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크그룹 '피터, 폴 & 메리', 메리 트래버스 16일 사망
▶ 피터, 폴 앤 메리의 2003년 앨범 '인 디즈 타임스'
1960년대 대표적 포크 그룹 '피터, 폴 앤 메리'의 홍일점 메리 트래버스가 백혈병으로 16일(이하 현지시간) 타계했다. 향년 72세.
17일 LA타임스에 따르면 메리 트래버스는 이날 미국 코네티컷주(州) 댄버리병원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다.
유가족에 따르면 고인은 2004년 백혈병 진단을 받고 2년 뒤 골수이식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았으나 화학요법으로 인한 부작용으로 사망했다.
1936년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태어난 메리 트래버스는 1961년 뉴욕에서 피터 야로우, 노엘 폴 스투키와 함께 '피터, 폴 앤 메리'를 결성해 공식 데뷔했다.
밥 딜런이 작곡해준 '블로인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와 '돈 씽크 트와이스, 이츠 올 라이트(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존 덴버 작곡의 '리빙 온 어 제트플레인(Leaving on a Jet Plane)' 그리고 '500 마일스(500 Miles)'와 '퍼프(Puff)' 등의 히트곡을 양산하며 피터 폴 앤 메리는 1960년대를 대표하는 미국 포크 트리오로 큰 인기를 모았다.
피터, 폴 앤 메리는 음악활동과 함께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데 있어서도 적극적이었다. 앨라배마와 워싱턴 등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와 함께 시민권 행진에서 공연했으며 베트남전 당시 반전운동에도 자주 참여했다.
◀ 피터, 폴 앤 메리의 1965년 앨범 '어 송 윌 라이즈'
메리 트래버스는 1970년 그룹 해체 후에도 남미 인권운동에 참여하고 대학에서 강의하는 등 음악활동보다는 사회운동에 더 적극적이었다.
1971년 첫 번째 솔로 앨범 '메리(Mary)'를 발표한 이래 1978년까지 총 다섯 장의 솔로 앨범을 내놓았고 1978년 재결성한 피터, 폴 앤 메리의 일원으로 2003년까지 활동했다.
LA 타임스에 따르면 고인은 골수이식수술 후에도 "매우 두려운 순간에도 유머감각을 갖고 있어야 한다. 앞일을 걱정하거나 과거를 후회한다면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지금'을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유가족으로는 남편과 두 딸이 있다.
고경석 기자 kave@asiae.co.kr <ⓒ아시아경제 & 스투닷컴(stoo.com)> 2009.09.18
In Concert (Live 1964) Label : Warner Bros. Records 9. Puff, The Magic Dragon
Peter, Paul & Mary
peter paul & mary는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500 miles"로 잘 알려진 6,70년대를 대표하는 포크 그룹입니다. 피터 야로우와 노엘 폴 스투키, 그리고 홍일점인 메리 트래버스, 이 세사람의 이름을 따 그룹명을 지은 것이구요. 이들은 반전가요를 많이 불렀지만, 또한 아이들을 좋아해 동요풍의 포크송도 곧잘 불렀습니다.
Peter, Paul & Mary
혼성 트리오 피터, 폴 앤 메리(Peter, Paul & Mary)는 존 바에즈(Joan Baez)와 더불어 내면적이고 서정적인 포크로 밥 딜런(Bob Dylan)과 또 다른 형태의 포크 붐을 주도했다. 인권과 반전이라는 포크의 기본적 성향과 맥을 같이 하면서도 멜로디와 화음, 맑고 서정적인 보컬에 있어 기존 팝 음악을 뛰어 넘었던 이들의 음악은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어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le) 이전까지 대중에게 가장 인기 있는 그룹으로 자리했다.
1950년대 말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Greenwich Village)에서 뮤지션의 꿈을 키우던 피터 야로우(Peter Yarrow, 1938/03/31)는 이후 밥 딜런(Bob Dylan)과 밴드(The Band)의 매니저로 활약한 알버트 그로스맨(Albert Grossman)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그와의 인연을 계기로 초기 포크 리바이벌의 선구자 위버스(The Weavers)를 음악적 모델로 삼은 포크 그룹을 만들게 된다. 1961년 그로스맨의 주선 하에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배우 겸 가수로 활동하던 폴 스투키(Full-name: Noel Paul Stooky, 1937/12/30)와 의기투합하게 되었고, 폴 스투키와 친구로 지내던 여성 보컬리스트 메리 트래버스(Mary Travers, 1936/11/09)가 가세하여 세 멤버의 이름을 딴 피터, 폴 앤 메리(Peter, Paul & Mary)의 역사가 시작된다.
◀ 1962--The folk-pop trio Peter Paul and Mary sign with Warner Brothers Records.
