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평화의 가요

앨범: 노래를 찾는 사람들 Noraereul Chatneun Saramdeul 2집 (1989 서울음반)

리차드 강 2013. 6. 22. 19:23

노래를 찾는 사람들 2집

Noraereul Chatneun Saramdeul 2집

노래를 찾는 사람들 2기 : 1989년

1.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 신현중

음반 이름: 노래를 찾는 사람들 2

음반 구분: 정규, studio - 2집
발매 일자: 1989-10-01 / 대한민국
장르/스타일: 포크
Album Releases: 1989.10.01 서울음반 (SRCD-3049)

아티스트 라인업
 강일철, 김삼연, 신현중, 안치환, 최병선, 경미진, 권진원, 모희라, 박혜정, 최문정

Credits
레코딩 스튜디오: 서울 스튜디오
제작: 1989. 10. 1.
기획, 제작 : 노래를 찾는 사람들
녹음: 송형헌(서울스튜디오)
연주: 조성오, 이형복, 배영길, 박기영, 안치환
편곡: 나동민
디자인: 이효숙, 정혜정

Introduction

노래를 찾는 사람들은 80년대에서 90년대에 걸쳐 한국에서 활동한 민중가요 노래패이다. 흔히 줄여서 노찾사라고 부른다.

1980년대 대학가에선 군부독재에 맞선 민주화 투쟁으로 많은 집회가 있었고, 그런 와중에 자연스럽게 집회 등에서 많이 불리던 민중가요 노래패들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생겨났다. 민중가요는 민중들의 현실을 내용으로 하여 주로 사랑타령이던 기존의 가요와 차이를 보였으며 따라서 상업적인 성공은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앨범은 대중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며 민중가요의 발자취를 한국 대중음악사에 남기는 역할을 하였다.

 

 

 Side A
1.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2. 광야에서
3. 사계
4. 마른잎 다시 살아나
5. 그날이 오면

 Side B
1. 저 평등의 땅에
2. 이산하에
3. 오월의 노래
4. 잠들지 않는 남도

 
(작사:안치환 작곡:안치환)  신현중
(작사, 곡:문대현, 안치환)  안치환
(작사:문승현 작곡:문승현)  여자들
(작사:안치환 작곡:안치환)  안치환
(작사:문승현 작곡:문승현)  전체 합창
 
 
(작사:류형수 작곡:류형수)  권진원
(작사:문승현 작곡:문승현)  김삼연
(작사:문승현 작곡:문승현)  최문정
(작사:안치환 작곡:안치환)  신현중

 
2:57
3:40
2:04
3:55
4:10
 
 
4:46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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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2

 

 

 

 
 

[대중음악 100대 명반]53위 노래를 찾는 사람들 ‘노래를 찾는 사람들 2’

이영미 | 대중예술연구자

ㆍ진보 노래운동, 대중음악으로 진입하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 2’는 진보적 노래운동의 성과가 상업적 대중가요 음반 시장 안에 의도적으로 진입해 성공한, 우리나라 대중가요사상 최초의 기념비적 음반이다. 이 음반이 나오기 5년 전 발매된 노찾사 1집에서 그 시작이 이뤄졌다고도 볼 수 있지만 이는 몇 가지 점에서 미흡하다. 우선 진보적 노래운동과 민중가요의 대중가요 시장 진입이 그리 의도적, 본격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1984년 노찾사 1집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라는 노래집단이 없는 상태에서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하고 있던 최초의 노래운동 집단 노래모임 ‘새벽’의 멤버들이 김민기와 함께 우연히 만들어낸 프로젝트 음반이며, 무사히 발매되는 것이 최우선의 목적이었다. 이 때문에 당시 민중가요의 최고 레퍼토리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엄혹한 검열에 통과할 만큼 무난한 노래들이 선택됐다.

그에 비해 노찾사 2집은 87년 6월 항쟁으로 부분적인 민주화의 분위기가 생겨난 후, 노래운동의 대중화를 목표로 하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란 노래집단을 발족시키고 여러 차례의 공연을 통해 상당한 성과를 축적한 후에 만들어낸 본격적인 첫 음반이라는 점에서 노찾사 1집과 구별된다.

