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통일

안중근(安重根) 도마 장군을 위하여!!!

리차드 강 2010. 3. 22. 13:44

안중근(安重根), 도마 장군을 위하여!!!

안중근 토마스 장군, 동상제작

예비성인 안중근 토마스 장군 동상봉헌(2010년 3월 26일)일에 맞게 동상제작이 아주 순조롭게 진행됐습니다.

모든것이 많은분들의 기도와 성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중근 토마스 장군의 순국 100주년이되는 2010년 3월 26일에 시간내시어 함께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사진 출처 : 미리내 유무상통.

     

안중근(安重根), 도마 장군을 위하여!!!

나 보다 나이는 몇 살 아래이시지만 내가 참으로 존경하고 따르는 신부님이 한분 계시다. 방상복 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경기도 안성에 있는 미리내 성지 입구의 유무상통 실버타운 성당을 맡아 계시는 신부님이시다.
젊어서 파푸아뉴기니에 선교활동을 하시다가 말라리아를 앓으신 후 그 후유증으로 가는 귀가 잡수신 분이심에도 그 분은 항상 조용하고 다정다감한 음성을 지니셨다.
신학교를 졸업하여 신품성사를 받은 사제가 불교에 심취하여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에서 불교학을 공부 하신 것도 그렇고... 우리나라 최초로 4월 초파일에 성당 명의로 "부처님 오신 날을 경축합니다." 라는 현수막을 내 걸어 이미 30년 전에 일간지를 통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분이시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이스라엘 미녀 성모상 대신에 쪽진 머리에 비녀를 꼽은 한국 어머니상 성모상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이며, 대못에 박힌 채 십자가에 매달려 있어야 할 예수님을 "이곳에서 만은 제가 예수님을 대신해서 어르신들을 위해 성심성의를 다 하겠사오니 예수님은 십자가 아래로 내려오셔서 좀 쉬고 계십시오." 하는 마음으로 유무상통 실버타운 십자가에는 개신교 십자가처럼 예수님이 안 계시고, 예수님은 자신의 손과 발에 박혔던 대못들을 뽑아 손에 쥐신 채 십자가 아래 가부좌로 앉아 계시는 형상을 전시함으로서 한 때는 사이비에 휘말기기도 했지만 전혀 아랑곳 하지 않으시고 지금까지 오로지 사제의 길을 올곧게 걷고 계신 지행일치의 멋진 신부님이시다.

마치 달마스님을 연상케 하는 빛나는 대머리에 하얗고 긴 귀밑수염과 턱수염이 항상 즐겨 입으시는 개량한복에 완전 예술 작품처럼 어울리신다.
평소에 당신게서 좋아하신다는 다석 유영모 선생과 씨알 함석헌 선생을 흠모하다 보니 아마도 그분들 모양과 거의 같아지셨는지 모른다.

방 신부님은 노무현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떨어져 목숨을 끊자 "자살은 대죄이다"는 통설을 무시하고 천주교인들을 데리고 봉하마을 빈소에 먼저 연도를 가신 분이시다. 당시 우르는 실버타운의 80이 넘으신 할머니들과 함께 였으므로 남들은 5km나 걷는 길을 버스로 들어갈 수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신 다음날 선착순으로 연도를 갔던 우리들 신부님 줄에 연도를 하는 내 모습도 보인다.>

방신부님께서 얼마 전에는 또 한번 큰일을 내셨다. 5억 원의 기금으로 「안중근 바보장학회」를 설립하여 앞으로 바보를 지향하는 젊은이들에게 5천 4백만 원의 장학금을 수여하신 일이었다.
내게 보낸 장학재단 설립취지문을 읽어보니 '안중근 장군, 노무현 대통령, 김수환 추기경과 같은 바보정신을 기리며...' 라는 문구가 들어있기에 역시 방신부님 답다 싶어 "신부님, 제가 쓴 산문집 제목이 '진실한 바보가 그립다.'입니다. 저도 바보를 좋아합니다." 라고 박수를 쳐드렸지만 신부님의 '바보장학회'가 앞으로 더욱 활성화되어 우리나라에도 자기이익에 앞서 공익을 먼저 생각하고 실현하려는 이드이 더욱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방신부님은 현재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이하여 안중근 도마 장군 동상 제작에 심혈을 기울이고 계시다.
근래에 들어와서 안중근 의사나 열사라는 호칭 대신에 장군이라는 호칭이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안중근 도마 사도께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후 "나는 천주교신자다. 나는 단순한 살인을 한 것이 아니라 나라의 국권을 찬탈한 원흉을 쏘아 쓰러트린 대한의군준장 안중근 도마이다. 나를 단순한 살인자로 취급하지 말고 군사재판으로 다스려 달라."고 요구를 하셨다는 기록 때문이다.

