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음악

피아졸라의 망각 - Oblivion | 소리 + 가락

리차드 강 2013. 8. 6. 18:51

Oblivion - Astor Piazzolla

피아졸라 망각

Astor Pantaleon Piazzolla, 1921 - 1992

Gidon kremer, Violin

     

이 서정적인 음악 Oblivion(망각)은 탱고(Tango) 음악이지만, 들어보면 사실 전혀 탱고(Tango)를 닮지 않은 곡이지요. 피아졸라(Piazzolla)가 작곡하고 연주하여 영화 '엔리코 4세(Enrico IV)' OST로 사용된 이 음악은 그 서정적인 선율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연주곡입니다. 애수와 슬픔이 가득한 이 곡은 아주 많은 연주가들에 의해 여러 악기로 편곡 연주되고 있으니 요즘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연주들은 오히려 오리지널 버전이 아닐 경우가 더 많습니다. 현재의 이 곡도 피아졸라(Piazzolla)가 연주한 오리지널 연주곡은 분명 아닙니다.

기돈 크레머(Gidon Kremer)의 명 연주로 감상합니다. 기돈 크레머의 바이올린 선율은 격정적이고, 애절합니다. 들을 때 마다 가슴을 쓸어 내리며, 더불어 함께 연주되는 반도네온의 선율과는 '닿을 수 없는' 탱고의 속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음 속 슬픔이나 안타까움 까지도 투명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삶과 죽음, 신화와 전설, 실재와 환상이 뒤범벅된 남미의 독특한 정취가 배어 있는 듯 합니다.

Piazzolla Oblivion Gidon Kremer Hommage a Piazzolla

 

Hommage a Piazzolla

Gidon kremer, Violin

Oblivion

 

Per Arne Glorvigen ; Bandoneon

Vadim Sakharov ; Piano
Michel Portal ; Clarinet
Alois Posch ; Bass

 
     
   

Piazzolla

Astor Piazzolla

피아졸라(Piazzolla)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알려져 있는 작곡가 겸 연주가입니다. 특히 그의 탱고 음악들은 드라마나 영화 음악으로 많이 쓰여지기 때문에 탱고를 잘 모르는 우리들의 귀에도 익습니다. 아스트로 피아졸라(Astor Piazzolla, 1921~1992)는 1950년대 중반, 아르헨티나에서 대중음악에 일대 변화를 가져오면서 전세계에 탱고 열풍을 일으킨 장본인입니다.

그는 자신의 음악을 새로운 탱고(New Tango)라는 뜻으로 누에보 탱고(Nuevo Tango)라 지칭하여 `탱고의 황제'로 예찬 받던 작곡가이자 훌륭한 반도네온(Bandoneon) 연주자였습니다.

반도네온(Bandoneon)은 아르헨티나식 아코디언(Accordion)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피아노같은 건반이 있는 아코디언과는 조금 다르게 생겼습니다.

     

 

>반도네온 (Bandoneon, 아르헨티나식 아코디언)

     

“내게 있어 탱고는 언제나 발보다는 귀를 위한 것”이라고 피아졸라(Piazzolla) 스스로 자부했을 만큼 그는 당시 남미에서 싸구려 춤곡으로 굴러다니던 탱고를 지구촌 최고 음악으로 올려놓았습니다. 영혼이 담긴 그의 `누에보 탱고'(새로운 탱고)는 클래식을 뛰어 넘어 연주자들과 지휘자들을 자극하게 되고 90년대 중반 세계적인 클래식 연주자들이 앞 다투어 피아졸라 곡을 연주하고 음반으로 내놓게 됩니다.

여러분이 감상하고 계시는 오늘의 연주곡 피아졸라(Piazzolla)의 Oblivion(망각)도 바로
누에보 탱고(Nuevo Tango)의 대표적인 곡으로 너무나 유명한 OST 음악입니다. 이 음악은 1984년 이탈리아의 마르코 벨로치오(Marco Bellocchio) 감독이 제작한 영화 '엔리코 4세(Enrico IV)'를 위해 작곡 연주된 음악으로, 이후 특히 기돈 크레머(Gidon Kremer)와 리차드 갈리아노(Richard Galliano)의 명연주 때문에 더욱 음악세계에서 애청곡이 되어 버린 너무도 유명한 피아졸라(Piazzolla)의 대표곡입니다.

 

아스토르 피아졸라는 1921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근처의 마르 델 플라타에서 태어났습니다. 세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 뉴욕의 가난한 노동자 지역에서 살게 됩니다. 피아졸라의 아버지는 이발사였고 어머니는 재봉사이자 미용사였다고 하는데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에도 굳건하게 강인하게 자라납니다. 넉넉치 못한 생활 속에서도 피아졸라는 부모의 노력으로 어렸을 때부터 음악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피아졸라의 나이 열살 때 그의 아버지가 독일에서 만들어진 반도네온(Bandoneon)이라는 악기를 사다주었는데 피아졸라는 어렸을 때부터 뉴욕에서 라디오 연주회에 나가 반도네온으로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곤 했다고 합니다.

남미 탱고 음악계의 첫 번째 스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카를로스 가르델(Gardel, Carlos, 1887~1935)입니다. 전에 포스팅한 바 있던 영화 '여인의 향기'의 OST음악이 바로 카를로스 가르델의 아름답고 멋진 탱고 연주 "Por Una Cabeza"입니다. 이스라엘 출신의 최고의 바이얼리스트 이착 펄만(Itzhk Perlman)의 연주로 감상하셨지요.

