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드뷔시 영상 1-2집 - Arturo Benedetti Michelangeli, piano | 근현대 음악

리차드 강 2013. 12. 7. 01:12

Images for Piano, Set I-L.110, Set II-L.111

드뷔시 영상 1-2집

Claude Debussy 1862-1918 프랑스

Michelangeli, Piano 영상 1집 전곡 연주

     

   

영상 1/ 2 집

드뷔시는 1905년과 1907년 두 차례에 걸쳐서 영상 제 1/ 2집을 작곡했다. 2년 전에 작곡한 <판화> 로 피아노의 새로운 표현법을 탐구하고 인상주의적인 피아노 주법을 확립하게 된 드뷔시는 영상 1집의 작곡 직전에 교향 모음곡 <바다> 를 완성하여 독창적인 경지를 개척하였다. 사물이나 정경을 있는 그대로, 그 분위기를 바탕으로 표현하려는 통칭 "인상주의적인 수법" 은 <영상> 제 1/ 2 집의 여섯 곡에 있어서도 강조되고 있다.

     

Claude Debussy

Images for Piano

 

Arturo

Benedetti

Michelangeli

Deutsche Grammophon

 
 

     

제 1집

1. 물에 비친 그림자 Reflets dans l'Eau. Andantino molto

섬세한 아르페지오가 빛 - 그림자의 이미지로 부각되며 시적인 정서를 느낄 수 있는 곡. 전체적으로 빠른 템포는 아니지만 가볍고 나는듯 한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

2. 라모를 찬양하며 Hommage a Rameau. Lent et grave

프랑스의 대 작곡가이자 음악 이론가인 장 필립 라모에 대한 존경이 드러나 있다. 엄숙하고 침착하다. 라모의 가볍지 않은 음악이 군데 군데 묻어있다.

3. 움직임 Mouvement. Anime

움직임이라는 추상적인 감각을 음으로 표현하고 있다. 리듬의 반복을 통해 운동과 힘, 전진을 느끼게 하며 활기찬, 아주 명랑한 곡이다. 차분히 가라앉은 분위기를 슬그머니 고조시킨다.

     
 

Images for Piano, Set II-L.111

Arturo Benedetti Michelangeli, Piano

 
     

제 2 집

1. 잎새를 스치는 종소리 Cloches a travers les Feuilles. Lent

이 곡은 <물에 비치는 그림자 > 와 유사한 수법이다. 유동적인 형태와 베일을 쓴 것 같은 화성. 온음음계에 기초를 두고 잠잠한 울림을 바탕으로 하여 회화풍의 조용한 묘사가 이어진다. 부분부분 서투른 아이들의 음계연습과 같이 느껴지는 가락들이 끊일 듯 말듯 연결되면서 종소리의 묘사가 다양하게 등장한다.

2. 황폐한 절에 걸린 달 Et la Lune Descend sur le Temple qui Fut. Lent

조용한 독백처럼. 화성보다는 리듬의 유사성이 이 곡의 기조가 되고 있는 것 같다. 드뷔시는 엷고 희미한 느낌의 가락을 주로 쓰고 있는데 이것을 가리켜 음의 레이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달빛이 가라앉는 정경이 곡의 중반부- 2분 10 초 정도?- 에서 동양적인 패시지로 다가온다. 나른한 분위기.. 잠이 밀려드는 듯한 느낌도 남는다. 눈을 감으면 흔들리는 절집의 풍경소리가 들려온다.

3. 금빛 물고기 Poissons d'Or. Anime

영상 2집의 동기들은 동양적인 소재가 주인 것 같다. 이 <금물고기>는 동양의 쟁반- 아마도 made in china? - 에 그려진 금 빛 고기를 보고서 그 움직임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중간에 중국풍의 가락- 공이나 편경 소리같은 느낌도 들어있다. 그러나 역시 드뷔시는 프랑스 사람. 벽안의 작곡가가 바라보는 동양에 대한 인상, 정도라고 해두자.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이 동양적인 소재를 표현했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서양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인상주의 기법의 실험 - 드뷔시, 라벨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많은 예술들은 그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있다. 그 리고 우리는 이것을 찾아내는 행위를 통해 예술 작품의 향취를 인식하게 된 다. 한편 이러한 인식은 사물의 일면적이고 환상적으로 왜곡된 반영이 아니라 인간의 의식내에서의 물질의 정확한 반영을 의미한다. 이 말은 반영의 단계가 그리 쉽지 않다는 뜻이다. 특히 객관적, 수치적으로 측정하는 단계가 아닌 주 관적, 감각적으로 인식하는 단계에서 반영의 왜곡은 커지기 마련이다.

