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음악(국악)

앨범: 아리랑 Arirang - 김영임 (1995 동양 레코드)

리차드 강 2015. 2. 1. 20:52

아리랑 Arirang (Korean Traditional)

앨범: 아리랑 Arirang (1995 동양 레코드)

김영임 Kim, Young-Im 1953 -

1. 정선아리랑 Chongson Arirang

 

 

Album Title: 김영임 1집 - 아리랑 Arirang

Performer: 김영임 Kim, Young-Im
                   중앙국악 관현악단 & 합창단

Audio CD (January 1, 1995)
Studio/Live: Studio
ALBUM TYPE: 정규, 1집
Language: Korean
Label: 동양 레코드
Copyright: (c) 1995 동양레코드
Duration: 34:50
Genre: Korean Traditional Music
Style: Folk

 
 
 

 
 
 
 

1. 정선아리랑
2. 강원도아리랑
3. 해주아리랑
4. 아리랑
5. 구아리랑

6. 자즌아리
7. 긴아리랑
8. 밀양아리랑
9. 진도아리랑

Chongson Arirang
Kangwondo Arirang
Haeju Arirang
Arirang
Old Arirang

Chajun Ari
Long Arirang
Miryang arirang
Chindo Arirang

6:41
3:50
3:14
3:41
3:18

3:08
6:15
2:57
2:11

CREDITS

레코딩 엔지니어 : 이용준
레코딩 스튜디오 : Mecca Studio

편곡.지휘 : 박범훈
합창 : 중앙국악관현악단 합창단
합창지도 : 엄기영
연주 : 중앙국악 관현악단
녹음 : MECCA 녹음실

     

 

 

민요를 위한 소리 1 <김영임의 아리랑>

* 소리: 김영임
* 편곡, 지휘: 박범훈
* 연주: 중앙국악관현악단
* 화음: 중앙국악합창단

"혼자 해서 안되면 가르쳐도 안된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예술교육은 타고난 재질이 있는 자라야만 된다는 뜻일꺼다.김영임은 혼자해서 된쪽에 속한다.그가 노래를 다른 자보다 늦게시작해서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게 된것도 타고난 재칠에 그 비중을 두어야 할 것 같다. 워낙 같은 선생님에게 사사 받은 많은 제자중에 김영임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음악 (민요)세계를 구축할수 있게 된것도 이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민요는 전문가의 노래가 아니라.민요는 말그대로 민중의노래이다. 김영임은 일찌기 민요가 어떤 노래인지를 알고 부른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민요를 전용적으로 보존이나 전승하는 일보다는 민중의 삶속으로 파고드는 작업에 충실하다. 그리고 현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민요를 부르기 위하여 끊임없는 노력을 해왔다.

삼현육각 잡히고 얼씨구 취임새하며 부르던 시대가 아님을 일찌기 알았던 것이다. 그에 따른 작업을 보면 ,전통민요의 대중화를 위하여 음반제작을 비롯,고나 현악 반주에 민요를 부름으로서 새로운 창법을 시도 하였다.지금도 많은 대중들이 회심곡을 비롯하여 그가 부른 민요를 좋아하고 있음을 볼때 의심의 여지가 없다 특히 중앙국악 관현악과 국내외에서 무수히 여주했던 공연성과만 보더라도 충분히 이해되리라 믿는다.대중들이 김영임을 좋아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그동안 많은 연주회를 함께 하면서 내가 느낀 소감을 잠시 그려보고자 한다.

먼저 김영임의 모습을 보면[전형적인]국산이다.작은 키에 알맞은 몸매 그래서 귀여움을 받는다.그가 노래할때 입는 의상도 권위적이지 않고 소박하고 서민적이기에 친근함을 느끼게 한다.그가 무대에서면 몸에서 소리가 먼저 나는 느낌을 받는다. 그의 목소리는 깨진 질그릇과 같아 고향내음이 배에있고 삶에 한이 서려있다.그래서 그의 소리는 흥겹기 보다는 가슴이 저려온다.흔히 경기창자에게서 들을 수 있는 다듬어진 방울목이 아니다.힘차고 다부지고 울부짓는 한의 목소리다.그래서 나는 그의 소리를 좋아한다. 작은몸에서 쥐여짜여져 터져 나오는 소리는 민족의 한과 멋이 함께 어울어진 소리로 평가 되고 있다.

