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음악

앨범: 그리스인 조르바 (Soundtrack) - Mikis Theodorakis (1974 EMI)

리차드 강 2013. 7. 22. 16:13

Zorba

그리스인 조르바 (Soundtrack) (1974 EMI)

Mikis Theodorakis (1925 - )

1. La Danse de Zorba, Track 전곡 연주

   

Album Title: Zorba
Composer: Mikis Theodorakis 1925-
Audio LP (1974)
Label: EMI Records (Argentina)
Copyright: (c) 1974 EMI SA
℗ 1974 The copyright in this sound recording is owned by Minos - EMI SA
Genres: Soundtrack, Music, World, Classical

 

 

1. La Danse de Zorba
2. Un Peche Impardonnable
3. A la Recherche Elis Ennuis
4. La Vie S'En Va (2e Partie)
5. Liberte
6. C'est Moi - Zorba
7. Theme de Zorba
8. La Vie S'En Va (1re Partie)
9. Une Grande Catastrophe
10. Questions Sans Reponses
11. Desir Secret
12. Une Ile Sans L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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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 나는 자유다

― 테오도라키스의 발레 음악 「그리스인 조르바」

나는 이른바 ‘몸치’이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국민체조를 제대로 따라하지 못했고, 고등학생 때에는 교련 시간에 총검술 16개 동작을 못해 기합을 받았고, 논산 육군 훈련소에서는 태권도 태극1장을 못해 ‘고문관’ 소리를 들었다. 그러니 춤을 배울 생각은 애당초 하지도 못했다. 이런 내가 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정신과 의사이자 풍월당 주인이며 오페라 전도사로 맹활약중인 박종호 선생의 책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시공사, 2004)에서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의 발레 음악 「그리스인 조르바」를 만나면서부터이다.

 

소설가 니코스 카잔차키스 (Níkos Kazantzakís, 1883~1957)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20세기 문학의 구도자’로 불리는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1883년 크레타 섬의 이라클리온에서 태어났다. 터키의 지배 하에서 기독교인 박해 사건과 독립 전쟁을 겪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이런 경험으로부터 동 ․ 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역사적 ․ 사상적 특이성을 체감하고, 이를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과 연결시킨다. 1908년 파리로 건너간 그는 베르그송과 니체를 접하면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투쟁적 인간상’을 부르짖게 된다. 자유에 대한 갈망 외에도 카잔차키스의 삶과 작품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여행이었는데, 1907년부터 유럽과 아시아 지역을 두루 다녔고, 이때 쓴 글을 신문과 잡지에 연재했다가 후에 여행기로 출간했다. 1917년 펠로폰네소스에서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이자 실존 인물인 기오르고스 조르바와 함께 탄광 사업을 했고, 1919년 베니젤로스 총리를 도와 공공복지부 장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1922년 베를린에서 조국 그리스가 터키와의 전쟁에서 참패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카잔차키스는 민족주의를 버리고 공산주의적인 행동주의와 불교적인 체념을 조화시키려 시도한다. 이는 이듬해부터 집필을 시작한 「붓다」와 대서사시 「오디세이아」로 구체화된다. 이후에도 특파원 자격으로 이탈리아, 이집트, 시나이, 카프카스 등지를 여행하며 다수의 소설과 희곡, 여행기, 논문, 번역 작품들을 남겼다. 대표작의 하나인 「미할리스 대장」과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은 신성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교회로부터 맹렬히 비난받고 1954년 금서가 되기도 했다. 카잔차키스는 1955년 앙티브에 정착했다가 중국 정부의 초청으로 중국을 다녀온 뒤 얼마 안 되어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크레타 섬에 있는 그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Víos kai politía tou Aléxi Zormpá, 1942)

이 작품은 작중화자이자 주인공인 ‘나’가 크레타 섬으로 가던 중 항구의 한 술집에서 조르바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조르바는 주인공을 따라 크레타 섬으로 가게 되고 거기서 주인공의 갈탄 탄광 경영 책임자가 된다. 그렇게 몇 개월을 크레타 섬에서 보내고, 획기적인 채굴 도구를 만들어 돈을 벌려고 했지만 실패하게 되어 결국 갈탄 탄광은 망하고, 주인공과 조르바는 헤어지게 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줄거리보다 조르바라는 인물의 성격이다. 주인공과 조르바는 많은 점에서 대조적인 인물이다. 주인공이 책상물림 백면서생(白面書生)으로, 금욕적인 생활을 하며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글로 파헤치려고 노력하는 인물임에 반해, 조르바는 물레를 돌리는 데 거추장스럽다고 제 손가락을 도끼로 잘라내 버리는가 하면, 호색한에다, 기괴하고 상식을 뛰어넘는 야생마 같은 남자이다. 조르바는 과격하며 자유분방하고 행동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다. 뿐만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지겨워서 더 이상 생각이 나지 않을 때까지 그 일을 한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따뜻한 정이 있어서 진정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릴 줄도 안다. 여자를 ‘암컷’이라고 경멸하면서도 여자들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는 조르바의 이중적 태도도 그가 지닌 따뜻한 마음 때문에 밉지가 않다. 성격도 시원시원해서 뒤끝이 없다. 그러면서도 어린이 같은 호기심이 있어서 주위의 모든 것들을 새롭게 본다. 일, 술, 여자 등 하고 싶은 것은 다하고 사는 사람이다. 그는 깊이 생각하고, 따지고, 망설이기보다는 곧장 행동하는 인간이다. 조르바에게 인생은, 하고 싶은 것을 열심히 하면서 지내는 것, 그것뿐이다. 한 마디로 말해, 조르바는 무장무애(無障無礙)의 대자유인(大自由人)이라 하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처럼 살지 못하기 때문에 조르바는 우리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다.