이들의 그룹으로서의 출발은 순탄했다. 유능한 매니저를 둔 덕인지 데뷔와 동시에 메이저 레코드사 워너 브라더스(Warner Bros.)와 계약을 체결한 이들은 1962년 셀프 타이틀의 데뷔 앨범 「Peter, Paul & Mary」를 내놓았고, 앨범은 이들은 물론 레코드사의 기대 역시 저버리지 않으며 그 해 전미 앨범차트 정상에 오르는 대 성공을 거두었다. 커버 곡 위주로 활동을 해서인지 싱글은 앨범 만큼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If I Had a Hammer’가 싱글 차트 10위, 국내에서 이들의 대표 곡으로 자리하고 있는 ‘Lemmon Tree’가 차트 35위에 올랐으며, ‘500 Miles’,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Cruel War’ 등 곡 대부분이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앨범의 성공으로 이들은 그 해 최우수 포크 부문과 최우수 팝 듀오/그룹 부문의 2개의 상을 차지했다.
데뷔 앨범의 큰 성공은 이들의 디스코그라피를 빠르게 늘어나게 하여 1963년 두 장의 앨범을 발표했으며, 두 장의 「Move」, 「In the Wind」 앨범 역시 각각 앨범 차트 2위, 1위에 오르며 거침 없는 인기 행진을 이었다. 「Move」에서는 한국 영화 「와니와 준하」에 조승우 테마로 사용되어 다시 한 번 애청 된 ‘Gone the Rainbow’, 포크의 전설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의 명곡 ‘This Land Is Your Land’가 수록되어 있으며, ‘Puff (The Magic Dragon)’이 싱글 차트 2위의 성공을 거두었다. 「In the Wind」에서는 밥 딜런의 커버 곡이 인기를 주도해서 ‘Blowin in the Wind’가 이들의 버전으로 차트 2위에 올랐으며, 김광석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의 원곡이 되는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도 차트 9위의 성공을 거두었다. 두 앨범의 성공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들에게 최우수 포크 상과 최우수 팝 듀오/그룹 상을 다시 한 번 안겨 주었다.
64년 라이브 앨범을 차트 4위에 올리며 엄청난 인기를 과시했던 이들은 65년 역시 두 장의 디스코그라피를 추가하며 인기를 이었다. 차트 11위에 오른 「See What Tomorrow Brings」에서는 ‘Early Mornin’ Rain’ 등의 곡이 인기를 얻었으며, 차트 8위에 오른 「A Song Will Rise」에서는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이 언플러그드에서 부르기도 했던 블루스의 고전 ‘San Francisco Bay Blues’. ‘For Lovin’ Me’ 등이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 이들의 인기는 점점 떨어져 이후 발매되는 앨범들은 모두 차트 10위 권 밖에 머물렀지만 아직도 그들에게 보내는 대중의 지지는 대단했다. 1966년 월남전의 배경 하에서 데뷔 앨범에 수록되었던 ‘Cruel War’가 다시 한 번 차트에 등장하며 인기를 얻었으며, 1967년 ‘I Dig Rock And Roll Music’이 탑10 진입에 성공 9위에 올랐다. 1969년 앨범 차트 12위에 오르며 선전한 「Peter, Paul And Mommy」 역시 그 성공을 이었고, 강한 느낌이 묻어나는 ‘Day Is Done’으로 시작된 인기 몰이를 존 덴버(John Denver)의 커버곡인 ‘Leaving on a Jet Plane’로 이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싱글 차트 정상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Peter, Paul And Mommy」의 성공에도 불구 1970년 이들은 공식적인 해체를 선언한다. 이미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메리, 야로우의 재혼, CCM으로 음악적 방향 전환을 원했던 스투키 등 하나의 그룹으로 활동하는 데 부담을 갖게 된 것이 해체 이유였다. 베스트 앨범을 전하며 이별을 전한 이후 스투키와 야로우는 이후 뮤지션으로서 꾸준히 활동하며 나름대로의 자취를 남겼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던 이들은 1978년 「Reunion」이라는 앨범을 선보이며 재결합을 선언했고, 이후 전성기 때와 같은 인기와 화제를 불러일으키지는 못하고 있지만 변함 없는 결속력을 자랑하며 꾸준히 활동해 나가고 있다.
글/아시아뮤직넷 이용지(rodydwl@asiamusic.net)
Peter, Paul & Mary 1962 Music Book |
Peter, Paul & Mary 1963 Music Boo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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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k's Beloved Princess: Mary Travers Dies at 72
By Richard Corliss Thursday, Sep. 17, 2009
Peter Yarrow, Mary Travers and Paul Stookey in 1964 AP |
Their name had biblical vibes — Jesus' mother and his two chief disciples — and there was an apostolic sweetness to this trio, singing of brother- and sisterhood, of lemon trees and magic dragons. In the folk boom of the 1960s, no group had more success than Peter, Paul and Mary, in part because of their dramatic look: two serious gents in jackets and matching goatees and, between them, a strong-featured young woman with long blond hair in bangs and a supple, powerful voice. That was Mary Travers, who died Sept. 16 at 72 in Danbury, Conn., after a long bout with leukemia.