그래서 그와의 첫번째 음반 작업을 [아리랑]으로 하였다. 우리민족의 삶에 내음이 살아 숨쉬고 있는 노래 '아리랑' 이 노래야 말로 김영임의 목소리에 재격이라 생각되어 불려보고 싶었다.

그 역시 아리랑을 제일 좋아한다.아리랑을 부르며 나의 지휘봉을 쳐다보는 그녀의 눈에는 항시 이슬이 맺혀 있음을 보았다.근본 제작된 음반에 변변치 못한 내가 만든 반주가락이 그의 목소리를 방해하지 앟을까 부담스럽다.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인다.그녀의 목소리가 곧 아리랑에 가락을 이끌고 우리에 가슴을 울려 줄 것이다. 그리고 그가 부르는 민요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살아 갈 가락으로 남을 것이다.

* 중앙대학교 음대교수 박범훈

 
 
 

 
 
 

 

김영임 Kim, Young-Im 1953 -

HOMEPAGE:  http://www.kimyoungim.com/
ACTIVE: 1970s - 1990s
BIRTH: 1953년 12월 17일 / 대한민국, 서울
DEBUT: 1979년 02월 25일
STYLE: 국악

PROFILE:
RELIGION: 불교

EDUCATION: 1972년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 졸업

FAMILY: 남편 이상해(본명 최영근. 코미디언.)

[소속]
- 한국국악협회 이사장
- 前 중앙대학교 국악학과 겸임교수

[경력]
- 1975년 중요무형문화재 이창배 문하에 입문
- 1995년 중요무형문화제 묵계월 문하에 입문
- 1995년 동국대학교 예술대학원에서 연수
- 2000년 중앙대학교 국악학과 겸임교수
- 2002년 한·일 월드컵 홍보대사
-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소리 전수교육 보조자
- 한국국악협회 이사장

     

Track 4. 아리랑 Arirang

     

Track 5. 구아리랑 Old Arirang

     
     

본향은 바로 우리! 아리랑 전쟁

▲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자 지자체 간 아리랑 전쟁이 치열하다. 정선군의 ‘정선아리랑제’(왼쪽)와 문경시에 건립될 ‘아리랑박물관’ 조감도. photo 조선일보 DB

작년 12월 6일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자, 지자체 간 아리랑 전쟁이 뜨겁다. 아리랑은 씨름이나 택견, 종묘제례악 등의 무형유산과는 달리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전승·재창조돼 왔다. 언제 어디에서 누가 만들었는지는 물론 아리랑의 뜻에 대해서도 명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설만 있을 뿐 통설도, 정설도 없다. 그렇다 보니 ‘3대 아리랑’으로 불리는 정선·밀양·진도는 물론, 문경·서울까지 합세해 서로 자신이 ‘아리랑의 본향’이라고 내세우고 있다.

 

아리랑 사수 대작전

아리랑 사수에 대대적으로 나선 건 경북 문경이다. 문경시는 지난 1월 28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국립아리랑박물관 왜 필요한가’라는 주제의 정책토론회를 열고 국립아리랑박물관을 문경에 건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여명이 모인 이날 토론회에서 김장실 국회의원(새누리당·비례대표)은 “문경아리랑은 근대 아리랑의 시초”라며 “헐버트 선교사가 해외에 알린 아리랑도 문경새재아리랑”이라고 말했다. 이한성 국회의원(새누리당·문경예천)은 “아리랑고개가 문경새재를 의미한다는 학술보고가 잇따르고 있다”며 “경복궁 중건 당시 문경아리랑이 전국으로 구전되었다”고 주장했다. 문경시가 아리랑의 원조라고 주장하는 강력한 근거는 언어학자이자 선교사였던 호머 헐버트(Homer B Hulbert·미국)가 채보한 아리랑이다. 1896년에 헐버트가 채보한 아리랑의 가사에는 ‘아라릉 아라릉 아라리오 아라릉 얼사 배 띄워라/ 문경새재 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 다 나간다’는 대목이 있다.