김수환 추기경님게서 살아 계실 때 "일제 때 조선교구가 친일파인 무텔주교에 휘둘려 민족의 아픔과 헝거에 함께하지 못하여 역사에 크게 부끄러운 일이 많았다."고 사과하시면서 "뮈텔주교가 안중근 도마께서 천주교 신자임을 밝혔음에도 살인자라고 하면서 신부들의 접근을 금하고, 19세의 청년 안중근에게 세례를 준 빌렘 신부가 안도마의 사촌형제들과 함께 여순 감옥을 방문하여 종부성사를 주자 뮈텔주교가 해당 신부에게 2개월간 성사집행을 중지한 일 등을 통해 천주교신자가 독립저항운동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었다."고 하시며 안중근 의사를 복권하신 일이 있었다.

2005년에 나는 한국문화원연합회 중앙회분들과 베이징에 갔던 길에 대련을 거쳐 여순감옥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대련은 중국내 다른 도시와는 달리 시내 중심가에 전차가 다니고 있었고, 대련 중심가에 낡고 큰 구식 건물들은 대부분 러시아 풍이었다.
청나라 당시 러시아군의 극동함대가 부동항인 대련 항구를 조차하여 썼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순감옥은 대련에서 고속도로로 약 2시간, 마치 벌판 같은 평지에 교도소가 낣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중국 당국에서 학생들 교육용으로 감옥을 관람시킨다고 했지만 여기저기 한글 설명이 쓰여져 있는 것을 보았을 때 한국관광객을 빼면 찾아오는 이들이 극히 드믄 것 같았다.
긴 복도와 어두컴컴한 골방, 짐승우리만도 못한 환경, 낡은 수의 등... 퀘퀘한 묵은 곰팡이 냄새까지... 안중근 열사가 수감돼 있었던 자리도 예전 그대로 보존되고 있었다.

<여순감옥에 면회를 온 빌렘 신부(등만 보임)와 좌측 두사람 안의사의 사촌동생들>

오는 3월 26일이 바로 안중근 도마 장군께서 여순감옥에서 순국하신지 100년째가 되는 날로서 이날 낮 12시 서울 명동대성당에서는 정진석 추기경의 집전으로 안중근 도마 의사의 순국 100주년 기념미사를 봉헌한다고 한다.
뒤늦게나마 한국가톨릭의 최고지도자가 주교죄성당에서 공식적인 안중근 장군 추모 미사를 봉헌하는 뜻깊은 자리에 나 또한 참여하고 싶지만 그날 나는 같은 시간에 안성에 있는 미리내 성지 입구 유무상통 실버타운 방신부님께서 봉헌하시는 안중근 도마 장군 동상제막식 미사에 참여할 생각이다.

"프랑스에 잔다르크 성녀가 있다면 한국에는 안중근 도마 예비성인이 계시다. 잔다르크 성녀가 그녀의 조국을 위해 싸우다 죽으면서 한때 마녀로 지탄 받았듯이 한국의 안중근 예비 성인 또한 민족의 존엄과 국권수호를 위한 정당방위의 의거로 성사를 거부당하고 살인자로 단죄되셨다.
잔다르크 성녀가 교회 재판정에서 마녀로 선고받고 화형을 당한 후 500년 만에 시성 복권 되셨던 것처럼 일본제국 치하의 재판정에서 살인자로 선고 받아 교수형으로 처형당하신 우리의 영웅 안중근 도마 장군도 언젠가는 반드시 성인으로 시성이 되셔야함 한다."는 방신부님 말씀이 내 마음에 꼭 들기 때문이다.

<방신부님의 부탁 말씀> 우리 국민들이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앞으로는 안중근 도마 사도에게 의사나 열사라는 호칭대신 장군이라는 호칭을 붙여주셨으면 합니다. "나는 대한의 군준장 안중근이다." 라고 하신 분이셨잖습니까?
군인이 적장을 총으로 쓰러트린 것은 살인이 아닙니다. 이 접이 반드시 부각되어 언젠가는 안중근 도마 사도께서 잔다르크(요안나)성녀와 같은 평화를 사랑하는 구국 성인품에 오르셔야 합니다.