Born in Louisville, Ky., in 1936, Mary Allin Travers moved as a baby with her writer parents to New York City's Greenwich Village, where she would join the blooming local folk scene in nearby Washington Square Park. In her teens, as a member of the Song Swappers, she sang backup for Pete Seeger and appeared on Broadway in the short-lived folk musical The Next President. She also earned money babysitting; one of her charges was an infant English aristocrat, the fifth Baron Haden-Guest, who as Christopher Guest would direct and star in the 2003 film A Mighty Wind, an affectionate parody of the folk-boom years.
For pop consumers in the late '50s, folk music was the Kingston Trio, with their frat-boy élan and their repertoire purloined from Seeger and other traditionalists. Then one man suggested that the genre could be bigger. "The American public is like Sleeping Beauty, waiting to be kissed awake by the prince of folk music," said Albert Grossman, a Chicago entrepreneur, at the first Newport Folk Festival, in 1959. Bob Dylan, whose manager Grossman became in 1962, may have been that prince, but the raspy-voiced kid needed troubadours to sell his message to the masses. Grossman had seen Travers perform with her friends Peter Yarrow and Noel Stookey; he took them on, changed Noel's name to Paul and got the group a contract with the new Warner Bros. Records. Peter, Paul and Mary's self-titled first album (1962) went to No. 1 and stayed in the Top 20 for two years.
But singles were the thriving format back then, and that's where PP&M shone. They scored six Top 10 hits and placed seven others in the top 40. Travers' strong lead on "Lemon Tree," a Brazilian folk song for which Will Holt had written new lyrics, gave them their first hit. It was followed by Seeger and Lee Hays' "If I Had a Hammer." The group changed the phrase "all my brothers" to the more ecumenical "my brothers and my sisters" and helped make the number an anthem for the decade's civil-rights movement. Their rendition was a highlight of the 1963 March on Washington; another was Martin Luther King Jr.'s delivery of his "I Have a Dream" speech. Unlike the studiously apolitical Kingston Trio, PP&M attached their celebrity to progressive causes — and would continue to do so over the 47-year life of the group.
Inevitably, one Grossman act inspired the other: PP&M recorded "Blowin' in the Wind," the first Bob Dylan song to become a hit, and lent a mellow rue to his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thus spurring a small industry of Dylan covers and easing the singer-songwriter's emergence as his own wiliest interpreter. They had hits with new compositions (John Denver's "Leaving on a Jet Plane") and reworked folk tunes (Hedy West's take on "500 Miles"). Other groups had recorded these songs, but PP&M sold them best, with artfully simple musical settings — and the striking girl in the middle.
Like many folk groups, they found their material by scouring old songbooks and listening attentively to obscure albums on the Folkways and Vanguard labels. one Vanguard trio, the Greenbriar Boys, expressed resentment when PP&M used their arrangement of the English ballad "Stewball" for yet another hit single. But Seeger said he was pleased by PP&M's version of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which he had adapted from a Cossack lyric (and to which folk singer Joe Hickerson added the final verses). Voilà! one more antiwar ballad to insinuate its thesis into the minds of the vast AM-radio audience.
For all their scrupulous borrowings, PP&M's most memorable hit came from within the group. When Yarrow was at Cornell, a fellow undergraduate, future indie filmmaker Lenny Lipton, had written a poem in the spirit of Ogden Nash; Yarrow set it to music, and a few years later the trio recorded "Puff the Magic Dragon." This children's song, with its fanciful friendship and lilting chorus, would dominate the Top 40 and be sung in summer camp forever after. To the cognoscenti, this was a drug song in pop-music code: Puff, drag-on, "little Jackie Paper." Hipsters began referring to the group as Peyote, Pot & Maryjuana — though Yarrow consistently denied the hallucinogenic connection. He was even more adamant in condemning Paul Shanklin's 2007 anti-Obama burlesque, Barack the Magic Negro, which Yarrow called "shocking and saddening in the extreme."
Times, they change, in pop music. Dylan went electric; the folk songbook was nearly depleted by raids from the myriad groups that sprung up to grab the gelt; and Peter, Paul and Mary disbanded in the early '70s to pursue solo careers. At the end of the decade the group reunited, "after their rejuvenating years of personal re-definition" (their website's words). Though they kept recording new material, they were essentially an oldies act, appearing with other antique pop-folkies like the Highwaymen and the Brothers Four at concerts that PBS liked to air in prime time during every pledge week. Travers, by then on her fourth husband, had put on quite a few pounds, but she never lost the potent alto that blended so becomingly with Yarrow and Stookey's voices.
After a leukemia diagnosis in 2005, she underwent a seemingly successful bone-marrow transplant and tried to keep performing. She finally succumbed from complications after chemotherapy treatments. The flower of Peter, Paul and Mary has gone to graveyards, everyone, but her voice lives inside three generations of music lovers. 출처 : The Time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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