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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이야기 그리고 인생 이야기 CD 1, 2 - 김광석 (2007 만월당)

리차드 강 2011. 1. 7. 17:24

Song Story & Life Story CD 1, 2

노래 이야기 그리고 인생 이야기 (2007 만월당)

김광석 金光石 Kim Kwang Seok 1964-1996

1. 먼지가 되어 (스튜디오 녹음중에서) - 트랙전곡연주

아티스트: 김광석

음반 이름: 노래 이야기 + 인생 이야기
음반 구분: 컴필레이션, 합본앨범, live
발매 일자: 2007-01-19 / 대한민국
Album Releases: 2007.01.19 만월당

Introduction

다시 만날 수 없는 김광석, 그의 이야기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기존에 발매 되었던 김광석 노래이야기, 인생이야기가 하나로 묶여 새로운 디자인으로 발매된다.
김광석의 소극장 공연을 중심으로 김광석이 라이브로 들려주었던 노래들 이외에 그가 그의 팬들을 앞에 두고 했을 그의 인생, 그의 노래 이야기를 그가 없는 지금 그를 기억하고 추억하며 다시 듣는 감회에 젖을 수 있을 것이다... 음반 소개글...

     

그가 없는 빈자리...

     

Disc 1
1. 먼지가 되어 (스튜디오 녹음중에서)
2. 이야기 하나
3. 나른한 오후
4. 꽃
5. 그날들
6. 혼자 남은 밤
7. 그대 웃음소리
8. 이야기 둘
9. 흐린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10. 너무 깊이 생각하지마
11. 이야기 셋
12. 그녀가 처음 울던 날

13. 두바퀴로 가는 자동차

14. 이야기 넷
15. 자유롭게
16. 일어나


Becoming the dust
You speak but
Languid afternoon
Flower
That day
The night when it remains alone
Your laughter
Stories 2
Writing the letter on the fall nul which becomes cloud
You think very deeply
Stories 3
The day when she cried for the first time
The automobile which goes around two
Stories 4
Freely
Occurring


3:28
4:49
5:15
3:58
4:14
4:56
4:13
0:41
3:48

4:21
3:35
2:59

3:10

2:45
4:45
4:53

     

     

[대중음악 100대 명반]58위 김광석 ‘다시 부르기1’

김작가 | 음악평론가ㅣ경향신문

만약 ‘이등병의 편지’가 옴니버스 음반 ‘겨레의 노래’에 담긴 전인권의 목소리로만 남아있었다면, 우리는 아직까지 군대 가는 동생을 위해 김민우의 ‘입영열차 안에서’를 불러줘야 할지도 모른다. ‘그루터기’ ‘광야에서’가 이 앨범에 담기지 않았다면 그 노래들은 민중가요 진영의 전설로만 남아있을지 모른다. 김광석은 ‘다시 부르기’를 통해 묻혀진 노래들을 발굴했고 특정 계층에서만 회자되던 노래들을 대중에게 선물했다. 그리고 이 앨범은 발매 후 14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와 마찬가지로 민속 주점 업계 부동의 BGM 역할을 지키고 있다.

김광석은 이 앨범 발매 전까지만 해도 그저 노래를 뛰어나게 잘하는 가수였을 뿐이다. ‘기다려줘’ ‘사랑했지만’ 같은 히트곡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대학가에서만 주로 지지를 얻고 있었다. 그랬던 그가 이 앨범을 기획하게 된 배경은 1993년 여름 3집 발매 후 가졌던 한 달간의 대학로 소극장 공연이었다. 이 공연에서 김광석은 자신의 노래들뿐 아니라 평소 애창하던 곡들도 불렀다. 공연을 지켜본 측근들이 그 노래들을 앨범에 담아보는 건 어떠냐고 제의했다.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아직 2% 부족했던 김광석에게 ‘나의 노래’를 찾아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조동익이 편곡 및 세션을 맡았고, 김광석은 후일 대학로 1000회 공연이라는 신화를 세운 바탕이 된 그의 절창을 연주에 입혔다. 그렇게 나온 ‘다시 부르기’로 김광석의 주가는 급등했다. 그는 가수에서 가객으로 격상됐다. 이 앨범 이전에 나왔던 3집이 김광석의 긍정적 성장을 읽을 수 있는 계기였다면, ‘다시 부르기’는 96년 스스로 세상을 저버릴 때까지 보였던 눈부신 행보의 원동력이 되는 촉매제였다.