문경시의 아리랑박물관 건립 계획은 꽤 진척됐다. 문경읍 진안리 1만3000여㎡의 땅에 1200억원을 들일 계획으로, 2013년에 착공해 3년 안에 건립한다. 건물 배치도와 구체적인 운영 프로그램까지 나온 단계다. 문경시는 2008년부터 ‘문경새재아리랑제’를 열고 있다.

강원도 정선군 역시 뒤지지 않는다. 정선은 아리랑의 유네스코 등재를 전후로 아리랑토론회와 공연을 펼친 데 이어, 곧 아리랑민속박물관을 건립하기로 했다. 또한 기존의 ‘정선아리랑제’를 ‘아리랑대축전’으로 바꿔 행사의 위상을 대폭 강화한다. 최승준 정선군수는 “국가기관인 ‘국립아리랑연구센터’(가칭)를 설립·유치해 정선을 아리랑의 메카로 만들겠다”며 “2014년 소치올림픽 폐막식에서 있을 차기 개최국 문화공연에 정선아리랑 공연을 올림픽조직위원회에 제안한 상태”라고 했다. 그는 또 “단일 곡조로 8700수에 이르는 가사가 생성된 것은 정선아리랑이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하다. 기네스북 등재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본조아리랑의 시발은 서울

▲ 호머 헐버트가 1896년 채보한 아리랑 악보.
현존 最古의 아리랑이다.

학자들 간에는 정선을 아리랑의 발생지로 보는 이가 많다. 아리랑 중 공인을 받은 것은 정선아리랑이 유일하다. 정선아리랑은 1971년 지방문화재인 강원도 무형문화재 1호로 지정돼 꾸준히 연구돼 왔다. 2009년에는 유네스코에 정선아리랑을 등재 신청했다가 국가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심의 보류 신청을 낸 바 있다. 정선은 1993년부터 정선아리랑의 전승 보존과 교육을 위해 ‘정선아리랑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2010년에는 지식경제부가 정선을 ‘정선아리랑 특구’로 지정했다. 아리랑 특구 지정은 전국 최초다.

경남 밀양시도 팔을 걷어붙였다. 밀양은 유네스코에 아리랑 등재 신청을 낸 직후부터 ‘밀양아리랑 길’ 조성에 착수, 얼마 전에 공사가 끝났다. 총 15㎞에 이르는 이 길은 역사와 문화, 유적을 체험할 수 있는 친환경 둘레길이다. 밀양은 밀양아리랑 마라톤대회, 밀양아리랑축제, 밀양아리랑가요제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밀양이 아리랑의 본고장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아랑의 전설’ 때문이다. 밀양시 영남루 아래쪽 절벽에는 ‘아랑각’이 있는데, ‘밀양아리랑’은 아랑의 슬픈 전설을 간직한 노래라는 것이다. 지난해 가을 방영된 신민아 주연의 드라마 ‘아랑 사또전’은 ‘아랑의 전설’을 모티브로 삼았다.

전남 진도군도 ‘진도아리랑’ 알리기에 열심이다. 지난 1월 28일 진도를 ‘민속문화예술특구’로 지정해달라고 지식경제부에 요청했다. 진도군 아리랑 거리 조성 등 진도아리랑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진도아리랑 글로벌 프런티어 사업’을 본격적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진도군 임회면에 있는 ‘진도아리랑 체험관’의 규모를 확충할 계획도 세웠다. 영화 ‘서편제’에서 구불구불한 돌담길을 배경으로 불렀던 아리랑이 바로 진도아리랑이다.