예술은 자연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연이라는 것은 이미 일정한 모습이 없는 갖가지 상상력으로 충만한 세계이다. 이러한 세계를 과연 화가들 은 어떤 모습으로 보았을까? 루벤스는 그의 작품에서 관능적인 여성상을 그리 기 원하였고 앵그르 역시 여성의 풍만한 가슴을 통해 인간의 퇴행적 본능을 자극하였다. 한편 램브란트는 네덜란드의 풍차 속에서 어슴푸레하게 비치는 방을 보고 이 세상의 어떤 곳에 자신이 창조한 방이 있기를 원하였다. 그리 고 보티첼리의 그림과 고대 살로메의 조각상에서 여인이 발끝으로 서있는 모 습을 보면 인간이 얼마나 신의 세계와 가까와지고 싶어하는지를 알 수 있다. 고야는 정물화를 통해 자신의 사회, 정치적인 입장을 이끌어내려 하였고 위대 한 조각가인 로댕은 다비드 상을 통해 남녀 모두가 느낄 수 있는 묘한 에로 티시즘, 그리고 생각하는 사람을 통해 인간의 사고를 거시적으로 표현하였다. 도대체 이들이 바라보는 자연이란 무엇일까? 또한 이들이 보여주는 자연의 허구는 무엇일까? 이들은 과연 허구로 가득찬 목동의 순수함을 가진 다프니와 클로에인가? 아니면 영원히 여성적인 것에 한없이 약해지는 남성인가? 자연이 라는 숙주(宿主)에서 영양분을 의지하는 기생적인 위치인가?

드뷔시와 라벨의 경우, 이들 음악의 모습(특히 피아노 음악)은 대단히 혼란스럽다. 이들은 음악사에 있어서 돈키호테와도 같다. 혼란스러운 아라베스크를 만 들어내어 정작 그 속에 있는 무엇을 우리가 쉽게 파악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것은 정작 그들이 원하였던 수준 낮은 위장술만은 아니다. 그 들 역시 자연을 모방(Mimesis)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추종 자들처럼 있는 그대로의 자연의 모방도, 미켈란젤로의 모방의 종교적인 해석 도 아니다. 오히려 파울 클레의 기하학적이고도 추상적인 모방이나 메칭거의 입체주의에 가깝다. 드뷔시와 라벨은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을 혁신적으로 바 꾸어 이것을 자신의 음악 어법으로 소화하여 모방의 난이도를 조절한 것이다.

 

 

이러한 이들의 음악을 독일 음악 작품들의 능동적인 자율성에 반(反)하는 수동적인 창조 행위라고는 말하기 힘들다. 독일과 반독일이라는 이분법의 논리로는 이들의 음악을 정의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19세기에 스위스의 전원 시는 에밀 졸라의 자연주의와 정반대적인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공통적으로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한편 루카치가 설명한 자연주의자나 아방가르드의 서술 형식에서 나타나는 왜곡된 반영과 리얼리즘 예술의 설명 형식에서 나타나는 올바른 반영의 대립 구조의 형식은 객관적으로 현전하는 현실의 모사라는 성격을 지닌다는 표상으로부터 출발 하여야 한다는 기본 전제를 인식하지 못한 결과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필자는 이들의 음악은 어떤 대립되는 상을 만들기 위한 시도라기보다 당시 사회에 존재했던 모든 음악의 카테고리를 묶으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중세 폴리포니 음악들은 바로크로 넘어오면서 점차 안정이 되어갔다. 이것 은 죠스깽 드 프레라는 르네상스와 바로크를 이어주는 교두보적인 인물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낭만과 현대를 이어주는 역할, 다시 말하자면 리스트 와 바르톡을 포함한 많은 아방가르드 음악가들을 연결해주는 이들의 '교두보적 위치'가 나오는 것이다. 페터 뷔르거는 역사적인 전위운동들인 미래주의, 다다 이즘, 초현실주의등 을 가장 발전된 대상형태로 평가하였다. 물론 토마스 메취같은 미학자는 이에 반박하였지만, 이들 운동들이 인상주의가 있었기에 가능하다 는데에는 의의를 품지 않았다. 그리고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드뷔시와 라 벨의 음악은 서구 시민사회가 변화하는 시점과도 맞아 떨어진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사회가 그들의 예술관을 결정한다는 것은 아니다. 앙리 뮈 르제는 1840년대 파리의 젊은 예술가들의 불확실한 삶에서 특출한 생생함을 그 의 소설에 담았다. 이 작품은 프랑스 리얼리즘의 분출과 낭만적 전통고수주의 사이의 위험한 줄타기였다. 드뷔시와 라벨 역시 대담한 곡예사였다. 하지만 그 들은 점차로 발전되어가는 그들의 인식을 담을 그릇이 필요하였다. 그것은 바 로 인상주의였다.

