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평화의 가요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다 - 이지상 & 안치환 │ 정의와 평화의 가요

리차드 강 2007. 8. 9. 03:56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다 - 이지상 & 안치환

이지상 3집 ..... 위로하다 위로받다 2002

이지상 & 안치환 (오사카 공연실황)

Track.9 -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의 학교란다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다

(작사:허남기 작곡:이지상)

비오는 날엔 비가 눈 내리는 날엔 눈이
때 아닌 모진 바람도 창을 들이쳐
너희들의 책을 적시고 뺨을 때리고 할퀴고
공부까지 못하게 만들어 놓은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란다
초라하지만 단 하나뿐인 우리의 학교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란다
니혼노 각고오 요리 이히데스
(일본학교보다 좋아요)

큼직한 미끄럼타기 작은 그네 하나 없이
너희들 놀 곳 없는 학교지만
조국을 떠나 수만리 이역에서 나고 자란
너희들에게 조국을 배우게 하는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란다
서투른 조선말로 웃으며 희망을 품는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란다
니혼노 각고오 요리 이히데스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란다
서투른 조선말로 웃으며 희망을 품는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란다
니혼노 각고오 요리 이히데스

 

프롤로그

가뜩이나 작은 내 몸안에 더 작게 둥지를 튼 노래가 있어 어디 비집고 들어갈 틈 하나 없는 세상의 숲에 가느다란 위로의 새울음 되려 했으나 나의 위로는 간데 없고 켠켠이 쌓인 세월 만큼의 당신이 내게 돌아와 내 가슴을 쓸어 줍니다

비주류 10년 이젠 그말이 두렵지 않습니다 내 노래를 품어주는 당신이 비주류라면 나 또한 언제나 그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에필로그

한결같이 나의 음악을 지며주는 당신 조금만 더 알려졌으면 하는 바램조차 사치라고 일축해 버리는 나의 오만함에도 응당 있어야 할 곳은 있다는 듯, 흔들리지 않는 신뢰를 보여주는 오늘이 고단한 그대. 만일, 내가 당신의 마음속에 존재한다면 내겐 더 이상의 영광은 없습니다

 

음반 제작에 함께하신분들

제작:이지상.
작곡,편곡:이지상
제게 영감을 주는 시인들:이용악님.허남기님.정호승님.곽재구님, 김형수님.신동호님
그외의 글들:이지상
레코딩 엔지니어:김승용.장은정
믹싱 엔지니어:김승용(사운드21)
마스터링 엔지니어: 최효영(소닉 코리아)
사, 디자인:안영빈

 

음악에 함께하신 분들

목소리를 빌려준 친구 안치환,윤정희
드럼:엄기현
베이스:박우진,이지상
건반 및 피아노:정은주,이지상
해금:노은아
트럼펫:이병준
바이얼린:김주현
첼로:서민정
코러스:김가영,윤정희
기타,하모니카,팬풀륫,퍼커션,:이지상

     

Introduction

비주류 10년
이젠 그 말이 두렵지 않습니다
내 노래를 품어주는 당신이 비주류라면 나또한 언제나 그러할것이기 때문입니다
...................
그의 음반을 열면 곧바로 들어오는 문구이다
도대체 어떤이가 비주류임을 자랑스레 얘기할수 있을까?

비주류 10년임을 자임하고 또한 영원한 비주류의 다짐을 음반 한복판에 새겨넣는 사람, 사랑과 이별이라는 통속적 메시지의 가요시장에 정신대라는 짙은사회성이 담긴 노래(사이판에가면:1집)를 타이틀로 들고나와 관계자들을 당혹케 했던사람, 그러나 가슴깊이 담을만한 시를 노래로 옮겨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이름을 올린 사람(외로우니까 사람이다-정호승시), 스스로 “고단한 이들에게 잠시의 위로가 되는 노래를 지향한다”고 말하는 가수겸 작곡가.
이지상이 그의 음반 “위로하다 위로받다”를 발표 하였다.
98년의 1집 “사람이 사는 마을”,그리고 2000년의 “내상한 마음의 무지개”에 이어 세번째다.

