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La Internacional │ International 歌

리차드 강 2007. 7. 25. 06:04

지구 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부른 노래

◀ 1900년대 인터내셔널가 악보 표지

1930년대 후반, 스페인의 좌파들과 공화주의자들은 프랑코에게 쫓겨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했다. 프랑코의 독재는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었고, 2만명이 넘는 스페인 사람들이 프랑스 땅에서 기약 없는 망명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속절없이 세월은 흘렀다. 10년, 20년, 30년......, 청장년들은 노인이 되었고 하나 둘 동지들 손에 의해 남의 땅에 묻히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삶은 실패한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다. 나는 그 기억만으로 평화로이 눈감을 수 있다."

-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홍세화

그 '가장 아름다운 노래'가 무엇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인터내셔날가' 가 아니였을까?

1848년 파리꼬뮌 이래 지구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불렀던 노래..

희망, 변혁, 새세상, 연대를 상징했던 노래.... 그 아름다웠던 노래.

     

구본주 혁명은 단호한 것이다.

철, 나무 600x350x450cm 1990

     

작년 SONY에서 R1이라는 카메라가 나와 전화를 해봤다.

"R1이 무슨 의미죠? "

"R은 레볼류션을 말하는 겁니다. 혁명이란 의미죠."

"네에? .... "

"디카의 혁명입니다. 소니의 자존심입니다."

"아... 네에....쏘 데스까?"

자동차 혁명, 디지털 혁명, 디자인 혁명, 헤어 혁명, 타이어의 혁명, 드럼세탁기의 혁명, 아파트의 혁명, 교육 혁명, 통장 혁명, 바이오 혁명, 푸드 혁명, 유통 혁명, 유비쿼터스 혁명.....

이미 혁명은 자본가들의 수중에 들어가 버렸다. 한 때 혁명을 외쳤던 자들은 이제 혁명을 소비할 뿐이다. 아파트 한 채와 통장잔고와 연금과 퇴직금을 계산하면서.... 노후 혁명을 그리면서....

자존심도 없냐?

     

기차여, 인터네셔널가를 불러다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노보시비르스크까지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
차장 밖으로 스쳐지나는 풍경에서 ‘혁명의 추억’을 느끼다

▣ 글·사진 이상엽/ 다큐멘터리 사진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가는 여행은 추억을 되살리는 일이다. 가본 적 없건만 무엇을 추억한다는 것일까? 1980년대를 강의실보다는 거리에서 보낸 세대들은 러시아와 시베리아에 수많은 추억이 있다. 레닌이 10월혁명의 완수를 위해 기차를 타고 들어왔던 핀란드역에서부터 <라라의 테마>가 흐르던 <닥터 지바고>의 노보시비르스크까지 그 추억은 다양하다.

△ 노보시비르스크로 가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만난 러시아 청년들. 머리가 짧은 친구는 입대를 위해 가는 것이니 이 열차가 입영열차인 셈이다.

 

10월 혁명, 80년대 청년들의 데자뷔

배낭여행이 20대의 전유물이 아닌 바에는 조금 나이 먹었다고 배낭 메고 기차 타는 것이 무어 그리 대수인가?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 하면 대부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르쿠츠크의 바이칼 호수까지를 상상한다.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도 대부분 이것이다. 하지만 이는 실크로드 여행이 시안에서 기껏해야 투루판 정도인 것과 같다. 일부를 보고 전체를 이야기할 수 없다. 그렇다면 거꾸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노보시비르스크까지, 서에서 동으로 가보는 건 어떨까? 지난해 여름, 여행의 기록이다.

러시아의 심장이라 이야기하면 모스크바가 서운해할지 모르겠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그렇게 불릴 만한 곳이다. 오래전 계몽 군주 표트르 대제가 네바강변의 수렁을 메우고 새롭게 건설한 이 도시는 에르미타주 박물관으로 유명한 겨울궁전과 세계 최대의 돔을 가진 이삭성당이 그 위용을 자랑한다. 고색창연한 넵스키 대로를 걷다 보면 시인 푸슈킨이 들르던 카페가 여전히 영업하고 있다. 하지만 이 도시의 진정한 매력은 10월혁명의 첫 신호탄을 쏘아올린 전함 오로라호, 레닌·트로츠키 등 정치범들이 수용돼 있었던 ‘페터 앤 폴’ 감옥, 혁명 지도부의 지휘본부로 사용됐던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 인문학부 건물(옛 스몰니 학교)들일 것이다. 이미 10월혁명의 정신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러시아인들조차 관심 없어 하지만, 우리 세대에게는 그 자리에 섰다는 것만으로도 데자뷰(기시감)를 안겨준다.

△ 핀란드역 앞에 서 있는 레닌의 동상. 그는 이곳에서 감동적인 연설을 함으로써 10월혁명을 완수할 수 있었다.

서울에는 ‘서울역’이 있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역’이 없다. 이곳의 역이름은 도착지 이름을 사용하니, 모스크바로 가는 역은 ‘모스크바역’이다. 밤 열차를 타고 모스크바에 도착하면 새벽이다. 그 새벽에 보는 모스크바가 아름답다. ‘LG교(橋)’라 불리는 곳에서 바라보면 모스크바강을 따라 멀리 스탈린 양식의 우크라이나 호텔이 웅장하게 들어온다. 그 양쪽으로 오래된 건물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이제 모스크바는 유럽에서 가장 비싼 도시로 상징된다. 이곳에서 돈 없이는 살 수 없다. 비싼 유럽의 수입차들이 홍수처럼 도로에 흐르고, 그 물결 속에 부유하는 오늘날의 러시아 현실을 본다.

닥터 지바고처럼 다시 기차를 타고 우랄산맥을 넘어 하염없이 시베리아 평원을 달린다. 횡단철도 여행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한국에선 기껏해야 5시간이면 최북단에서 최남단까지 갈 수 있지만, 이 여행은 도시와 도시를 잇는데도 이틀이 걸린다. 그 지루한 시간을 무엇으로 보낼까? 정처 없이 떠도는 우리네 영혼은 그 아득한 거리감에 당혹했다가 이내 사색에 빠진다. 나는 누구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 장거리 열차 여행의 필수 용품은 식량과 책이다. 보통 도시와 도시를 이동하는 데 이틀이 걸리니 준비하는 식량도 다양해야 하고, 책 또한 두툼해야 한다.

 

체 게바라를 얘기하던 80대 노인

차창밖으로 예카테린부르크가 지나간다.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는 레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때와 그리 다르지 않은 이 열차는 우아한 밤색 나무 장식과 석탄으로 물을 데워주는 사모바르(러시아식 주전자)가 있다. 내가 탄 ‘쿠페’라고 불리는 4인승 객실은 위아래로 침대가 있다. 옆 침대에 자리한 80대 러시아 노인은 양복에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있다. 죽기 전에 모스크바를 다시 보고 싶어 갔다 오는 길이란다. 이 노인은 2차대전 참전용사이자 한국전쟁 군사고문관이었다. 그는 갑자기 우리말로 “나 배고파요”라고 말해 나를 놀라게 했다. 그는 동승한 젊은 러시아 청년에게 예전에 만난 체 게바라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청년은 그가 누군지를 모른다.

노인은 노보시비르스크로 가는 밤길을 창문을 통해 하염없이 쳐다보며 나지막이 인터내셔널가를 불렀다. 나는 그 노래를 들으며 기분 좋게 잠들고 있었다.

출처 : 인터넷 한겨레 21 2005년07월06일 제5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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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7. 17 (스페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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