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빵과 장미(Bread And Roses) 켄 로치 2000 │ 노동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리차드 강 2011. 5. 12. 05:37

Bread And Roses

 
 
     

빵과 장미(Bread And Roses), 감독 켄 로치, 2000년작

2011년 05월 11일 (수) 09:40:54 김지환 기자  libertador@hanmail.net

오월이 되니 날씨는 한참 포근해지고 꽃들이 만발하면서 푸르름이 더욱 짙어진다. 그렇게 어머니 대자연의 오월은 아름답다. 그러나 인간사의 오월은 힘겹기 그지없어 한국사적으로나 세계사적으로나 역사의 반동에 맞선 피끓는 움직임이 가득했다. 인간이 인간임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처절했던 오월이다. 이 오월은 메이데이로 시작된다.

메이데이는 1886년 노예와 별반 다르지 않았던 미국의 노동자들은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며, 5월 1일 총파업에 들어간 것에 기원한다. 이때 경찰의 발포로 어린 소녀를 포함한 6명의 노동자가 살해되었다. 1889년 국제 노동운동, 사회주의 지도자들은 파리에서 열린 제2인터내셔널 창립총회에서 미국 노동자들의 투쟁을 전 세계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매년 5월 1일을 노동절로 정하였고, 이듬해 5월 1일 제1회 메이데이 대회를 치루었다. 이후 5월 1일은 전 세계 노동자들의 명절이 되었다. 미국의 총파업 당시 헤이마키트 사건으로 폭동죄를 뒤집어써 사형선고를 받은 노동운동 지도자 파슨스는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최후진술을 하였다. 매우 역사적이고 주옥같은 구절이다.

“만약 그대가 우리를 처형함으로써 노동운동을 쓸어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렇다면 우리의 목을 가져가라! 가난과 불행과 힘겨운 노동으로 짓밟히고 있는 수백만 노동자의 운동을 없애겠단 말인가! 그렇다. 당신은 하나의 불꽃을 짓밟아버릴 수 있다. 그러나 당신 앞에서, 뒤에서, 사면팔방에서 끊일 줄 모르는 불꽃은 들불처럼 타오르고 있다. 그렇다. 그것은 들불이다. 당신이라도 이 들불을 끌 수 없으리라.”

이처럼 메이데이는 미국에서 기원하지만 정작 미국에는 메이데이가 없고, 9월 첫 번째 월요일이 노동절이다. 미국은 노동자가 파업을 했다가는 군이 투입되기도 하는 나라로, 노동상황은 전반적으로 문제가 많다. 그 원인 중 하나를 이민에서 찾기도 하는데, 끊임없이 새로운 노동력을 받아들이기에 노동운동이 힘을 못 받는다는 것이다. 이민과 일자리와 관련해 어떤 인류학자의 재미있는 연구결과도 있다. 시기별로 잘나가는 권투선수의 나라 출신 분포도를 분석한 것으로, 이민 초기에는 제대로 정착하지 못해 헝그리 스포츠인 권투를 많이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챔피언도 많아지는데, 시기별로 챔피언이 많은 것과 이민 초기와 맞물린다는 주장이다. <파앤어웨이>의 톰 크루즈, <아일랜드의 열풍(The Quiet Man)>의 존 웨인이 아일랜드계 권투선수로 등장하는데, 영화의 배경이 대략적으로 아일랜드인의 이민 초기와 비슷하다.

<빵과 장미>는 열악한 미국의 노동환경과 이주 노동자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마야는 돈을 벌기 위해 멕시코에서 미국 국경을 겨우 넘어와 불법이민자가 된다.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노래 <Donde Voy(나는 어디로 가는가?)>도 돈을 벌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처절한 내용이다. 이 예쁘고 발랄한 젊은 여인도 그처럼 험난한 길을 찾아 월경한 것이다.

마야는 LA로 먼저 건너온 친언니 로사의 도움으로 엔젤 클리닝 컴퍼니에 청소부로 취직한다. 마야는 매우 밝고 활기차게 일하는데, 어느 날 경비원에게 쫓기던 샘을 쓰레기통 속에 숨겨주게 된다. 샘은 열정적인 노동운동가다. 이렇게 둘은 만난다.