이 앨범에서 확인할 수 있는 김광석의 놀라운 힘은 남의 노래를 자신의 노래로 체화하는 완벽한 소화력이다. ‘이등병의 편지’부터 ‘광야에서’까지 모든 노래들이 마치 원래 김광석이 만들고 불렀던 것 같은 착각을 부른다. 이를 가능케 했던 건 타고난 가창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항상 고민하고 사색하는 사람이었다. 오랜 무명의 세월과 노래로 벌였던 투쟁의 시간들은 그에게 지나간 과거로만 남아있지 않았다. 이는 철학이 되고 감정에 체화됐으며 목소리에 녹아들었다. 그렇게 감성이 된 철학은 묻혀 있던 노래들로부터 원곡 이상의 힘을 이끌어냈고 자신이 예전에 불렀던 노래들의 깊이도 몇 걸음 더 나아가게 했다. ‘다시 부르기’는 노래의 힘을 믿었고 노래가 세상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으며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던 김광석이 음악계에 찍은 도장이다.

최근의 가요계를 황폐화시키고 있는 마구잡이 리메이크 때문에 ‘다시 부르기’의 가치는 더욱 돋보인다. 지금 리메이크라는 미명하에 과거의 명곡들을 끄집어내는 이들의 목적은 오직 편의와 돈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민중의 음악과 대중의 음악을 하나로 만들고, 남의 노래와 나의 노래를 일체화시켰던 이 시대 마지막 가객의 자취가 더욱 그리워지는 지금이다. 김광석 이후 수많은 노래꾼들이 ‘제2의 김광석’ 자리를 노렸지만 아무도 그 자리에 오를 수는 없었다. ‘다시 부르기’에 그 원인과 해답이 있다. 2008-03-20

〈 김작가 | 음악평론가 〉ⓒ 경향신문 & 경향닷컴

     

     

Disc 2
17. 서른 즈음에
18. 이야기 하나
19. 이야기 둘
20. 거리에서
21.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22. 사랑이라는 이유로
23. 이야기 셋
24. 바람이 불어오는 곳

25. 이등병의 편지
26. 기다려줘
27. 사랑했지만
28. 이야기 넷
29.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30.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31. 나의 노래


30 time
You speak but
Stories 2
At distance (sort)
You must forget, with the heart
In the reason of love
Stories 3
At the point where the wind comes blowing
Letter of Airman Basic
waits
It loved but
Stories 4
Which 60 unit old age married couple stories
As for very painful love without being love
My song


4:33
3:33
1:09
4:53
4:16
3:33
6:05
3:40

4:44
4:23
4:36
3:09
4:48

6:00

3:30

     

     

[대중음악 100대 명반]25위 김광석 ‘다시 부르기 2’

음악사적으로 보면, 1968년 한대수 이래의 모던포크는 장르로서의 중요성보다 ‘음악창작에 대한 인식’과 ‘메시지 표현 양식’에서 일대 혁신을 일으킨 것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즉, 대중음악에서 아티스트의 탄생을 의미한다.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인텔리들이 대중음악 영역에 정식으로 들어옴으로써 대중음악을 단순한 ‘딴따라판’ 이상으로 자리매김시켰으며, 70년대 초반 청년문화의 중심으로 대중음악을 편입시켰다. 60년대 영미권의 록과 포크를 들었던 당시 대학생들에게 모던포크는 낯설지 않은 음악 형태였을 뿐만 아니라 자의식 강한 그들이 한국사회를 향해 메시지를 날릴 수 있는 매개체로서도 적당했다. 왜냐하면 선동적인 록과 달리 포크는 기본적으로 ‘메시지’의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박정희 정권의 ‘청년문화 탄압’에 따라 모던포크는 기운을 잃어갔고, 한대수·김민기를 비롯한 중요한 창작자들이 요주의 인물로 낙인 찍히면서 더 이상의 작품은 나오지 않았다. 그 마지막은 한대수가 2집 ‘고무신’을 발표했던 75년 무렵이다.

이후 모던포크의 계보는 오히려 대중음악이 아니라 70년대 말의 ‘메아리’와 같은 대학 노래동아리로 이어진다. 메아리는 단순히 실연 중심의 노래패가 아니라 ‘창작자 집단’이란 정체성을 확고히 했다. 그러나 메아리 이후로는 그런 정체성을 가진 곳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모던포크가 대학 내로 광범위하게 전파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고무신’ 이후 모던포크의 계보는 민중음악 진영 내의 메아리-노래를 찾는 사람들-새벽으로 근근이 명맥을 이어갔고, 예외적으로 활동한 인물이 정태춘, 조동진, 김두수 정도이다. 이런 상황에서 90년대에 들어 ‘모던포크’의 적자임을 자부한 이가 김광석이고, 그 핵심적인 작품이 바로 김광석 4집(94)과 ‘다시 부르기 2’였다.