서울도 배제하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있다. 아리랑이 민족의 노래로 진화하기까지 두 차례에 걸친 붐이 있었는데, 하나는 경복궁 중건 당시 사당패가 부른 아리랑이고, 또 하나는 1926년 단성사에서 개봉된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이라는 주장이다. 지방 곳곳의 아리랑도 있지만 현재 두루 불리는 아리랑(본조아리랑)을 빼놓을 수 없으며, 본조아리랑의 시발은 서울로 봐야 하지 않느냐고 말한다. 경복궁과 단성사를 아리랑과 관련해 의미 부여를 하고, 이곳을 배경으로 아리랑 축제를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북한을 사이에 둔 南·北·中 삼각관계

▲ 아리랑을 서양에 소개한 호머 헐버트
(1863
~1949)선교사.

아리랑 점유 전쟁은 국내에 국한되지 않는다. 중국과 북한과도 얽혀 있다. 아리랑은 한민족의 정서를 담은 ‘민족의 노래’다. 시대에 따라 사랑가, 저항가, 노동요, 응원가 등으로 다양하게 변용돼 불렸다.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러시아, 중국, 미국 등의 해외 동포들 역시 아리랑을 애국가처럼 목메어 불렀다.

중국에 사는 재중 동포들과 북한에서도 아리랑은 널리 불린다. 중국이 아리랑을 동북공정의 논리로 이용하려 한다는 우려도 있다. 중국이 조선족 아리랑을 자국의 국가급 무형유산으로 발표한 게 결정적 계기가 됐다. 중국은 2009년 ‘아리랑타령’을 ‘성급(省級)’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데 이어, 2011년에는 ‘아리랑’을 국가급 유산으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에서 부랴부랴 특정 지역이 아닌 ‘전 국민이 부르는 아리랑’으로 수정해 유네스코에 등재 재신청을 했다.

이번 유네스코의 아리랑 심사 과정에서 중국 측이 이의 제기를 했다고 전해진다. 문화재청 국제교류과의 이예나 사무관은 “중국은 2012년 위원국이기 때문에 발언권이 있었는데, 한국의 아리랑이 등재될 경우 그 범위를 명확히 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현재 유네스코에 등재된 아리랑은 ‘아리랑, 남한에서 불리는 서정적인 민요(Arirang, Lyrical folk song in the Republic of Korea)’로 돼 있다.

중국이 향후 자국의 조선족 아리랑을 유네스코에 겹치기 등재 신청을 할 경우, 제도상 막을 수는 없다. 우리 측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위원국으로서 의견을 내는 정도다. 중국이 등재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북한과 연합해 아리랑을 등재 신청할 수도 있다. 중국은 2004년 북한과 공동으로 각각 보유하고 있는 고구려 고분 유적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한 바 있다. 문화재청 이예나 사무관은 “과거 우리도 아리랑을 북한과 공동 등재 신청하려는 계획이 있었으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고 대북 관계가 악화되면서 무산됐다”며 “선(先) 단독 등재를 하고 북한의 아리랑과 묶어서 후(後) 공동 등재를 할 계획도 있다”고 말했다. ‘아리랑 공동 등재’를 둘러싸고 우리와 중국이 북한을 사이에 둔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형국인 셈이다.

 

무형문화유산 관련법 제정

▲ 1926년에 개봉한 나운규의 영화 ‘아
리랑’포스터.

