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지배 아래 경제위기국 상대로 이윤 짜내기 ‘신자유주의의 삼각편대’ 월스트리트가 주도적 구실
한겨레 신문 한승동 기자
<불경한 삼위일체>
리처드 피트 외 16명 지음 · 박형준 황성원 옮김 / 삼인 · 1만8000원
1965년에서 1995년 사이에 국제통화기금(IMF)의 돈을 받은 89개 저개발국 중 48개국이 경제적으로 이전보다 더 잘 살지 못하고 있다. 이들 48개국 중 32개국이 전보다 더 빈곤하며, 이들 32개국 중 14개국은 국제통화기금이 처음 차관을 내주기 전보다 적어도 15%나 더 경제규모가 작아졌다.
미국 공화당의 브레인 역할을 하는 보수적 싱크탱크들 가운데 하나인 헤리티지 재단이 1999년에 낸 한 평가서 내용이다. 작성자들은 국제통화기금의 차관은 단기적 원조라기보다는 더 장기적인 종속을 유발하는 것으로, 그리하여 저개발국의 경제를 개선하기는커녕 오히려 해악을 끼쳤다고 지적했다.
<불경한 삼위일체(Unholy Trinity: The IMF, World Bank and WTO)>(삼인)가 인용하는 이런 사례 중에는 더 끔찍한 것들도 있다. “최소한 수만에서 어쩌면 10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국제통화기금의 긴축정책에 대한) 저항과정에서 죽어갔다. 한 계산에 따르면 매년 600만명의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의 어린이들이 구조조정의 결과로 목숨을 잃는다.” 저 악몽의 1997년 ‘아이엠에프 사태(외환위기)’를 떠올려 보라. 국제통화기금이 파산했거나 파산위기에 빠진 국가에 돈을 빌려주는 대신 ‘안정화 프로그램’ 명목으로 강요하는 구조조정 내용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외환과 수입통제를 철폐, 곧 자유화한다. 환율을 평가절하한다. 인플레 억지 명목으로 은행신용과 이자율을 통제한다. 정부지출을 규제하고 세금을 올리고 보조금을 없애 재정적자를 줄인다. 임금을 동결하고 가격통제를 푼다. 외국인투자에 대한 장벽을 없앤다. 국제통화기금이 ‘정책이행조건’으로 내건 그런 긴축정책은 한국사회를 일거에 신용도 제로의 공황상태로 몰아갔다. <불경한 삼위일체>에 따르면, 이런 구조조정의 목표는 환란에 빠진 사회의 긴급구제가 아니다. 구제금융 집행자들이 노리는 것은 이미 빌려준 돈의 환수나 환수를 위한 조건 창출이고, 더 많은 빚을 안김으로써 더 큰 이윤을 앗아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원래 환율조정과 긴급구제 및 재정지원이 본령인 국제통화기금은 이제 “개도국을 쥐어짜며” 특정집단의 이윤극대화를 위해 움직이는 지구 최강의 권력기구로 변했다.
‘trinity’라고 하면 기독교의 삼위일체인데, 냉전붕괴 이후 유일 초대국 미국이 지배하는 전일적인 자본주의세계의 성부·성자·성령은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WB)·세계무역기구(WTO)라는 은유겠다. ‘holy(신성한)’가 아닌 ‘unholy’라면 그 본질이 악하다는 뜻인가?
» 세계 금융의 중심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와 워싱턴 정치·관료 동맹세력은 2차대전 직후 결성된 브레튼우즈체제 이래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 등 자본주의체제 ‘삼위일체’를 거느리며 세계경제를 지배해왔다. 그림은 월스트리트의 상징인 청동황소상과 2003년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반세계화 시위대 모습.
