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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피셔 합창단 Fischer Chöre - Gotthilf Fischer (1971 Polydor)

리차드 강 2013. 2. 19. 02:10

Fischer Chöre

앨범: 피셔 합창단 (1971 Polydor)

Fischer Chöre: Various Artist

A1. Glory Halleluja - Track 전곡 연주

 

Album Title: Fischer Chöre
Conductor: Gotthilf Fischer (Chorus Master) deutscher Chorleiter 1928-
Orchestra: Orchester Hans Bertram

Audio LP: 1971
Number of LP: 1
Format: Vinyl, LP
Country: Germany
Label: Polydor
Copyright: (c) 1971 Polydor
Genre: Pop, Folk, World, & Country
Style: Choir

     

     

A1. Glory Halleluja
A2. Song Of Joy
A3. Brauner Teddybär
A4. Exodus
A5. Musik Zum Verlieben
A6. River Kwai
 
B1. United
B2. Märchen Aus Der Kinderzeit
B3. Schiwago-Melodie
B4. Sklaven-Chor
B5. Elisabeth-Serenade
B6. Abendruhe

글로리 할렐루야
환희의 송가 (Beethoven)
북치는 소년
출애굽
사랑의 노래
콰이강의 다리
 
유나이티드
어린 시절의 동화
닥터 지바고 (사라의 테마)
노예들의 합창
엘리자베스 세레나데
야상곡 (Moz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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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1000인 합창단 피셔 합창단

독일은 음악의 나라답게 합창음악에 있어서도 훌륭한 전통을 지녀왔다. 현재 활동 중인 세계적 합창단 중의 거의 대부분이 독일 출신의 합창단이다. 독일에는 지역마다 합창단이 있고, 교회와 성당, 그리고 공연장마다 전속 합창단이 있는데 이들 대부분이 독일에서만 활동하는 소규모의 합창단이 아니라 거의 모두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훌륭한 지휘자와 평론가들이 많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전문성을 지녔거나 독특한 합창단의 숫자도 적지 않다.

피셔합창단은 우선 합창단원의 숫자가 1000명이라는 것만으로도 더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다. 물론 그 동안 외국의 유명한 축제나 국내의 대규모 행사에서는 부분적으로 천명이 넘는 합창단원이 동원되곤 하였다. 그러나 레코딩을 위해서 조직적으로 구성되어 10여장이 넘는 레코드를 출반하면서 10년 넘게 지켜져 내려온 합창단은 피셔합창단이 최초이자 유일무이한 것이다.

피셔합창단이 탄생되기까지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은 지휘를 맡고 있는 코트힐프 피셔(Gotthilff Fisher)이다. 그는 수많은 합창단을 결합하여 하나의 합창단을 만들어낸 장본인으로 70년대 최고의 지휘자로 각광을 받을 바 있다.

피셔합창단의 공연 시에는 단원이 2500명을 넘을 때가 많아 여행을 떠날 때에는 선박을 몇 척씩 동원해야 했고, 연습할 때라던가 식사를 할 때에는 한 도시가 마비될 정도였다. 이런 어려움이 뒤따르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멤버들은 피셔합창단에 참여하는 자체에 대하여 자부심을 느꼈고 공연이 진행되는 곳마다 열광적이었다.

바티칸에서의 공연이 있을 때에는 '온 이태리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피셔합창단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는 기사가 등장할 정도로 세계 각국의 관심은 대단했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고트힐프 피셔 자신은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피셔합창단을 생각할 때, 자신들이 합창단원으로 직접 참여하고 있는 조그만 나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라고 의미 있는 설명을 덧붙인 바 있다.

고트힐프 피셔가 1000명으로 구성된 합창단에 대하여 레코드 프로듀서인 한스 베르트람에게 도움을 청한 것은 1972년의 일이다. 물론 당시 독일 내에서도 부정적인 반응이었으나 다음 해인 1974년에는 소문도 없이 뮌헨에서 개최된 월드컵 경기 개막일에 1000명으로 구성된 합창단이 등장하여 전세계의 화제가 되었다. 이 때에 스타디움에 운집해 있던 십만 여명의 관객과 1억이 넘는 전세계의 시청자들이 이들의 합창을 들었다.

이 때부터 피셔합창단에 대한 인식은 달라지게 되었고, 미국과 독일에서 날아드는 편지만도 1주일에 200여통이 넘을 정도였으니 그 인기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피셔합창단의 전성기에는 1년에 150번의 공연을 치뤄낼 정도였는데, 거의 대부분의 행사에 2500명의 멤버가 동원되었다. 또한 평균 15개의 합창단이 모여 구성되었는데, 최연장자로 72세의 할아버지까지도 멤버로 참가하고 있었다. 피셔합창단의 역사는 19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20세의 고트힐프 피셔는 고향인 넥카 강가에 있는 다이치사우에서 자신의 합창단을 구성하였는데, 합창단을 조직한 해에 이미 5개의 합창단을 모아 500명의 합창단원을 지휘하기도 하였다.

처음의 명칭은 다이치사우어 합창단이었으며, 합창단을 조직한 다음해에는 150개의 합창단이 참가한 쉬바비안 합창 경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여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현재의 피셔합창단과 유사한 규모의 공연을 계속해서 가졌으나 대부분의 공연이 500명 안팎의 인원으로 이루어졌다. 피셔합창단이라는 이름으로 텔레비전에 정식 등장하여 인정을 받게 된 것은 그로부터 20년후인 1969년의 일이며 드디어 고트힐프 피셔의 꿈이 이루어져 같은 해에는 첫 번째 앨범을 발표하게 되었다. 그러나 피셔합창단이 성공의 가도를 가도에 오르기까지는 그 후 다시 5년이 흘러야 했다.

1974년 월드컵 경기를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피셔합창단의 활동은 지금가지 이루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대단하다. 다음해에 잘츠부르크 성당에서의 공연을 시작으로 하여 1976년 11월 1일에는 바티칸에서 역사적인 공연을 가졌고, 인스부르크에서 개최된 동계올림픽에 초청되기도 하였다. 특히 전성기인 1978년 5월에는 미국 카터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평화를 위한 미사에 참가하는 등 전세계적인 환영을 받았다.

물론 피셔합창단이 부르는 레퍼토리는 클래식, 영화음악, 팝송에 이르기까지 다채롭고, 연주는 1000명의 목소리가 내는 웅장함과 상상을 초월하는 조화로 가히 세계 제일의 합창단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재킷 평 중에서』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