방신부님이 제작중인 안중근 도마 장군 동상 (3월 26일 12시 미리내 실버타운 제막식 미사)

글 출처: 다음 블러거 "나무귀신"

     

카톨릭, 안중근 의사에 100년만에 ‘참회’

- 살인자로 제명한 과거 씻고 명동성당 추모미사

- ‘약자 편’ 신부 내치는 현실, ‘안중근 정신’은…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 안중근 의사가 1910년 3월 10일 뤼순감옥 면회실에서 아우 정근 공근과 함께 면회온 발렘 신부를 바라보며 유언을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2010년 3월 26일 명동대성당에선 정진석 추기경의 집전으로 안중근(1879~1910)의사의 순국 100주년을 맞는 기념미사를 봉헌한다.  한국가톨릭의 최고 지도자가 명동대성당에서 교구 차원의 공식적인 안의사 추모 미사를 봉헌하는 것은 100년만에 처음이다.

종부성사 한 신부 징계…뒤이은 총독 암살 계획 일러바쳐

안중근이 19살 때인 1897년 1월 안의사와 가족, 친척들은 아버지 안태훈의 권유로 36명이 동시에 프랑스인 빌렘신부로부터 영세를 받았다. 토마스란 세례명을 받은 안중근은 교리 공부를 열심히 총대(성당 사무장)로서 독실하게 교회활동을 했다.

고향을 떠나 해외로 망명해 의병활동을 하던 안중근이 1909년 10월 26일 일제의 최고실력자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자 중국의 최고 실력자 원세개는 “5억 중화인이 해내지 못한 일을 조선 청년이 해냈다”고 찬탄했으나 한국 가톨릭의 최고 지도자인 프랑스인 뮈텔 주교(1854~1933)는 일본 검사도 허락한 신부의 면회와 성체성사를 거부했고, 안중근이 가톨릭 신자라는 사실도 부인했다. 그런데도 황해도 신천에서 성당에서 함께 지내던 안의사를 찾아가 사형 직전 종부성사를 한 빌렘 신부에 대해 ‘명령 불복종’을 이유로 2개월간 미사 집전을 금하는 성무집행 금지 조처를 내렸다.

반면 뮈텔은 그해 11월 4일 서울의 일본헌병본부에서 열린 이토 히루부미의 추도식에 3명의 선교사와 함께 참석해 일제 지도자의 서거를 애도했다. 그런데도 안중근의 신앙심은 변함이 없었다. 그는 일본인 검사 앞에서 가톨릭신자임을 밝혔고, ‘사람을 죽이는 것은 가톨릭에서 죄악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받고 “평화로운 남의 나라를 침략해 탈취하고 사람의 생명을 빼앗고자하는데도 수수방관 하는 것은 죄악이 되므로 나는 그 죄악을 제거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장남 분도를 가톨릭 신부로 키워달라고 아내에게 유언했다.

3·1운동 민족대표 33인에 가톨릭은 한 명도 없어

1890년부터 1933년 사망 때까지 우리나라 가톨릭의 최고지도자였던 뮈텔 주교는 나라 잃은 식민지 백성의 아픔은 안중에 없었다. 그는 안중근의 사형을 집행한 일본인들이 주검을 가족들에게 넘겨주지않았다는 사실을 전해듣고 "그것은 매우 당연하다"고 논평했다. 그는 일제의 침탈을 수수방관하는데서 나아가 제국주의자의 시각으로 독립운동을 방해하며 일제를 도왔다.

지난해 공개된 뮈텔주교의 1911년 1월11일의 일기엔 안중근 일족과 가까운 빌렘신부가 ‘안중근의 동생 야고보(안명근)을 중심으로 한 조선인들이 테라우치 총독 암살을 꾀하고 있다’는 ‘정보 보고’를 편지로 보내자, 일제 아카보 장군에게 ‘눈길을 헤치고’ 가서 알려주었다는 내용이 있다. 그의 밀고로 ‘신민회 105인’은 ‘일망타진’된다. 이런 지도자로 인해 개신교, 천도교, 불교 등 종교계 지도자들이 힘을 합친 3·1운동 민족대표 33인에 가톨릭이 한 명도 포함되지 않는 것을 비롯해 가톨릭은 한국독립운동사에 ‘국외자’로 남는다.

