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평화의 가요

고아(孤兒 : 구전가요) - 민주노동자 블랙리스트 문제 대책위원회 1985

리차드 강 2009. 7. 10. 00:35

고아(孤兒 : 구전가요) - 민주노동자 블랙리스트 문제 대책위원회

노동자를 위한 노래모음 1집 (지하 음반 1985)

민주노동자 블랙리스트 문제 대책위원회

No.6 - 고아(孤兒 : 구전가요)

 

날때부터 고아는 아니었다
내죄 아닌 내죄에 얽매여
낙엽따라 떨어진 이 한목숨
가시밭길 헤치며 살았다
상처뿐인 내 청춘 피눈물 장마

아 누구의 잘못인가요
누구의 잘못입니까

배고플땐 주먹을 깨물었고
목마를땐 눈물을 삼켯다
의리로써 맺어진 우리사이
목숨까지 바치며 살았다
상처뿐인 내 청춘 피눈물 장마

아 누구의 잘못인가요
누구의 잘못입니까

슬픈 노래

버스가 정류장 사이가 조금 긴 구간으로 들어서면, 카라 세운 까만 교복을 입고 하얀 장갑을 낀 학생 하나가 비척한 몸을 버스 한중간에 자리하고 노래를 시작한다. 시끄러운 버스 소음 사이로 그의 목소리는 끊어질듯 끊어질듯 애절하게 이어지며,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손잡이를 붙잡은 그의 손에 힘이 꽈악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날때부터 고아는 아니었다 ~♬ (노래가 다 끝나고)

충-성!
차내에 계신 신사 숙녀 누나 형님,
저는 편모슬하의 고학생으로 편찮으신 어머니와 배고파 울부짖는 세 동생들을 위하여 책상을 박차고 이 자리에 나섰습니다.
도와주십시요!
집에 가시면 저 같은 아들, 딸, 동생들이 있으실겁니다.
부디 그들을 생각하시고, 그들의 어려운 친구를 도와주신다 생각하시고, 이 볼펜 한 자루 팔아주시면 이 고학생 장래를 위하여 큰 보탬이 되겠습니다.
이 고학생, 여러분의 은혜 잊지 않고, 장래에 훌륭한 사람이 되어 국가와 사회에 큰 일꾼이 될 것을 약속드립니다.
충-성!"

하얀 장갑으로 칼같이 올려붙여진 경례를 끝으로 그는 앉아있는 손님들에게 모나미 153볼펜 하나씩을 디민다. 손사래를 치는 경우도 있지만, 고학생의 깨끗하고 단정한 모습에 마음이 움직여 하나씩 둘씩 볼펜을 받아들고 뒤적뒤적 지갑을 꺼내주고 어떤 사람들은 볼펜 마저도 돌려준다. 한바퀴 주욱 버스 안을 돌고나면 그는 중앙에 서서 다시 한번 거수경례를 하고, 앞으로 가서 운전기사에게 마찬가지로 거수경례로 감사함을 표하고 다음 정류장에서 총총히 사라진다.

고학생들이 버스에서 주로 불렀던 이 구전노래는 '고아' 라는 곡으로 나중에 몇몇 가수들이 자신의 앨범에 포함시키기도 하지만 역시 대중적으로 히트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봉천동에 자리잡고 있던 우리 학교 빌보드 챠트에서는 항상 1위. 그도 그럴 것이 고아원에서 온 아이들이 약 20여명이나 되었는데, 이 친구들이 장기자랑에서 주로 들고나오는 것이 이 노래였고, 누군가가 이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하면 대부분이 따라 부르던 '봉천동의 제일 가요' 였던 것이었다. 힘들어 했지만 결코 어둡지 않았던 그 친구들의 환한 얼굴들이 가끔 생각이 난다. 2008.10.14

글 출처 :  심심하면 카메라 뜯어보기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