Scent Of A Woman - Por Una Cabeza - Itzhk Perlman : 감상 포스트

피아졸라는 반도네온을 위한 작품 외에 전통적인 클래식 악기(피아노, 현악기, 플룻, 기타)를 위한 작품도 남겨놓았는데, 그의 음악 어디에나 아르헨티나의 우수가 가득 깃들어 있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탱고 음악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으면서 수준 높은 작곡과 연주와 레코딩으로 누에보 탱고(Nuevo Tango) 음악은 대중적인 청중과 클래식 청중 모두에게 가까이 다가서게 됩니다.

글 편집 : 이원영 수채화갤러리 MUSIC BOX

     

The quintet circa 1987 (Malvicino, Console, Piazzolla, Suarez Paz, Ziegler)

photo taken from the CD "La Camorra", Americam Clave 1988

     

1934년 뉴욕, 시대를 초월한 최고의 탱고가수 카를로스 가르델 Carlos Gardel이 점심을 들고 있었고, 열세 살 소년의반도네온 연주는 한창 활기를 띄고 있었다. 소년의 탱고 연주를 듣던 대가수의 한마디, "얘야, 네 fueye는 멋지지만 탱고는 꼭 갈리시아(스페인 서북부지방) 사람처럼 연주하는구나." 피아졸라네 집에서 있었던 이 식사자리에서 어린 연주자는 바로 아스토르였다.

아르헨티나 대중음악 역사상 아스토르 피아졸라 만큼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람도 없었다. 그는 탱고라는 '신성한' 음악에 혁명을 일으켰고, 이에 전통적인 탱고 음악인들은 결코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 그는 거기에 별로 개의치 않고, 자신의 작업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음악'이라고 말했으며 곧 외톨이가 되었다. "실망스럽게도 탱고의 세계는 바로 아르헨티나와 닮아 있다. 만약 당신이 평범함에서 벗어난다면 곧 미치광이 취급을 받아 누구도 당신을 다양한 각도로 이해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이러한 생각에 대해서건 혹은 작품에 대해서건 그를 둘러싼 사람들은 중간은 없이 열렬한 지지자 아니면 적으로 양분되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상징이 되어있는 아스토르 피아졸라지만 1921년 이곳에서 약 400km 떨어진 마르 델 플라타에서 태어나 세 살 때 그의 가족과 함께 약속의 땅 뉴욕으로 향했다. 거기서 이후 그의 작품에 눈에 띄게 영향을 준 재즈를 흡수하는 한편, 이후 그의 인생을 함께할 악기 반도네온을 처음으로 얻게 되었다.

이 시기 그의 아버지는 뉴욕의 건달들이 드나들던 이발소를, 어머니는 그들의 부인과 여자친구들이 드나들던 미용실을 운영했다. "한번은 유태?건달이 와 있는데 이탈리아 건달이 들어오더니 서로 싸우다 결국 죽이더군." 피아졸라 는 유명한 권투선수 록키 마르시아노 Rocky Marciano 가 이끄는 패거리의 일원이면서 큰 야구경기의 출전을 앞둔 투수였지만 곧 그들로부터 도망쳐 바하를 공부하기 위해 숨어버렸다.

1930년대 말 전쟁이 임박해오며 미국도 더 이상 안전한 피난처가 될 수 없었고 피아졸라는 그의 고향 마르 델 플라타로 돌아왔다. "나는 마치 화성에서 온 외계인이었다. 반도네온으로 랩소디 인 블루를 연주하는. 모든 탱고 음악인들은 날 미친 녀석이라고 했고." 가까스로 탱고 오케스트라에서 일자리를 구했지만, "급여를 받으러 가니 그러더군요. "뭐? 돈을 달라고? 넌 돈 못 받는 걸 배우러 여기 들어온 거야."" 얼마후 그는 새로운 기회를 잡으려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떠났다.

그를 존경해 마지않던 피추코 Pichuco 는 아스토르는 단순한 반도네온 연주자 이상이라며 항상 그를 지지했으나 몇가지 문제점들이 표출되었다. "그는 항상 내게 이상한 것을 쓰지 말라고 하거나 심지어 직접 삭제해 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피아졸라는 그의 천재성을 그렇게 묶어두지 않고 그 보수적인 환경에서 떠나기로 했다. "어느날 내가 복잡한 화음을 소개하자 일은 터졌다. 연주자들이 럭비선수들처럼 몰려와선 날 미친놈으로 몰아세웠다."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는데 지친 그는 그곳을 떠나 그만의 밴드를 결성했다.

그때가 바로 새로운 탱고의 출발이 되었다. 음악에서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이 시기 그는 마흔다섯 장의 음반을 발표하는 한편 3인밴드와 9인밴드를 결성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청중들은 이해하지 못했으며 음반기획사 또한 그의 작업을 외면했다. 크게 실망한 그는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파리로 떠났다.

프랑스에서 그는 가장 빛나는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추모한 'Goodbye Nonino'와 'Maria of Buenos Aires' 그리고 'Ballad for a Crazy'는 큰 반향을 일으켰고 영화 '가르델의 망명'의 곡들은 그에게 Caesar 상을 안겨주었으며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특별한 시민'으로 추대되었다.

"피아졸라는 누구도 넘보지 못할 탱고의 거장이다." - New York Times
"그는 인기는 롤링 스톤즈를 따라가지 못했지만 그의 음악은 훨씬 오래 남을 것이다." - La Stampa

1990년 8월4일 뇌를 다친 이후 심한 고통은 23개월이나 그를 괴롭혔고 결국 회복하지 못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이끌었던 밴드의 일원이었던, 작곡가이자 반도네온 연주자인 Daniel Binelli는 말했다. "그는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표현하는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냈고 그것은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 피아졸라는 반도네온으로 표현된 부에노스 아이레스 거리의 음악, 바로 그 자체였다.

from : 'Buenos Aires spin' Translated by Eun Joo

     

아름다운 이웃은 참마음 참이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