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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강산 -신중현과 엽전들│2집 (1974 Jigu)

리차드 강 2009. 4. 10. 01:21

아름다운 강산 - Shin Jung Hyun & Yup Juns Vol.2 (역설의 음악)

산아 강아 / 뭉치자 (1974 Jigu )

신중현과 엽전들 2집

No.1 - 아름다운 강산 (작사:곡:편곡:신중현)

 

     

하늘은 파랗게 구름은 하얗게
실바람도 불어와 부푸는 내 마음
나뭇잎 푸르게 강물도 푸르게
아름다운 이곳에 네가 있고 내가 있네
손잡고 가보자 달려보자 저 광야로
우리들 모여서 말해보자 새 희망을

하늘은 파랗게 구름은 하얗게
실바람도 불어와 부푸는 내 마음

우리는 이 땅위에 우리는 태어나고
아름다운 이곳에 자랑스런 이곳에 살리라

찬란하게 빛나는 붉은 태양이 비추고
하얀 물결 넘치는 저 바다와 함께 있네
그 얼마나 좋은가 우리 사는 이곳에
사랑하는 그대와 노래하리

오늘도 너를 만나러 가야지 말해야지
먼 훗날에 너와 나 살고 지고
영원한 이곳에 우리의 새꿈을 만들어 보고파

봄 여름이 지나며 가을 겨울이 온다네

아름다운 강산

너의 마음 내 마음 나의 마음 너의 마음
너와 나는 한마음 너와 나
우리 영원히 영원히 사랑 영원히 영원히
우리 모두 다 모두 다 끝없이 다정해

하늘은 파랗게 구름은 하얗게
실바람도 불어와 부푸는 내 마음

우리는 이 땅위에 우리는 태어나고
아름다운 이곳에 자랑스런 이곳에 살리라

     

     

1973년 청와대로부터 신중현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대통령을 위한 노래를 만들어 달라는 전화였다. 그 당시는 소위 유신시대였고 대통령의 부탁을 거절한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러나 신중현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5분 뒤 공화당에서 전화가 또 걸려 왔다. 역시 같은 내용이었다.

신중현은 정치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상대의 끈질긴 설득을 물리쳤다.그 후 2개월 뒤 신중현은 <아름다운 강산>을 발표했다. 그는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한 권력자의 허영을 충족시키는 일에 팔아버리지 않고,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순수한 열정과 이상을 담은 장대한 드라마를 그려냈던 것이다. 이 노래는 가사를 깊이 음미하며 들어 볼 필요가 있는데 자연과 인간, 현재와 미래, 나와 너의 하나됨을 기원하는 화자의 순수한 열정을 깊이 느낄 수 있다. 또 어린이들의 목소리는 우리가 가고 싶어하고 또 가야만 할 그 곳이 포기할 수 없는 영원한 희망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네 삶과 이웃, 또 우리의 삶의 터전인 조국의 아름다움을 그리고 예찬한 노래는 많았지만, 이처럼 순수하고 장엄한 감동을 준 노래는 없었다. 한낱 정권의 노리개가 되기를 거부하고 삶 자체를 긍정하고 예찬하는 이런 대곡으로 나아간 그의 행보는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아티스트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신중현 Joong-Hyun Shin