지난 8월에 타계하신 이윤기 선생의 번역으로 도서출판 열린책들에서 나온 책을 일독하시길 권하고 싶다.

 

작곡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Mikis Theodorakis, 1925~ )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는 1925년 그리스의 히오스(Chios) 섬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베토벤의 음악을 듣고 작곡가가 되고자 결심했으며, 17세에 합창단을 조직하여 첫 콘서트를 개최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이탈리아군에 저항함으로써 수 차례 투옥되어 많은 고문을 당했다. 감옥에 있는 동안 ‘레베티카’라는 피억압 계층의 민중 저항 가요에 관심을 갖고 민중을 위한 음악을 작곡했다.

메조소프라노 아그네스 발차의 노래로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사랑받고 있는 「기차는 8시에 떠나네」는 그가 작곡한 반독재 민중 음악의 대표적인 곡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 오페라, 교향곡, 발레 음악, 오라토리오와 1000곡 이상의 가요를 작곡했다. 영화 음악으로는 「그리스인 조르바」, 「페드라」등 30개 이상의 작품이 있다.

 

발레 음악 「그리스인 조르바」(Zorba the Greek, 1964)

원래 이 작품은 안소니 퀸이 주연하고 마이클 카코야니스 감독이 만든 영화를 위한 음악으로 만들어졌다. 나중에 작곡가가 발레(고전 발레가 아닌 현대 무용이다!)를 위한 관현악곡으로 편곡하여 1988년 베로나에서 초연했다. 모두 2막 23개의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애잔하면서도 흥겨운 느낌을 주는 부주키 선율에 실린 신명나는 춤곡과 웅장한 합창, 메조소프라노의 애절한 독창이 어우러져 그리스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작곡가 자신이 헝가리 국립 교향악단과 합창단을 이끌고 녹음한 Intuition 레이블 음반이 유일한 전곡 녹음 음반이다. 발췌곡 음반 중에는 샤를르 뒤트와(Charles Dutoit) / 몬트리올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Decca, 2000)가 좋다.

 

바실리에프(Vladimir Vassiliev)가 열연한 베로나 공연 (1990. 8.)

작곡가 자신이 지휘하고, 러시아의 세계적인 발레리노 바실리에프가 열연한 이탈리아 베로나 원형경기장 공연 실황이 DVD로 나와 있다. 화질이 그리 좋지는 않지만 유일한 「조르바」 영상물로서 감상하기에 지장은 없다.

DVD 내지에 실린 작품 줄거리를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존이라는 한 그리스계 외국인 여행자가 크레타 섬에 도착한다. 그는 크레타의 지역문화에 동화되기를 원하고 그곳 처녀 마리나와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요르고스라는 그리스 청년이 이미 마리나를 사랑하고 있어서 이곳 사람들은 타지 출신인 존을 경원하게 된다. 출신이 불분명하고 가난한 노동자에 불과하지만 영혼만큼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자유인이자 현자(賢者)인 늙은 조르바가 이 섬에 도착하여 존에게 고용되는데, 두 사람은 수십 년의 연령 차이를 뛰어넘은 우정을 나누게 된다. 특히 조르바는 존에게 삶을 이완시키기도 하고 디오니소스적인 열락을 제공하기도 하는 춤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해주기도 한다. 크레타에서 여관을 운영하는 전직 사교계 여인 마담 오르탕스는 조르바를 통해 그녀가 과거에 사귀었던 여러 남자의 복합적인 전형을 본다. 조르바도 그녀의 관심에 응하여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결혼까지 하게 되지만 자유인의 태도만큼은 잃지 않는다. 한편 마리나는 존에 대한 섬사람들의 집단적인 적대감을 견디지 못하고 그의 곁을 떠나고, 존은 절망감에 빠진다. 이때 그를 구원해주는 사람이 인생을 달관한 조르바이다. 그러나 조르바 역시 마냥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특히 마담 오르탕스가 병들어 죽자 실의에 빠진다. 이번에는 존이 그로부터 배운 춤의 제전으로 조르바를 초대하여 그의 활력을 되찾아준다. 그들의 춤에 수많은 사람들이 동참한다. 그들은 춤을 통해서 과거의 비극을 지워내고 새로운 삶의 활력을 되찾는다.

