이렇듯 다소는 피동의 입장에서 발표했던 본 솔로 음반은 역설적이게도 한국 대중 음악사를 능동적으로 다시 쓰면서 김수철이라는 이름을 대중들의 기억 회로 속에 영원히 아로새겼다.

음반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못다 핀 꽃 한 송이’와 ‘별리’ 두 곡에 그 비등점을 두고 있었다. 음악적으로 봉우리를 형성했던 두 곡은 이후 국악에 경사될 그의 행보를 암시하는 시그널로서 작동했다. 이처럼 동서의 음악적 감성 모두를 섭렵하는 것으로 마음의 끈을 동여맨 그는 히트의 축포를 연발로 쏘아대면서 가요계 전체에 걸쳐 고공으로 비행했다. 우리 가락의 참 맛을 서양의 오선지에 녹여내어 양악과 국악 퓨전에 대한 가능태(可能態)를 제안했던 것이다. 두 곡 외에 ‘정녕 그대를’ ‘내일’ 등의 레퍼토리들이 우리 음악의 토속적 얼을 일깨워줬던 또 다른 이정표들이었다.

앞서 말했듯 음반에서 김수철의 전체적인 음악 인식은 동서의 조화론에 근거하고 있었다. 서태지와 신해철 등의 후배 뮤지션들이 국악을 테마 삼아 90년대 가요계를 맹진하기 전, 김수철은 그것의 밑그림을 이미 디자인해 제시했던 것이다. 한쪽에는 서구 록의 이론적 바탕을, 다른 한쪽에는 한국적 맥을 짚어나가는 선율을 배치한 그는 음악적 관측소를 확보한 뒤 자신이 느낀 삶의 질감을 주체할 수 없는 신명으로 노래했다.

그 우뚝한 두 기둥 사이의 공간에서 김수철 음악의 본령은 비로소 완성된 세계관의 틀을 구워낼 수 있었다.

자연스레 제왕 조용필에 필적할 유일한 맞수로 그가 떠오른 것은 대중적 잣대로나 음악적 평가 모두에 있어 당연한 결과였다. 이후 영화 ‘고래사냥’ 출연과 10대 가수상 등 무려 15차례 이상의 수상 경력들이 이를 잘 말해준다. 그러나 솔로 활동 와중에도 국악에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 그는 88년 발표한 ‘황천길’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국악인의 길로 들어섰다. 본 솔로 1집의 풋풋한 총기(聰氣)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강의 저편에서 활기찬 자태로 우리의 청(聽)감수성을 유혹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풍요로웠던 80년대의 일부를 자신의 지분으로 치환한 역사적인 명반이다. 동시에 김수철 음악 세계의 효시로서도 기능하며 그의 단독자적 운명을 결정지었다. 이처럼 아티스트의 개별성과 시대사적 맥락 모두에서 양가(兩價)적 성취를 굴착했기에 앨범을 향한 박수세례는 합당해 보인다. 보통 80년대가 음악적으로 다채로웠던 시절이었다고 사람들은 추억한다. 이 처녀작은 그 중심에 김수철이라는 작은 거인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대변하는 빛나는 주석이다.

〈 배순탁 | 웹진 IZM 필자 〉2008-04-03

     

     

Introduction

한국가요계의 진정한 뮤지션 김수철, 그는 1978년 광운대학교 재학시절 '작은 거인'을 결성하면서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한다. 작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파워플한 목소리와 시대의 조류를 읽는 그의 눈은 보컬은 물론이거니와 작곡, 작사에서도 그 빛을 발하면서 자신 스스로를 국내 가요계의 당당한 샛별로 등장한다.

