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민특위 해체 60년 만에 나온 친일인명사전
일제 강점기 4389명의 친일 행적을 기록한 <친일인명사전>이 어제 발간됐다. 친일파의 반민족행위를 처벌하려고 1948년 제헌국회에 설치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다음해 성과 없이 해체된 지 무려 60년 만이다. 친일파가 사회의 주류로 편입된 우리 현대사의 뒤틀린 구조에서 나온 중요한 성과물이다.
사전 편찬이 일단락되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은 것은 불문가지다. 2001년 12월 시작된 작업은 기득권층의 거센 저항을 받았다. 수록자 예비명단이 몇 차례 공개될 때마다 이 작업을 무산시키려는 소송과 조직적인 움직임이 뒤따랐다. 2003년 말에는 국회가 이 작업과 관련된 예산을 전액 삭감했으나 3만여명의 국민이 자발적으로 열흘 만에 7억5000만원의 성금을 모아주기도 했다. 제구실을 못하는 정치권과 정부를 대신해 국민이 발 벗고 나선 셈이다.
이 사전의 취지는 “부일협력이라는 치욕스런 행위를 정확히 기록하고 이를 용감하게 대면해 미래로 나아가는 지름길로 삼는” 데 있다. 친일 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일일이 묻기에는 너무 늦었으나, 당시의 일을 온전히 기록해 그릇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과거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국민은 미래를 제대로 준비할 수 없는 법이다. 민간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이번 작업을 하는 동안 이명박 정부가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제동을 걸려고 한 것은 이런 면에서 아주 부적절했다.
사전에 실린 사람의 후손들 가운데는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문제를 제기하는 대부분의 경우는 사실보다 평가에 관련돼 있다. 실제로 무엇이 적극적 친일인지 엄밀하게 선을 긋기가 쉽지 않을 수 있고, 항일과 친일을 함께 한 사람도 여럿 보인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역사를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이 있는 만큼, 어설픈 논리로 친일 행위 자체를 합리화하려 해서는 결코 용인받지 못할 것이다.
친일 문제는 근대 이후 우리 역사에서 자라난 종양과 같다. 따라서 친일 문제에 대한 다각적인 접근은 이번 일로 마무리될 수도 없고 마무리돼서도 안 된다. 이번 사전 발간이 친일 문제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는 계기가 돼야 할 까닭이다. 정부의 무관심 속에,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도 이달 말로 끝난다.
촐처 : 인터넷 한겨레 사설 2009-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