실황의 열기가 생생하게 살아 있고 한 장면 한 장면이 모두 아름답지만, 그 중에서도 제2막에 나오는 ‘오르탕스의 죽음’ 장면은 너무나 슬프고 그래서 아름답다. 젊은 시절 잘 나가던 창녀 오르탕스 부인이 죽어가고 있다. 매정한 이웃 사람들은 그녀가 숨이 넘어가기도 전에 그녀의 집에 난입하여 세간들을 훔쳐간다. 그녀는 침대에 누운 채 그 모습을 바라보며 혼자 쓸쓸히 숨을 거둔다. 작곡가 테오도라키스는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한 여자의 쓸쓸한 죽음을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싶었던 것일까? 이렇게 아름다운 선율로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으니 말이다. 박종호 선생은 이 노래를 가리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만가(輓歌)’라고 했다.

안소니 퀸의 열연 때문에 유명해진 마지막 장면 ‘조르바의 춤’도 참으로 아름답다. 춤을 통해 슬픔을 신명으로 승화시키는 이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엉덩이가 들썩거리고, 춤 못 추는 나도 벌떡 일어나 이들 무리에 끼어들어 막춤이라도 추고 싶어진다.

 

그리스의 전통 악기 부주키 (bouzouki)

목이 긴 그리스의 전통 현악기이다. 터키인이 도입했고, 탄부르(tanbūr)라고 하는 아프가니스탄의 류트계 악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부주키는 만돌린과 모양이 비슷한데, 줄받이가 달려 있으며 3~4개의 금속 이중현을 갖고 있다. 전통적으로 사교 모임에서 춤과 오락을 위해 사용되었다. 이 악기로 연주되는 음악은 대개 향수나 우수 어린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러시아의 전통 악기 발랄라이카(balalaika)와 음색이 비슷하다.

 

프롤로그

오늘도 나는 조르바를 꿈꾼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언제나 자유롭기를 꿈꾼다. 하지만 현실은 자유보다 ‘밥’을 더 우선순위에 놓기에, 나의 꿈은 늘 꿈으로 끝나고 만다. 그래도 우리 삶의 한 모퉁이에는 이렇게 춤이 있고 음악이 있어 잠시나마 꿈꿀 수 없는 것을 꿈꾸게 되지 않는가. 참으로 복되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몰의 고갯길을 넘어가는 고행의 수도승

변준석 1962년 1월 대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글재주 있다는 말을 듣기는 하였지만,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영신고등학교 2학년 때 벽파문학동인회에 가입하면서부터이다. 백일장과 문예 작품 현상 모집에 입상하고, 김춘수 선생님으로부터 과분한 칭찬을 들으면서 시인의 꿈을 키웠다. 이때 대건고등학교의 시 잘 쓰는 학생 안도현과 만났다.

1980년 김승규, 신승원 등과 어울려 팔십년대동인회를 결성하고 계엄령 하에서 동인지를 펴냈다. 대구와 부산에서 시화전도 열고, 진해 흑백다방에서 시인 정일근, 가수 이성원과 시 낭송회를 열기도 했다.

영남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1991년 '까치' 등의 작품으로 문학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다. 1998년 첫 시집 <이 세상 아름다운 꽃밭이 될까>를 도서출판 사람에서 펴냈다.

영덕에서 만나 1990년 결혼한 착한 아내, 귀여운 딸, 똑똑한 아들, 그리고 눈 큰 고양이 한 마리와 대구에서 살고 있다. 1991년부터 영진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요즘에는 조주록, 임제록, 운문록 등 조사들의 선어록과 연암을 비롯한 실학자들의 글을 즐겨 읽고 있으며, 직장 동료이자 음악 스승인 이시영 선생과 함께 클래식 음악 듣기에 심취해 있다. 바로크 시대 이전의 고음악과 베토벤, 브루크너의 교향곡, 그리고 미사곡을 비롯한 종교 음악을 즐겨 들으며, '지상에서 가장 사치스런 유희' 오페라를 보는 즐거움도 함께 누리고 있다. 시간이 날 때면 낯선 곳을 찾아 길 떠나길 좋아하는데, 아무도 찾는 이 없는 빈 절터를 즐겨 찾는다. 산에 올라 자연과 더불어 하나 되는 낙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도자기에 관심이 많은데, 조선 청화백자를 좋아한다.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렇게 즐겁게 살다가 어느 날 흔적 없이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한 소식 얻는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그리 서운치는 않으리라.

글 출처: 시인의 마을 (변준석)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