1938년 서울출생 (1938년 01월 04일 / 서울 종로구 명륜동, 대한민국)
1941년경 만주 신경으로 이주, 아버지 재혼, 배다른 남동생과 여동생이 생김.
1945년 해방과 함께 서울로 복귀
1950년 전쟁 발발과 함께 충청북도 진천으로 이주
1952년 아버지 사망
1953년 어머니 사망
1956년 미8군쇼 입단(스프링 버라이어티)
1958년 첫 음반 출시 <히키 신 기타 솔로집> 발표
1960년 The Club Date 결성활동(미8군, 최초 패키지쇼)
1962년∼ 60년대 후반까지 이교숙 교수에게 음악이론 사사
1962년 최초의 록그룹 [에드 훠(Add 4)] 결성
1964년 애드훠 첫 음반 발표 (‘비 속의 여인’ 등)
1964년경 미 8군 최초 한국인 여성 드러머인 명정강씨와 신촌에서 살림살이 시작
1966년 그룹 ‘덩키즈’ 결성/ 가수 이정화 데뷔 (‘봄비’ ‘꽃잎’ 등)
1968년 영화 '푸른사과' 음악감독으로 활동
1968년 ‘신중현 빅 밴드’ 결성/ 가수 ‘펄 시스터즈’ 데뷔 (‘님아’ ‘커피 한잔’ 등)
1969년 가수 김추자 데뷔 (‘늦기 전에’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님은 먼 곳에’ 등)
1970년 '신중현 오케스트라' 지휘자 활동
1970년 그룹 [퀘션스] 결성 / 가수 박인수, 장현 데뷔 (‘나는 너를’ 등)
1970년 [제로악단] 결성
1971년 [신중현밴드]
1971년 가수 김정미 데뷔 (‘간다고 하지 마오’ ‘봄’ 등)
1972년 그룹 [더맨] 결성 (‘아름다운 강산’ 등)
1974년 그룹 [신중현과 엽전들] 결성 (‘미인’ ‘저 여인’ 등)
1975년 영화 '연인들' 음악감독
1975년 영화 '미인' 주연
1975년 대마초 파동으로 5년간 활동 금지
1980년 그룹 [신중현과 뮤직파워] 결성 (‘너만 보면’ ‘저무는 바닷가’ 등)
1983년 그룹 [세 나그네] 등을 결성 (‘떠나는 사나이’ 등)
1985년 록 까페 ‘라이브’ 운영
1986년 스튜디오 우드스탁(Woodstock) 개관
1987년 라이브 공연장 ‘록 월드’ 운영
1989년 '신중현 팝오케스트라' 지휘
1994년 <무위자연> 음반 발표
1995~1997년 수원여대 대중음악과 교수
1996년 신중현 헌정 음반 <트리뷰트 투 신중현> 발매
1998년 수원여자 대학 실용음악과 교수역임
2000년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축하기념곡 '우리 사랑해요' 작곡
2005년 신곡을 실은 음반 <도시학>과 과거 노래를 재해석한 음반 <안착> 발매

현재 경기도 용인의 목조 자택에서 인터넷 방송 준비.

3남 중 장남 대철은 그룹 ‘시나위’의 리더로, 윤철, 석철은 ‘서울전자음악단’에서 기타와 드럼을 각각 맡고 있다. 

* 장미화(1964), 박인수 (1967), 펄 씨스터즈(1968), 이정화(1969), 김추자(1969), 송만수(1970), 임아영(1970), 장현(1970), 바니걸스(1971), 김정미(1971), 지연(1972), 김명희(1974) 등 발굴

* 그룹 시나위의 신대철, 기타리스트 신윤철과 드러머 신석철의 아버지로 한국 록음악의 계통 계승

대표곡 :

빗속의 여인(1964), 커피 한 잔(1964), 님아(1968), 봄비(1969),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1969), 님은 먼 곳에(1970), 거짓말이야(1971), 아름다운 강산(1972), 석양(1972), 미련(1972), 마른 잎(1972), 나는 너를(1973), 봄(1973), 미인(1974), 산아 강아(1974) 등 다수

     

     

Introduction

한국 록음악의 대부인 신중현은 상징적인 인물로 통한다. 트로트가 주류를 이루었던 60년대의 가요계에 로큰롤을 정착시킨 한국 최초의 록커로서 대중음악 장르의 복합화와 다양화에 기여했다. 신중현의 활동사는 곧 국내 록음악 발달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중학교 때 부터 기타를 익힌 신중현은 미군 통신용 무전기로 AFKN 전파를 잡아서 외국 음악을 들으며 독학을 했다. 1955년 경에 그는 김광수의 주선으로 라이브홀과 백화점에서 엄토미, 송민영, 김광수등과 함께 공연활동을 했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중 기타연주 실력이 소문나 음악학원의 강사로 활동하게 되었다. 6개월동안 음악학원 강사일을 한 신중현은 미8군 쇼무대에 서게 되면서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전개하였다. 이곳에서 많은 인기를 얻게 된 그는 1959년에 함께 일하던 선배들과 앨범을 발매, 이것이 첫 녹음이며 이 음반에는 재즈풍으로 편곡된 동요와 한국 민요가 담겨있다.

신중현은 1962년에 황무지와 다름없는 국내 음악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음악 교육에 힘쓴 이교숙에게 음악 이론을 배우게 되었고 이 기간동안 앞으로 음악 활동을 하는데 중요한 작곡,편곡등의 실력을 키워갔다.