판소리, 강강술래, 줄타기, 택견 등은 일찌감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지만, 아리랑은 뒤늦게 등재됐다. 이는 우리의 무관심 탓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너무 흔하다’는 이유로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는 것. 아리랑을 문화재로 보호하기 위한 기존의 문화재보호법의 한계 탓도 있다. 그동안 아리랑을 국가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하자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하지만 중요무형문화재를 지정할 때에는 종목과 함께 해당 기·예능 보유자나 보유 단체를 함께 지정해야 하는 법규상 아리랑은 지정이 불가능했다. 특정인이나 특정 단체를 지정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에 문화재청은 보유자 없는 종목도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무형문화유산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아리랑을 ‘국가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키로 한 것. 이 법안은 지난해 11월에 발의됐으며 올 2월 국회에서 심의될 예정이다. 황권순 문화재청 무형문화재과장은 이 법안에 대해 “무형·유형이 포함된 기존의 법안 중 무형법만 떼어서 제정한 법안으로 구전과 전통, 표현, 민간신앙, 사회적 의식, 전통 지식까지 그 범위가 확대됐다”고 말했다. 또한 “‘문화재’라는 표현은 1960년대에 법안을 만들 당시 일본식 표현으로 ‘문화유산’이라는 표현이 적합하다. 문화재는 재화의 차원이라면, 문화유산은 헤리티지(Heritage)의 개념”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현재 진행 중인 아리랑박물관 건립 건이 있는데, 지자체 간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고민 중”이라며 “문경, 진도, 밀양, 정선도 유력하지만 전파 경로를 보면 서울도 논외로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학계 간 의견 분분

아리랑은 살아 숨 쉬는 생명체와 같다. 유네스코에서도 아리랑이 특정 지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여러 공동체에서 세대를 거쳐 재창조되고 다양한 형태로 전승된다는 점을 높이 샀다. 아리랑은 트로트, 신민요, 댄스, 록, 발라드, 힙합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응용돼 왔다. 알려진 노래만 해도 150곡에 8000여수에 이른다고 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라는 후렴구를 공통으로,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즉흥시처럼 불려왔다. 가슴속에 묻어둔 한을 3음보의 리듬에 얹어 부르고 훌훌 털어냈다.

아리랑의 본고장인 남북한과 중앙아시아 탐사 결과를 토대로 영문 저서 ‘Arirang of Korea-Han, sorrow and hope’(이지출판사)를 쓴 이정면(88) 유타대 명예교수는 책의 부제를 ‘한, 슬픔, 희망’으로 달았다. 그는 “우리 역사에서 한을 빼 놓으면 무엇이 남겠나. 한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상징이다. 그러나 아리랑은 한에 갇히거나 슬픔에 억눌리지 않고 벌떡 일어나 전진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했다.

아리랑은 누가 언제 어디에서 만들었는지도 모르고, 현재 진행형으로 재창조되다 보니 학계의 연구가 쉽지 않다. ‘아리랑’의 뜻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나의 도령’ ‘나의 낭자’ ‘푸른 물결(아리+이랑)’이라는 의미에서부터 신라 박혁거세의 비(妃) ‘알령’설, 고대 낙랑의 교통로인 ‘자비령’의 이름인 ‘아라’설, 경복궁 중건 당시 대원군의 폭정과 관련 ‘아이롱(我耳聾·나는 귀가 먹어 (원납전 내라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설 등 다양하다.

아리랑의 본향을 두고도 학자 간 논란이 분분하다. 저마다 자신의 고향이 아리랑의 본향이라고 주장하는 가운데 조용호 숭실대 국문과 교수(한국문예연구소 아리랑 연구기획위원장)와 한예종과 한양대에서 강의를 하는 김보희 교수는 ‘아리랑은 고대부터 대륙 곳곳에 존재했으며, 한반도에 와서 각 지역의 민요와 합쳐지면서 지금의 형태가 됐다’는 의견이다. 조용호 교수는 아리랑을 학문적으로 연구·분석해 집대성한 아리랑 박사다. 그의 저서 ‘아리랑 원형 연구’는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됐다. 김보희 한양대 교수는 저명한 언어학자인 고(故) 김선기 서울대 국문과 교수의 딸로 중앙아시아, 중국, 미국을 다니면서 아리랑 연구를 해 왔다.

