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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위의마을에서 김영기씨 가족이 박기호 신부 앞에서 낡은 곳을 태우는 의식을 하고 있다. 조연현 기자
충북 단양군 가곡면 보발리. 남한강을 굽이굽이 돌아 소백산의 한 골짜기로 한참 올라서니 ‘산위의 마을’이 나온다. 수도자들만의 공동체인 수도원과 달리 사제와 일반 신자 가족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우리나라 최초의 가톨릭 신앙공동체다.
지천으로 열린 산딸기 성찬에 쏟아질듯 고개 내미는 별들
지난 9~10일은 이 마을 ‘공동체의 날’을 맞아 외부의 협력자들까지 하나 둘씩 해발 500미터가 넘는 산위의 마을로 올라오고 있었다. 마을에 들어선 사람들은 지천으로 널려있는 산딸기의 성찬에 입을 다물지 못했고, 마을에서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소백산 영봉들의 경치에 절로 찬가를 쏟아냈다. 한옥 앞마당에선 아이들이 재잘대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란 놀이를 하고, 그 너머로 수많은 별들이 축제의 밤에 함께 하고 싶다는 듯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들일 나갔다 들어와서는 막 태어난 송아지 보며 흐뭇
들에 나갔던 농부들이 괭이와 삽을 들고 돌아오자 구유 안에서 풀을 먹던 앙징 맞은 아기 염소 두 마리가 소리쳐 반긴다. 농부들은 곧장 이날 낳은 송아지와 어미 소에게로 달려가 송아지를 핥는 모정을 지켜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첫 가톨릭공동체 ‘산위의 마을’을 소개합니다
막 따온 산채로 비빔밥 해먹고 고요한 기도로 마음 씻고
마을 사람들이 따온 산채를 듬뿍 넣은 비빔밥으로 저녁식사를 한 뒤 내장까지 시원케하는 산 공기를 마시며 산책하던 사람들이 다락방 성당에 모인다. 이들이 ‘함께’ 부른 성가가 마치 천사들의 합창인양 가슴 속에 스며들 때쯤, 고요한 기도가 울려퍼진다.
“하루 일과 중 저로 인해 누군가의 마음을 상하게 한 적이 없는지 반성합니다. 저로 인해 상처 받은 그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소서.”
마을은 다시 침묵에 잠기고 가끔씩 산짐승 울음소리만
기도의 시간이 끝나자 마을은 고요한 침묵 속에 잠기고, 가끔 들려오는 산짐승들의 울음 소리가 적막을 더욱 실감하게 한다. 시골 닭의 어김 없는 기상 신호에 눈을 뜨고 방을 나서면 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민 봉우리들이 아침 인사를 전한다.
새가족 맞는 날 한자리 모여 신앙고백
10일은 이 공동체가 새 가족을 맞는 날이었다. 미사 때 박기호 신부 앞에 김영기(35)씨가 부인과 다섯 살 난 아들 강산이와 함께 앉았다. 김씨는 “항상 ‘참된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오다가 ‘당신과 한 몸 되어 평화를 누리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로 결심했다고 신앙 고백을 했다. 그러자 사제의 질문이 이어졌다.
“습관과 대인관계와 욕구 중 걸림돌 있음을 압니까”
“우리는 여러분이 살아온 과거의 생애와 역사를 존중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당신을 만들어낸 과거의 생활 습관과 대인관계와 욕구의 성향들 중에는 공동체의 영성에 어울릴 수 없는 결함이 있고, 그것들은 공동체로 살아가는데 큰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까?”
“예,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공동체와 더불어 새롭게 살아가고자 이미 회개했고, 복음 정신을 따라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를 부르신 주님의 은총으로 복음적이지 못한 가치관과 부정적 악습들을 단호히 끊어버리겠습니다.”
마을사람들 앞에서 낡은 옷 벗어 태우는 의식으로 신고
새 입촌자는 “과거의 욕망과 불신, 경쟁심과 미움과 상처의 옷을 벗어버리고, 평화의 옷으로 갈아입겠다”고 서원한 뒤 성당 밖에 나가 모든 이들의 찬양 속에서 낡은 옷을 벗어 태우는 의식을 했다.
외국어대 용인캠퍼스 학생회장 출신으로 전국유기농업협회 간사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간사로 각각 일했던 김씨 부부는 지난 3월부터 ‘산위의 마을’에 들어와 참관 생활을 해오다 이날 드디어 정식으로 공동체의 새 가족이 됐다.
운동권 출신으로 5년전 인연이 드디어 결실
김씨는 이 공동체의 모태가 된 예수살이공동체에서 5년간 사무국장을 지내기도 했지만, 정작 세속의 삶을 접고 깊은 산속의 삶을 선택하기까지 적지 않은 결단이 필요했다.
이곳에선 텔레비전을 볼 수도 없고, 술을 마실 수도, 컵라면과 햄버거와 아이스크림도 먹을 수 없다. 더구나 공동체의 삶을 살아보겠다고 입촌 했던 이들 가운데 네 가족이 결국 하산하는 것을 지켜보기도 했다.
막연한 환상은 금물…네 가족은 결국 하산
그래서 ‘막연한 환상’만 갖고있다가는 쉽게 포기하고만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도 그는 결국 세속의 삶을 접고 산위의 삶을 택했다. 아내가 뜻하지 않게 암으로 고초를 겪었고, 아들 강산이가 아토피로 고생한 것도 자연 속의 삶을 더욱 절실하게 했다.
암과 아토피, 세상의 고단함이 결단 재촉
결국 그들은 결단했고, 새 가족을 맞아들인 가족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그들을 온 몸으로 껴안았다. 박노해 시인의 형이자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의장이던 박 신부와의 공동체에서 함께 살기로 한 김씨부부는 민주화 투쟁의 마지막 대학생 세대다. 이날은 6·10 민주화 항쟁 20돌이기도 했다.
단양/글·사진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