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mut Walcha Bach의 Organ작품을 통째로 외우고 있었던 자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Karl Richter와 함께 Bach organ 연주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우는 Helmut Walcha이다. 그는 16세부터 시각 장애인이었고, 결혼 전에는 어머니, 결혼 후에는 아내가 한성부씩 쳐주는 소리를 듣고, 곡을 암보해서 머리 속에서 연결해 연주했다고 한다. 그의 재능도 재능이거니와 그 많은 Bach의 organ곡을 모조리 외우는 노력과 눈물겨운 그의, pipe organ에 대한 열정이 가히 인간의 것을 훌쩍 뛰어넘는 것임을 정말이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Handel이나 멘델스죤, 북스데후데와 같은 많은 다른 작곡가들의 곡도 그의 머리 속에 고스란히 들어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이 사람 또한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참으로 엄청난 인물이었음에 틀림없다. Buxtehude Chaconne C minor BuxWV159 Helmut Walcha Organ
Buxtehude, Dietrich 1637-1707 19세기 후반에 있어서 북부 독일 최대의 오르가니스트이며 작곡가입니다. 북부 독일에는 이 북스테후데의 선배로서 샤이데만과 지이페르트가 있으나, 그들은 네덜란드의 스베링크에게 사사 했고, 복스테후데가 그들에게서 직접 공부 하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전통적인 흐름으로 볼 때, 말하자면 스베링크의 2대 제자쯤 되는 셈입니다. 그리고 1705년에는 당시 뤼벡에 있던 복스테후데의 연주를 듣기 위해서 바하가 아른시타트에서 내방하여 그의 연주에 길은 감명을 받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복스테후데와 같은 시대의 오르간 분야에서 활약하던 사람으로는 라인켄이나 뵈엠 등이 있으므로 이 일련의 사람들의 움직임 속에 바로크 시대에 있어서 북부 독일 지방의 건반악기 음악의 역사적인 흐름을 알 수 있습니다. 북스테후데의 부친 역시 오르가니스트여서 처음에는 아버지에게서 오르간을 배웠습니다. 1668년에는 북부 독일의 발트 해에 면한 뤼벡의 성 마리아 성당의 오르가니스트가 되었습니다. 이 성당에서는 전부터 “저녁 음악”이라는 모임이 있었는데 그가 부임하면서 대규모로 확대하여 그 의의를 높여 갔습니다. 칸타타, 미사 브레비스, 마니피카트와 같은 교회용 성악 작품을 위시하여 많은 오르간곡을 남겼는데, 오르간곡에 포함된 토카타, 프렐류드, 푸가, 샤콘, 코랄 편곡 등은 극적이며 환상적인 작품 속에 독일적인 내면적 정서가 깊이 침잠해 있으며 그러한 점에서 바하에게 끼친 영향력도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북독일에서 바흐 이전의 최고의 오르가니스트는 디트리히 북스테후데였다. 그는 바흐보다 48세나 연상이었다. 20세 때 바흐는 북스테후데의 연주를 들으러 가기 위해 아른슈타트 성직회의에서 한 달 간 휴가를 얻었다. 그때도 역시 가난을 면치 못했던 시절인지라 바흐는 370㎞나 되는 머나먼 길을 혼자 걸어 간신히 발트 해 연안에 위치한 뤼베크의 성 마리아 교회에 도착했다. 북스테후데의 연주는 바흐의 기대 이상이었다. 바흐가 완전히 매료되어 음악에 푹 빠져 있다 보니 어느새 4개월이란 세월이 흘렀다. 비로소 정신을 차린 그는 북스테후데를 찾아가 작별 인사를 했다. 그러나 북스테후데는 깜짝 놀랄 만한 제안을 하는 것이었다.
