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100대 명반

어떤날 1집 조동익 이병우 │ 일상적 감성

리차드 강 2010. 6. 21. 20:52
어떤날 1집 조동익 이병우
어떤날 I (1960 .1965) : 1986
어떤날 1기 : 조동익 이병우
Track 전곡듣기
 
Introduction

80년대 중반 녹음된 이 앨범이 담아낸 일상적인 감성은 90년대 이후에도 그 통시성을 담지할 수 있을 것같다. 80년대, 그리고 90년대 우리 대중음악의 이면, 혹은 진면을 살펴보고자 한다면 본작은 필청 음반이다.
1985년 진정한 신인 발굴의 의미로 제작된 [우리 노래 전시회 1]에 '너무 아쉬워 하지마'로 참여하면서 데뷔한 '어떤날'은 베이시스트 조동익과 기타리스트 이병우의 듀오그룹이다. (사실상 이들을 단지 연주자로 한정 짓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려니와.) 이들은 '따로 또 같이', '들국화'와 함께 한국 대중음악사의 전환점을 마련한 인물들이다. 일상을 세련되면서도 순수한 젊은 감성으로 노래한 이들은, 새로운 세션, 작법, 녹음으로 80년대 중반 우리 대중음악의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이들은 녹음기사와의 교류를 중시했으며, 제한된 시간 내에 헤치워버리는 식의 녹음을 기피했다. 그 결과 1986년 발표된 이 앨범은 사운드 면에서도 전혀 손색없는 기품을 지닌다.) 젊은 나이에 발표한 앨범이라고 믿을 수 없는 이 완성도 높은 앨범의 곡들은 어느 한 곡을 먼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한곡한곡 세심한 정성이 담겨있다. 동세대 젊은 음악군에서도 당연 고지에 이른 앨범이며, 당시의 이들은 이미 '젊은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포크와 포크록 지향적인 곡들이 담긴 앨범에는 김장훈이 리메이크한 '그 날'이 수록돼 있다. 이 곡은 군더더기 없는 곡 구성과 더불어 이제는 더이상 들을 수 없을 것같은 이병우의 일렉트릭 기타의 빛나는 연주를 들을 수 있는 소중한 곡이다. 또한 '들국화' 1집에 먼저 수록됐던 이병우의 곡 ' 오후만 있던 일요일', 박학기가 리메이크한 ' 오래된 친구', 하늘보다 더 맑은 '하늘' 등 명작들만이 담겨있다. 의미없는, 혹은 의미있는 척하는 노랫말과 말초적인 멜로디에 지친 청중이라면 이 앨범은 그야말로 사막의 오아시스다.....
어떤날 1집 조동익 이병우
창밖에 빗소리에도 잠을 못이루는 너 그렇게 여린 가슴
소리없이 떠나간 그 많은 사람들 아직도 기다리는 너
어둡고 지루했던 어제라는 꿈속에서 어서 올라와
저기 끝없이 바라볼 수 있는 하늘 있쟎아 저렇게 다가오쟎아
그렇게 얘기해 그렇게 웃어봐 그렇게 사랑을 해봐
내겐 아주 오래된 기타가 있지
내가 그를 찾으면 비틀 술취한 목소리로 내게 다가와
나 한번 가보지 못한 뽀얀 세상 데리고 가지
내겐 아주 오래된 음악이 있지