 

기능 중복에 의한 과잉 투자 우려

아리랑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지자체 간, 국가 간, 학자 간 보이지 않는 전쟁은 점점 과열 양상을 띠고 있다. ‘아리랑 연구’를 표방한 사단법인 등 연구단체도 수십 개다. 이 전쟁을 중재할 수 있는 주체는 누구일까. 다양한 층위의 담론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아리랑의 꿈틀거리는 생명성의 방증이기도 하다. 문제는 지자체 간 기능 중복에 의한 과잉 투자다. 서로 원조라며 국비 예산을 끌어다 쓰는 과정에서 혈세 낭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교통 정리가 필요한 이유다. 조용호 교수의 말이다.

“지자체마다 아리랑의 원조라고 주장하는데, 근거가 없다. 노래 가사에 등장했다고 해서 원조라고 주장하는 건 곤란하다. 아리랑 연구는 철저히 역사적 토대를 바탕으로 음원학적 연구를 통해 학술적으로 행해져야 한다. 객관적인 검증도 필요한데 이를 해줄 주체가 없다. 아리랑의 역동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국가 차원의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음반으로 본 아리랑

신나라레코드, 20여종 아리랑 음반으로 남겨

올해 창사 30주년을 맞은 신나라레코드는 20여년 전부터 아리랑 관련 음반을 꾸준히 내 왔다. 음반 중에는 1930년대 활동하던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 혁명가 김산의 삶을 조명한 ‘김산의 아리랑’(2007), 헐버트 박사 서거 60주년 기념 음반 ‘쌀의 노래 아리랑’(2009), 남북 명창들의 아리랑창을 한 장에 모은 ‘남북 아리랑의 전설’(2003)도 있다.

김산은 1930년대 ‘Song of Ariran(아리랑 노래)’이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통해 아리랑을 민족의 노래, 역사적 노래가 되도록 하는 데 기여한 인물. 이 음반에는 김산의 파란만장한 삶을 소리꾼 김영임의 목소리로 담은 아리랑 ‘아리랑 연가’ ‘아리랑 옥중가’ 등이 실려있다. ‘쌀의 노래 아리랑’은 아리랑을 서양에 최초로 알린 미국인 언어학자이자 선교사였던 호머 헐버트가 “한국인에게 아리랑은 쌀과 같다”고 한 말에서 따왔다.

정문교 신나라레코드 대표는 “전국 곳곳에 생명체처럼 살아 숨 쉬는 아리랑을 채보해 지금 이 세대에 기록해두지 않으면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라며 “아무리 음반이 잘 팔리지 않는 시대라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민족의 노래 아리랑 (SP복각) (1992)
   한반도의 아리랑 (1994)
   해외동포 아리랑 (1995)
   북한아리랑 (1999)
   일본으로 간 아리랑 (2002)
   다시 찾은 아리랑 (2003)
   남북아리랑의 전설 (2003)
   진도아리랑- 남도 정서의 정수박이 그 보배로운
   3대 소리 (2003)
   대구아리랑 (2004)
   정선아리랑 (2004)
   김영임의 아리랑 (2004)
   아리랑환상곡1- 북한오케스트라로 듣는 관현악
   아리랑 (2005)
   본조아리랑의 수수께끼 (2005)
   아리랑낭낭 (2005)
   북한아리랑 명창전집 (2006)
   아리랑환상곡2- 북한오케스트라로 듣는 관현악
   아리랑 (2006)
   김산의 아리랑 (2007)
   쌀의 노래 아리랑 (2009)
   명물 아리랑 (2011)
   최영숙 아리랑 (2012)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기념 음반- 구동존이(求同存異). 아리랑의 재발견(창: 유지숙) (2012)
   역사적 기억의 전승- 의병아리랑 (2013)

 
 
 

 
 
 
 

