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현 한겨레신문기자
청각언어장애인 박민서 부제(39·부제는 사제 전 단계·오른쪽)가 다음달 6일 서울대교구 사제 서품식에서 서품을 받는다. 세계적으로 14명의 청각언어장애인 신부가 있지만, 아시아에서는 박 부제가 처음이다.
25일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에서 만난 박 부제는 “사제의 길로 이끌어준 정순오 신부처럼 농아들을 사랑하면서, 소외받고 버림받고, 무시당하는 사람들을 친구처럼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도 박 부제 옆에서 수화통역을 해준 정순오 신부(53·서울 번동성당 주임·왼쪽)가 없었다면 박 부제도 진작 좌절하고 말았을지 모른다.
두 살 때 홍역주사를 잘못 맞아 청력을 잃은 박 부제는 초·중학교 때까지도 여기저기 전근을 다니던 군인 아버지를 따라 이사를 다니며 일반학교에 다녔기에 수화조차 배우지 못했다. 친구들로부터 놀림도 많이 받았다. 그가 일반 고등학교에 합격하고도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면접에서 낙방하자 부모는 눈물을 흘렸지만 그는 동병상련할 수 있는 청각언어장애인 학교에 갈 수 있게 되어 기뻤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자신을 사랑해준 미술 선생님을 따라 가톨릭 세례를 받은 그는 경원대 산업디자인과 재학시절 서울 수유동에 있는 서울가톨릭농아선교회에서 봉사하는 정 신부를 처음 만났다.
정 신부는 청각언어장애인 부모 밑에서 자랐다. 그래서 그들의 애환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서울가톨릭신학대 재학 때부터 모퉁이라는 수화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했고, 농아선교회에서 봉사를 시작했다. 박 부제가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둔 뒤 방황하고 있을 때 선교회 사무국에서 일하라며 그의 손을 잡아끌어준 것도 정 신부였다. 정 신부는 박 부제에게 “신부가 되어 청각언어장애인들을 위해 일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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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길은 멀고도 험했다. 정 신부는 청각언어장애인 출신 사제로서 청각언어장애인들이 사제가 되는 것을 헌신적으로 돕던 미국의 토마스 콜린 신부와 편지를 교환한 뒤 박 부제의 유학을 권했다.
박 부제가 유학길에 오른 것은 1994년 8월. 학비를 보내주는 정 신부의 은혜에 보답하듯 박 부제는 1년 만에 어학연수를 마치고 농아종합대학인 갈로뎃 대학에 입학했다. 그리고 99년 마침내 뉴욕 성요셉신학교에 입학해 신학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청각언어장애인에게 각별한 관심을 쏟았던 뉴욕대교구장 오코너 추기경이 선종하자마자 교수들은 ‘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신학과정’을 없애버렸다. 학장은 그에게 “신학교를 떠날 것”을 요구했다. 엄청난 좌절 속에서 귀국해야할 처지에 있는 그에게 동병상련의 토마스 콜린 신부는 다시 뉴욕성요한대학원을 안내해주었다. 그는 그곳에서 공부해 2004년 졸업식에서 일반대학원 졸업생 대표로 신학석사 학위를 받고선 유학 10년 만에 금의환향해 서울가톨릭대학교에서 공부를 계속했다.
그는 지난해 7월 꿈에도 그리던 부제 서품을 받았다. 그러나 아들의 장애를 아파하며 가슴에 멍이 들었던 아버지는 아들의 부제 서품식을 하루 앞두고 눈을 감고 말았다.
수많은 좌절을 딛고 신부로 거듭나는 박 부제에게 정 신부는 이날 “너는 분명히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자 어느새 박 부제의 손짓이 “사랑해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2007-06-26
글·사진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2007-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