내가 그리워지면 저녁하늘에 노을처럼 붉게 다가와
메말라버린 마음을 실컷 울게 해주지
내겐 아주 오래된 거리가 있지
그 길을 걸으면 희미한 추억을 거리는 내게 몰고와
표정없는 내 얼굴에 작은 미소 만들어 주지
나는 아주 오래된 화가를 알지
눈을 내리고 또 비를 내리며 바람으로 여기 찾아와
끝없이 새로운 계절을 거리에 그리고 가지
언제인지 난 모르지 하지만 다가오는 그날엔
그 뜨거운 태양이 떠오를 거야 우리 머리위에
언제인지 난 모르지 하지만 다가오는 그날엔
그 새로운 바람이 불어올거야 이 거리위에
걱정스러운 얼굴 하지마 두려워도 하지마
수없이 다짐하고 또 허물어온 푸른꿈 위해
오늘도 조용히 일어나 혼자 걷는 너에게
나는 이렇게 부르지 저파란 하늘위에
날으는 법을 배우는 작은새
지금 그대는 말이 없어요 흔들림 없는 촛불처럼
당신의 작은 숨소리들이 작은 내 방에 날아다녀요
지금 내게도 할말이 없어요 그냥 그렇게 살아온 것처럼
우리의 많은 이야기 들을 말로 하기도 그렇쟎아요
이제 그대와 나는 사랑하고 언제나 우리곁엔
작은 공간과 시간들
오늘은 햇빛이 많이 내렸네 따듯한 한숨을 쉴 수 있는
어두운 서랍속 많은 친구를 만나고 있던 날이야
오늘은 햇빛이 많이 내렸네 나른한 하품할 수 있는
먼지낀 책장에 오랜 친구들을 만나고 있던 날이야
햇빛소리 하얗게 들리고 바람모습 저만치 보일때
조그만 미소를 내 얼굴에 그릴 수 있던 날이야
오늘은 햇빛이 많이 내렸네 따듯한 한숨을 쉴 수 있는
너무 아쉬워 하지마 기억속에 희미해진 많은 꿈
우리의 지친 마음으로 그 전부를 붙잡을 순 없쟎아 없쟎아
너무 슬퍼하지마 네곁에서 떠날갈 모든걸
우리의 어두운 마음으로 그 모두를 사랑할순 없쟎아 없쟎아
길모퉁이 조그만 화랑에 걸려있던 그 그림처럼
여행길에 차창밖에 스치던 풍경처럼
그 모습들도 우리의 기억속에 가슴 그대로 남아 있게해
너무 아쉬워 하지마
눈이 하루종일 집앞에 왔을 때 나는 우두커니 누워 있었고
눈을 쓰는 싸리비 소릴 들으며 어느새 잠이 들었네
지루하던 겨울낮잠 깨어보니 집에는 아무도 없고
어두운 냉기만이 살결에 닿아 내몸을 흔드네
기나길 이 겨우살이는 몹시도 지루하고
지루한 나의 생각은 몹시도...
누군가의 마른 기침소리 들릴 때 나는 방안에 불을 켰고
녹슬은 기타줄을 울리며 조용히 노래 불렀네
비오는 날이면 우산을 받쳐든 그 모습 좋아
바람에 날리는 풀잎처럼 길위에 구르는 작은 돌처럼
이 빗속에 가만이 가만이 잠기면
지난밤 거친꿈 빗물에 씻겨내리고 내 작은 가슴에
울려퍼지는 빗소리
오후만 있던 일요일 눈을 뜨고 하늘보니
작은 회색구름이나를 부르고 있네
생각없이 걷던 길옆에 아이들이 놀고 있었고
나를 바라보던 하얀 강아지 이유없이 달아났네
나는 노란 풍선처럼 달아나고 싶었고
나는 작은 새처럼 날아가고 싶었네
작은 빗방울들이 아이들의 흥을 깨고
모이 쪼던 비둘기들 날아가 버렸네
달아났던 강아지 끙끙대며 집을 찾고
스며들던 어둠이 내 앞에 다가왔네
나는 어둠속으로 들어가 힘없이 걸었고
나는 빗속으로 들어가 마냥 걷고 있었네
오후만 있던 일요일 예쁜비가 왔네
오후만 있던 일요일 포근한 밤이 왔네
     
