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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판치는 목사들이 왜 이리 많은가? (제2탄)│고은광순 칼럼

리차드 강 2009. 10. 7. 08:26
개판치는 목사들이 왜 이리 많은가? (제2탄)
일제 부역한 한국 개신교와 박정희 친일정권은 붕어빵
“남북정상회담을 해서 고려연방제로 통일하자고 선포하면 (올) 대통령 선거도 못하니 남북정상회담이 못 열리도록 기도해야 한다.”, “친북·친공·반미·좌파세력이 정권을 잡지 못하도록 해야 하고, 기왕이면 예수님을 잘 믿는 장로(이명박을 지칭)가 대통령이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세계 최대의 감리교회, 감리교단 제1인자였으며 한국기독교총연합(한기총) 고문인 김홍도 목사의 최근 발언이다. 그는 2003년 공금횡령, 배임, 건축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되었다가 40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난 후 2006년 대법원에서 유죄확정(징역 2년6월, 집행유예3년, 벌금750만원)을 받았다. 만70세가 되는 내년까지도 금란교회의 목사직을 수행할 예정이며 후임은 그의 아들이 맡는단다.
그는 신동아 조성식 기자와의 인터뷰(2007. 7월호)에서 자신에 대한 빨갱이 언론(MBC를 지칭)의 공격은 좌파정권의 음모에서 비롯되었으며, 유부녀인 배**여인과의 불륜건도 ‘그 여자의 거짓말’에 불과하고 자기가 법정에서 불륜을 인정한 것은 잘못 선임한 변호사의 잘못된 전략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의 진술-김 목사의 유인에 의해 수년간 호텔, 기도원, 부흥회 주차장 등에서 관계를 맺어왔다는-은 법정에서 중요한 증거로 채택이 되었으며 김 목사는 교회공금이 포함된 2억을 그녀에게 합의금으로 준 바 있다.)
한국 개신교 부흥의 상징이며 한기총 시청 앞 궐기대회의 단골연사인 그는 종교계 내부의 선거과정에서 2억3700만원의 교회공금을 사용한 사실이 법정에서 드러났지만 그건 종교계 내부에서는 너도 하고 나도 하는 관행이므로 횡령으로 모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남북관계가 진전되면 공산화되고 교회는 말살되며 다 죽게 될 것이므로 ‘좌파정권은 자꾸 까야 한다’고 말한다. 성장만 있고 분배, 나눔이 없다는 한국 교회의 대형화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공산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나온 것이라고 일축하고 교회의 1년 재정을 묻자 “그건 비밀”이라고 답한다.
한국 개신교의 문제를 모두 함축적으로 가지고 있는 김홍도 목사에게서 한국 개신교의 역사가 그대로 드러난다.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는 1883년 황해도에 세워진 소래교회로 알려져 있는데 초기에 중국의화단사건으로 원산에 피신한 화이트, 맥컬리, 하디 등의 선교사에 의한 1903년 원산부흥운동과 블레어, 고포드, 헌트 선교사 등에 의한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에 이어 리드 목사 등이 주도한 1909년 백만인 구령운동(백만 신자를 만들자는 구호제창) 등 부흥회 형식으로 공격적인 선교가 이루어졌다.
평양을 중심으로 많은 교회가 건립되어 활발한 종교활동을 하던 중 조선총독부가 ‘기독교 지도대책’을 내세우며 신사참배를 요구하자 천주교 감리회 성결회 구세군 성공회 등 대부분의 교파들이 일제에 굴복했으며 조선예수교장로회 평양노회도 1938년 9월 27차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한 뒤 해방될 때까지 하나님 자리에 가미다나(神棚)를, 찬송가 대신 일본국가를 불렀으며 장로급 이상은 일본에 건너가 일본 신사에 참배하고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1939년 28차 총회에서는 국민정신 총동원 조선예수교장로회 연맹을 조직했는데 이는 총독부에 동조하여 독립운동가를 색출하여 고발하던 가장 큰 세력의 하나였다.