노찾사의 활동과 2집 음반의 발매로 드디어 이전의 비의도적인 사건들이 모두 필연적인 ‘확신범’의 소행으로 바뀌었다. 1집의 음반 이름이 팀 이름으로 바뀐 것은 물론 그간 노래운동이 시민공간에서 해왔던 간헐적 활동들은 모두 노찾사를 피우기 위해 ‘봄부터 운 소쩍새’로 정리됐다.

창립 이후 노찾사는 공연 때마다 매진행진을 계속했다. 대중가요와 다른 경향의 민중가요가 얼마나 강한 호소력을 발휘하는지 증명했다는 점에서, 이 음반은 발매 이전에 이미 준비된 ‘대박상품’이기도 했다.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대단한 것이었다. 1년 사이 50만장을 돌파했고 이후 90년대 초중반까지 80만장 이상 판매됐다.

이 음반의 수록곡은 9곡 모두 노래모임 ‘새벽’ 멤버들(문승현, 문대현, 안치환, 류형수)이 지은 작품으로 당시 상당한 인기를 모으고 있던 유명 민중가요였다. 음반은 노래 발표의 시작이 아니라 화려한 유통의 기록이었다. 수록곡들은 당시의 검열 기준에 비춰보면 과감한 표현들로 뒤덮여 있다. ‘민주의 넋’ ‘창살 아래 네가 묶인 곳’ ‘우리 노동자의 긍지와 눈물을 모아’ 등의 구절은 다른 대중가요였다면 엄두도 낼 수 없는 표현들이다. 이미 사람들의 입에 수없이 오르내렸던 이 작품들을 지켜보는 대중들의 눈이 무서워, 엄혹한 검열당국도 손을 대지 못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편곡을 비롯해 음악 전체를 관할한, 따로또같이 출신의 나동민은 키보드를 중심으로 한 매끈하고 윤기 있는 질감을 만들어내 노래모임 새벽의 비합법음반에서와는 다른 노찾사만의 대중적인 색깔을 만들었다. 노찾사 가수들은 개인의 색깔 대신 노찾사라는 집단의 색깔만을 보여줬다. 그래도 ‘광야에서’와 ‘잠들지 않은 남도’를 부른 안치환과 ‘저 평등의 땅에’ ‘사계’ 솔로 부분의 권진원의 목소리를 확인하는 것은, 90년대 언더그라운드 스타들의 전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들을 거리이기도 하다.

〈 이영미 | 대중예술연구자 〉2008-03-06 ⓒ 경향신문 & 경향닷컴

 

 

노찾사 2집 소개

1987년 10월 어느날 종로5가에 자리 잡은 ‘기독교백주년기념관’에서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첫번째 공연이 열렸을 때 관객들이 보여준 뜨거운 반응은 우리 모두의 상상을 뛰어 넘는 것이었다.
공연 시작 몇 시간 전부터 몰려든 관객들은 공연 내내 진심어린 박수를 보내주었고 일부 관객은 노래를 함께 부르며 눈물을 펑펑 쏟기도 했다. 이후 노찾사의 역사는 바로 그 순간 관객들과 함께 확인했던 정서적 일체감, 오랜 억압과 투쟁의 세월을 지나 저 6월 항쟁의 빛나는 함성을 통해 이제 막 열리기 시작한 자유의 공기와 승리의 신념이 빚어낸 그 뜨거운 공감으로부터 시작된다. 그것은 노찾사 자체에 대한 것이었기보다는 노찾사의 노래들이 근거하고 있던 80년대의 지난한 역사, 그 속을 함께 헤쳐 나온 모두의 삶에 대한 기꺼운 상찬이었다. 80년대가 저물어 가던 시점에 마침내 합법의 틀을 통해 세상에 나온 노찾사2집이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엄청난 호응을 얻었던 것도 바로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노찾사2집의 노래들이 담고 있는 역사성은 다만 노찾사라는 이름의 집단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엄혹했던 시대를 함께 버텨온 우리 민중 모두의 것이었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찾사 2집에 실린 노래들을 살펴보는 것은 80년대의 민중사, 혹은 노래운동사를 되새김해보는 일과 다름이 없다. 70년대 말 대학가에서 싹을 틔운 노래운동의 흐름은 80년대 저항의 시대를 산 젊은이들의 삶과 영혼을 대변했다. 이 흐름은 노동 현장을 중심으로 확산되었던 노동 가요와 함께 80년대 민중음악의 가장 중요한 맥을 형성한다. 노찾사는 애초에 80년대 초 대학가 노래운동 출신들이 시작한 노래모임 ‘새벽’에서 분기한 집단이었고 노래운동과 대중 공간을 연결하는 전술적 단위이자 합법적 틀이었다. 노찾사2집은 노찾사의 이런 정체성을 그대로 담고 있다. 여기 실린 노래들을 작곡한 문승현, 문대현, 안치환, 류형수는 모두 대학 노래패에서 시작해 ‘새벽’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이며 이후 80년대 진보적 노래운동에서 하나의 음악적 흐름을 만들어냈던 주역들이다. 이들의 음악은 보다 현장에 밀착해 노동 대중의 감성을 반영하고자 했던 노동 가요 쪽과 달리 좀더 음악적으로 전문화되고 세련되며 지적인, 굳이 말하자면 가곡의 정조와도 유사한 세계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노래는 음악적 단위 하나하나에 보다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좋은 의미에서 지식인적인 특성을 보여주며 노찾사2집은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곡들로 채워져 있다.