Hangeul & Arirang

1) 경기아리랑 / 46×70 / 2012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은 언제나 슬프다. 가슴이 아리고 마음이 쓰리다. 하물며 그 대상이 님일 경우에야. 그래서 고개가 등장한다. 동구 밖엔 으레 고갯마루가 있고, 그 고개를 넘으면 이제 님의 모습은 눈에서 영 사라지게 된다. 당연히 고개는 흔히 눈물의 현장이 된다. 배웅하는 상대를 여기서 돌려보내야 진짜 이별이다. 여기서 눈물의 자리를 노래가 대신하게 된다. 아리랑 고개는 그래서 사랑하는 님을 떠나보내는 이의 마음마다에 자리하고 있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서글프다. 님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현실이 둘을 갈라놓은 것이기에 그러하다. 화자는 나와 님의 일 대 일 관계에서 ‘버리는 님’과 ‘버림받은 나’로 이원화시켜 노래하지만, 진실이 아님은 본인이 더 잘 안다.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역시 저주나 질책이 될 수 없다. 원망의 마음이 그저 직설적으로 토로되었을 뿐이다. 그만치 안타까운 마음의 역설적 표현이다.

우리 옛노래에서 님을 떠나보내는 여인들의 방식이 대개 이러했다. ‘설운 님을 보내’거나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기도 하고,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기 일쑤였던 것이다. 그 연면한 정서가 ‘아리랑’에서 다시 합류하고 응축된 것이다. 이 경기아리랑은 본아리랑이다. 아리랑의 교과서이자 냉전시대 남북의 이념대립마저 해체시킨, 그리고 세계인의 심금을 울린 바로 그 아리랑 말이다.

 

2)강원도아리랑 / 70×46 / 2012

감꽃을 줏으며 헤어진 사랑

그감이 익을땐 오시만 사랑

강원도아리랑 가운데 이 사설은 서정성 짙은 노랫말로 인해 착 가라앉은 분위기를 풍긴다. ‘감꽃을 주으며 헤어진 사랑’이니 늦봄의 이별이다. 온갖 꽃이 다투어 피는 봄철이면 사랑도 절로 무르익건만, 화자는 어쩐 사정인지 님과 헤어졌다. 그런데도 참 차분하다. 마치 연노랑빛 감꽃이 잎새 뒤에 숨어 수줍게 피어나듯이, 애틋한 마음은 한 자락 접어두고 소곤소곤 혼잣말하듯 읊조린다. 그래도 님과의 재회를 믿는다. 감꽃이 져 감 되듯, 봄날의 헤어짐이 가을날의 돌아옴으로 이어지리라는 믿음. 맞다. 계절은 또 어김없이 돌아오지 않는가.

 

3)정선아라리 / 37×49 / 2012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정선은 아리랑의 본향이다. 전설은 그 오랜 역사를 설명하기도 한다. 그만큼 호소력 있는 사설과 구성진 가락을 지니고 있다. 정선아라리의 첫 사설인데, 역시 구성지다. 일기를 첫 말머리로 삼는 것은 우리 민족의 오랜 관습이다. 그런데 눈·비·장마, 그것도 억수장마가 등장한다. 흥이 아닌 한의 정서, 활기 대신 우수가 예상되는 서두이다. 기실 세상살이가 어찌 기쁨과 보람으로 점철되리오. 이별, 기다림, 그리움의 일상에서 우리는 내심을 감추고 다른 무엇으로 에둘러 표현한다. 그 가장 쉬운 대안이 우리에게는 날씨이다.

4)정선아라리 / 78×57 / 2012

바람도 살랑 구름도 몽실

이내 문전에 님도 살랑

바람이나 구름의 자연물도 부드럽지만, 의태어 ‘살랑’이나 ‘몽실’은 또 어떤가. 우리 아리랑에 이토록 예쁘고 정감 있는 노래가 있어 참으로 행복해진다. 사랑이 꼭 치열한 감정을 드러내기만 하는 것이 아님을, 이 사설은 우리에게 일러준다. 한 자락 꺾어 슬쩍 흘려 표현해도 사랑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게 더 애틋하다. 정말 님이 문전에 와 있지는 않을까. 얼른 일어나 문부터 열어봐야겠다.