이러한 과정은 그들의 사회적, 지리적인 여건의 불가항력적인 일이라기보다 그들이 현실에서 돌파구를 찾은 결과이다. 그리고 이들이 발견한 지극히 감 각적인 프랑스적 에스프리가 아닌 독창성은 그들의 후대에게도 계속 이어진다. '생활을 위한 미술'을 내세운 바우하우스(Bauhaus)와 비견될 수 있는 에릭 사티나 프랑스 6인조가 추구한 음악은 드뷔시, 라벨은 같은 프랑스인 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르지 않는가. 이제 드뷔시와 라벨이 인상주의와 어떻게 관 련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자.

1863년 파리에서 열린 앙테 팡당에서 마네, 모네, 드가 같은 화가들이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당시 프랑스는 사회적으로 산업화, 기계화로서 번영의 시 대를 맞는 한편, 철학적에서 아우그스트 꽁트의 실증, 실험주의가, 그리고 미 술에서는 꾸로벨의 사실, 자연주의가 탄생되었다. 이러한 복잡한 상황에서 이들 은 또 하나의 예술 사조인 인상주의의 화법을 끊임없이 실험, 발전시켜 나갔다. 이 가운데 모네의 실험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때까지 서양회화의 기본 이 되었던 '밝음과 어두움'의 대조를 그는 점차 '따뜻함과 차가움'의 조화로 바꾸어 나갔다. 한편 팔레트에서의 감산혼합을 통한 부드러운 혼합에서 원색을 그대로 사용하는, 시각에 의한 병치혼합으로 옮겨감으로써 점묘화법 (Divisionnism)을 탄생시켰다.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보면 시간 속에 정체 되어 있는 색감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사물의 색깔, 구도, 원근을 부정하고 어느 한 순간에 비친 빛에 의해 나타난 순간적인 모습을 포착하여 그려낸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사물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그려낸다기 보다는 순간적으로 느낄 수 있는 관념을 그려낸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그 그림들을 볼 때 현실적인 감각으로 본다면 제대로 이해 할 수 있는 것일까? 한편 빛이 시시 각각으로 바뀔 때 마다 다르게 보여지는 그림들을 오직 한가지의 고정 관념으로만 본다면 이것이 바로 왜 곡된 것이 아닐까? 바로 모네의 연작 작품인 '건초더미'는 이러한 맥락에서 탄생된 것이다. 원근 역시 화폭에서 정해진다면 그것은 그림이 아닌 카메라 의 개념이 아닌가. 감상자가 위치를 달리 할 때 마다 보여지는 거리감이 달리 느껴지는 것이 정상적일 것이다. 이것은 신 인상주의자인 쇠락의 작품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드뷔시이다. 드뷔시의 음악을 이해한다는 것은 바로 인상파의 그림들을 얼마나 이해 하는 것인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는 자신의 피아노 작품들에서 절대 실체를 보여주지 않는다. 물위에 어른거리는 사물의 모습을 원하는 것이다. 결코 부정확한 것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인상파 화가들처럼 정확한 사물에 대한 이해가 성립된 후에야 비로소 그 물체에 대한 투영도가 그려질 수 있는 것이다. 곧 이러한 작업은 고유색, 음악으로 말하자면 화성에서 나타나는 음색을 부정하는 감성적인 뉘앙스의 예술인 것이다.