대학노래패 조국과청춘을 창단하고 의식있는 포크그룹 노래마을의 음악감독으로, 한국 민족 음악인협회의 회원으로 활동했던 음악정신 과 시노래운동 나팔꽃의 동인으로 활동하는 시적 감성을 고스란히 담아놓는 그의 음악을 듣다보면 그의 노래가 딱히 형용하기 어려운 슬픔의 저변 위에 서있음을 알게된다. 또한 그 슬픔의 정체를 확인하는 일도 그리 어렵지는 않은데 그가 작곡해서 90년대 초 대학노래운동의 분위기 전환을 이뤄냈던 노래들 이를테면 통일은 됐어(전대협노래단준비위), 혹은 내가 그대를 처음 만난 날, 맏 사내 인생(조국과 청춘) 이나 지금은 의정부 여중생 사망사건의 당사자 효순, 미선이의 공식 추모곡이 된 나의 친구야(노래마을 3집). 92년 미군범죄 희생자 고 윤금이씨의 추모곡 보산리 그겨울(이지상2집), 사랑하는 연인을 전장에서 잃고 수십년을 아파하며 살았던 베트남 시인의 슬픔을 담은 베트남에서 온 편지(미안해요 베트남), 최근에 그의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한 효순이, 미선이의 추모곡 “겨우 열다섯” 등의 노래들을 통해서 그의 음악을 지탱해주는 가장 큰 자양분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드라마 음악에서 연극음악. 다큐멘터리에서 단편영화까지 거의 전방위적이라 할 수 있는 영상음악 작업과 양희은, 안치환에서 이건용(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전경옥(아트팦가수) 그리고 강은일(해금의 젊은 명인),시노래운동 나팔꽃의 동인으로 같이활동하는 백창우(동요작곡가), 김현성(작곡가, 음반기획자)까지 장르를 불문하고 고통받는 “사람“의 아픔을 잊지 못하는 음악인들과의 작업이 소중하다고 여기는 그가 여전히 집착하고 있는 장르는 포크이다.

도저히 지금의 시대와는 어울릴 것 같지않은 포크라는 장르의 음악으로, 어찌 들으면 그저 밋밋하기만 한 목소리로 나즉이 읖조리는 듯한 그의 음악이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더 큰 울림으로 전해지는 것은 어려운 사람들의 아픔 속에서 함께했던 10여년의 음악여정속에 녹아 있는 그의 사람에게로 향하는 따스함 과 고단한 삶의 슬픔은 그보다 더 큰 슬픔과의 살부빔 속에서 극복될수 있다는 해원(解怨)의 희망이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이리라.

10년의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노래하였으나 스스로 준 위로 보다는 오히려 그 노래의 대상이 된 많은 이들로부터 받은 위로가 더 가치있다는 의미로 제목을 붙인 이지상 3집 “위로하다 위로받다”에는 영화 “챔피언”에서 하지못했던 말들을 옮겨놓은 듯 자본주의의 상징 미국 라스베이거스 한복판에서 쓰러진 “김득구”를 영화와는 다른 관점에서 느낄수 있으며 이미 오사카와 도쿠야마 민족학교 공연을 통해 재일 조선인 사회에도 많이 알려진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다”는 그의 절친한 벗 안치환의 목소리와 함께 모국어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절절하게 들려준다.

또한 자신의 친일경력을 반성하기 위해 학교교사시절부터 퇴직후까지 30여년을 길거리 청소에 나서고 있는 김남식씨의 얘기를 노래로 옮긴 반성의 좌표는 과거의 반성은 뒤로한채 화려한 미래만을 역설하는 현 시대와 그 시대에 동조하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메시지로 남는다. 그의 음악은 주로 기타로 구성이 되어 있다. 민중가요계에서 상당히 인정받는 기타리스트인 그는 이미 그의 곡 "그리움"을 해금의 젊은명인 강은일과 함께 연주해 청와대의 초청을 받은바도 있지만 그의 음악이 고통받는 많은 이들의 내용을 포함하면서도 따뜻한 인간미와 짙은 서정성을 함께 느낄수 있는 것은 아마도 그의 마음을 담은 기타의 음색을 음악 전체에서 들려주는데 기인한바 크다 할 수 있겠다.

시노래운동 나팔꽃의 1집과 안치환 7집을 통해 소개된 정호승 시인의 시 수선화에게는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라는 제목으로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 뿐만 아니라 이 음반을 통해서 보다 정돈된 감성으로 들을수 있으며 사랑에 대한 깊은 회한은 “사랑도 지나치면 사랑이 아님을” 말하는 무지개를 통해 그가 작곡해서 양희은씨가 부른 안도현 시 “사랑-당신을 위한 기도”에서 보여주는 사랑에 대한 깊은 성찰의 시간을 허락하게 해준다. 또한 보너스트랙으로 주위여건의 수없는 변화에도 불구하고 변할 수 없는 사람들의 시대적 아픔과 희망을 노래하는 “친구에게”는 앨범 타이틀 “춘천역”과 더불어 철 지난 80년대의 소중했던 삶의 가치를 떠올리게 하며 이 음반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다.