이 회사의 사장은 보통 악덕 기업주가 아닌데, 단지 한 번 지각했다는 이유만으로 동료가 해고되자 마야는 샘에게 도움을 청하고 투쟁을 시작한다. 언니 로사가 밀고자였다는 사실을 알고, 따지려는데 로사는 내가 몸을 팔아 네가 여기에 취직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가 팔 수 있는 모든 것을 팔아 살아온 언니의 삶이다. 비참한 언니의 삶에 직면해 마야는 고통스러웠지만 싸움을 멈출 수 없었다.

▲ 샘은 마야를 도와 투쟁한다. 샘은 노동운동을 하다가 살해당한 동료를 언급하기 하는데, 미국에서는 노동운동이 그처럼 위험한 것이었을까.

이들의 싸움은 여러 방식으로 전개된다. 청소노동자들이 힘을 모아 진공청소기와 황금칠면조로 빌딩 사무실에 근무하는 변호사들의 성대한 파티장을 망쳐놓기도 하고, 거리로 나서기도 한다. 샘은 연설 중에 “우리는 빵을 원하지만 장미도 원합니다”라고 말한다. ‘빵’이 직접적인 생계와 관련된 임금을 뜻한다면, ‘장미’는 인권, 인간적 품위, 그것을 보장하는 노동상황 등을 뜻한다. 분명 노동자에게는 이 둘이 다 필요하다. 월급은 충분하게 줄지 몰라도 무노조 경영을 자랑하는 모 기업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빵과 장미’는 켄 로치의 전작 <땅과 자유>와 댓구를 이룬다. 인간에게는 물질적인 것과 아울러 인간적 존엄성의 가치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는 켄 로치의 주장과 어법이 이 두 편의 영화 제목 속에 녹아 있다. 그러고 보니 인간다운 품위와 너무도 멀리 있던 언니 로사(Rosa)의 이름도 ‘장미’라는 뜻이 아니던가. 결국 이 싸움은 승리하지만 마야는 불법이민자로 추방당한다. 마야는 언니와 샘과 이별하지만 표정은 어둡지 않다.

▲ ‘빵과 장미’는 미국의 시인 제임스 오펜하임이 시카고 여성 노동운동가들을 위하여 쓴 시의 제목으로, 로렌스 파업에서 일부 여성 노동자들이 그 시의 한 구절인 “우리는 빵을 원한다. 그러나 장미도 원한다”라는 피켓을 들고 나온 게 그 효시라고 한다.

이 영화에는 실제 청소 노동자들이 출연했고, 영화 촬영 후 그들도 영화 속 주인공처럼 자신의 권리를 찾아 나섰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2004년 탄핵정국 이후 치룬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에서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였다. 그 축제 분위기 속에서 메이데이 행사가 열렸던 토요일 저녁 텔레비전에서 이 영화가 방영되었다. 장미는 민주노동당뿐만 아니라 서구 좌파정당의 상징이기도 하다. 뭐가 맞아들어가도 예쁘게 맞아들어갔던 시절이다.

노동의 문제는 간단치 않게 흘러가고 있다. 전통적인 자본과 노동의 대립뿐만 아니라 다양한 노동의 형태가 존재하며 노동 안의 대립 또한 존재한다. 한 사업장의 식당과 버스에서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를 차별한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마치 마틴 루터 킹 목사가 그토록 강경하게 불복종운동을 전개하게 했던 흑백분리 정책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어떻게 자신들의 ‘빵과 장미’를 위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빵과 장미’를 빼앗을 수 있는가. 이 외에도 대학 청소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상황과 같은 슬픈 현실이 다시금 우리가 ‘빵과 장미’를 부르짖게 한다.

