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볼프강 자발리쉬, Wolfgang Sawallish (August 26, 1923 - )
German conductor and pianist, born 26 August 1923 in Munich, Germany and died 22 February 2013 in Grassau, Germany.
독일 태생의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
볼프강 자발리쉬는 1923년 8월 26일, 독일의 뮌헨에서 태어나 5살의 나이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이어서 음악이론과 작곡을 공부하였다. 뮌헨 고등음악학교(Munich High School for Music)에 진학해서도 음악사와 작곡을 전공했다. 그러나 제2차대전으로 병역에 복무하였고,3년 동안 포로수용소에서 지냈는데,전쟁이 끝나자 1945년에 복교하여 공부를 끝내고 1946년에 졸업하였다.
1947년 1월 아우그스부르크 오페라극장(Augsburg Opera)의 레페티퇴르(repetiteur:음악코치,연습 지휘자)로 계약하여 일했고,1949년 제네바 국제 음악콩쿠르에서 바이올리니스트 게르하르트 자이츠(Gerhard Seitz)와 듀오로 연주하여 우승하였다. 1950년 아우그스부르크 오페라극장에서 엥겔베르트 훔퍼딩크(Engelbert Humperdinck)의 <헨젤과 그레텔(Hänsel und Gretel)>을 지휘하면서 데뷔하였고,후에 짧은 기간이었지만 수석지휘자가 되었다. 1935년 자발리쉬는 아헨 오페라극장(Aachen Opera)의 음악감독으로 지명되어 독일의 최연소 음악감독이 되었다. 이 무렵부터 자발리쉬는 "제2의 카라얀"으로써 널리 유럽에 그 이름이 알려졌다.
1958년에는 비스바덴의 헤센 주립가극장의 음악감독도 겸임했다. 1960년에는 자발리쉬는 쾰른으로 가서 1963년까지 시립오페라극장의 음악감독으로 있었고,또한 쾰른 음악원에서 지휘를 가르쳤다. 또한 빈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서 동서 유럽,미국,일본 등지로 연주여행을 다님으로써 그의 명성은 더욱 확고해졌다.
그동안 1957년부터 1961년까지 매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발에서 지휘하였고, 특히 1957년 페스티발 오프닝에서는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und Isolde)>를 지휘했다. 당시 자발리쉬는 이 음악제가 생긴 이래 사상 최연소 지휘자로서 평판이 자자하였다. 이후 자발리쉬는 수년 동안 바이로이트 페스티발에 출연했으며 빌란트 바그너의 신연출에 의한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방랑하는 네덜란드인>, <탄호이저>는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또 에딘버러, 루체른, 프라하, 취리히 등 각지 페스티발에도 활발하게 참가하였다.
그리고 자발리쉬는 소프라노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Elisabeth Schwarzkopf)의 반주자로서,그녀의 남편인 월터 레게(Walter Legge)의 필하모니 오케스트라(Philharmonia Orchestra)의 지휘자로서 영국 데뷔무대를 가졌다. 자발리쉬는 월터 레게와 다수의 중요한 녹음들을 하였는데,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의 마지막 오페라인 <카프리치오(Capriccio)>의 첫번째 앨범 발매는 상당히 주목받았다. 이 동안에 그는 유럽 각지의 오케스트라로부터 많은 초청을 받았으며,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더불어 많은 녹음을 남겼고 카를 오르프(Carl Orff)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작품으로써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60년 자발리쉬는 비엔나 심포니 오케스트라(Vienna Symphony Orchestra)의 상임지휘자가 되었고, 1961년에는 함부르크 스테이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Hamburg State Philharmonic Orchestra)의 상임지휘자도 겸임하면서 1970년까지 그 지위에 있었다. 1964년에는 비엔나 심포니와 더불어 처음으로 미국을 순회연주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1965년에는 밀라노 스칼라 극장에 진출하여 신연출을 지휘했는데,그 가운데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아라벨라(Arabella)>, 모짜르트의 <이도메네오(Idomeneo)> 등은 아주 대단한 화제를 뿌렸다. 이탈리아에서는 그밖에 성 체칠리아 음악원(Accademia Nazionale di Santa Cecilia) 명예회원으로 뽑혔으며,이 무렵부터 그는 미국에서도 연주하는 등 매우 바쁜 활동을 벌이게 되었다.