노래모임 ‘새벽’의 리더였고 80년대 노래운동의 음악감독 격이었던 문승현은 노찾사의 음악적 방향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의 곡이 이 음반에 무려 4곡이 실려 있는 것은 이 노래들이 노찾사의 색깔과 지향을 가장 정확하게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5월의 노래’는 광주의 피 냄새가 채 가시기 전인 1981년 당시 대학생이던 문승현의 문학적 음악적 감성이 빚어낸 5월 광주의 진혼곡이다. ‘이 산하에’는 84년 무렵 ‘새벽’이 본격적인 공연활동을 시작하던 당시 만들어진 곡이고, ‘사계’는 최근 거북이라는 팀에 의해 힙합버전으로도 발표된 바 있는 노찾사 최고의 히트곡이며, ‘그 날이 오면’은 전태일 열사 추모의 의미를 담은 80년대 최고의 명곡 가운데 하나이다. 문승현의 이러한 작품 활동은 곧 노래운동이 캠퍼스 아마츄어리즘에서 벗어나 음악운동적 전문성을 획득해 가는 과정 그 자체였다고도 말할 수 있다.

87년 6월의 시간은 어두운 곳에서 숨죽이며 불리던 노래들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가장 크고 떳떳하게 불려질 수 있던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대학생이던 안치환에게 자신의 노래가 수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불려지는 체험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런 충격적 체험을 거치며 그는 이 시기 뛰어난 민중가요의 절창을 만들어냈다. 노찾사 2집의 머리곡이며 최근 MC스나이퍼에 의해 힙합버전으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이한열 열사 추모 음반에 실려있고 평양을 방문한 문익환 목사가 불러 화제를 모았던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제주 4.3항쟁을 주제로 담은 ‘잠들지 않는 남도’가 그것이다. 이 노래들은 안치환이 뛰어난 록커이기 이전에 가장 치열한 의식을 가장 서정적으로 형상화할 줄 알았던 음악인임을 보여준다.

문대현과 류형수 역시 대학 노래패 출신이며 ‘새벽’에서 활동했던 작곡가들이다. 노찾사2집에는 이들 각각의 대표곡인 ‘광야에서’와 ‘저 평등의 땅에’가 담겨 있다. ‘광야에서’는 얼마 전 CM으로 사용되었을 만큼 대중성을 갖춘 80년대 노래운동의 상징적 작품이고 ‘저 평등의 땅에’는 ‘새벽’이 전문 음악 집단으로서 보여준 다양한 음악적 모색 과정의 산물이다. 이들은 이후에도 노래운동의 일선에서 활동하면서 많은 뛰어난 작품들을 만들어낸 바 있다.

