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영상] 아, 민족학교!
노래영상을 편집하면서 읽고 또 읽었다. 민중노래운동가 이지상님의 노래보다 먼저 내게 다가와 가슴에 머물렀던 허남기 시인이 쓴 시다. "조국 떠나 수만리 이역에서 나서자란" 우리 아이들에게 "다시 조국을 배우게 하는 단 하나의 우리학교"임을 "우리 어린 동지들"에게 재일조선인 1세 할아버지가 전하는 메시지는 뜨겁고 감동적이다.
그는 1947년 3월 낡은 병사에 개교한 가와구치 조선초급학교 초대 교장선생님이었다. 비바람을 맞으면서 '가갸거겨' 우리말을 배우기 시작한 당시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가난한 희망시를 지었다. 안타깝게도 그가 동료선생님과 학부모의 힘으로 일으켜 세운 이 학교는 1949년 10월, 일본정부의 탄압정책인 학교해산령에 따라 전국의 민족학교와 마찬가지로 한달 뒤 강제 패쇄되는 운명을 맞았다.
그러나 민족학교는 일본의 갖은 탄압에도 쓰러지면 일어서고, 짓밟히면 꿈틀대며 60여년을 꿋꿋이 견디어 왔다. 일본땅에서 조선인으로 자기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도 조선인 1세·2세들의 가르침을 피해 가지 않았다. "어느 학교가 좋으니?"라는 물음에 교실이 떠나갈 듯 합창하는 아이들의 답은 단 하나, "우리학교가 좋아요!"다.
재일조선인 아이들의 맑은 눈빛과 귀청을 울리는 목소리를 들으면 눈물이 왈칵 솟는다. 내 고향 까마귀도 이렇게 감동시키지 않는다. 재일조선인 1세, 2세의 마음이 변치않고 3세, 4세, 5세에 이어지고 있는 것이리라.
조국을 잃었지만 60여년 간 조선의 말과 글, 역사와 문화를 지키며 조선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민족학교(조선학교, 우리학교), 그래서 우리 재일조선인들에게는 '고향' 이상의 존재다.
이 노래를 만든 이는 민중가수 이지상씨다. 고단한 사람들의 일상에 희망의 언어를 전달하며 노래하는 사람, 민중들의 격앙된 분노에다 사랑의 감정을 쏟아낸 따뜻한 사람, 비뚤어진 역사를 바로 잡고 곧은 역사를 새로 쓰고 싶어하는 사람, 생명·평화·인권·통일을 노래마을에서 찾아나선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는 현재 시노래운동 <나팔꽃> 동인이며, 인권실천 시민연대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 영혼의 순결함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노래'라고 믿는 그는 "삶의 좌표를 잃었을 때 노래만으로도 힘이 생기고 길을 찾아갈 수 있는 그런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소망한다. 그리고 말한다.
"나는 '험난한 노래의 길'을 찾는 과정을 '삶에 대한 경외'라고 얘기합니다. '험난한 노래의 길' 속에서 만나는 고통과 희열, 분노와 사랑의 에너지를 오선지속의 선율로, 가슴 속 깊은 폐부의 음성으로 토해내는 창작자가 있습니다. '험난한 삶의 길'에서 창작자와 같은 개인적, 사회적 경험을 공유하고자 노래를 찾는 수용자가 있습니다. 이 둘에게 '삶에 대한 경외'라는 말은 함께 적용되며, 음악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이 둘의 만남 사이에는 눈물이라는 감동의 최고치가 경계에 놓이게 됩니다."
- 이지상의 글에서

▲ 이지상 ⓒ사람이 사는 마을
이 영상에 삽입된 노래는 안치환씨와 함께 호흡을 맞춰 부른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다>이다. 이지상 3집 앨범 <위로하다, 위로받다>에 들어있는 노래다. 폐교 위기에 몰린 일본 도쿄 에다가와 조선제2초급학교 운동장에서 어린 학생들과 눈물을 쏟으며 한마음으로 불렀던 노래이기도 하다. 이 노래에서 민족학교를 생각하는 그의 절절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조국을 잃은 조선인의 애달픔과 그리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일까. 그의 노래는 늘 시가 되고, 시가 된 노래는 언제나 우리 땅 조선의 연가가 된다. 조국과 민중을 향한 그의 노래가 익을대로 익어 우리 모두의 심장을 녹이는 들불의 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60여년 재일조선인의 정체성을 지켜준 삶의 고향, 민족학교를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명치끝을 눌렀을 때 감지되는 아픔을 똑같이 느끼지만 뜨거움이 먼저다. 영상창작단 <청춘>의 김철민님과 지구촌청년동포연대(KIN) 김강수님이 촬영한 네편의 영상을 보았다.(총 38분 분량) 눈시울을 적시는 영상들이었다. 촬영한 이들의 애틋한 마음을 읽을 수도 있었다. 이 분들의 열정이 계속되는 한 우리 민족학교는 희망이 있다. 그것은 쉽게 말할 수 없는 굳센 믿음 같은 것이다.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군국주의의 깃발을 높이 들고 일본땅에 우경화의 헛된 씨앗을 뿌리는 일본 정부의 탄압에 맞서 조선의 힘을 꿋꿋하게 보여주고 있는 우리 재일조선인들에게도 따뜻한 연대의 마음을 보낸다. 식민지배와 조국분단의 비극을 한몸에 안고 살면서도 남과 북이 하나로 만나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그날을 절절히 기다리며 통일교육에 피땀을 쏟는 우리 동포들이기에 나의 감정은 더욱 각별하다. 힘내라, 조선인들이여! /굴렁쇠
아이들아 / 이것이 우리 학교다 교사는 아직 초라하고/ 교실은 단 하나 뿐이고 책상은 / 너희들이 마음 놓고 기대노라면 삑하고 금시라도 찌그러질 것 같은 소리를 내고
문창엔 유리 한 장 넣지를 못해서 긴 겨울엔 / 사방에서 / 살을 베는 찬바람이 그 틈으로 새여들어 / 너희들의 앵두같은 두 뺨을 푸르게 하고
그리고 비오는 날엔 비가 / 눈내리는 날엔 눈이 또 1948년 춘삼월엔 / 때아닌 모진 바람이 / 이 창을 들쳐 너희들의 책을 적시고 뺨을 때리고 심지어는 공부까지 못하게 하려들고 그리고 두루 살펴보면 / 백이 백가지 무엇하나 눈물 자아내지 않는 것이 없는 우리 학교로구나
허나 / 아이들아 너희들은 니혼노 각고오요리 이이데스(일본학교보다 좋아요)하고 서투른 조선말로 / - 우리도 앞으로 일본학교보다 몇 배나 더 큰 집 지을 수 있잖느냐고 되려 / 이 눈물 많은 선생을 달래고 그리고 / 또 오늘도 가방메고 / 씩씩하게 이 학교를 찾아오는구나
아이들아 / 이것이 우리 학교다 비록 교사는 빈약하고 작고 / 큼직한 미끄럼타기 그네 하나 달지 못해서 / 너희들 놀 곳도 없는 / 구차한 학교지마는 아이들아 / 이것이 단 하나 / 조국 떠나 수만리 이역에서 나서자란 너희들에게 / 다시 조국을 배우게 하는 단 하나의 우리 학교다 / 아아 / 우리 어린 동지들아.
- 허남기 시인의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다> 전문
출처 : 내 마음속의 굴렁쇠 음악 : 풀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