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갈망

높은 마을 낮은 마음 ‘사제-신도 한살림’ │ 感性 + 音香

리차드 강 2009. 4. 14. 15:33

첫 가톨릭공동체 ‘산위의 마을’ 행복한 삶

욕망·불신도 내려놓고 미움·상처도 벗어버리고
TV 술 햄버그 대신 자연을 먹고 믿음과 더불어

조연현 기자

» 산위의마을에서 김영기씨 가족이 박기호 신부 앞에서 낡은 곳을 태우는 의식을 하고 있다. 조연현 기자

충북 단양군 가곡면 보발리. 남한강을 굽이굽이 돌아 소백산의 한 골짜기로 한참 올라서니 ‘산위의 마을’이 나온다. 수도자들만의 공동체인 수도원과 달리 사제와 일반 신자 가족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우리나라 최초의 가톨릭 신앙공동체다.

지천으로 열린 산딸기 성찬에 쏟아질듯 고개 내미는 별들

지난 9~10일은 이 마을 ‘공동체의 날’을 맞아 외부의 협력자들까지 하나 둘씩 해발 500미터가 넘는 산위의 마을로 올라오고 있었다. 마을에 들어선 사람들은 지천으로 널려있는 산딸기의 성찬에 입을 다물지 못했고, 마을에서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소백산 영봉들의 경치에 절로 찬가를 쏟아냈다. 한옥 앞마당에선 아이들이 재잘대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란 놀이를 하고, 그 너머로 수많은 별들이 축제의 밤에 함께 하고 싶다는 듯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들일 나갔다 들어와서는 막 태어난 송아지 보며 흐뭇

들에 나갔던 농부들이 괭이와 삽을 들고 돌아오자 구유 안에서 풀을 먹던 앙징 맞은 아기 염소 두 마리가 소리쳐 반긴다. 농부들은 곧장 이날 낳은 송아지와 어미 소에게로 달려가 송아지를 핥는 모정을 지켜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첫 가톨릭공동체 ‘산위의 마을’을 소개합니다

막 따온 산채로 비빔밥 해먹고 고요한 기도로 마음 씻고

마을 사람들이 따온 산채를 듬뿍 넣은 비빔밥으로 저녁식사를 한 뒤 내장까지 시원케하는 산 공기를 마시며 산책하던 사람들이 다락방 성당에 모인다. 이들이 ‘함께’ 부른 성가가 마치 천사들의 합창인양 가슴 속에 스며들 때쯤, 고요한 기도가 울려퍼진다.

“하루 일과 중 저로 인해 누군가의 마음을 상하게 한 적이 없는지 반성합니다. 저로 인해 상처 받은 그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소서.”

마을은 다시 침묵에 잠기고 가끔씩 산짐승 울음소리만

기도의 시간이 끝나자 마을은 고요한 침묵 속에 잠기고, 가끔 들려오는 산짐승들의 울음 소리가 적막을 더욱 실감하게 한다. 시골 닭의 어김 없는 기상 신호에 눈을 뜨고 방을 나서면 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민 봉우리들이 아침 인사를 전한다.

새가족 맞는 날 한자리 모여 신앙고백

10일은 이 공동체가 새 가족을 맞는 날이었다. 미사 때 박기호 신부 앞에 김영기(35)씨가 부인과 다섯 살 난 아들 강산이와 함께 앉았다. 김씨는 “항상 ‘참된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오다가 ‘당신과 한 몸 되어 평화를 누리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로 결심했다고 신앙 고백을 했다. 그러자 사제의 질문이 이어졌다.

“습관과 대인관계와 욕구 중 걸림돌 있음을 압니까”

“우리는 여러분이 살아온 과거의 생애와 역사를 존중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당신을 만들어낸 과거의 생활 습관과 대인관계와 욕구의 성향들 중에는 공동체의 영성에 어울릴 수 없는 결함이 있고, 그것들은 공동체로 살아가는데 큰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까?”

“예,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공동체와 더불어 새롭게 살아가고자 이미 회개했고, 복음 정신을 따라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를 부르신 주님의 은총으로 복음적이지 못한 가치관과 부정적 악습들을 단호히 끊어버리겠습니다.”

