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풍노도의 에피소드’의 상흔들, 숨겨진 이야기들
30년을 좌파로, 급진노동운동에 복무하며 살아온 귀 독자라면 87년 노동자 대투쟁과 그 시기를, 90년대 초반 노동운동 위기논쟁에 대해, 또는 당시 급진노동운동의 위치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갖고 계신가.
책의 핵심에 대해 이광일 연구자는 “그 시대 혁명을 말한 급진적인 노동정치세력들은 ‘혁명의 시대’에 걸맞는 헤게모니를 지니고 있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썼다.
이광일 연구자는 급진노동운동을 둘러싼 기존의 비판적 논의나 논평(comment)의 대부분은 6월항쟁 이후 진척된 ‘정치적 자유화’ 조치들의 내용과 이완된 정치적 공간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했다고 지적한다.
“그것(과도한 의미 부여)에 근거하여 급진노동운동을 ‘과잉평가한 후 과잉비판’하는 공통된 양상을 보였다. 즉 6월항쟁 이후 ‘민주화 이행기’에 이른바 ‘다양하게 열려져 있던 전략적 선택’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한 채, ‘최대강령주의’를 추구한 급진노동운동이 87년 노동조합운동이 ‘대폭발(big bang)'하는 상황에서 이념적, 조직적으로 이들에 삼투압 되었고 이러한 관계구조의 지속이 다시 그 대중들을 이탈시켜 노동운동 위기의 주요인이 되었다는 류의 분석이다.”
이광일 연구자는 80년대에 등장한 급진노동운동의 위상과 성격에 대한 과도한 의미 부여를 경계한다. 책 전반에 흐르는 문제의식의 요점이다. 급진노동운동이 반파시스트 투쟁을 일관되게 전개하며 새로운 사회 이행을 모색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념, 조직의 수준에서 보면 대중적 헤게모니를 행사한 적이 거의 없었다는 분석이다.
이를 논증하기 위해 이광일 연구자는 90년대 초반 노동운동 위기론에 대해 쓴 많은 자료를 분석하고, 여러 연구자들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이 과정에서 급진노동운동이 대중적인 노조운동에 헤게모니를 행사하고 있었다는 주장들은 역사적 사실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니까 논의, 논평의 대부분이 노동운동의 역사와 이론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 및 검토, 혹은 고민 없이 이른바 ‘민주화이행’ 국면에 급진노동운동을 외삽적으로 끼워 넣음으로써 “6.29협약에 의해 구조화된 이른바 ‘87년체제’의 구조적 한계, 즉 자유주의 정치세력과 신군부파시스트세력의 타협에 의해 진보적인 운동정치세력들이 배제되었다는 사실이 민감하게 고려되지 않는다”고 본다.
“80년대 급진노동운동이 대중적 헤게모니를 지녔다고 전제하는 논의들은 급진노동운동의 위상을 과잉 격상시킨 후 그에 합당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부당하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심화와 관련하여 자유주의 정치세력들의 책임을 분산, 면제하기 위한 것에 다름 아니다. 바로 이러한 해석이 90년대 초 노동운동 위기론을 말한 주장들이 공유하고 있던 핵심 전제라는 점에서 그 정치적, 이데올로기적인 지향과 함축은 더욱더 확연히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해석은 여전히 자연스럽게 수용되면서 급진정치세력들의 행보를 비판하는 역사적 근거로 인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개인적, 집단적 희망과 좌절, 상처들.. 트라우마.. 80년대는 단지 ‘질풍노도의 에피소드’인 것이지.
이광일 연구자는 당시 노동운동을 다룬 의미있는 성과로 최장집의 연구를 꼽고 비판적으로 검토하기 시작, 김녕, 박승옥, 송호근, 김동춘, 노중기, 임영일, 김영수 등의 글을 차레대로 논평한다.
가령 최장집과 송호근의 글에 대해서는 “정치적 노동운동과 대중적 노동조합운동의 상호관게를 통해 운동의 양상을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적절”하지만 “‘최대강령주의자들’, ‘새로운 노동운동’의 이념, 조직의 수준에서 대중적인 노동조합운동과 연계되어 헤게모니를 행사하였다고 주장하면서도 이후 그것의 쇠퇴를 가져온 매개요인에 대한 의미있는 분석 없이 바로 이러한 조건이 노동운동의 발전에 장애요소가 되었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징검다리 없는 ‘비약’으로 나아간다”고 지적한다.
이광일 연구자는 이 주장이 80년대 노동운동의 이론과 실천의 긴장을 간과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으로 본다. 노동자정치운동이 노동조합운동의 향배를 좌우할 만큼 그에 대한 헤게모니를 갖고 있다는 가설을 전제한 이들 주장에 대해 “87년 이후 급진노동운동이 국가권력의 집중적인 억압과 탄압으로 재구조화 과정에 있었다는 사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임영일의 글 ‘한국의 노동운동과 계급정치’에 대해서도 급진노동운동의 역사적 위상과 공과를 거론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조직화를 언급하면서 그 방향을 ‘계급정당’의 조직화에서 찾는 것은 ‘민주적 계급정치구조’ 속에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하면서 92년까지 진행된 노동운동활동가 조직들의 정치적 실험의 실패와 좌절은 바로 이에 대한 관념적 접근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 노동조합운동이 기업별 노동조합주의에 의해 질곡되었던 시기에 ‘계급정당’의 조직화, 한 발 더 나아가 ‘전위정당’ 건설을 지향하기조차 한 활동가운동의 위상에 대한 평가를 회피함..”
이광일 연구자는 임영일의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넘고자 한 노력을 김영수에게서 발견한다. 이광일 연구자는 김영수의 글 ‘한국의 노동자정치운동과 민주노조운동 간의 연대관계’에 대해 “민주노조운동과 노동자정치운동은 상호 분화와 통일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할 때만이 그 의미를 분명히 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고, “‘민주화 이행’의 와중에서 벌어진, ‘위기’를 포함한 노동운동의 미래는 여전히 상이한 경로와 위상을 지니는 정치운동과 대중운동의 분리 및 연대라는 차원에서만 해명될 수 있다”고 정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