[대중음악 100대 명반]어떤날 ‘1960 1965’-조용한 울림
이젠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지만 앨범 커버에 쓰인 1960과 1965란 숫자는 밴드의 두 멤버, 조동익과 이병우가 태어난 해를 적어놓은 것이다. 그러니까 이 앨범을 만들 당시 조동익은 스물여섯 살이었고 이병우는 스물한 살이었다는 얘기이다. 대부분의 음악천재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두 명의 청년 역시 20대 초반의 나이에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영원히 빛날 ‘마스터피스’ 한 장을 탄생시켰다. 핑크 플로이드와 팻 메스니를 좋아하던 두 청년은 처음 만난 날 서로가 좋아하는 음악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들은 이것저것 생각할 필요도 없이 자연스레 팀을 결성하였다. 그 팀의 이름은 어떤날이었다.
음악적인 면으로 볼 때 80년대는 다양함의 시대였다. 주류 시장에선 조용필, 전영록, 송골매 같은 스타들이 TV 무대를 장식하고 있었고, 반대 편에선 들국화, 김현식, 신촌블루스 등의 다양한 뮤지션들이 신촌과 대학로의 언더그라운드 무대를 지키고 있었다. 또 한편에선 이문세, 유재하 등이 한국 팝의 수준을 몇 단계 끌어올린 명반들을 발표했으며, 시나위, 부활 등으로 대표되는 헤비메탈 뮤지션들 역시 자신들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었다. 이렇게 질적·양적으로 풍요롭던 시기에도 어떤날의 존재는 특별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세례를 받아온 포크와 퓨전 재즈, 록 등을 앨범에 고루 담아냈지만 그렇다고 딱히 어떤 장르로 나눌 수 있는 음악은 아니었다. 차라리 조금 억지스럽게 말한다면 그들의 장르는 ‘고요한 전율’이나 ‘고요한 파장’ 같은 것들이었다.
그들은 사춘기 소년 같은 감수성으로 “창밖에 빗소리에도 잠을 못 이루는 너, 그렇게 여린 가슴”이라 노래하기도 하고, “너무 아쉬워 하지마, 기억 속에 희미해진 많은 꿈”이라며 조용조용 위로해주기도 하지만, 그 조용한 소곤거림 속에는 말로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힘같은 것들이 담겨있었다. 단순히 ‘그날’에서 이병우가 들려주는 강렬한 기타 연주 때문만이 아니라 모든 노래, 모든 소절마다에는 어떤날만이 들려줄 수 있는 울림이 있었고 그 울림은 지금껏 경험할 수 없던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하늘’ ‘그날’ ‘너무 아쉬워 하지마’ 등 대부분의 노래들이 바로 그런 ‘조용한 울림’과 ‘고요한 파장’을 전해주는 노래들이다. 또한 ‘지금 그대는’과 ‘겨울하루’ 같은 소품들은 기타리스트가 아닌 보컬리스트 이병우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우면서 서늘한 노래들이다.
이 앨범은 발매 당시 들국화나 김현식의 앨범들처럼 폭발적인 반응을 얻어내지는 못했다. 가끔씩 라디오 전파를 통해 몇몇 노래들이 흘러나왔을 뿐이었고, 그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앨범에 대한 얘기들이 전해졌을 뿐이다. 하지만 앨범에 대한 평가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높아져갔다. 또한 후대의 음악인들에게 끼친 영향력은 들국화와 김현식 그 이상이었다. 이 앨범은 따로또같이의 앨범 등을 통해 서서히 인식되기 시작한 편곡과 세션의 개념을 완전히 정립시킨 앨범이었고, 전문 보컬리스트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매력적인 노래를 들려줄 수 있음을 보여준 거의 최초의 앨범이었다. 20년 전 그 때의 젊은이들이 어떤날의 음악을 들으며 감동했던 것처럼, 2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꼭 그 만큼의 나이를 먹은 새로운 세대들 역시 어떤날의 음악에 위로를 받고 감동을 받는다. 언젠가 마이 앤트 매리의 리더 정순용은 조동익을 가리켜 “옆에 있어주는 그 자체만으로도 힘이 되는 분”이라고 표현했다. 이 앨범 역시 바로 그런 앨범이다. 옆에 있는 것만으로 힘이 되어주는 앨범. 한 장의 앨범을 표현함에 있어 그것만큼 위대한 가치는 없다.
조동익은 한국 포크계의 거장인 조동진의 동생이다. 조동익이 초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집안에는 수백장의 레코드판이 있었고, 형의 영향으로 기타도 배우게 됐으며, 형이 밤새 음악을 만드는 모습을 보면서 음악에 대한 동경을 키워갔다. 그런 환경에서 조동익은 혼자 음악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고, 후배였던 가수 최진영의 소개로 이병우를 만나게 됐다. 공통적인 음악 취향을 갖고 있던 두 사람은 빠른 시간에 친해질 수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날을 결성하게 된다.
이들의 1집은 따로또같이에서 시도됐던 편곡과 세션의 개념을 정립시킨 앨범이었고, 고요함 속에서도 어떤날만의 힘을 느끼게 해주는 앨범이었다. 그 후 발표한 2집 앨범은 1집과는 사뭇 다른 성격을 띠었는데, 1집에서의 다소 소박했던 느낌 대신 보다 프로페셔널해지고, 보다 스튜디오 지향적인 말쑥한 음악을 담고 있었다.
어떤날은 2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사실상의 해체 상태로 접어들었지만 활동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이병우는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航海(항해)’란 제목의 솔로 앨범을 자체 제작하며 본격적인 기타리스트로서의 행보를 시작하였고, 조동익은 90년대 가장 잘 나가는 스튜디오 세션맨이자 가장 뛰어난 편곡자로서 명성이 높았다. 93, 94년 각각 발표한 이병우의 ‘생각 없는 생각’과 조동익의 ‘憧憬’(동경)은 비록 이들이 떨어져 있을지라도 음악적인 지향점은 여전히 비슷하다는 걸 보여준 흥미로운 앨범들이었다.
이후 이병우는 개인 앨범보다는 영화음악에 더 많은 열정을 쏟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음악가가 되었고, 조동익은 김광석의 앨범부터 안치환, 장필순의 앨범에 이르기까지 명작들을 연속해 만들어낸 최고의 음악감독이 되었다. 어떤날의 1집 때부터 이들은 이미 젊은 거장들이었고, 20년이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사실은 전혀 변함이 없다.
〈김학선|웹진 가슴 편집인〉 2007년 08월 30일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