곧 한국에도 출간될 예정인데, 앙드레 고르는 <프롤레타리아여! 안녕!>(1980)에서 이미 지금 복잡하게 전개되는 노동상황을 예견하였다.(사르트르가 “유럽에서 가장 날카로운 지성”이라고 평가한 이 오스트리아 출신의 사상가는 이미 생태주의적 전망, 일자리 나누기, 기본소득 등의 예언자적 식견을 보여주었다.) 그는 기존 노동계급보다는 실업자나 불완전 노동자, 즉 ‘비노동자, 비계급’이 진보혁명에서 주체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현재 진행되는 노동상황에 많은 점을 시사해준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빵과 장미’ 그리고 ‘빵과 장미’를 위한 연대와 불편함마저 감내하며 자신의 존재를 배반하지 않는 날카롭게 깨워 있는 의식이다. 우리 대부분은 노동자로 살아간다. 타인의 ‘빵과 장미’에 방관하다가 언젠가는 우리 자신의 ‘빵과 장미’도 사라지게 될지 모른다.

글 출처:

     

     

빵과 장미 Bread and Roses, 2000

원제: Bread and Roses
감독: 켄 로치
주연: 파일러 파딜라, 에이드리언 브로디, 엘피디아 카릴로, 잭 맥기, 모니카 리바스
제작사: 패랠랙스 픽처스
배급사: (주) 백두대간
제작국가: 독일, 스페인, 영국
등급: 18
상영시간: 110분
장르: 드라마, 멜로·로맨스
개봉일: 2002.05.24

시놉시스
마야는 멕시코계 불법 밀입국자다. 그녀는 자신보다 먼저 LA로 건너온 친언니 로사의 도움으로 청소용역 회사에 청소부로 취직한다. 하지만 그녀는 정작 청소일보다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층마다 누르면서 빌딩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을 골탕먹이는 게 더 재밌다.
어느 날, 마야는 경비원에게 정신없이 쫓기는 샘을 발견하고 얼떨결에 그녀의 쓰레기통에 샘을 숨겨준다.

불법 이민자이기 때문에 의료보험 혜택도 받을 수 없고, 휴가는 꿈조차 꿀 수 없으며, 첫 월급은 감독관에게 고스란히 바쳐야 하는 억울한 상황에서 그녀의 성질을 돋구는 사건이 하나 일어난다. 그녀의 동료가 단 한 번 지각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마야는 전에 그녀가 숨겨줬던 샘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감독관 몰래 동료들과 더불어 진공청소기와 황금칠면조를 이용한 작전을 계획한다.

     

등장인물

마야
파일러 파딜라

샘 - 에이드리언 브로디

로사 -엘피디아카릴로

버트
잭 맥기

시모나
모니카 리바스

     

네티즌 평점및 20자평

 인간의 존엄함, 인간의 비루함  ★★★★★ cromama
 켄 로치  ★★★★ ororapapa
 켄 로치의영화는 유쾌하고 또 불편해. 절도죄라....  ★★★★ chapoet
 이민 노동자들의 권리 투쟁을 유쾌하게 풀어냈다.  ★★★★ johnconnor
 그대이름은 장미  ★★★☆ yonggary07
 삶은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 성공이라고?  ★★★★☆ clintmin
 열린의식. 자유. 억압적인 것에 대한 항거.  ★★★☆ dd40
 명불허전...  ★★★★☆ ppp9500
 현실에서도 노동자들이 승리하기를 기대해본다  ★★★★ dukbulgo

     

[시사 티켓] 당해보니까 달리 보이십니까

글 : 김용언 | 2009.07.20

관람자: 서경석 목사
영화명: <빵과 장미>

“원주민 쫓아내는 개발악법 철폐하라!” 웬 ‘빨갱이’ 구호냐고? 아니올시다. 무려 보수적 기독교단체의 선두주자 ‘기독교사회책임’이 외친 구호다. 서경석 목사가 공동대표를 맡은 ‘기독교사회책임’은 지난 7월14일 서울 대한문 앞 1개 차로를 점거하는 ‘불법집회’를 감행했다. 현재 서경석 목사가 몸담은 서울조선족교회가 구로4동에 위치하고 있는데, 곧 재개발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철거민 신세가 될 것을 우려, 불법집회를 감행한 것이다. 서경석 목사는 “두 차례나 집회를 했는데 언론보도가 안돼 이 방법을 택했다”고 했다.