노찾사 2집의 레퍼토리들은 80년대 민중운동의 정서적 흐름을 담보했던 대표적인 노래들이며 그런 의미에서 한국 대중음악사의 고전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노찾사2집이 날개 돋친 듯 팔리고 노찾사 공연마다 이 노래들이 울려 퍼지던 시대는 분명 지나갔지만 이 노래들이 상징하는 저 80년대적 시대정신, 자유와 저항과 진보의 역사적 의미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글쓴이 : 김창남(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시대의 작은 혁명, 노래를 찾는 사람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은 대학가에서 불리어지던 민중가요를 정식으로 발표해 공식화시키고, 민중가요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조직된 노래패로 '노찾사'로도 불린다. 노래모임 '새벽'을 중심으로 한 노래운동권에서는 합법적인 활동을 전담하는 팀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상징적 인물인 김민기의 프로듀싱 하에 민중가요 음반으로는 최초의 합법 음반인 [노래를 찾는 사람들]을 1984년에 발표했다. 당시 시대상으로 볼 때 민중가요가 심의를 통과해 음반이 발매되었다는 것은 혁명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당시 음반사는 발표된 음반의 유통을 꺼렸고 1989년 2집이 성공을 거둔 후, 비로소 공개될 수 있었다. 1991년 3집, 1994년 4집을 차례로 발표하면서 故김광석, 안치환, 권진원 등 실력 있는 가수들을 배출했으나 4집 이후 오랜 기간 활동이 뜸하다가 2004년 결성 20주년 기념 공연을 시작으로 활동을 재개하고 있다.

 

80년대 끝자락에서 '쏘아 올린 작은 공'

80년대를 관통하는 또렷한 기억을 몇 가지 열거하자면 마이클 잭슨, 86 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 그리고 도저히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최루탄 냄새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최루탄 냄새의 한가운데에 민주화를 향한 몸부림이 있었고 그 몸부림에는 민중가요가 함께 했다. 귀가하던 대학생이 어두운 골목길에서 흥얼거렸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갔다는 그 민중가요가 합법화, 대중화를 선언하고 70년대부터의 노래작업을 망라해 음반을 발표했다. 당시 이 음반의 발매를 보도한 신문은 '대학가 애창곡 음반 첫 출반. 소문 없이 대학가에 퍼져 불려지던 노래가 젊은이들에 손에 의해 음반으로 제작되었고 유행, 상업성, 외국식 문화를 탈피했다'고 소개했다. 군사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 음반사는 돌연 음반의 유통을 취소했고 이들의 노력도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6. 29 선언으로 민주화 분위기가 다소 생겨난 이후 1987년 '노찾사'의 첫 공연을 시작으로 이들의 의지는 다시 굳어졌고 1989년 두 번째 앨범 [노래를 찾는 사람들 2]가 발매되었다. 천편일률적인 사랑타령과 서구의 pop 음악의 답습으로 일관되었던 당시의 가요시장에 '노찾사'의 진솔하고 뜨거운 노래는 큰 반향을 일으켰고, 더불어 묻혀졌던 1집까지도 세상의 빛을 보게 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또한 이 앨범의 수록곡인 '사계'는 당시 대학생 출연자들이 퀴즈를 풀며 지성을 겨루었던 퀴즈 아카데미의 피날레 뮤직으로 사용되면서 더 큰 관심을 모았다.이 앨범은 유행, 상업성, 외국식 문화를 탈피를 기치로 내세운 만큼 당시의 가요와는 다른 미니멀한 전개를 보이면서도 매우 높은 완성도를 보인다. 멜로디와 가사의 아름다움은 물론 보컬의 가창력, 가사 전달력과 수준급의 반주는 민중가요하면 떠오르는 조악함을 불식시키기에 충분했다. 만약 이 앨범이 높은 완성도를 보이지 못하고 민중가요의 스테레오타입을 깨버리지 못했다면 그렇게 선풍적인 반응은 얻어내지 못했을 것이고, 더불어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선정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마치 한 편의 시와 같은 가사에 호소력 짙은 보컬이 1980년대 민주화 운동과 노래운동이 겪어온 길을 표현하는 듯한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와 '광야에서'는 스물 네 살 안치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 앨범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졌던 '사계'는 여성 보컬과 건반의 경쾌한 연주와는 달리 여공들의 쳇바퀴 도는듯한 단조롭고 고단한 삶을 표현하고 있다. 이 앨범의 클라이막스는 멤버 전원이 함께 부르는 ‘그날이 오면’이다. 수많은 희생을 감수하고 기다려온 그날을 향한 이들의 장엄하고 힘있는 염원은 듣는 이의 감수성을 자극한다. 청아한 듯 처연한 보컬이 돋보이는 '저 평등의 땅'은 '사계'와 함께 초창기 권진원의 목소리를 감상할 수 있는 보너스를 제공한다. '이 산하에'는 전형적인 민중가요의 틀을 보여주지만 간주 부분의 조바꿈은 이 곡이 그저 쉽게 쓰여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광주의 5월에 헌정하는 '오월의 노래'와 제주 4. 3 사건으로 희생된 이들을 위한 진혼곡 '잠들지 않는 남도'로 앨범은 마무리된다. '사계' 한 곡만을 제외하고는 시종일관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라는 점은 이 앨범의 단점으로 지적될 수 있겠으나 시대의 소외된 것들을 조명하는 민중가요의 특성상 피할 수 없는 한계라 생각된다.