대학시절 발표한 ‘작은 거인’의 음반은 특별한 홍보도 없이 조용히 대학가와 당시 문화의 한 부분을 차지했던 다운타운 음악다방으로 조용히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일곱 빛깔 무지개”는 그 당시의 상당한 히트곡. 이후 솔로로 전향한 그는 “못 다 핀 꽃 한송이”, “내일”, “별리” 등을 발표하면서 싱어 송 라이터로서의 인기는 물론이거니와 음악적으로도 서서히 인정 받기 시작한다. 이런 1984년부터 86년까지 그의 작품 활동은 각종 방송국의 챠트를 휩쓰는 최고의 인기를 보여줌은 물론이고 음악적 성과 역시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물론 그 사이에 있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영화 <고래사냥> 작업은 김수철에게 있어 빼 놓을 수 없는 작업 중 하나. 영화 음악 데뷔작인 <고래사냥>은 준비기간이 겨우 3일 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15곡을 만들어야 하는 여건이었지만 그 속에서도 발표된 음악은 당시 영화의 인기만큼이나 각광 받는 음악으로 남았으며 그의 천재성에 대한 또 하나의 증거로 남아있다. <고래사냥>은 음악을 맡음과 동시에 함께 출연까지 해, 연기자로서의 능력을 인정받는 계기를 주기도 했다. 영화 <고래사냥>의 음악작업은 그에게 있어 김수철 개인의 영화음악사를 따로 쓰게 할 만큼 많은 영화음악 활동의 시작임을 알리는 작업의 시작이 된다. 이런 영화 속의 음악 역시 그의 개성을 아낌없이 보여주며. '국악을 중심으로 한 양악의 조화'라는 그의 장기는 영화와 맞물려 그 진가가 여지없이 드러난다.

이련 일련의 음악활동과 함께 1986년 아시안 게임 휘날레 음악, 1988년 올림픽 게임 전야제 음악 등 행사를 위한 창작곡을 맡아 세계속에 우리 음악을 담는데 주력했으며, 방송 타이틀 음악, 시그널 음악 등, 음악에 관한 장르를 나누기가 힘들 정도로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각종 KBS 미니시리즈 '형'의 타이틀 음악, 영화 <서편제> <태백산맥> 등의 음악을 통해 그의 깊이를 표현하는 우리 음악의 진수는 영화를 더욱 빛내면서 그의 이름을 우리 문화 전반에 침투시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이런 우리 음악의 세계화를 느낄 수 있는 일련의 과정은 급기야 1997년에는 이런 그의 진가를 대내외적으로 평가를 받는 결실이라도 되는 듯 그만의 체취가 느껴지는 앨범 ‘팔만대장경’을 발표하기에 이르게 된다. 이 시기 김수철의 활동은 장르파괴에 음악적 자기정신의 확립이라는 놀라운 음악적 성숙과 함께 많은 음악인들과 팬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된다. 이는 가요 속에서 우리 음률을 느끼게 한다는 것인데 그가 보여준 이러한 노력과 성과는 여느 국악을 연구하는 학자보다 못하다 할 수 없는 최고의 경지임을 알게한다.

결혼 이후 더욱 안정된 음악적 성숙을 보여주며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김수철은 어느 부분에 국한된 음악활동을 뛰어 넘어 장르를 가리지 않고 활동하고 있으며, 이런 그의 끊임없는 도전과 실험은 한국가요계에 찾아보기 힘든 독자성과 힘을 느끼게 한다. 손에 꼽기가 힘이 드는 다작 속에서도 새로운 모습을 찾기 위해 고뇌하고 노력하는 그의 음악은 가수라는 칭호보다 뮤지션이라는 칭호를 자연스럽게 불러올 만큼 위대하다.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김수철은 진정 우리 가요계의 거인으로 불릴만한 가수이자 음악인 임에 틀림이 없다.

     

왜 모르시나 - 김수철

작은거인 김수철 2집 (신세계 1984)

김수철 金秀哲 / Kim, Soo-Chul 1957 -

Track. 1 - 왜 모르시나 (3:59)

 

     

     

변심 - 김수철

김수철 7집 - 12주년 기념음반 (서울음반 1988)

김수철 金秀哲 / Kim, Soo-Chul 1957 -

Track. 1 - 변심

 

     

     

어디에 살아있나? - 김수철

김수철 9집 작은거인/김수철 (서울음반 1991)

김수철 金秀哲 / Kim, Soo-Chul 1957 -

Track. 4 - 어디에 살아있나?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