서경석 목사와 ‘기독교사회책임’은 용산참사 당시 “과격 시위 근절을 위한 근본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 삶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철거민들을 선동해서 반정부 투쟁을 획책하고 이를 통해 이익을 취해 온 전철연을 더이상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된다”라든가, 당시의 촛불집회에 대해 “이들은 지난해 5월부터 석달 동안 촛불시위를 벌였던 광우병 대책회의 참가단체들이다. 이들이 용산참사를 기화로 다시 나라를 흔들려고 획책하고 있다”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흠, 역지사지를 이런 식으로 실행하다니? 이왕 이렇게 된 거, 미국 내 멕시코 노동자의 유쾌한 ‘불법파업/집회’를 다룬 켄 로치의 <빵과 장미>라도 보면서 불법집회의 테크닉을 좀더 연마하길 바란다.
 
글 : 김용언

 

 

미국 노동현장에 관한 직접적인 보고서, <빵과 장미>

글 : ibuti | 2006.08.21

영국의 노동자, 하층민과 정치문제를 주로 다루던 켄 로치는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 사이에 외국으로 눈을 돌린 작품을 몇편 발표했다. 그중 ‘아메리카 여성 연작’인 <칼라송>(1996)과 <빵과 장미>는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풍요를 꿈꾸며 선진국 땅에 도착한 두 여성의 모습을 빌려 아메리카 대륙의 현실을 고발한 작품이다. <칼라송>이 미국과 남미 정치관계의 실상을 우회해 보여줬다면, <빵과 장미>는 미국 노동현장에 대한 직접적인 보고서다. <빵과 장미>에는 불법 이주자로서 LA의 거대 빌딩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멕시코 여성이 백인 직업 노동운동가와 만난 뒤 불합리한 현실에 눈뜨고 노동자들의 단결을 꾀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빵과 장미’라는 제목은 20세기 초반, 빵과 함께 장미를 요구했던 여성 이주 노동자들의 구호(사진)에서 따왔는데, 영화는 100년이 지난 지금도 저임금, 노동 착취, 폭력과 협박, 해고의 위기와 공포 속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삶을 지탱하는 기본적인 요소 외에 삶을 아름답게 해줄 것들을 쟁취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둘러대지 않고 이야기한다. 때때로 감독이 아닌 영화 속 인물의 위치로 들어가곤 하는 로치는 자칫 영화를 희생해서라도 그들의 삶을 구하겠다고 할 판이다. 종종 드러나는 직설적인 화법과 지나친 낙관이 영화의 단점이 될지는 몰라도 <빵과 장미>가 결국엔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지지를 받는 데는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DVD의 소박한 외양은 영화와 닮았다.
 
글 : ibuti

   

   

유연한 자신감, <,빵과 장미>의 에이드리언 브로디 │ 피플

글 : 백은하 ( <매거진t> 편집장)   사진 : 이혜정 | 2002.06.05

<엘리자베스>의 주요 배역 오디션이 열리던 LA 파라마운드 사무실. 한 애송이 배우는 잔뜩 긴장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만났던 모든 캐스팅 디렉터들이 입모아 지적했던 것을 떠올려보자. “넌 너무 도시적인데다 외국인처럼 생겼어.” 그런데 엘리자베스 시대의 영국인이라니, 이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도전이었는지도 모른다. 설상가상으로 그 동안 밤잠을 못 이루고 준비한 실력을 발휘하려는 순간, 파라마운트사를 에워싸고 LA 노동자들이 피케팅 시위를 벌이며 소란을 피워대는 게 아닌가! “마치 야구장에 놀러온 느낌이었다. 왜 그랬을까? 나는 그들이 만들어내는 소음 속에서 묘한 유머를 발견했다.” 결국 이 청년은 한껏 심각해야 하는 오디션장에서 허허실실 맥이 쑥 빠져버렸고, 물론 <엘리자베스>의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는 데도 실패했다. 그러나 2년 뒤, 그 청년은 LA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우리는 빵뿐 아니라 장미도 원한다’고 외치는 조직원이 되어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어쩌면 그날의 사건은 훗날 <빵과 장미>와 에이드리언 브로디의 인연을 귀띔하는 기묘한 계시였는지도 모르겠다.

