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버리 돈키호테가 참여하는

고향에 가기 전에 만났던 80년대 서울 북부 JOC 사람들...│반가웠습니다.

리차드 강 2009. 4. 10. 17:03
고향에 가기전에 만났던 사람들...
참으로 올해는 행복한 나날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오늘 술 한잔 늦게 하고 들어와서 고민 고민 하다가 글을 씁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였나 봅니다. 이불을 끌어들여서 자려고 하다가 더워서 뒤척이다가 다시 보듬어 앉고 자려고 하다가...에이..도저히 않되겠다. 하면서 일어나 새벽에 글을 씁니다.
오늘 정말 멋있는 저녁을 맛보았습니다. 저는 오늘 하루를 이것 저것(사람들에 관계되는 자료를 정리하고, 인사정도는 해야한다는 분들을 추리고. 인사다닐 분들에 대해서 뭔가 준비를 해아한다는 생각)을 정리하는 하루를 보내고 저녁을 먹고 뉴스가 끝나고 인터넷 한번 흩어보고 자려고 했습니다. 컴퓨터를 켜고 아이디를 입력하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전화였습니다. "파비아노~ 참으로 전화하는 분의 목소리는 저를 무척 반갑다고 하는 듯 하였죠. 헉! 그렇다고 제가 안반가워할리는 없죠. 저도 무척 반가웠습니다. 왜냐면 무척 보고싶고 함께 하고 싶었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름이 아니고 지금 전화를 받는 즉시 잽싸게 나오라는 소리였습니다. 
저는 그분이 누구인지 알고 그분도 나를 무척 깊이 있게 알고 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이야기 하려 하지 않겠습니다. 단지 우리가 만나려 하고 만났다는 것을 알리려는 것도 아니고 하여튼 이것 저것도 아닙니다. 그냥 제가 구정 전에 행복을 만났다고나 할까요? 궁금하면 그냥 죽으셔도 됩니다. "궁금해 죽겠다"는 분들만요..ㅋㅋㅋ
제가 원래 사진기를 갖고 다닙니다. 그런데 오늘따라 사진기를 갖고 가지 않아서 제가 만났던 사람들이나 장소, 상황, 분위기를 올릴 수 없음을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멋없는 "후기"를 올립니다.
특정 집단은 절대 아니고 분명 우리들이 다 아는 과거의 JOC회원입니다. 그런데 저는 정말 모르는 분들 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처음 뵜을 때부터 저를 아는 것 처럼 잘 대해주셨습니다. 당연히 저보다 나이도 많은 그룹이었습니다. 80년대에 주로 활동했던 분들이었습니다. 전는 당근 90년대 횔동한 엄청난 밑다리 후배였지요.
제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어느덧 술자리가 끝나가는 자리였던 것 같습니다. 왜냐면 안주가 별로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제가 앉아 있는 쪽에는 제 앞자리에 앉아 계신 분들이 저녁을 드시고 참석하셨는지 안주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도 "회"가...제가 원래 회를 못 먹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것이 그 안주 뿐이어서. ...솔찍히 없는 것보다. 낮다는 생각도 들었죠. 그렇다고 그런 것을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냥 먹으라면 먹는 자리..그런거 있잖습니까?
여하튼 분위기 좋았습니다. 저를 처음 보시는 분은 저의 팬이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그 부분에 실망하였다는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다행입니다. 빨리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똑같은 회원이었고 인간이었고. 노동자였는데 "팬"은 무슨...ㅋㅋㅋ
이분들이 왜 모였냐면. 같은 지역구 지오세 회원이었고 같은 시대에 활동하며 팀회합을 함께하고 투사와 팀원, 혹은 대부와, 대자 사이, 그리고 특히나 같은 본당, 모든 것이 이야기 속에서는 그 상황속에 있을 것 같은 그러니까 타임머신을 타고 가지 않더라도 그 자리에 앉아서 옆에서 이야기만 듣고 있어도 그 시대를 느낄 것 같았던 참으로 단합이 잘 될 것 같은 자리에 제가 늦게 초청된 것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또다른 인생들을 봅니다. 과거의 지오세 회원들의 인생이 아닌 이제 어느덧 중년이 되어 추억을 되새김질하고 있는 과거의 지오세에 열정을 다 바쳤던 회원들을 말입니다. 존경하고 그분들에게서 그 "시대"의 열정을 배우고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가야하는 "우리"후배들에게도 전수해야할 "열정"을 말입니다.
제가 그곳에 참석하고 나서 "술" 한잔 하고 이 글을 씁니다. 너무 두서 없음을 용서 하소서. 솔찍히 내일 일어나서 이글 지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노청 50주년 준비 위원회에서 보기에 너무 멋있는 모임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위의 글에서 보면 아무 내용도 적지 않았고 무었도 없습니다.
그런 것을 이야기하기에는 제가 머리가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느낀 것은 바로 나의 위의 선배들이었는데 그들의 모임에 열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꾸렸던 모임의 회원들도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배님들을 보면서 저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단하신 분들이다를 떠나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만나뵈니 정말 고향같은 분들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런것 같습니다. 언니 누나. 혹은, 동생, 선배,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하려고 했던 각자의 처해있는 그 상황속에서의 삶이 그려지고 고단하고 민감하면서도 힘있던,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단 하나. 우리가 따르는 그 분을 위한 삶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느끼는 만남이었던 것도 같습니다. 내가 왜 그 시대에 그렇게 열정을 바쳐가면서 지오세라는 이름을 마음속에서 간직하고 있었던가 하는 것입니다. 단지 "노동운동"이었던가, 내 삶이 삐까번쩍하게 바뀌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었던가 하는 현실세계를 움직이기에만 급급했던가. ...
많은 대화가 오고가고, 무용담으로 추억에 잠기고 되세김질을 할 수는 있지만 다시 되 돌아오지 않는 그날... 그 세월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마는 우리가 그렇게 간직하고 싶었던 믿음과 신념은 왜? 라는 질문은 아무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시대에 그러한 삶, 밖에 살수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왜...라는 질문을 하시는 분은..아~ 있었습니다. "마르셀 깔로"를 이야기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신념이 믿음으로, 믿음이 순교로. 순교가 복음으로 이어지길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리스도 왕께 ~ 충실
백수재에서 ...2008년 2월4일 새벽 4시 50분에 리차드강 씁니다.
고향집 가세 - 정태춘
무진戊辰 새노래 (HKR 1988. 3. 20)
정태춘 박은옥 6집
A면 Track. 3 고향집 가세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