조선예수교장로회는 1937~39년 사이에 전승축하회 5백94회, 무운장구기도회 9천53회, 국방헌금 1백58만여 원(당시 쌀 한가마 30원), 시국강연 1천3백여 회 등을 열어 미군과 싸워 이겨달라는 신도의식을 거행하는 등 일본을 도왔다. 초기에는 강압이 있었다 하더라도 점차 솔선수범했고 나중에는 경쟁적으로 열성을 다해 부일협력을 했고 그 성과에 자부심을 가졌다는 것이다.
신사참배를 거부했던 주기철 목사는 평양노회에 의해 목사직을 파면 당하고 감옥에 갇혀 있다가 옥사했는데, 당시 평양노회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한국개신교의 신화적 인물인 한경직 목사다.(그는 수많은 영락교회를 지었고, 대광학원, 보성학원, 영락중고등학교, 숭실대학 등을 설립하거나 이사장을 역임했다.)
한국 개신교의 상징인 한경직 목사는 1938년 신사참배를 결의할 당시 로마서 13장을 인용했는데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는 글귀에 따라 그는 1961년 박정희의 5. 16 군사쿠데타를 옹호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고, 3선개헌과 유신헌법을 지지하여 박정희의 18년 독재를 지원했으며 1980년에는 5.18 학살의 피가 마르기도 전에 전두환에게 축복의 기도를 해 주었으며 1989년에는 한국기독교총연합(한기총)의 창립준비위원장을 맡았다.
한편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옥에 갇혀 있다가 해방이 되어 세상에 나온 목사들이 일제에 아부한 목사들을 비판하자 주류 개신교지도자들은 그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교단에서 추방시켰다. 주기철 목사는 순교 후 67년이 지난 2006년에야 예장통합 평양노회로부터 목사 자격이 회복되었다.
일제 시대에는 일제에 아부하고, 해방 이후에는 독재자들에게 아부했으며,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동료 교역자를 공산주의로 몰아 내쳤던 것이 한국 기독교를 지금까지 부흥시켜 왔던 주류 개신교인들의 모습이다. 일제에 아부하고 미국을 몰아내라며 국방헌금을 했던 자신들의 치부를 해방 직후 반공과 친미의 우산 속으로 감추었던 그들이기에 지금도 가열차게 반공과 친미를 외치며,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모든 개혁적 행동을 ‘빨갱이의 음모’로 몰아 부치는 것이 그들의 생존전략으로 되었다.
박정희와 정일권은 일본군 장교로 만주에서 근무하다가 일본의 패망으로 무장해제 당한 다음 일본육사 위탁교육을 받은 친일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소련군에 체포되어 이송되던 중 화물기차에서 뛰어내려 조선애국의용대 김동석(가수 진미령의 아버지/ 후일 북파공작원의 대부가 된다.)의 도움으로 남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이사람 김동석 162쪽)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군인 박정희, 일제에 아부하던 개신교 주류들, 그들에게는 일제시대의 부끄러운 행위를 감추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반공과 친미를 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공과 친미의 우산 아래 그들은 동지이며 형제였다. 권력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거머쥐어야 하며, 어떠한 권력이라도 자기들에게 이익이 된다면 하늘이 내린 것이라고 합리화하는 가치관도 공유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의 불륜을 들추는 자에게도 ‘빨갱이’, 교회의 재정을 투명하게 하여 건강한 종교를 가꾸기 위해 종교법인법을 만들자고 하는 자에게도 ‘빨갱이’, 섬김과 나눔의 예수사랑을 이야기해도 ‘빨갱이’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고, 그것이 이 사회에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들은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를 친북·친공·반미·좌파세력으로 몰아부치며, 이명박 장로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반북, 반공, 친미, 우파의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야심을 숨기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국가, 평화, 복지 보다 교회의 거대화, 개신교의 국교화, 교회의 세습, 헌금의 증액에 더 관심이 많다.