잠시 어리둥절해 있던 바흐는 곧 수락 의사를 표했다. 북스테후데는 한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말하자면 후임자가 되고 싶으면 자기 큰딸을 데려가 달라는 이야기였다. 북스테후데에게는 아들은 없고 딸만 여섯이나 있었다. 큰딸은 바흐보다 무려 10세나 연상인 아주머니(?)였고 보너스로 얹혀올 처제가 다섯 명이었다. 또다시 아찔해졌다가 이내 제정신으로 돌아온 바흐는 핑계를 대고 그 자리를 빠져나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른슈타트도 줄행랑을 쳤다. 뒷날 들어 보니 헨델도 2년 전 그곳에 갔다가 똑같은 덫에 걸릴 뻔했다는 것이었다. 음악가를 알면 클래식이 들린다, 신동헌
Passacaglia 파사칼리아 파사칼리아와 샤콘느는 바로크 변주곡 형식 중 밀접한 관계를 가진 2개의 형식이며, 이는 모두 바소 오스티나토에서 유래한 것들이다. 많은 작곡가들은 제목을 붙이는 데 있어 둘을 서로 혼동하여 사용하였기 때문에 이 두 형식을 구분하고 정의하는 데 혼란이 일어났다. 파사칼리아는 스페인어의 'Pasacalle'에서 유래된 psudo-Italy 용어이며 원래는 춤곡이었다. 구조상으로 볼 때 이 형식은 바로크시대에 속해 있으므로 대위법적형식이며 단조로 된 3박자의 8마디 구조 주제 위에 일련의 변주가 계속하여 나타나는 것이다. 처음 주제의 변주는 단일선율로 베이스에 나타나게 된다. 주제는 베이스 파트에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 예이나 내성이나 상성부에도 나타날 수는 있다. 초기 파사칼리아의 예는 HAM 제2권 No.238 과 No.240 에서 볼 수 있다. 여기에는 비버 (Heinrich Ignaz Franz von Biber, 1644∼1704)의 <바이올린과 콘티누오를 위한 파사칼리아>, 무파트(Georg Muffat)의 Rondeau 형식으로 사용하였다. 이러한 예는 샹보니에르(Chambonnie'res)의 샤콘느에서 볼 수 있으며, 이 곡의 구성은 ABACADEA 로 되어 있다. 북스테후데 (Dietrich Buxtehude, 1637∼1707)와 파헬벨 (Johann Pachelbel, 1653∼1706) 의 파사칼리아는 이 형식을 취한 최고의 작품인 바흐의 <파사칼리아와 푸가 c단조>의 선행자이다. 바흐와 헨델 이후에는 베토벤과 브람스를 제외하고는 20세기까지 이렇다 할 뚜렷한 이 형식의 곡이 없었다. 19세기에 있어 이 형식은 바흐의 型을 표본으로 하여 교과서와 여러 예 중에서 '보존되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타당할 만큼 중지되었으며, 이는 오르간을 위한 작품인 라인베르거(Rheinberger)의 소나타 제3번 Op.132와 파사칼리아 e단조, 그리고 레거(Max Reger, 1873∼1916)의 작품 56등에서 볼 수 있다. 20세기에 이르러 파사칼리아 형식은 또다시 애용되는 형식으로 등장하였으며 여러 형태의 기악 작품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여러가지 자유스러운 수법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주제가 8마디 단위의 3/4박자, 그리고 계속적인 변주로 되어 있다는 기본적인 요소는 변치 않고 있다. 파사칼리아에 있어 과거의 수법과 20세기 수법의 기본적인 차이는 전통적인 조성 대신에 한두 개의 20세기 음악의 idiom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파사칼리아에 있어 기본적인 구성미란 전통성, 일관성, 그리고 질서와 균형미를 주는 반복에 있다. 20세기에 이르러 그 이전의 조성감과 형식의 고착된 구조에서 볼 수 있는 조직력이 자유로운 수법에 의해 많이 결여되었기 때문에 위에 열거한 여러가지 기본적 구성미에서 이러한 결점을 보완하려는 노력이 시도되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신고전주의라는 말이 17, 18세기의 여러 형식을 다시 사용하거나 새롭게 하여 구사하려는 의미와 같은 뜻으로 사용되기는 하지만 신바로크주의라는 말이 이 파사칼리아 형식에 있어 더 적절한 표현이 될 수도 있다.