김수환 추기경 1993년 “정당방위·의거” 사실상 ‘복권’

1970년대 등장한 정의구현사제단을 중심으로 가톨릭 내에선 안중근 복권운동과 함께 안중근 정신을 잇는 운동이 벌어졌다. 제국주의의 일원이던 프랑스인의 시각으로 식민지 백성의 의거를 ‘살인행위’로 단죄한 것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가톨릭 지도부에 대한 성토가 쏟아지자 1993년 김수환 추기경은 “일제치하 한국교회를 대표하던 어른들이 안 의사의 의거에 대한 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여러 가지 과오를 범한 데 대해 우리 모두가 연대 책임을 느끼고 있다”며 “안 의사를 포함해 일제시대에 이 땅의 국민들이 자구책으로 한 모든 행위는 정당방위로, 의거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그 이후 안중근은 가톨릭 제도권으로 되돌아오기 시작했고, 한국 가톨릭의 상징으로 부각하고 있다. 하지만 일제에 협조하며 가톨릭의 성장만을 꾀하던 가톨릭 지도부의 맥을 잇는 한국 가톨릭이 ‘가톨릭에도 독립운동에 목숨을 바친 인물이 있다’며 안중근을 이용하는 데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안중근 평전>과 <종교, 근대의 길을 묻다> 등의 저서를 통해 ‘가톨릭교인 안중근’을 조명한 김삼웅 전독립기념관장은 “권력의 편에 서서 약자의 편에 서는 신부들을 내치는 현 가톨릭에서 안중근 정신을 찾아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서울대교구장인 정진석 추기경이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대표인 전종훈 신부를 성당 주임에서 해임시킨 것을 예로 들었다.

<깨물지 못한 혀>에서 이 문제를 다룬 김유철 ‘가톨릭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은 “한국 가톨릭은 안중근과 친일 등에 대한 참회가 선행됐다면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나 전두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에 나가는 등 권력에 협조라는 이름으로 불의가 계속 이어져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성 미리내실버타운에 오는 26일 안중근 동상을 봉헌하기에 앞서 5억원 가량의 바보장학회를 설립한 방상복 신부는 “안중근, 노무현, 김수환 처럼 공익을 위해 개인을 버릴 수 있는 바보들을 염원하며 가톨릭도 그렇지 못했던 과거를 참회하고 그런 행동과 삶을 보여주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 안중근 의사가 쓴 '천당지복 영원지락' <천당-하늘나라-의 복은 영원한 즐거움이다.>

글 출처 : 인터넷 한겨레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안중근 의사가 아내에게 남긴 유서>

우리는 이 이슬과도 같은 허무한 세상에서 하느님의 배려로 배필이 되고 다시 주님의 명으로 헤어지게 되었소. 그러나 머지않아 주님의 은혜로 천당에서 다시 만날 것이오. 주님의 안배만을 믿고 신앙을 열심히 하고, 모친께 효도를 다하시오. 두 동생과 화목하며, 자식의 교육에 힘쓰길 바라오. 심신을 편안히 하고, 후세에 영원한 복락을 희망할 뿐이오. 장남(안중생) 분도를 신부가 되게 하려고 나는 마음을 결심하고 믿고 있으니 그리 알고 하느님께 바치어 장래에 (가톨릭)신부가 되게 하시오. 허다한 말은 후일 천국에서 기쁘게 만나서 상세히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을 믿고 또 바랄 뿐이오.

1910년 3월 24일(사형 이틀 전) 장부 안 도마(토마스) 배

     

"안중근 바보 장학회 설립"

순국 100주기 맞아, 첫 장학금 전달식

▲ 안중근 바보 장학회 이사진이 장학생으로 선발된
학생에게 장학금과 장학증서를 전달하고 있다.

안중근(토마스) 의사 순국 100주기를 맞아 그의 거룩한 뜻을 이어가기 위한 '안중근 바보 장학회'(이사장 방상만 신부)가 설립돼 2월 28일 첫 장학금 전달식을 가졌다.

안중근 바보 장학회는 이날 경기도 안성 미리내실버타운 유무상통마을 성당에서 첫 장학생으로 선발된 대학 신입생 14명과 고등학교 신입생 13명에게 각각 200만 원과 50만 원씩 장학금을 전달했다. 또 안법고등학교와 양성면에 장학금 1000만 원씩을 전달했다.

