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하여

100일간 6명이…어느 영구임대아파트의 자살행렬

리차드 강 2012. 8. 27. 22:57

100일간 6명이…어느 영구임대아파트의 자살행렬

       

최근 100일 동안 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울 강북의 영구임대아파트단지. 10평 안팎의 집에는 홀로 사는 노인세대가 많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지난 5월부터 비극 줄이어
빈곤과 절망의 끝에선 6명
지자체 관리 한명도 못받아
주민이 서울시에 글 올려
“삶 포기 않게 도와주세요”

아파트 화단이 동트기 전 ‘붉게’ 물들었다. 새벽 5시20분 이도희(94)씨가 가동 13층 집 베란다에서 잠든 손자를 뒤로하고 투신했다. 14평 집 안방에선 장애 아들 내외가 자고 있었다. 지난 3일이다. 나흘 뒤 이씨의 동네 단짝 차배숙씨도 나동 6층 복도 밖으로 몸을 던졌다. 오후 6시45분께 늙은 아들에게 차려준 밥상을 치운 뒤다. 복도 벽은 차씨가 감당할 높이가 아니다. 98살 노파는 유모차를 끌어와 버겁게 딛고 올랐다. 일주일 뒤인 14일 다동에 거주하는 21살 이준호씨는 외조부모가 잠든 13층 집 앞 복도에서 뛰어내렸다. 밤이었다.

홀로 사는 손한수(63)씨는 집안에 설치된 간이소화기에 빨랫줄을 묶고 목을 맸다. 누구를 기다렸는지 현관문을 열어뒀다. 이웃이 발견했다. 5월15일 가정의 날이었다. 두 발목도 줄에 감겨 있었다.

보름 전인 5월1일 나동, 경찰이 김수연(35)씨가 잠근 욕실을 열어젖혔다. 문짝 틈새까지 두른 청테이프가 뜯어졌다. 욕실 안 김씨는 다 타버린 번개탄 옆에 누워 있었다. 안방엔 유서가 있었다. “나를 화장해 바다에 뿌려줘.”

아버지와 단둘이 살던 김종석(22·지적장애 2급)씨는 아버지가 음주폭력으로 입건된 사이 투신자살했다. 7월20일이다. 나동 1층에 사는 김씨가 15층까지 올라가는 마지막 길을 승강기 폐회로텔레비전(CCTV)이 기억했다. “불안해하며 계속 층수만 보더라고요. 1층, 2층, 6층, 15층…. (경찰이) 그러고 바로 뛰어내린 거래요.” 따로 살아왔던 김씨의 형(31)이 울며 말했다.

서울 강북권에 위치한 이 영구임대아파트엔 1780여가구 4250여명이 산다. 지난 5월부터 100여일 동안 이도희·차배숙·김수연·김종석·손한수·이준호(모두 가명)씨 등 주민 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단일 거주환경에서 단기간에 이처럼 많은 이들이 잇따라 자살한 사례는 국내에서 찾기 힘들다.

3~4년 가중된 경제난과 박탈감 등이 이곳 빈민들의 삶을 무력화한 결과로 분석된다. 이 아파트의 최근 자살률은 1000명당 1.41명꼴이다. 2010년 전국 평균 자살률인 1000명당 0.31명, 서울시 0.26명과 단순 비교하면 4.5~5.4배 차이가 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0.11명)의 12.8배다.

자살한 6명 가운데 단 한명도 자치구나 정신보건센터, 서울시 지원을 받는 단지내 사회복지관의 사례관리·상담군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 주변 아파트 주민 여럿은 이곳을 ‘거지아파트’라 부른다. 재력·건강·소속(커뮤니티)이 없는 ‘3무 시민’으로 공공복지체계의 사각에 놓여 있다.

단지내 한 주민이 지난 16일 서울시 누리집에 글을 올렸다. “존경하는 서울시장 및 공무원 여러분 우리 동네에 자살 방지 프로그램을 만들어주시고…, 답답하고 어려운 생활을 하는 주민들에게 존엄성과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지난 3월 시행된 ‘자살예방법’에 따라 서울시는 다음달, 보건복지부는 연말께 자살예방 종합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이미 세상을 뜬 여섯 망자에겐 ‘해당 사항’이 없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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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빚·고독·공포…21살도 98살도 사회안전망은 없었다

서울 강북지역 한 영구임대아파트에 사는 주민 여섯명이 최근 100일 사이 잇따라 목숨을 끊었다. 빚더미에 못 이겨서, 외로워서, 아파서…. 이들 모두 가까운 복지관이나 정신보건센터의 ‘복지망’에서 벗어나 있었다. 경제위기로 가중되는 저소득·빈곤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세상을 등졌다.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인, 빈곤층이 한데 몰려 사는 이곳 아파트 주민은사회의 ‘관심’을 절규하듯 호소했다.