Chaconne 샤콘느 1. 천재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아르몽'은 선택된 소수의 청중들만을 위한 연주에 염증을 느끼고 오케스트라를 떠난다. 그는 소외된 계층에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지하철 역사(驛舍)에서의 연주를 계속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만난 매표소 직원 '리디아'와 순수한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영화 '바이올린 플레이어'의 줄거리다. 이 영화에는 바흐의 무반주 파르티타 2번중 다섯 번째 작품인 '샤콘느'가 시종 흐르고 있으며, 엔딩의 10분은 영화 내용보다는 '샤콘느' 자체가 주는 감동에 더 충실하고 있다. 연주의 주인공은 바로 기돈 크레머. 그가 연주하는 샤콘느는 그리 무겁지 않으며 덜 비감하고, 오히려 현대적인 감성을 지닌 연주로 영화의 다소 진부하고 지루한 내용을 감동적인 것으로 이끌고 있다. d 단조인 바흐의 샤콘느는 연주자를 무척 타는 작품으로 - 바흐 작품들의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 샤콘느 역시 해석에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하이페츠의 샤콘느가 주는 중후함이 있는가 하면 크레머의 젊고 액티브한 연주, 주커만의 겸손한 듯 온화한 연주, 그 외에도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연주자들이 무대에 올려 왔지만 의외로 감상하는 많은 사람들이 샤콘느의 실체를 간파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일 것이다. 그렇다면 샤콘느란 어떤 음악을 말하는가. 샤콘느는 페루에서 스페인으로 넘어온 챠코나(Chacona)가 16세기 르네상스를 통해 유럽에 보급된 후 이탈리아에서는 치아코나(Ciaccona), 프랑스에서는 샤콘느(Chaconne)라는 이름으로 자리잡게된 춤곡의 한 형식이다. 춤곡이라고는 하지만, 바흐나 비탈리의 샤콘느에 맞춰 춤 출 수 있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으리라. 왜냐하면 춤곡으로 존재했던 샤콘느의 본모습은 우리가 알고있는 그것과는 동떨어진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 시절의 샤콘느는 4분의 3박자이며 둘째 박에 액센트가 들어가는 느린 춤곡이었다. 샤콘느는 파사칼리아(Passacaglia)와 더불어 바로크를 대표하는 기악곡의 한 형식으로 자리잡아 가는데, 샤콘느와 파사칼리아에 관한 오늘날의 정의에는 다소의 이견(異見)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내용은 샤콘느가 베이스 오스티나토(어떤 일정한 음형(音型)을 같은 성부(聲部)에서 같은 음높이로 계속 되풀이하는 수법, 또는 그 음형)를 가지고 있어 저음에 지속적인 주제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과, 또 하나는 그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샤콘느는 오스티나토를 가지고 있지 않아도 주제가 가지고 있는 화성적인 요소에 의한 변주를 내포하면 된다는 것이 그 반대되는 주장이다. 어떤 이는 전자를 파사칼리아, 후자를 샤콘느라고 구분 지으며, 또 어떤 이는 그 반대로 정의하기도 한다. 더 애매한 어떤 사전(참고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음악사전)은 그 둘을 '오늘날에는 사용되지 않는 스페인의 춤곡으로 파사칼리아와 유사하다.' 라고 짤막하게 단정짓고 있다. 이탈리아의 '치아코나'는 홀수박자를 지니고 있으며, 프레스코발디(1583~1643 이탈리아 출신으로 바로크음악의 기틀을 쌓았다.) 이후에는 엄격하게 반복되는 오스티나토(basso ostinato)가 특징이 되고 있다. 즉, 통상 4∼8마디의 주제가 저음에서 집요하게 반복되고 그 위에 변주가 형성되는 형식이다. 프랑스의 샤콘느는 그다지 오스티나토에 구애받지 않으나 후에 륄리 등 이탈리아 출신의 작곡가가 프랑스에서 활약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탈리아 풍의 샤콘느가 사용되기도 한다. 륄리의 오페라 '로랑'에서의 샤콘느는 실제로 베이스에 엄격한 오스티나토가 나타나고 있다. 륄리가 태양 왕 루이 14세의 왕실음악 총감독이 되면서부터 춤곡에 관한 왕의 취향에 편승해 그의 작품 어디에서나 샤콘느를 비롯한 무곡들의 잔해들이 발견되고 있다. 동 시기의 작곡가들에게서도 샤콘느가 다수 작곡되었는데, 17세기 프랑스 하프시코드 연주자 및 작곡가 그룹 가운데 최초의 인물로 알려진 샹보니에르나 쟝 앙리 당글베르의 작품들에서도 예외 없이 샤콘느가 등장한다. 프랑스에 이어 독일에도 영향을 끼친 이탈리아의 치아코나는 독일과 프랑스의 바로크에 한발 앞 서 그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이탈리아에서는 몬테베르디가 자신의 오페라에서 치아코나를 사용하는 등 이 형식이 성악곡에도 이용되는 획기적인 일도 일어난다. 