김광석은 84년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88년 동물원 1집을 정식 데뷔작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후 동물원 2집까지 참여를 하고, 89년 솔로 데뷔작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뮤지션으로서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찾은 것은 ‘나의 노래’가 담긴 92년 3집부터다. 베스트앨범 형식으로 발표한 ‘다시 부르기 1’(93)부터는 작품성과 상업성 둘 다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다시 부르기 1’이 동물원과 자신의 앨범에서 뽑아낸 노래들과 한때 활동하던 민중음악 진영에서 김현성, 한동헌, 문대현의 노래로 구성된 자전적 베스트 앨범이었던 반면, ‘다시 부르기 2’는 자신이 스스로 선정한 ‘한국 모던포크의 대표곡’ 모음집이다. 그리고 모던포크를 떠나서 그가 선정한 중요한 음악창작자들에 대한 트리뷰트앨범이었다.

그래서 이 음반에는 한대수의 ‘바람과 나’, 이정선의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양병집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김의철의 ‘불행아’와 같은 초기 모던포크 뮤지션들의 노래가 담겼고, 백창우의 ‘내 사람이여’, 한동헌의 ‘나의 노래’와 같은 민중음악 선배들의 노래들이 있다. 또 김창기의 ‘잊혀지는 것’ ‘변해가네’, 유준열의 ‘새장 속의 친구’와 같은 당대 주목할 만한 창작자들의 노래들이 수록되었다. 그리고 앨범의 대미는 자신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로 끝맺는다.

대부분의 세션은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던 조동익 밴드가 맡아서 90년대 국내 세션의 정수를 보여주었고, 편곡자 조동익은 원곡의 맛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노래를 참신한 김광석 버전으로 재탄생시킨 일등공신이다. 리메이크 앨범으로서는 드물게 대다수 수록곡이 원곡을 능가하는 위력을 발휘했고, 이는 자신의 노래인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노래와 삶, 기쁨과 슬픔 그리고 자유와 외로움이 진득하게 녹아든 이 음반은 그의 유작이라서 더욱 애틋하다. 2007-11-22

◇김광석 프로필
·출생 : 1964년
·사망 : 96년
·데뷔 : 84년(김민기 ‘개똥이’ 음반 참여 및 ‘노래를 찾는 사람들’로)

·주요활동
-88년 동물원 1집 ‘동물원’
동물원 2집 ‘동물원 두번째 노래모음’
-89년 김광석 1집 ‘김광석 1’
-91년 김광석 2집 ‘김광석 2nd’
-92년 김광석 3집 ‘김광석 3번째 노래모음’
-93년 ‘김광석 다시부르기 1’
-94년 김광석 4집 ‘김광석 네번째’
-95년 ‘김광석 다시부르기 2’

 

〈박준흠|가슴네트워크 대표 gaseum.co.kr〉ⓒ 경향신문 & 경향닷컴

     

     

김광석

김광석(金光錫, 1964년 1월 22일 ~ 1996년 1월 6일)은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이다.

1984년 김민기 음반에 참여하면서 데뷔하였으며, 노찾사 1집에도 참여하였다. 이후 동물원의 보컬로 활동하면서 이름을 일반 대중에까지 알렸으며, 동물원 활동을 그만둔 후에도 통기타 가수로 큰 인기를 누렸으며, 1996년 1월 6일 자살로 일생을 마쳤다. 대표곡으로는 〈사랑했지만〉〈서른 즈음에〉 〈그날들〉 〈이등병의 편지〉등이 있다.
2007년, 그가 부른 노래 중 하나인 〈서른 즈음에〉가 음악 평론가들에게서 최고의 노랫말로 선정되었다.
2008년 1월 6일에는 12주기 추모 콘서트와 함께 노래비 제막식이 열렸다. 노래비는 대학로의 학전 블루 소극장에 세워졌으며 조각가 안규철이 제작했다.

1964년 경상북도 대구시 대봉동 번개전업사에서 3남2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서울로 이사와 창신국민학교, 경희중학교, 대광고등학교를 나왔으며, 중학교 시절 선배들로부터 악기 다루고 악보 보는 법을 처음 배웠다. 1982년 명지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하였고, 이후 대학연합동아리에 가입하면서 민중가요를 부르고 선배들과 함께 소극장에서 공연을 시작하였다. 1984년 12월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85년 1월 군입대하였으나 군 생활 중 큰 형이 사망함으로 인해 6개월 단기사병 방위로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하였다. 복학해 다시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 합류하여 1, 2회 정기공연에 참여한다. 1987년 학창시절 친구들과 함께 동물원을 결성해 동물원 1집과 2집을 녹음하였다. 1989년 10월 솔로로 데뷔하여 첫 음반을 내놓았으며, 이후 1991년에 2집, 1992년에 3집을 발표하였고, 1994년에 마지막 정규 음반인 4집을 발표하였다. 정규 음반 외에 리메이크 앨범인 다시부르기 1집과 2집을 1993년과 1995년에 각각 발표하였다. 1991년부터 꾸준히 학전 등의 소극장을 중심으로 공연하였으며, 1995년 8월에는 1000회 공연의 기록을 세웠다. 1996년 1월 6일 자택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유족으로는 아내와 딸이 있다.

글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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