그 해 신중현은 한국 최초의 록 그룹 <에드 훠(Add 4)>를 결성했다. 물론 에드 훠 이전에도 그룹이 있었지만 어떤 그룹으로 활동했는지 지금은 알 수가 없어 <에드 훠>를 최초의 록 그룹이라 규정했다. 에드 훠는 결성된지 2년후에 첫 앨범을 발표, 이 앨범은 한국 최초의 록 음반이며 한국 최초의 록 창작곡으로 기록되었고 `빗속의 여인`, `커피 한잔`, `내 속을 태우는 구려` 등 신중현의 대표적인 노래들이 수록되었다. 그는 <에드 훠> 앨범에 장미화를 데뷔시키기도 했다. <에드 훠>는 부산에서부터 인기몰이를 시작하여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계속적인 공연으로 큰 인기를 누린 에드 훠는 해체된 1965년까지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970년 초반에 <퀘션스>라는 그룹을 결성한 신중현은 `김상희 리싸이틀 쇼`에 참여 반주를 담당했고, 이 쇼는 음반으로 제작되어 신중현의 곡들이 담기기도 했다. 신중현은 <퀘션스>와 함께 공연실황 앨범을 발표했는데 이 앨범은 음반회사에서 몰래 녹음해서 불법으로 제작한 것이다. 이렇게 가수들의 앨범에도 참여하였던 <퀘션스>는 그해 가을에 해체되었다.

김추자와 캐롤음반을 발표한 신중현은 김추자의 앨범에 자신이 작사, 작곡, 편곡까지 했던 `님은 먼곳에`를 수록하도록 했다. 처음에는 이 곡을 패티 김에게 주려고 했지만 갑자기 패티 김이 자취를 감춰 버리자 급한대로 김추자에게 주었던 것이다. 어찌되었건 김추자의 앨범은 삼판까지 제작되는 큰 인기를 누렸다.

이 무렵 신중현이 발표한 `봄비`를 일본 음악쪽에서 높게 평가하여 여러가지 좋은 조건을 내걸고 끌어가려했다. 당시 일본 음악 수준은 우리나라보다 낮았기 때문에 그를 데려감으로써 음악적 수준을 높이려 했었다. 그러나 신중현은 그들이 일본인, 일본이름으로 활동해야만 한다는 조건을 내걸자 단호히 거절하였다고 한다. 그는 1980년에 그룹 <뮤직파워>를 결성하고 자신의 독집음반을 발표했다.

신중현은 1986년 록의 활성화를 위해 전용 라이브 클럽 `록 월드(Rock world)`를 개관했다. (신대철, 김종서, 임재범 등 `시나위`의 멤버들은 이곳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2년 뒤에는 스튜디오 `우드스탁`을 개관했다.

30년이 넘는 기간동안 꾸준히 자신의 음악 세계를 추구하면서 활동해온 신중현은 1994년 앨범 `무위자연`을 발표했다. 그리고 전기 기타 산조를 완성시키면서 현존하는 국내 최고의 기타리스트가 되었다.

1996년과 1997년에는 헌정앨범 `A Tribute to 신중현`과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는 `김삿갓`을 내놓았다. 특히 `A Tribute to 신중현`은 국내 최고의 뮤직션들이 대거 참여하여 만든 헌정 앨범으로 국내 최초의 헌정 앨범으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김삿갓`은 김삿갓의 시에 곡을 붙인 곡으로 고전적인 맛과 현대적인 맛이 어우려진 앨범이라는 평를 받았다.

     

(2008/08/29) : 그냥 오늘 내 기분이 좋다는 뜻이다. 무척 기쁘다. 갑자기 모두가 좋아보이고, 모두가 사랑스러워 보이고,,,,뭐 ~ 그런 기분 느껴보셨는가? 내가 지금 그렇다...푸하하

이 노래는 제가 노래방에서 자주 부르는 곡인데 남들이 목소리도 안좋으면서 시간 잡아 먹는 곡만 선택해서 다른 분들 노래 못하게 한다고 중간에 마이크 뺏기는 노래입니다. 그래도 저는 이 노래가 제일 좋습니다. 신중현이 바닥으로 깔아 내는 목소리는 그 당시의 한국상황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곡으로 뉘앙스가 있는 노래입니다. 듣고 있을수록 끌어댕기는 맛이 있는 노래죠...이따요? 헉...소주..ㅠ.ㅠ 어제 잔뜩 먹었는데...쩝

노병규 개 쒸부랄노무 쓉세끼를 까부수고.....

백수재에서....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