6명은 왜 세상을 등졌을까

영구임대아파트 한 단지에서의 연쇄자살은 소외·빈민층을 위한 사회안전망에 얼마나 큰 구멍이 뚫려 있는지를 방증한다. 6명 가운데 30대 이하 셋, 60대 이상이 셋이다. 3명은 사실상 홀로 사는 독거 상태였다. 기초생활수급이 두 가족, 기초생활수급·장애, 장애 가족이 각각 하나였다.


이혼 아버지 음주폭력으로 유치장
남은 장애아들…“너 어떻게 할래?”


■ 고립된 죽음 김종석(22)씨의 부모는 10여년 전 이혼했다. 아버지(60)는 줄곧 어머니를 때렸다. 어느날 어머니가 아버지 앞에서 칼로 손목을 그었다. 술을 잘 못하던 아버지는 이혼 뒤 음주까지 잦아졌다. 형 종원(31)씨는 어머니와, 종석씨는 아버지와 살게 됐다.

이혼 뒤 종석씨 부자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영구임대아파트를 전전했다. 지적 장애가 있는 종석씨는 중학생 즈음부터 집에만 머물렀다. 신체장애 아버지가 챙겨주는 밥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고 컴퓨터 게임을 했다. 말이 사라졌다. 종원씨는 “아버지가 몇 년 전 ‘동생이 심각하다’고 연락해와 가보니 예전의 활달했던 동생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지난 7월16일 아버지가 음주폭력 혐의 등으로 경찰에 입건됐다. 경찰관에게 ‘아들 밥값으로 전해달라’며 20만원을 맡긴 채 유치장에 갇혔다. 종원씨가 17일, 19일 동생을 찾았다. “혼자 음식 시켜먹을 줄 아니? 해볼래?” 동생이 볶음밥을 주문했다. 형제는 부모 이혼 뒤 처음 함께 식사했다. “아버지도, 형도, 엄마도 없으면 너 어떻게 할래?”라고 물은 종원씨는 이튿날 동생의 자살 소식을 답으로 들었다. “동생을 집에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혼자 되는 걸로 이해한 거예요.”


10년전 별거 가족에 수차례 전화
“외롭다” 현관문 열어둔채 세상떠


하루에 치른 장례에 아버지는 오지 못했다. 종원씨는 “동사무소는 단절된 아들이 왔으니 아버지 기초생활수급이 끊길 거라더니, 구치소에선 부자관계 증명 서류가 없어 면회가 안 된다고 해 장례일 아버지도 못 만났다”고 말했다.

2006년 감소했다가 2007년 13.3%포인트, 2008년 5.6%포인트의 증가폭을 보인 자살자 수는 경제위기가 닥친 이명박 정부 2년째인 2009년 20%포인트 폭증했다. 2009~2010년 전국에선 2만9501명(경찰청 집계)이 자살했다. 정신적 문제(신병비관)가 첫번째 사인(8489명·28.8%), 네번째가 가정문제(3363명·11.4%)였다. 기관·이웃의 도움이 절실한 경우다. 손한수(63)씨는 10여년 전 별거한 가족들에게 최근 “외롭다. 죽고 싶다”고 수차례 전화했다고 한다. 그는 현관문을 열어둔 채 세상을 떠났다. 손씨는 술주정으로 동네 악명이 높았다. “친구가 거의 없었다”는 게 이웃의 평이다.


빚 1억…“붇고 불어서 너무 힘들다”
사망뒤도 2~3분마다 독촉 벨소리


■ 빚과 그림자 5월1일 오후 김수연(35)씨는 언니(37)에게 휴대전화 문자를 보냈다. “엄마 아빠 곁으로 간다. 미안해.” 그러고 전화기를 깨부쉈다. 11월 결혼을 앞둔 여성의 한 줄 문자는 한 장 유서에서 완결됐다. 언니가 말했다. “빚이 1억이라고 썼어요. 붇고 불어서 너무나 힘들다고. 최근 사채까지 이용하면서 (빚이) 많아졌던 것 같아요.” 언니는 망가진 동생 전화기의 메모리칩을 자기 전화기에 꽂았다. 2~3분마다 벨이 울리고 1시간 만에 40여개 문자가 쏟아졌다. 500만원이, 1000만원이 연체됐으니 갚으라는 내용이었다.