이 장학회는 복지법인 오로지종합복지원(원장 방구들장 신부) 산하 유무상통마을, 작은 안나의 집, 베드로의 집 등 8개 시설 200여 직원이 출연한 1억 원과 유무상통마을 입주자인 김아명(아가타), 김영복(요세피나), 안일현(젬마), 고형원(요안나)씨 등이 기부한 4억 원으로 조성됐다.

이날 주일미사를 집전한 방 신부는 "오늘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은 장학증서를 늘 머리맡에 놓고 안중근의 모범을 본받아 사익보다 공익을 도모하며 우직하고 충실한 자세로 조국의 대들보가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방 신부는 최근 자신의 이름을 '상복'에서 '구들장'으로 개명해 주민등록에 올렸다.

한편 안중근 동상 봉헌식이 그의 순국 100주기인 3월 26일 낮 12시 미리내실버타운에서 거행된다.

글 출처 : 인터넷 평화신문 이연숙 기자 mirinae@pbc.co.kr

     

안중근에 푹 빠진 "방상복 신부"

     

(안성=연합뉴스) 김명균 기자 = 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묘가 자리 잡은 경기도 안성시 미리내 성지에 실버타운을 건립해 운영하고 있는 방상복 신부가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인 오는 26일 마을에서 안중근 의사 동상 제막식을 갖는다. 안 의사의 열렬한 팬이라며 활짝 웃는 방 신부. 2010.3.18 <<지방기사 참고>> 김명균 kmg@yna.co.kr

순국 100주년 동상 건립... 찬가 작사에 장학회도 설립

방 신부는 1909년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중국 하얼빈역에서 저격한 지 100년이 된 지난해 서울 명동성당에서 안중근 의사 의거 기념미사를 계기로 안 의사의 열렬한 팬이 됐다.

 방 신부는 "안 의사의 애국.애족정신을 후손들도 이어 받아야 한다"며 안 의사 이름으로 장학회를 설립했다.

지난달 5억원을 모아 설립된 장학회는 최근 복지시설 종사원 자녀 27명과 가정 형편이 어려운 대학생 9명에게 5천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장학회 이름은 바보스럽고 우직하지만 사익보다 공익을 도모한다는 의미로 '안중근 바보 장학회'로 지었다.

안 의사 순국 100주년을 기념하는 '안중근 토마스 장군 찬가'도 지난 2월 직접 작사했다.

"태양이 없는 세상 생각할 수 있을까, 그 누가 조국 없이 살아갈 수 있는가'로 시작하는 찬가는 31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한 안 의사를 찬양하는 구절로 끝을 맺는다.

안중근 의사에게 푹 빠진 방 신부는 이름도 따뜻한 신부 역할의 뜻을 지닌 '구들장'으로 올해 개명했다.

그는 천주교 신자로 '토마스'란 영세명을 가진 안중근 의사를 '장군'과 '예비성인'으로 호칭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일제 강점기 때 천주교는 안중근 장군을 살인자로 매도했다"며 "안 장군은 개인 감정이 아닌 대한의군(大韓義軍) 참모중장 자격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 살해했기 때문에 '살인자'란 그릇된 이미지를 없애려면 독립운동가 이범석 장군이나 김좌진 장군처럼 '장군'으로 불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비성인 안중근 장군' 동상 봉헌을 위해 "안중근 장군의 자유독립과 평화의 애국정신, 그리고 그분의 뜨거운 신앙심과 실행력이 더욱 그립고 사무칩니다"는 내용의 초대장을 최근 각계 인사에게 보낸 방 신부는 100년째 안 의사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당시 일본인 간수(교도관)의 후손을 방문할 생각이다. 김명균 kmg@yna.co.kr 

(안성=연합뉴스) 김명균 기자 = 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묘가 자리 잡은 경기도 안성시 미리내 성지에 실버타운을 건립해 운영하고 있는 방상복 신부가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인 오는 26일 마을에서 안중근 의사 동상 제막식을 갖는다. 안 의사 동상 앞에 선 방 신부. 2010.3.18 <<지방기사 참고>> 김명균 kmg@yna.co.kr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노래를 찾는 사람들

갈 수 없는 고향 / 일요일이 다가는 소리 (1987)

노래를 찾는 사람들 1기 : 1984

Track 7.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