마을사람들 앞에서 낡은 옷 벗어 태우는 의식으로 신고

새 입촌자는 “과거의 욕망과 불신, 경쟁심과 미움과 상처의 옷을 벗어버리고, 평화의 옷으로 갈아입겠다”고 서원한 뒤 성당 밖에 나가 모든 이들의 찬양 속에서 낡은 옷을 벗어 태우는 의식을 했다.

외국어대 용인캠퍼스 학생회장 출신으로 전국유기농업협회 간사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간사로 각각 일했던 김씨 부부는 지난 3월부터 ‘산위의 마을’에 들어와 참관 생활을 해오다 이날 드디어 정식으로 공동체의 새 가족이 됐다.

운동권 출신으로 5년전 인연이 드디어 결실

김씨는 이 공동체의 모태가 된 예수살이공동체에서 5년간 사무국장을 지내기도 했지만, 정작 세속의 삶을 접고 깊은 산속의 삶을 선택하기까지 적지 않은 결단이 필요했다.

이곳에선 텔레비전을 볼 수도 없고, 술을 마실 수도, 컵라면과 햄버거와 아이스크림도 먹을 수 없다. 더구나 공동체의 삶을 살아보겠다고 입촌 했던 이들 가운데 네 가족이 결국 하산하는 것을 지켜보기도 했다.

막연한 환상은 금물…네 가족은 결국 하산

그래서 ‘막연한 환상’만 갖고있다가는 쉽게 포기하고만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도 그는 결국 세속의 삶을 접고 산위의 삶을 택했다. 아내가 뜻하지 않게 암으로 고초를 겪었고, 아들 강산이가 아토피로 고생한 것도 자연 속의 삶을 더욱 절실하게 했다.

암과 아토피, 세상의 고단함이 결단 재촉

결국 그들은 결단했고, 새 가족을 맞아들인 가족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그들을 온 몸으로 껴안았다. 박노해 시인의 형이자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의장이던 박 신부와의 공동체에서 함께 살기로 한 김씨부부는 민주화 투쟁의 마지막 대학생 세대다. 이날은 6·10 민주화 항쟁 20돌이기도 했다.

단양/글·사진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산위의 마을'은…

네 가족 등 17명 무소유 자급자족

입촌 때 재산 내놓거나 공동체에 기부

산위의마을은 박기호(58) 신부가 1998년 동료 신부·수사들과 함께 설립한 예수살이공동체를 모태로 탄생했다. 이들은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영성과 사회의식을 함께 지닌 청년들을 배출하면서 무소유로 살며 노동과 기도, 나눔을 실천할 공동체 건설을 추진해왔다. 마침내 2004년 단양 소백산 일대에 밭 1만2천 평을 구입해 입촌을 시작했다. 현재는 이날 입촌한 김영기씨네를 비롯한 네 가족과 독신자 4명을 포함해 17명이 살고 있다. 이 가운데는 전교생이 여섯 명 뿐인 보발분교 5학년인 혜인이와 중학생 3명, 고등학생 한 명도 있다.

공동체 입촌자들은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거나 이 공동체에 내어놓고 들어온다. 무소유와 자급자족의 삶을 추구하는 이들은 생태 유기농업으로 더덕, 고추, 콩 농사를 짓고 있다. 멧돼지들 때문에 콩 두말을 파종하고도 닷되 밖에 수확하지 못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밭농사를 지어 올 봄엔 처음으로 3년생 더덕을 서울로 출하해 2400만원의 매출도 올렸다.

산위의마을은 장기적으로 마을 안에 초·중·고 과정의 대안학교를 설립할 계획이다. 학교 설립 전까지 보발분교의 폐교를 막기 위해 이 공동체의 자연 속에서 추억을 쌓고 싶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산촌 유학생을 받을 예정이다.

또 공동체에선 여름방학인 8월 5~18일 13박14일 동안 ‘천국의 아이들 어린이 공동체 생활 체험’을 통해 아이들이 숲과 명상 등을 체험케 하고, 청장년들을 대상으로 △7월 14~21일 △8월 18~25일 △11월 10~17일에 ‘단기 입촌 공동체 생활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해 입소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sanimal.org. (043)421-2144.

조연현 기자

     
<향수> 박인수 이동원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1989)
박인수, 이동원
Track.01 - 향수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