그러나 유명한 바흐의 샤콘느를 비롯하여 바로크의 샤콘느가 절정을 이루었던 주무대는 아무래도 독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부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루이 14세에 대한 반동으로 미뉴에트 등의 프랑스의 궁정무곡 등을 거부하는 반면 샤콘느 문화는 성행하기 시작했다. 이는 곧 중부 독일의 북부지방에까지도 영향을 미쳐 바흐의 유명한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와 골드베르크 변주곡 등으로 샤콘느는 그 정점에 이른다. 이때 독일에서의 샤콘느는 더 이상 춤곡을 의미하지는 않는데, 바흐 이외에도 베버(Weber, Carl Maria von), 북스테후데 등의 샤콘느 중 다수가 현재까지 남아 연주되고 있다. 영국 작곡가 퍼셀은 오페라 '디도의 탄식'(일명 '탄식적 저음'이라고도 불리는 하행하는 반음계의 오스티나토는 퍼셀을 수준 높은 작곡가로 인식되게 하는데 공헌했다.)에서 아리아에 샤콘느를 사용하기도 했다. 고전파시대에 이르면서 샤콘느는 점점 쇠퇴해 베토벤, 글룩, 모차르트 등 소수의 작곡가의 작품이 남아있을 따름이었으나 오히려 20세기에 이르면 샤콘느가 부활해서 그 형식이 왕왕 사용되기도 한다. 그 중에서는 바르토크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op.117(1944)과 크세넥의 '토카타와 샤콘느' op.13(1922)이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 작곡가 이동훈의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를 위한 '라솔라도 샤콘느'도 인상적인 작품이다. 그런가하면 가까운 일본에서는 작곡가 藤掛가 1980년에 작곡한 '그랜드 샤콘느(약칭 그라샤코)'가 다년간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샤콘느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변주곡이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착실하고 기본적인 변주에서 시작해 화려한 클라이맥스의 변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변주의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춤곡의 후예답게 드라마틱한 정서까지도 표출해 내고 있다. 또한 샤콘느에는 협주곡의 솔로 바이올린과도 유사한 카리스마 넘치는 카덴짜도 존재하고, 중세 오르가눔의 멜리스마틱한 움직임에서부터 현대의 임프로비제이션 같은 요소에 이르기까지 선율로 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들이 살아 숨쉬고 있다. 그렇다면 샤콘느는 단지 형식으로 존재하다 사라진 한 시대의 유물이 아니라 오랜 세월 클래식음악의 면면에 스며있는 관념(觀念)적인 존재로 구분하는 것도 의미 있는 것일 터이다. 2. 원래는 멕시코의 야성적인 춤곡이 스페인에 도입된 것이며, 샤콘느라는 말이 - 바로크의 'Chocuna' 에서 유래한 스페인의 'Chacona' 는 '예쁘다'는 뜻 - 처음 사용된 것은 1599년 Simon Agudo가 쓴 스페인의 군주 필리프 3세의 결혼식에 관한 문헌에서 나타나 있다. 이 거친 춤곡의 하나가 세련되고 유럽적인 춤곡으로 변해가면서 결국 17세기 말에 이르러 하나의 변주곡 형식으로 그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비록 샤콘느라는 말을 여러가지 타이틀로 사용하는 예가 많기는 하지만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샤콘느는 8마디 구조의 3박자 계열의 변주곡형식으로 단조로 된 일련의 화음진행을 주제로 삼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주제가 악절형식으로 된 것도 있고, 또한 악구의 반복형식으로 된 것도 있다. 비탈리(Tomaso Antonio Vitali 1663∼1745)의 샤콘느에서 볼 수 있는 하행 tetrachord는 초기바로크 시대의 샤콘느 형식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유형이다. 샤콘느와 파사칼리아의 기본적인 차이점이란 전자가 일련의 연속적인 화음 진행을 기초로 변주가 이루어지는 것에 비해 후자는 여러 번 나타나는 주제 선율 위나 아래에 대위법적 선율을 부가시켜 나가는 방법으로 변주가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샤콘느와 오스티나토는 같은 화음진행의 유지에서 생겨 일련의 화음진행이 곧 베이스가 되며, 파사칼리아에 있어 오스티나토는 보다 선율적이며 주제의 형태는 계속적인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 음악형식의 분석연구, Leon Stein 박재열 이영조 공역, 세광음악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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