이쯤하면 그가 들려주는 비주류의 인간형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음악을 지켜주길 원하는 그 비주류의 지지 만으로 음악생활을 지탱해 낼수 있을까??
그가 지금까지 해왔던 공연의 이력을 보면 소위 돈될만한이 거의 없음을 쉽게 볼수있는데
그럼에도 그가 자신의 음악과 함께해주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는 이 음반의 에필로그에 적은 그의 고백처럼 각별하다.

"한결같이 나의 음악을 지켜주는 당신 조금만더 알려졌으면 하는 바램조차 사치라며 일축해버리는 나의 오만함에도 응당 있어야할곳에 있다는 듯, 흔들리지 않는 신뢰를 보여주는 오늘이 고단한 그대 만일 내가 당신의 마음속에 존재한다면 내겐 더 이상의 영광은 없습니다"

허남기.이용악.정호승.곽재구.김형수.신동호시인의 시와 자신의 글에 이 지상 이 모두 작곡한 12곡 수록....

     

[노래영상] 아, 민족학교!

노래영상을 편집하면서 읽고 또 읽었다. 민중노래운동가 이지상님의 노래보다 먼저 내게 다가와 가슴에 머물렀던 허남기 시인이 쓴 시다. "조국 떠나 수만리 이역에서 나서자란" 우리 아이들에게 "다시 조국을 배우게 하는 단 하나의 우리학교"임을 "우리 어린 동지들"에게 재일조선인 1세 할아버지가 전하는 메시지는 뜨겁고 감동적이다.

그는 1947년 3월 낡은 병사에 개교한 가와구치 조선초급학교 초대 교장선생님이었다. 비바람을 맞으면서 '가갸거겨' 우리말을 배우기 시작한 당시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가난한 희망시를 지었다. 안타깝게도 그가 동료선생님과 학부모의 힘으로 일으켜 세운 이 학교는 1949년 10월, 일본정부의 탄압정책인 학교해산령에 따라 전국의 민족학교와 마찬가지로 한달 뒤 강제 패쇄되는 운명을 맞았다.

그러나 민족학교는 일본의 갖은 탄압에도 쓰러지면 일어서고, 짓밟히면 꿈틀대며 60여년을 꿋꿋이 견디어 왔다. 일본땅에서 조선인으로 자기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도 조선인 1세·2세들의 가르침을 피해 가지 않았다. "어느 학교가 좋으니?"라는 물음에 교실이 떠나갈 듯 합창하는 아이들의 답은 단 하나, "우리학교가 좋아요!"다.

재일조선인 아이들의 맑은 눈빛과 귀청을 울리는 목소리를 들으면 눈물이 왈칵 솟는다. 내 고향 까마귀도 이렇게 감동시키지 않는다. 재일조선인 1세, 2세의 마음이 변치않고 3세, 4세, 5세에 이어지고 있는 것이리라.

조국을 잃었지만 60여년 간 조선의 말과 글, 역사와 문화를 지키며 조선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민족학교(조선학교, 우리학교), 그래서 우리 재일조선인들에게는 '고향' 이상의 존재다.

이 노래를 만든 이는 민중가수 이지상씨다. 고단한 사람들의 일상에 희망의 언어를 전달하며 노래하는 사람, 민중들의 격앙된 분노에다 사랑의 감정을 쏟아낸 따뜻한 사람, 비뚤어진 역사를 바로 잡고 곧은 역사를 새로 쓰고 싶어하는 사람, 생명·평화·인권·통일을 노래마을에서 찾아나선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는 현재 시노래운동 <나팔꽃> 동인이며, 인권실천 시민연대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 영혼의 순결함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노래'라고 믿는 그는 "삶의 좌표를 잃었을 때 노래만으로도 힘이 생기고 길을 찾아갈 수 있는 그런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소망한다. 그리고 말한다.