이 앨범이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갖는 의의는 민중가요가 추구한 합법화, 대중화를 동시에 달성했다는 것과 함께, 아직 현재 진행형인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어루만졌다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이전보다는 민주주의적인 분위기가 사회 전체에 퍼지고 글로벌화가 가속화되고 국민소득 2만불 시대가 열렸지만 이 모든 역사는 과거의 아픔 위에 건설된 것이며 여전히 사회에는 소외된 계층이 존재한다. 한국 현대사의 상처와 소외된 계층을 노래로 어루만져온 이들이 21세기에는 어떤 행보를 보여줄 것인지... 기대와 함께 이 글을 마친다.

글 / 이지현 (네티즌 선정위원단).

 

 

“노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원시 저작자는 박영근 시인”

노동시인 박영근 (1958~2006)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의 노랫말은 시 구절이다. 그래서‘작사(作詞)’가 아니라 ‘작시(作詩)’란 표현이 옳다. 시를 가사로 썼다는 얘기다. 노랫말의 원작자는 노동시인 박영근(1958~2006). 박 시인이 쓴 ‘솔아 솔아 푸른 솔아’가 이 노래의 가사다.
4분의 4박자 슬로로 나가는 이 노래는 한동안 음악인 안치환씨가 작사.작곡하고 노래까지 부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작곡은 그가 한 것으로 돼 있지만 작사는 박영근 시인이 한 것으로 최근 고쳐졌다. 2009 5월 박 시인 부인(성효숙 씨)이 사실 규명에 나서면서부터다.

“민중가요를 넘어 국민적 애창곡이 된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의 원시 저작자가 박영근 시인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세요.”

2009년 5월 11일로 3주기를 맞는 노동시인 박영근(1958~2006·사진)의 부인인 성효숙씨는 4일 낮 서울 광화문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호소했다. 현장에는 소설가 겸 문학평론가 김이구씨와 박영근 시선집 <솔아 푸른 솔아>(백무산·김선우 엮음)를 내는 강출판사의 대표인 문학평론가 정홍수씨가 동석했다.

1986~7년 연세대에 재학중이던 안치환씨가 만들어 불렀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는 1984년에 나온 박영근의 시집 <취업 공고판 앞에서>(청사)에 수록된 <솔아 푸른 솔아-백제 6>과 <고향의 말 4>를 비롯한 시를 변형시켜 만든 가사에 안치환씨 자신이 곡을 붙인 노래다. 그러나 1989년 노찾사 2집 음반 첫곡으로 수록될 때 이 노래는 ‘노찾사’ 이름으로 발표되었을 뿐 작사·작곡자의 이름은 따로 공개되지 않았다. 1994년 안치환씨의 1+2집 음반이 나올 무렵부터 ‘안치환 작사 작곡’으로 통용되기 시작했으며, 1998년에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도 ‘안치환 작사’로 등록되었다. 지난해 가을 동료 문인들이 만난 자리에서 이 노래의 원저작자를 찾아 주자는 이야기가 나와 안치환씨 쪽에 전달되었고, 이에 대해 안씨는 공동 저작으로 하자는 제안을 해 왔으나 유족이 동의하지 않자 올 1월께 일방적으로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공동 저작자로 등록해 놓았다고 성효숙씨는 밝혔다.

한편 9일 오후 2~5시 인천 배다리 아벨서점 시다락방과 ‘허물어진 삶터’에서는 박영근 3주기 추모 심포지엄과 공연이 열린다. 문학평론가 고영직·이성혁·유성호씨가 발표하며, 안현미·박철·신현수 시인 등의 시낭송과 노래패 꽃다지의 공연 등이 이어진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글 출처: ⓒ 한겨레 (http://www.hani.co.kr). 2009.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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