드뷔시의 음악은 바로 이러한 인상주의의 기법(신 인상주의까지 포함하여)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듯 하다. 그의 작품 가운데 초기 작품인 <베르가 마스크 조곡>을 들어보면 그는 아직까지 그의 예술적인 토대이라고 할 수 있 는 프랑스 출신의 클라브생 연주자들이나 베를레느의 시, 그리고 바토의 그림 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1901년 작곡된 <피아노 를 위하여>를 들어보면 그가 전환점에 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도 그의 음악에 후퇴란 없고 단지 발전을 위한 발전만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그의 천재성이 완연하게 드러난 <판화>를 들어보자. 이제 각각의 피아노 음들은 서로의 연관성을 갖게 된다. 서로 울려 나올 때에는 독립된 음 이지만, 이것들이 공간에 울려 나오면서 우리는 묘한 어울림을 느끼게 된다. 여 기서 바로 점묘주의 적인 드뷔시의 음악 어법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표현 양식은 <영상>에서 완성된다. 여기서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색감의 변화 뿐만 아니라 음의 배열에 따른 원근감 까지도 나타난다. <전주곡 1, 2집> 역시 이러한 점에서 볼 수 있다. 그가 만일 베르디나 토스카니니처럼 장수하였다면 그의 피아노 음악은 좀 더 다른 모습을 발전했음은 분명하다.

라벨은 드뷔시와 같은 인상파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만 그와는 또 다르다. 라벨은 후기 인상파의 맥락에서 이해 되어야 한다. 그들은 초기 인상파 의 혁신적인 이념은 계승했지만 그들은 다시 고전적인 미의 요소들을 부분적으로 인정하고 들어간 것이다. 좀더 안정적이고 눈에 보일 수 있는 개념이 그 림에 전면적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결코 인상파에 대한 부 정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이상을 더욱 구체화 시키기 위한 노력이다. 바로 이러한 부분이 라벨의 피아노 음악을 드뷔시의 그것과 구별 짓게한다.

특히 세잔느의 추상 예술로의 조형에서 라벨의 음악과 대단히 밀접한 관계 를 가지고 있다. 그는 자연을 원통, 원추, 구로 나타내서 대상을 구조적으로 파악하려고 하였다. 그러면서 고유색을 인정하였다. 라벨은 토카타, 소나타 형 식, 미뉴엣 등을 자기의 작품에 도입을 하게 되고 결국 드뷔시가 발견하지 못 했던 부분들을 나타내주기 시작했다. 그것은 구조다. 한편 그는 드뷔시가 사용 하였던 대담한 화성의 확장보다는 좀 더 안정된 화성을 사용하였다. 그러면서 고전 시대의 음악의 음색을 자신의 음악에 도입하였다. 한편 고갱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뚜렷한 윤곽선 역시 라벨의 음악과 비교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와 윤곽에 대한 라벨의 음악은 이를 연주할 때 입체적인 굴곡을 정확히 나타내되 대신 그림자를 항상 복선으로 깔아 둬야 한다. 시간이 지나자 마자 사라지는 드뷔시의 모습이 되서는 안되고, 시간이 끝나도 어느 정도 여운이 남아 머리 속에 확실한 잔상이 남아 있어야 한다.

드뷔시와 라벨의 음악이 갖는 리얼리즘의 모습은 '추상'이다. 그들의 음악이 그렇게 안개에 쌓여있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이유도 이러한 추상의 작업이 전면에서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네의 그림이 칸딘스키에게 추상의 세 계를 열어 준 듯, 드뷔시와 라벨의 음악은 현대 작곡가들에게 음악의 추상화 의 세계를 열어주었다. 하지만 이들의 음악은 단지 열어준 그 상태에서 화 석화시키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상태를 뛰어넘어 오늘날까지 많은 '이즘 (ism)'을 태동시키는 연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음색, 리듬, 화성을 부각 함으로써 이미지의 세계를 보다 가변적이며, 대상의 본질을 이전에 비해 그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게 만든 그들의 음악은, 해체되고 있는 현대음악을 다 시 통합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 주지 않을까? 결론을 내리자. 우리는 드뷔시와 라벨의 음악에서 동굴의 우상에 얽매여서는 안된다. 글:박제성(고전음악 동호회)

아름다운 이웃은 참마음 참이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