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하여

“돈없는 세상 살기 힘들다” 어느 기초수급자의 죽음 │ 세상사 허무하다.

리차드 강 2012. 10. 25. 14:53

없는 세상 살기 힘들다” 어느 기초수급자의 죽음

은평구청 옥상서 투신자살 60대
6개월 취업 드러나 ‘돈 반환’ 부담
전세금도 없어 700만원 대출받아
최근 뇌경색으로 건강까지 위태
지방 사는 가족, 주검인수도 미적

지난 22일 오전 10시5분, 기초생활수급자인 이아무개(64)씨가 서울 은평구청 청사에 들어섰다. 야구모자를 쓴 이씨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에서 내려 잠시 서성거렸다. 이윽고 옥상에 올라가 꽁초가 될 때까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에 남아 있다. 그는 옥상 정원 의자 옆에 우산을 놓고 야구모자를 벗었다. 오전 10시50분, 이씨는 옥상에서 스스로 몸을 던졌다.

마지막 순간까지 허리춤에 둘렀던 가방에서 유서가 발견됐다. “돈 없는 세상. 살기 힘들다. ○○야, △△야, 잘 살아라.” 자식들에게 남긴 말이었다.

이씨에겐 부인과 세명의 자녀가 있었다. 18년 전, 그들은 모두 이씨 곁을 떠나 지방으로 이사했다. “이씨의 폭행·폭언이 심했던 것 같다”고 이씨가 살던 ㅇ동사무소 직원은 말했다.

가족은 물론 이웃과도 왕래가 없었던 이씨가 어떻게 생계를 유지해왔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2006년 처음으로 기초생활수급 자격을 얻었는데, 당시 등록서류 직업란엔 ‘무직’이라 적혀 있다. 지난해 말까지 이씨는 월 45만3049원의 기초생활지원비를 받았다. 오른쪽 손가락 골절로 지체장애 6급을 인정받아 월 3만원의 장애수당도 받았다. 올해 들어 그마저 흔들렸다. 1월부터 수급비가 줄었다. 2010년 11월부터 6개월 동안 경비회사에 취직해 임금을 받았던 일이 뒤늦게 들통났다. 나라가 주는 돈은 엄정했다. ‘부정수급’에 해당하는 250만원을 매달 4만원씩 구청에 반환해야 했다. 나중에 구청은 이씨의 사정을 고려해 매달 갚아야 할 돈을 2만원으로 낮춰줬지만, 나라에 진 빚 250만원의 부담은 그대로였다.

지난 6월, 이씨는 100만원짜리 벌금 통지서도 받았다. 서울 서부경찰서 관계자는 “폭행죄로 벌금형을 받았는데, 정확한 사건 내용은 파악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 벌금을 내지 않아 수배가 내려진 상태여서, 자칫하면 노역장으로 끌려가 노동으로 벌금을 대신해야 하는 처지이기도 했다. 지난 7월엔 살고 있던 전세방에서 쫓겨났다. 재개발로 집이 헐리게 됐다. 새 방을 구해 이사했다. 그래봐야 또다른 재개발 예정지였지만, 공사까진 조금 여유가 있었다. 전세금 1000만원이 필요했다. 은행에서 영세민 자격으로 700만원을 대출받았다.

이 무렵 이씨는 병까지 앓았다. 지난 7월 말 이씨가 “뇌경색을 앓게 돼 오른팔을 거의 움직이지 못하고 두통과 관절통도 심한데, 반찬을 지원해 줄 수 없겠느냐”고 문의했던 일을 은평사회복지관 관계자는 기억한다. 이날 상담에서 이씨는 자신의 한달 지출을 24만원이라고 적었다.

생의 마지막 무렵 이씨의 모습을 지켜본 건 일주일에 한번씩 이씨에게 밑반찬을 가져다주던 동사무소 직원이었다. 그는 “‘가족들에게 잘못한 게 많다’고 이씨가 후회하곤 했다”고 전했다.

이씨의 빈소는 따로 차려지지 않았다. 사망 소식을 접한 가족들은 “지방에서 일하고 있어 대신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하면 서울로 갈 수 없다”고 말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가족들이 이씨 주검의 인수를 거절하면 행려처리회사로 옮겨져 화장된다.

“돈 없는 세상 살기 힘들다”는 유언을 남긴 이씨의 주검은 서울시립서북병원 안치실에 보관돼 있다.

최유빈 기자 yb@hani.co.kr / 2012.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