마른 몸, 긴 얼굴, 귀를 향해 급속도로 하강하듯 처진 눈썹, 그리고 매부리코. 어디 하나 딱히 잘생겼다고 볼 수 없는 그에게 <빵과 장미>의 마야가 첫눈에 호감을 느꼈던 것은 바로 신념을 향한 유연한 자신감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의 자신감은 대본연구의 소산물이 아니었다. 에이드리언 브로디는 <빵과 장미>를 찍기 위해 직접 노동조합에 위장가입했다. 물론 한 고급호텔 시위현장에서 그를 알아보고 누군가 사인을 요청하는 긴급상황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그는 “직접 뛰어드는 경험이 없이는 도저히 이 영화를 찍을 수 없을 것 같았다”고 말한다. 스페인어 공부와 까다로운 사전조사 뒤에 이루어진 비밀활동은 조직가의 역할이 무엇이고 어떤 것이 요구되는지, 그들이 노조를 조직화하는 데 어떤 기술을 사용하는지 등 굉장히 구체적이고 정확한 지식을 그에게 주었다.

펑크와 디스코가 물결을 이루던 1976년의 뉴욕, <썸머 오브 샘>의 무대가 되었던 그 시절, 그곳에서 에이드리언 브로디는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 태어났다. 14살, 첫 영화데뷔작인 <리틀 킹>에서의 호연은 이후 <불릿> <솔로> <외야의 천사들>에서 조금씩 비중있는 역할로 성장해나가는 밑바탕이 되었고 급기야 초호화 캐스팅으로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테렌스 멜릭의 <씬 레드 라인> 부대에 편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영화가 완성되자 그는 많은 분량이 편집과정에서 잘려나가는 치욕을 감수해야 했다. “테렌스 맬릭은 내가 ‘말없이’ 공포를 표현하는 능력을 특히나 좋아했던 것 같다. 대사를 모두 들어낼 만큼. (웃음) 그는 분명 내 대사를 잘라내며 이렇게 외쳤겠지. ‘그래! 나는 이제 2시간짜리 영화를 만들수 있어!’”

하지만 <씬 레드 라인>의 출연 이후 그를 원하는 영화는 오히려 더 늘어났다. <옥시즌>에서는 여자를 납치하고 산 채로 묻는 “어떤 두려움도 없는 나쁜 놈”이 되었고 <옥시즌> 촬영 내내 끼고 있던 치열고정기를 빼버리고 참가한 <썸머 오브 샘>의 리허설에서는 자유분방한 ‘삐쭉가시머리’ 펑크로커 역을 거머쥘 수 있었다. “<썸머 오브 샘>의 촬영이 끝난 날 새벽 4시에 나는 옷가지와 물건들을 챙겨서 발티모어행 기차를 탔다. 그리고 그 다음날 저녁부터 바로 <리버티 하이츠> 촬영에 들어갔다” 올해 나이 스물일곱, 비평가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이 ‘노력파 행운아’에겐 그 이후도 쉴틈없이 종착역이 다른 기차가 속속들이 도착했고 그는 휴게소에서 노닥거리지 않은 채 빠르게 몸을 옮겨 실었다.

대량학살된 시쳇더미 외에는 살아 있는 것 하나 없는 황량한 거리를 울부짖지도 못한 채 패닉상태로 통과하는 피아니스트.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에서 에이드리언 브로디는 나치의 바르샤바 침공에서 살아남는 유대인계 폴란드인 피아니스트로 출연했다. “로만 폴란스키는 진정한 대가이고 <피아니스트>는 경의로운 영화다. 하지만 나에겐 매우 가혹한 경험이었다.” 특히 그 역사가 자신의 조국과 가족과 그의 삶에 가해진 고통이 아니었다는 것이 그를 가장 힘들게 했다. 또한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과의 소통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그는 수많은 고립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러나 <피아니스트>를 끝낸 에이드리언 브로디는 더이상 동료들의 죽음을 보며 공포에 떨던 <씬 레드 라인>의 유약한 병사가 아니다. 노동운동현장부터 2차대전까지, 크고 작은 전쟁터를 통과한 그에겐 그 어떤 바리케이드가 쳐진다 해도 쉼없이 전진할 수 있는 단단한 삶의 무기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글 : 백은하 ( <매거진t> 편집장)
사진 : 이혜정

영화정보 글 출처: 씨네21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