"나는 '험난한 노래의 길'을 찾는 과정을 '삶에 대한 경외'라고 얘기합니다. '험난한 노래의 길' 속에서 만나는 고통과 희열, 분노와 사랑의 에너지를 오선지속의 선율로, 가슴 속 깊은 폐부의 음성으로 토해내는 창작자가 있습니다. '험난한 삶의 길'에서 창작자와 같은 개인적, 사회적 경험을 공유하고자 노래를 찾는 수용자가 있습니다. 이 둘에게 '삶에 대한 경외'라는 말은 함께 적용되며, 음악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이 둘의 만남 사이에는 눈물이라는 감동의 최고치가 경계에 놓이게 됩니다."

- 이지상의 글에서

 

▲ 이지상 ⓒ사람이 사는 마을

이 영상에 삽입된 노래는 안치환씨와 함께 호흡을 맞춰 부른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다>이다. 이지상 3집 앨범 <위로하다, 위로받다>에 들어있는 노래다. 폐교 위기에 몰린 일본 도쿄 에다가와 조선제2초급학교 운동장에서 어린 학생들과 눈물을 쏟으며 한마음으로 불렀던 노래이기도 하다. 이 노래에서 민족학교를 생각하는 그의 절절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조국을 잃은 조선인의 애달픔과 그리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일까. 그의 노래는 늘 시가 되고, 시가 된 노래는 언제나 우리 땅 조선의 연가가 된다. 조국과 민중을 향한 그의 노래가 익을대로 익어 우리 모두의 심장을 녹이는 들불의 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60여년 재일조선인의 정체성을 지켜준 삶의 고향, 민족학교를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명치끝을 눌렀을 때 감지되는 아픔을 똑같이 느끼지만 뜨거움이 먼저다. 영상창작단 <청춘>의 김철민님과 지구촌청년동포연대(KIN) 김강수님이 촬영한 네편의 영상을 보았다.(총 38분 분량) 눈시울을 적시는 영상들이었다. 촬영한 이들의 애틋한 마음을 읽을 수도 있었다. 이 분들의 열정이 계속되는 한 우리 민족학교는 희망이 있다. 그것은 쉽게 말할 수 없는 굳센 믿음 같은 것이다.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군국주의의 깃발을 높이 들고 일본땅에 우경화의 헛된 씨앗을 뿌리는 일본 정부의 탄압에 맞서 조선의 힘을 꿋꿋하게 보여주고 있는 우리 재일조선인들에게도 따뜻한 연대의 마음을 보낸다. 식민지배와 조국분단의 비극을 한몸에 안고 살면서도 남과 북이 하나로 만나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그날을 절절히 기다리며 통일교육에 피땀을 쏟는 우리 동포들이기에 나의 감정은 더욱 각별하다. 힘내라, 조선인들이여! /굴렁쇠

아이들아 / 이것이 우리 학교다
교사는 아직 초라하고/ 교실은 단 하나 뿐이고
책상은 / 너희들이 마음 놓고 기대노라면
삑하고 금시라도 찌그러질 것 같은 소리를 내고

문창엔 유리 한 장 넣지를 못해서
긴 겨울엔 / 사방에서 / 살을 베는 찬바람이
그 틈으로 새여들어 / 너희들의 앵두같은 두 뺨을 푸르게 하고

그리고 비오는 날엔 비가 / 눈내리는 날엔 눈이
또 1948년 춘삼월엔 / 때아닌 모진 바람이 / 이 창을 들쳐
너희들의 책을 적시고 뺨을 때리고
심지어는 공부까지 못하게 하려들고
그리고 두루 살펴보면 / 백이 백가지 무엇하나
눈물 자아내지 않는 것이 없는 우리 학교로구나

허나 / 아이들아
너희들은 니혼노 각고오요리 이이데스(일본학교보다 좋아요)하고
서투른 조선말로 / - 우리도 앞으로
일본학교보다 몇 배나 더 큰 집 지을 수 있잖느냐고
되려 / 이 눈물 많은 선생을 달래고
그리고 / 또 오늘도 가방메고 / 씩씩하게 이 학교를 찾아오는구나

아이들아 / 이것이 우리 학교다
비록 교사는 빈약하고 작고 / 큼직한 미끄럼타기 그네 하나
달지 못해서 / 너희들 놀 곳도 없는 / 구차한 학교지마는
아이들아 / 이것이 단 하나 / 조국 떠나 수만리 이역에서
나서자란 너희들에게 / 다시 조국을 배우게 하는
단 하나의 우리 학교다 / 아아 / 우리 어린 동지들아.

- 허남기 시인의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다> 전문

출처 : 내 마음속의 굴렁쇠    음악 : 풀송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