구약에 언급되어 있는 십일조(十一租)는 애당초 국가와 종교의 역할구분이 명확하지 않던 시절 3년에 한번쯤은 수확의 10분의 1을 과부와 배고픈 자들에게 베풀라고 했던 것인데 중세로 넘어오면서 세금의 형식을 띠자 민중의 저항 때문에 영국에서는 1648년, 독일에서는 1807년, 프랑스에서는 1789년 대혁명 과정에서 폐지된 것이다.
사라진 십일조가 1900년 초 미국의 한 귀퉁이인 캔사스 주의 오순절교회분파(방언, 안수치료강조, 미신, 기복신앙적 종파)에서 슬그머니 부활되자 한국에서는 이단이고 아니고를 떠나 ‘한 마음 한 뜻으로’ 냉큼 받아들여 확고부동한 한국 개신교의 문화로 만들어버렸다.
애당초 구약에는 십일조를 구제활동에 쓰라고 했지만 이들은 신자들이 하나님에게 받친 돈을 목회자 활동비, 화려하고 웅장한 교회건축에 다 사용하고 교세확장에 몰두하고 있다. 유독 개신교의 선거판에 수억 원이 오가는 것이 관행으로 묵인되고 있는 것은 내부의 자정능력이 오래 전에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교회 수는 6만~8만. 전국의 약국 수가 2만 정도이니 약국보다 3배~4배나 많다. 이수역 근처에는 한 빌딩에 4개의 교회가 들어 있는 곳도 있다. 300여개의 교회 분파가 경쟁적으로 세를 늘려가고 있고 각각 목사 안수를 주기 때문에 질과 양의 측면에서 통제가 불가하다. 난립되어 있는 200여개의 신학대학에서 저질목사가 대량생산되어도 전국토를 하나님나라로 만들고 싶은 그들에게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숫자를 조절하는 것은 무의미하게 생각되는 모양이다.
김홍도 목사가 물질, 여자, 교만을 목사들이 조심해야 할 3대 암초로 꼽는 것은 역으로 그동안 상당수의 개신교 목회자들이 물질, 여자, 교만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성신도에게 목사를 조심하라는 말을 해 주지 않는 것은 공평하지 않으며 참으로 교만한 처사로 보인다.)
강남의 대형교회 목사는 은퇴하면서 차마 아들에게 신도 수 5만의 교회를 물려주지 못하고 교회 돈으로 200억을 들여 분당에 교회를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신도 수 3천의 아들 교회가 자기 교회에 비하면 게임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자기가 은퇴했던 교회로 아들을 끌어들이느라 새삼스럽게 분란이 일고 있다. 그는 은퇴할 때 후임 목사에게 회계장부를 넘겨주면서 알맹이를 모두 꺼내어 불살라 버리고는 껍데기만 넘겨주었다. 연말 결산 공개? 하기는 했다. 사진으로 찍어 후루룩 스크린으로 보여 주었단다. (참말로 그 목사에 그 신도들이다. 그 역시 한기총 원로 목사다.)
너무 많은 목사가 물질에 코를 박고 있다. 너무 많은 여성들이 성폭력과 성추행을 당하고 있다. 그들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종교를 강요하며, 남북관계의 개선을 방해하고, 대미 자주외교를 비웃고, 양성평등을 저해하며, 양극화 해소를 말하면 친북친공좌파빨갱이라 매도한다.
여인을 유인해 수년간 불륜을 저질러 판사 앞에서 시인을 해놓고, 시간이 흐르자 상대여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을 뿐 결백하다고 오리발 내미는 목사. 그가 한국 기독교의 어르신 노릇을 하고 있으니, 대체 하나님은 존재하기는 하시는 걸까?
2007-08-17 고은광순(한의사)
출처 : 데일리 서프라이즈
     
쓰레기 - 올라이즈 밴드
1집 FIRST ALBUM (2001, JAVE)
우승민 All Lies Band 1975-
Track. 10 - 쓰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