수연씨 세 자매는 가난했다. 건설노동자 아버지와 식당일을 하는 어머니를 따라 1991년 이 단지에 입주했다. 다섯이 11평을 쪼개 썼다. 부모가 죽고 언니가 결혼하고 막내(33)도 취직하면서, 2004년 수연씨 홀로 아파트에 남았다. 언니는 “6년여 사귄 남자친구네가 잘살아서 그 수준에 맞추고 싶었던 건지, 자기 분수도 넘어 씀씀이가 좀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동생을 원망하기보다 욕망을 향한 울분이었다. 수연씨의 한평생 유산인 아파트 보증금 561만원은 사채회사, 카드사 등이 나눠갖는다.

2009~2010년 자살자의 세번째 사인은 경제난(4690명·15.9%)이다. 외조부모와 살던 이준호(21)씨는 공익근무요원으로 밤마다 피자 배달을 했다. 한 이웃이 말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일했는데, 사고가 나서 책임질 게 부담돼 자살했대.” 외조부 한아무개(71)씨는 “여자친구와 다투고 그리됐다”고만 했다.


가정형편 어려워 밤마다 피자배달
“사고가 나서 책임질게 부담돼서…”

늙은 아들 수발 98살 할머니 가자
장애아들부부와 살던 단짝 94살도


■ 늙은 자의 숙명? 차배숙(98)씨와 이도희(94)씨는 단짝이다. 경찰은 유가족 조사를 통해 “고령과 지병 등 노환을 비관해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해왔다”고만 사인을 개관했다. 이 아파트단지 또다른 말벗인 임아무개(86)씨가 두 여성의 말로를 복원했다. 차씨는 세 아들 가운데 큰아들이 3년 전 죽은 뒤부터 ‘내가 먼저 죽었어야 했다’는 말을 결결이 던졌다. 큰며느리도 그때 집을 나갔다. 이후 노파 혼자 11평 아파트에서 남은 늙은 아들들의 밥을 챙겼다. 임씨는 “사는 게 고달팠던 것”이라고 말했다. 고혈압만 앓았을 뿐인 차씨는 절친한 이씨가 죽자 나흘 뒤 따라 죽었다. 장애 아들 부부와 사는 이씨는 골다공증, 허리·다리 통증으로 병원 치료를 받아왔다. 아들이 또 있다는 이유로 이씨도, 장애 아들도 기초생활수급 혜택은 못 받고 있었다.

자살 원인인 ‘정신(과)적 문제’는 때로 결과다. 외로워서, 아파서, 사랑하는 이가 죽어서 우울증, 비관이 온다. 2009~2010년 육체적 고통으로 자살한 이는 6672명(22.6%)으로 두번째다. 이 두 지점에서 빈민 주거집단의 노년층이 특히 취약하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절대적 자살 수치는 40대가 최고지만, 자살률은 80대 이상에서 가장 높다. 2010년 평균 자살률은 10만명당 31.2명이었는데, 80대 이상에선 123.3명이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영구임대아파트 역사

영구임대아파트는 1990년 10월 서울 도봉구 번동에서 처음 입주자들을 맞았다.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수급자, 새터민, 유공자 등에게 거주 자격이 주어졌다. 1993년 사업이 중단되고, 정권에 따라 공공임대아파트나 국민임대아파트 등이 등장했다. 영구임대아파트는 임대아파트 가운데서도 최저빈곤층의 주거공간으로, 사회 전반의 차별이 집중된다.

전국엔 영구임대아파트가 20만가구가량, 국민임대 아파트가 37만가구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 서울시 산하 에스에이치(SH)공사가 공급·관리하지만, 자살 현황은 파악하지도,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도 않는다. 에스에이치공사가 일부 제공한 자료는 경찰 집계와 차이가 컸다. 영구임대아파트에서의 죽음을 따로 연구한 정부나 학계의 보고서도 없다.

글 출처: 인터넷 한겨레 2012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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