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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 유정고 밴드 (2001 文化强國) │ 숨겨진 좋은 노래

리차드 강 2013. 12. 4. 04:04

어쩌면 - 유정고 밴드

유정고 밴드 1집: 濫觴 남상 (2001 文化强國)

유정고 밴드 Yujeonggo Band 결성 : 2000

Track. 09 - 어쩌면

 

어쩌면

정윤경 글,곡

저기 저 언덕 너머엔 내가 두고 온 세월이 있고
그 세월 속엔 내가 살아온 모든 것들이 살아있지
이젠 기억조차 못하는 어릴 적 순진함도 살아있고
까맣게 잊고 지내던 고마운 사람들도 살아있지
아 어느새 이렇게 멀리 떠나온 걸까
돌아갈 순 없지만 아쉬움은 할 수 없지

내 앞에 놓인 이 길은 언제부터 놓였는진 몰라도
확실한 건 나이가 들수록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것
좁아질수록 내가 얻는 건 삶이 점점 소중하다는 거고
좁아질수록 내가 잃는 건 어릴 적 순진함을 잃고 있지
아 어느새 이렇게 멀리 떠나온 걸까
돌아갈 순 없지만 아쉬움은 할 수 없지

나는 지금 미래가 두려워 두려워 떨고 있는 건지 몰라
나는 지금 미래가 두려워 두려워 떨고 있는 건지 몰라
나는 지금 미래가 두려워 두려워 떨고 있는 건지 몰라

민중가요계의 '동물원' - 유정고밴드

유정고밴드는, 그 면면이나 첫 음반에서나 나름대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치러본 '역전의 용사'들이 뭉친 흔적이 역력하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를 거쳐 노동가요의 종가집 역할을 해온 '꽃다지'의 핵심 멤버로 이미 <바위처럼>, <사람이 태어나> 등 여러 곡의 히트곡을 낸 유인혁, 최초의 노래운동 집단 노래모임 '새벽'에서 활동했고 최근 솔로로 나섰던 정윤경, 그리고 1990년대 민중가요에서 록을 수용할 시기에 선두에 섰던 노동가요 록그룹 '메이데이'에서 활동한 고명원. 세 사람의 경력을 훑어보면 마치 한국 노래운동사를 보여주는 듯하다.

역전의 용사들이 '노구'를 이끌고 밴드를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긱스'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음악적인 스타일리스트라기보다는 그 세대의 할 말을 진솔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나는 '동물원'에 비견하는 게 나을 듯하다. 가창력이 좋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편곡과 연주가 아주 세련된 것도 아니지만, 노래란 예술을 많이 다루어본 능란함을 지니고 있어서 불편하지 않고, 무엇보다도 한국땅에서 살아가는 30대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 음반에서 돋보이는 것은 그 독특한 솔직함이다. 음악에서나 가사에서나 어깨에 힘을 주지 않은 느낌이 주는 편안함과 남다른 긴장감이 있다. 요즘 관심의 초점이 되는 음악을 쓰고자 하는 의도, 혹은 이 정도는 구사해야 무시 받지 않을 것 같다는 음악적 과시, 그런 데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그래서 편안하다. 여태껏 자신들이 익혀왔고 편안히 구사해왔던 포크와 록을 적당히 섞은 음악적 어법으로, 말하듯 고백하듯 진솔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가사에서도 그렇다. '노래운동 집단'에 소속원의 신분으로는 불가피한 희망과 용기라는 태도, 비전에 대한 확신 같은 것들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회의스럽고 절망스러우면 그냥 솔직히 회의스럽다고 이야기해버린다. 길을 잃은 것 같기도 하고, 자신이 싫어지기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스럽기도 한 그런 모습을 고스란히 내보인다. 진솔한 작가의 목소리가 그냥 배어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노래를 김광석이나 윤도현처럼 목소리를 갈고 닦은 가수만큼 못해도, 충분히 용서가 된다.

아마 이들이 이 정도로 솔직한 목소리를 만들어내는 데까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으리라 생각한다. 희망과 당위를 버리지 않으면서 자신의 상처들을 솔직히 드러내거나 인정하기 쉽지 않았던 이른바 386이란 사람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게다가 이른바 문화운동 동네에서 끝까지 남아 30대 중반을 버텨낸 사람들로서 그것은 더 힘든 것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오래 열심히 활동했던 공력이 있고, 그만큼 자신들의 고민의 치열함에 대한 자신감도 있다. 괜히 고민하는 척, 괜히 희망 있는 척하지 않는다. 터져버릴 것 같고 어찌 할 바 모르는 느낌을 담은 <또 친구에게>, 세상에 대한 우리의 주장이나 확신으로 세상이 변하지 않았음을 인정하는 <랄랄라>, 더 이상 스스로를 위로하며 속이고 싶지 않다는 <제발>처럼, 지금 자신들이 처한 상황과 정면대결하는 노래들이나, 자신들을 80년대 내내 그토록 뒤흔들어놓은 '광주'가 이제 자신에게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되묻는 광주에 대한 절절한 사랑 고백 같은 <나의 광주> 등은 잔잔하게 가슴을 아프게 하는데, 미숙하게 지나가버린 첫 사랑 이야기나 낡은 캐주얼화를 노래하는(서른이 넘도록 넥타이 매지 않고 청바지에 캐주얼화 끌고 다니는 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식으로 일상을 노래하는 여유로운 태도도, 이들의 그만큼 공력을 쌓지 않았으면 어림 없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노래운동 집단에서 나와 솔로 음반을 낸 몇몇 음반들과 비교했을 때에, 7,80년대의 열정과 90년대의 상처를 평생 안고 살아갈 30,40대 세대들의 세기말·세기초의 모습을 가장 잘 형상화한 대표적인 음반이라 자부할 만하다.

'동물원'이 좀 맹숭맹숭하고, 안치환의 극적 카리스마가 불편하고, '꽃다지'의 희망의 노래에 대한 의구심을 거둘 수 없는 사람들에게 이 음반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답답하고 짜증나고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이야기할지라도, 그것을 이렇게 소리 내어 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얼마나 위안이 되는가!

이영미(노래평론가)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