1971년에는 뮌헨의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 극장(Bavarian State Opera)의 음악감독에 취임했고, 1992년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 그는 이 악단을 이끌고 1972년 런던 순회연주에서 대성공을 거두었고,바그너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잘 알려지지 않는 작품을 비롯하여 수 많은 녹음들을 남겼다. 또한 1972년부터 파울 크레츠키(Paul Kletzki)의 후임으로 스위스 로망드 관현악단(Suisse Romande Orchestra)의 상임 지휘자도 겸임하면서 1980년까지 그 지위에 있었다.
1993년 자발리쉬는 리카르도 무티(Riccardo Muti)의 후임으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Philadelphia Orchestra)의 상임지휘자로 취임하였으며, 그의 부인이 사망한 2003년 상임지휘자의 지위를 사임하였다. 그러나 이후에도 계속 동 악단을 객연하였고, 로열 콘서트헤보우, 런던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 라 스칼라 등을 정기적으로 객원지휘하였다. 또한 일본 NHK 교향악단 명예 지휘자로 되어 있어서 정기적으로 일본을 자주 찾아 왔다. 그리고 자발리쉬에게 간과할 수 없는 것은 피아니스트로서의 활약이다. 예컨대 피셔 - 디우카스,헤르만 프라이,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와 같은 명가수와 함께 했던 가곡 반주는 이미 높은 평가를 얻고 있지만, 또 모차르트나 초기의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에서 피아노와 지휘를 겸하는 일도 많았다. 자발리쉬가 가장 잘하는 것은 독일-오스트리아의 고전파와 낭만파의 작품이다.
이지적으로 오케스트라와 밸런스를 갖추고 윤곽이 뚜렷하고 투명한 음악을 만들어 낸다. 게다가 잘 노래함으로써 즐거움을 안겨 주는데, 말하자면 빈과 남독일의 장점들을 잘 융합한 음악이다. 자발리쉬의 지휘는 기분 본위라고 하기보다는 단정하고 논리성을 중시하고 있어서 견실한 조형감을 가진 음악을 만드는 데 그 특색이 있다. 1970년대 이후에 들어와서는 음악의 깊이가 한층 더해진 느낌을 주고 있다. 레코드를 고른다면 그 이후를 고르는 것이 좋겠다.
오페라에서는 모차르트의 <마적>(에인절), 바그너의 <탄호이저>(필립스) 등이 빛나는 명연이다. 교향곡에서는 슈만의 <교향곡 전집>(에인절)이 빛을 발한다. 이것은 드레스렌 국립관현악단을 지휘한 것으로 이 오케스트라의 음질은 뛰어난 특질을 살리면서 슈만 특유의 시정이 넘치는데, 슈만 팬들은 꼭 들어야 할 필청 음반이다.
이외에도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 관현악단을 지휘한 베토벤의 <교향곡 제6번 - 전원>, 드레스덴 국립가극장 관현악단을 지휘한 슈베르트의 <교향곡 제4번 - 비극적>과 <제6번> 결합반, 뉴 필하모니 관현악단을 지휘한 멘델스존의 <교향곡 제4번 - 이탈리아>과 <제5번 - 종교개혁> 결합반, 필하모니아 관현악단을 지휘한 <바그너 관현악곡집> 등도 있다.
오페라 앨범으로는 베토벤의 <피델리오> 전곡반,바이로이트 실황녹음인 바그너의 <방랑하는 네델란드인>, 그리고 바그너의 <탄호이저> 하일라이트반, 소프라노 엘라자베스 슈바르츠코프가 주연을 맡은 카를 오르프의 <현명한 여인>,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카프리치오> 전곡반,그리고 모짜르트의 <마적> 등이 호평을 받고 있는 앨범들이다.
글 출처: 인터넷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