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노동청년회 소개
1. 설립목적
한국사회의 현실 속에서 청년 노동자들의 자발적 주체적인 운동으로서 그리스도의 복음정신에 입각하여 청년노동자의 전인적 지속적 교육에 참여하고 노동계에 복음을 전도하며 정의와 사랑과 희망을 전파하고 실현하고자 한다.
2. 약사와 활동
가톨릭노동청년회는 (이하 J.O.C) 1958년 1월 서울 대학교 부속병원 간호원 10명이 가노청에 대한 소개책자를 연구하다가 당시 가톨릭 신학대학 교수인 박성종(프란치스코) 신부를 지도신부로 회합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뒤 한국을 방문한 J.O.C의 창설자 조셉 까르딘의 주례로 11월 17일 명동 대성당에서 첫 투사선서식과 미사를 봉헌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1960년 12월 20일 서울교구 연합회가 결성되었고 1961년 부터는 점차 지방교구로 확장되어 10월 21일 서울, 대구, 전주, 대전 교구의 남녀 대표들로써 전국 평의회가 조직 되었다. 이 해 11월 2일에는 한국주교회의에서 정식으로 가톨릭 평신도사도 단체로 인준을 받는 한편, 국제가톨릭노동청년회에도 정식회원국으로 가입하였다. 한국J.O.C의 초기활동은 빈민촌 무료진료를 비롯하여 근로재건대 활동, 윤락 여성선도, 노동자를 위한 실비식당운영, 서독 파견광부들을 위한 활동, 해외 이민문제에 대한 활동, 가정부 생활실태조사 등이 있다.
1964년에는 수원교구와 인천교구의 연합회가 발족되어 한국 가노청이 9개 교구로 확장되었고 1965년 1월에는 성인 J.O.C이 발족되어 뒤에 가톨릭 노동장년회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1965년 10월 제5차 전국평의회에서 J.O.C 농촌부를 창설하였다가 다시 1966년 8월 제6차 전국평의회에서 가톨릭농촌청년회(J.A.C)로 독립되어 농촌실정에 맞는 청년사도직을 수행하도록 하였다.
또한 1966년 10월에는 춘천교구 연합회에서 원주교구 연합회가 분리, 독립하였다.
이 당시는 5.16후 정부가 추진한 경제개발정책의 수행과정에서 급격한 산업화에 따른 노사문제등 각종 사회문제가 심각해지기 시작한 때였다. 이에 따라 한국 J.O.C의 활동도 각 산업체의 노동조합결성, 임금인상 등 처우개선 활동, 직업여성 실태조사, 노동강좌, 버스 안내양교육, 이향노동자 상담활동 등 노동자들의 인권신장과 복지활동을 위한 활동이 중심이 되었다.
한국 J.O.C는 '비 인간적 상황의 인간화', '노동자들의 단결의식 강화'를 목표로 회원들의 의식계발 교육과 회원, 노동자들의 개별적인 조직의 확대, 핵심 지도자 양성, 지도투사의 자질 향상과 J.O.C의 내적역량등에 힘썼다. 이와함께 한국 J.O.C는 마산 수출자유지역 실태조사 및 체불임금 지불요구활동, 이향노동자 실태조사 및 대책활동을 통해 한국사회의 노동현실을 고발하고 개선을 촉구하였다. 또한 구체적인 노동자에 대한 인권침해가 발생할 때마다 이에 항의하고 사정을 촉구하는 활동을 꾸준히 벌여오고 있다.
(한국가톨릭대사전, 1985. 한국교회사연구소발행 1244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