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통일

천안함 의문사, 왜 이 시기에 터졌나...

리차드 강 2010. 4. 26. 20:01

천안함 의문사, 왜 이 시기에 터졌나

     

boxer (matchbox21) | 04.21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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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침몰 사고는 애초부터 그 원인이 규명되었을 사건이며 구조와 인양 작업이 신속하게 처리되어야 했습니다. 기상 조건을 고려하더라도 한 달 가까이 시간을 끌어야 할 만큼 국방부는 무엇을 숨기려 했고 어떠한 정치적 목적을 두고 있냐는 것이 핵심입니다.

국방부가 공개하지 않거나 입 단속하는 '교신일지'와 생존자 증언에서 들려오는 정보만으로도 청와대는 그 진상을 짐작하고도 남았습니다. 정권 구성원들의 성격상 '북한 어뢰'에 의한 침몰이라 확증했다면 사건 초반부터 이에 자신감을 갖고 확전하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를 보니 청와대는 자신이 없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정부 책임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불리한 사실들을 '북한 어뢰설'로 덮을 수 있는 시간과 여건이 필요했던 것이죠. '북한 어뢰설'로 섣불리 각인하다간 역효과가 예상되니 '사실 규명' 할래야 할 수 없는 조건이 필요했습니다. 언론을 구워삼으며 사실 규명이 될래야 될 수 없는 은폐조작의 여건입니다. 이 시간 동안 청와대발 정보를 모를 리 없는 조선일보로서는 사건의 책임을 덮어야 했기에 '북풍조작'에 앞장섭니다.

청와대가 몰랐다면 제왕적 대통령으로 등극하고도 국방부의 은폐 조작 앞에 놀아나는 무능으로 밖에 볼 수 없어 믿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국방부의 은폐 조작 유무입니다. 사건 40분 후에야 합참 의장을 거치지 않고 청와대에 보고 됩니다. 그 시간 동안 무엇을 감추기 위한 작업이 있어 청와대에 직통으로 보고할 수 밖에 없었는가입니다.

의혹이 확대된다는 이유를 들어 선체 절단면을 그물로 가렸습니다. 도대체가 어떤 의혹이 두려워 함미 절단면을 가렸을까요. 국방부의 '사건 시각' 발표는 오락가락 했고 'TOD 화면'은 처음부터 전면 공개하지 않아 조작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인양 작업' 인부들에게 언론 인터뷰를 금지시키고 '생존자 52명' 중에 사건원인 조차 모른다고 말할 만큼 국방부는 입단속을 합니다.실종자 가족들 사이에 경찰이 위장잠입하여 감시했던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요.

이 정권에서는 보통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연속입니다. 그래서인지 천안함 침몰사고가 왜 시기에 터졌는라는 물음이 생성됩니다. 현 정권 구성원들의 서해교전은 야당 시절에서부터 재미를 본 기억이 있어 다시 한 번 재현되고 싶은 유혹이 있습니다. 그래서입니다. 천안함 침몰이 정권내의 불순한 분자들이 저지른 사건이 아니냐는 음모론이 나올 정도로 국방부는 뭔가 숨기려 합니다.

만에 하나를 위해 이런 의구심을 버릴 수야 없겠지만 그 음모론이 무리하고 억지스러워 폐기처분한다 해도 "천안함 사고는 왜 시기에 터졌나"라고 묻는 것은 청와대가 이 사건을 보고 받을 시, 정부의 부실 책임론을 덮을려는 그 이상으로 천안함 사고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려는 냄새가 있기에 그러합니다.

정권의 봉은사 외압 의혹이 한 참이었고 한명숙 무죄가 예상되었던 시기이며 '4대강 사업'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며 교과서 표기를 선언했습니다. 기다려 달라는 MB의 독도 발언은 이 상황을 두고 말하는 경우가 아닌지 궁금합니다. 낙하산 방송사들은 여지없이 천안함 보도에 의해 다른 사안을 축소하거나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지방선거가 다가오는 시기입니다. 그래서입니다. MB 정권은 이 사건을 최대한 장시간으로 끌고 가야했습니다. 구조에서부터 인양까지 한 달이 걸리는 이유이며 사건규명을 최대한 늦추며 북풍 바람을 일으킬려는 노림수 속에 천안함 사망자를 거명하며 눈물을 흘리는 이명박 쇼는 가증스럽지요. 용산참사와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에 거만함을 보였던 MB의 천안함 눈물쇼에 과연 누가 감동 할까요.

여기에 더해 '클로즈 업'되는 정권의 행위들을 보면 80년대로 돌아가는 것 같아 암담합니다. 전두환 정권에서 보여왔던 메뉴들이 하나 둘 씩 등장합니다. KBS가 성금 모금 방송으로 도배되는 모습에는 금강산 댐에 맞서겠다며 내세운 '평화의 댐' 성금이 연상됩니다. 서울이 물바다가 될 것 처럼 과장했던 북한 '금강산 댐'에 맞서 정부 주도하에 동네 이웃 사람들이 한 두 푼 모아 보냈던 '평화의 댐' 성금은 전두환 동생 호주머니에 들어간 것이 24년 전의 일입니다.