이 책은 미국 매사추세츠 주 워체스터에 있는 클라크대학의 교수와 석사 및 학부학생들의 몇년에 걸친 공동작업 결과물이다. 지금의 세계를 만든 브레튼우즈 체제와 신자유주의 원리들의 비판적 고찰이 작업목표다. 책임집필자는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의 경제학 박사학위 소지자인 사회주의자 리처드 피트 클라크대 지리학 교수. 국제통화기금이 환란국에 으레 들이대는 긴축정책에 문제가 많다는 것, 사태해결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종종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다는 건 이젠 어느정도 공지의 사실이 됐다. 2003년에 씌어진 이 책도 그런 여론형성에 이바지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 삼위일체가 방향수정을 했느냐 하면, 물론 아니다. 최근의 주가 폭락사태로도 재확인되듯 부국이나 대기업 등 돈 가진 자들의 자유로운 자본이동 보장에 주력하는 지금의 투기 자본주의체제는 갈수록 위력을 더해가고 있다. 이 책은 강자, 특히 미국 금융지배그룹 이익 위주로 2차대전 뒤 새로 짜인 이들 삼위일체의 역사를 정리하고 1970~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로 만개한 그 본질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원래 국제부흥개발은행으로 출발한 세계은행은 1980년대 중반부터 우경화한 국제통화기금 쪽으로 기울어져 구조조정을 앞세우면서 ‘타락’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 ‘보호’ 아래 있던 대다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은 1인당 국민소득이 25%나 줄었다. 식량과 농업보조금 철폐는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고 식량안보문제를 심화시켜, 인구의 4분의 1에서 3분의 1이 만성적인 영양부족 상태에 빠지게 만들어 에이즈와 전염병 확산에 일조했다. 그럼에도 보건복지분야 예산을 삭감하고 의료분야 민영화를 강제해 국민보건사업을 구렁텅이에 빠뜨렸다. 수백군데의 보건소와 병원, 의료시설이 문을 닫았다. 그리하여 지난 20년간 아프리카 사람들 평균수명이 15년이나 줄었다.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후신인 세계무역기구는 1995년 1월 공식출범한 이래 “재화와 용역의 교역, 무역관련 투자, 지적 생산물의 국제적 사용 규제 등과 관련해 새로운 영역에서 광대한 권력을 급속도로 축적하고 있다.” 이 셋은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세계 각국에 거의 똑같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강요해왔다. 세계무역기구는 이 복합체의 “문어발 확장 임무”를 맡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세 기구들은 일관되고 통합된 정책적 입장을 내세우고자 적극적으로 협력해왔다. 점점 더 그들은 자신들이 가장 확고하게 생각하는 주제인 자유무역을 강조하고 나섰다. 그러니 그들은 세계경제를 지배하는 단일한 전지구적 차원의 기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조직이 세 부분, 즉 체제안정을 전문적으로 하는 IMF, 구조조정을 담당하는 세계은행, 무역자유화를 담당하는 WTO로 이루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자유무역협정(FTA) 또한 ‘문어발 확장’의 또다른 버전, 전술적 변환일 뿐인 셈인가.
그러면, 이 복합체는 과연 누구를 위해 복무하는가? 그들이 강요하는 이데올로기와 담론과 정책은 누가 어디서 만드는가? “(재무부 등) 정치적, 관료적 기구를 의미하는 ‘워싱턴 컨센서스’에 은행업을 의미하는 월스트리트 커넥션”, 그리고 이론작업을 하는 명문대들이다. “특히 하버드 경영대학의 MBA, 박사과정,
경영자 대학원 프로그램은 기업이나 금융계의 엘리트를 훈련시킨다. 하지만 이 복합체 내에서 주도자 역할을 하는 것은 월스트리트의 은행가들, 특히 투자은행의 인사들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처음으로 되돌리든지, 해체하든지
사회운동세력이 세 기구 감시·폭로로 현실 개선해야
그러면 이 괴물 복합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저자들은 우선 빈곤 확대재생산을 빈곤 구제로 착각하게 만드는 원천인 신념과 사고방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는 신자유주의적 우익정치에 대한 비판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토대인) 신고전주의 경제학의 과학적 타당성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우리는 물리학처럼 다뤄지는 객관적 경제학을 해체하고 그것을 주관적 판단에 따르는, 문화이론처럼 다뤄지는 경제학으로 바꿔야 한다.” 그리고 잘못된 환상이 빚어내는 끔찍한 현실을 NGO 등 사회운동세력과 함께 감시하고 사실대로 남김없이 폭로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컨대 신자유주의가 경제성장에 가장 효율적인 모델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인용돼온 1990년대 빌 클린턴 정권의 ‘신경제’ 효과는 사실인가? “실제로는 생산성 증대가 아니라 정보산업경제와 관련한 주식시장 투기 덕분이었음이 증명됐다.”
그리고 세 기구가 본래 목적을 회복하지 못하면 차라리 해체하라고 요구한다. “IMF는 경제잉여를 예금해놓고 요청에 따라 긴급융자로 경화를 찾아갈 수 있게 해주는 기구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할 바에는 해체해야 한다.” 세계무역기구도 서비스, 투자재산권, 지적재산권, 투자 같은 분야로 활동범위를 넓히고 (자유)무역이 가져다주는 효율성에만 집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본다. “WTO는 소비자 대중추수주의의 가면을 쓰고 있지만 실상은 우익 엘리트주의를 옹호하는 이사진이 운영하는 추악한 조직이다. 이 기구를 공정무역 기구로 전환시키든지, 아니면 업애버려야 한다.” 세계은행에 대해서는 비교적 호의적이지만 대중적 참여를 강화해서 민주화하고 특히 국제통화기금과 사이를 떼어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세계화에 대한 개념 재정립을 촉구한다. “헤게모니적 권력의 축적과 그를 통해 현실을 지배해온 과정에서 세계화가 지니고 있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인간성’을 창출해낼 수 있는 잠재력의 싹이 잘리고 말았다. IMF, 세계은행, WTO는 좀더 평등하고 형평성 있는 세계화를 추구하는 대리자로 행동하기보다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이미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돈을 갖고 있는 사람들 편에 서서 행동해왔다. 부유한 자들, 유명인사들, 하는 일 없이 박애주의자인 척하는 자들의 동맹에 맞서는 여러 사회운동들의 민주적 동맹을 통해 세계화를 현실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현재의 국면에서 가장 현실적인 사람들은 기구 내부에 있는 냉혹한 전문가들이 아니라 이상주의적 비판가들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2007-08-24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