 

 

5)밀양아리랑 /  70×46cm / 2012

날좀보소 날좀보소 날좀보소

동지섣달 꽃본듯이 날좀보소

사설이나 가락에서 이보다 더 경쾌한 아리랑은 찾기 힘들다. 가히 흥겨움의 으뜸이라 할 만하다. ‘날 봐달라’는 호소는 마치 아이들의 투정 같다. 하지만 이어지는 구절이 앞의 직설을 상쇄시킨다. ‘동지섣달에 핀 꽃’은 얼마나 경이로운가. 내용의 실인즉 ‘나를 꼭 마음속에 담아달라’는 필사적 호소이지만, 그 표현은 짐짓 여유롭다. 뒷 구절의 이 비유를 만나면 나의 가치는 억지를 부림이 없이 일시에 수직상승한다.

이어지는 사설은 더 밝고 더 예쁘다. 그토록 그리던 님. 실은 애타도록 그리던 그 님과 모처럼 마주칠 기회가 왔건만, 아무 내색을 못한다. 그게 진짜 사랑이다. 짝사랑해본 이는 알리라. 사랑의 대상 앞에 서면 왜 그리 말문이 막히고 애꿎은 표현만 연속되는지. 그래도 얼굴 붉히고 도망갈 정도의 쑥맥은 아니었으니, 이 화자 일면 깜찍하다. 어쩌면 상대방과의 커뮤니케이션은 100% 달성되었을지도 모른다.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방긋’.

 

6)진도아리랑 /  70×135cm / 2012

노다가세 노다나가세

저달이 떴다지도록 노다나가세

이쯤 되면 달관이다. 아등바등 살아도 한평생, 물 흐르듯 내맡겨도 한평생. 부와 권력, 학식과 명예는 누구나 추구하는 가치이다. 그래서 우리는 남보다 더 노력하고, 한 발이라도 앞서기 위해 끝없는 경쟁에 내몰린다. 사설은 이런 현실을 한방에 무화시킨다. 그래서 어쩌라고. 이 노래는 우리에게 되묻는다. 어떤 삶이 진정 잘 사는 것인지를. 얼핏 노·장류의 철학이 읽히기도 한다. 아니, 일등지상주의 현 세태에 대한 죽비가 되어 우리 등을 후려친다.

 

7)해주아리랑 / 78×57cm /  2012

수양산 진달래 만발한데

님하고 나하고 꽃구경가세

여느 아리랑과는 달리 밝고 환하다. 그만치 흥에 겹다. 수양산은 황해도 해주에 있다. 산등성이를 붉게 물들이는 진달래는 봄의 전령이다. 꽃구경만으로도 즐겁고 님과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두근거리는데, 님과 함께 하는 꽃구경이다. 봄처녀의 가슴은 또 얼마나 설레었을까. 그래서 문득 궁금해진다. 과연 진달래꽃이 더 붉었을까 내 뺨이 더 붉었을까.

 

8)해주아리랑 / 116×91cm  / 2012

저기 가는 저 아가씨 눈매를 보소

겉 눈을 감고서 속 눈만 떳네.

본 작품의 내용은 해주아리랑이며 황해도 해주지방에서 불리는 아리랑의 한가지다.

주로 서정시를 다룬 순박한 향토 민요로 알려져 있다.

멋쟁이 아가씨, 겉으로는 도도하지만 속으로는 예뻐 보이고 싶고 관심 받고 싶은 어여쁜 아가씨의 자태를 표현하려하였다. 마스킹테이프의 화려함과 먹선을 이용한 속눈섭과 실눈의 곡선을 담아내고자 하였다.

 

09)진도아리랑 / 116×91cm / 2012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 속엔 희망도 많다.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