성금 모금을 주도했던 KBS의 특집 방송에서는 이명박 정권에 거슬리 않는 관제 지식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 하는데 '북한 어뢰'를 기정사실화는 위에 북한의 거짓말을 질타하고 앞으로의 전망과 대처를 논합니다. 거기에는 '이견과 논쟁'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국정원과 검찰 역시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북한의 황장엽 암살단이 이 나라의 국정원과 검찰 앞에 맥을 못추고 잡히고 말았다는 소식입니다. 천안함과 연계되었다는 발표도 있습니다. 천안함 '어뢰 탐지기'도 속일 수 있다는 북한의 국방외교 기술이 남한의 국정원 앞에서는 안되는 모양입니다. 전직 대통령과 총리에 허위 조작 수사도 마다하지 않는 검찰이 탈북자를 향한 '허위 날조' 정도야 누워서 떡먹기가 아닐까요?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형 안보 사건은 왜 '한나라당 집권'일때 자주 일어나는 것이죠? 아웅산 폭발과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그리고 KAL기 김현희 사건이 그렇습니다. 김대중 - 노무현 정부에서는 조용하더니 이명박 정권 들어 천안함 사건이 발생합니다. 한나라당이 집권할때마다 불안해서 어디 살겠습니까.

반공을 팔아 냉전 구도를 확산하고 비판자를 억압하는 독재 정권의 공통된 현상이겠지만 정권 차원에서 특별히 조작된 것은 없을까요? KAL기 김현희는 왜 선거 전날 발생했으며 아웅산에는 왜 전두환만 살아났을까요? 우리가 이 사건에서 얻었던 정보는 정부의 일방적 발표 수준이었습니다. 천안함 사건 또한 KAL기 김현희 사건과 함께 '의문 사건'으로 남게 되는 것이 아닌지 걱정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국방부는 지금이라도 숨기지 말고 사건의 진상을 낱낱이 공개해야 합니다. 어뢰 폭발임에도 생존자들에게 고막이 터지고 치명상을 입는 사실이 없냐는 물음에도 '모르쇠' 합니다. 어뢰 탐지기는 불능이냐고 물으니 북한 유도 어뢰라는 신형기술론으로 답변하는 국방부에 사람들이 웃습니다. 생존자에게 치명상이 없게 하는 '버블제트'론은 북한 무기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을 확인한 것이라 의아해 합니다. 기가 막히는 국방부입니다.

국방부는 천안함에 물이 여러번 샜다는 증언에 귀 기울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사고 원인 결론은 이미 짜여져 있으니 말입니다. 국방부가 아무리 떠들어야봐야 선체 결함 및 침수론, 암초론, 훈련과정의 미국 실수론에 비해 설득이 되지 않습니다.

암초 추론에서 국방부는 암초 지도의 사고지점에서 암초는 없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물론 사고지점에서는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안함은 B지점에서 사고 지점 A로 질주한 것은 사실입니다. B지점에 충돌이 없었을까요? B지점에서 충돌한 시간이 9:15분, 사고 지점 A에서 침몰한 시간은 9:22 분, 7분 동안 해군은 뭐하고 있었을까요? 새떼를 쏘았다는 속초함에게 물어봐야 할까요

천안함 함미 절단면을 보니 사선이더군요. 침몰이후 바다속 바닥에 부딪힌 흔적이고 지진파는 여기에서 감지된 모양입니다. 그러고도 국방부 및 낙하산 방송사들은 끊임없이 어뢰설로 몰아붙이는 형국입니다.

글 출처 : 인터넷 한겨레 한토마 방에서...

     

백두에서 한라,한라에서 백두로 - 노래를 찾는 사람들

노래를 찾는 사람들 4 (서울음반 1994)

노찾사 Noraereul Chatneun Saramdeul 1984-

No.11 - 백두에서 한라,한라에서 백두로

 

Introduction

노래를 찾는 사람들 (Noraereul Chatneun Saramdeul 혼성그룹 1984- )은 80년대에서 90년대에 걸쳐 한국에서 활동한 민중가요 노래패이다. 흔히 줄여서 노찾사라고 부른다.

1980년대 대학가에선 군부독재에 맞선 민주화 투쟁으로 많은 집회가 있었고, 그런 와중에 자연스럽게 집회 등에서 많이 불리던 민중가요 노래패들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생겨났다. 민중가요는 민중들의 현실을 내용으로 하여 주로 사랑타령이던 기존의 가요와 차이를 보였으며 따라서 상업적인 성공은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앨범은 대중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며 민중가요의 발자취를 한국 대중음악사에 남기는 역할을 하였다.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