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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1992 (3집) - 한영애 (1992 서울음반)

리차드 강 2015. 2. 4. 17:39

1992

앨범: 1992 (3집) (1992 서울음반)

한영애 Han, Yeong-Ae (1955- )

Side A1. 말도 안돼 - Track 전곡 연주

     

Album Title: 한영애 3집: 1992
Artist: 한영애 Han, Yeong-Ae (1955 -  )

Audio LP (March 14. 1992)
Recorded in Studio
# Of Tracks: 8
Album Type: 정규, studio, 3집
Label: 서울음반
Copyright: (c) 1992 서울음반)
Duration: 40:38
Ggnre/Stlye: 포크, 팝

     

 
     

Side A

A1. 말도 안돼
A2. 부서진 밤
A3. 조율
A4. 멋진 그대여

Side B

B1. 이별 못한 이별
B2. 마음 깊은 곳에 그대로를
B3. 이어도
B4. 말도 안돼 (희망은 사람의 몫, Remake)

 

작사:한영애 작곡:한영애
작사:정원영 작곡:정원영
작사:한돌 작곡:한돌
작사:장제훈 작곡:이영재

 

작사:한영애 작곡:이정선
작사:이주호 작곡:이주호
작사:이정선 작곡:이정선
작사:한영애 작곡:한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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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S

레코딩 스튜디오 : SONG'S STUDIO

Producer : 송홍섭
Arrangement : 송홍섭
Arrangement (부서진 밤) : 정원영
Recording & Mixing Engineer : 고영환
Recording Studio : Song's Studio (1991, 가을.겨울)
Assistant Engineers : 황기연, 윤정오
Photo : 여동완
Jacket Design : 황정숙

송홍섭씨, 그리고 Song's Studio의 음악친구들 고마왔습니다. 한영애

     

 

 
     

음반 소개

한영애 3집: 1992

당시 많은 매체에서는 그녀의 3집을 두고 '탈(脫) 언더그라운드'라는 타이틀로 소란을 피워댔다. 대마초 사건 등으로 신촌 블루스가 와해되었고 한 팀이기도 했던 김현식은 고인이 되었으며 그것은 '언더 문화' 하면 상징물처럼 떠올려지던 포크 세대들의 잠식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므로.

사실상 당시 연극적인 콘서트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던 그녀에게 의식이나 저항의 모티브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블루스 가수로서 터를 확실히 잡은 후 뭔가 색다른 것을 찾아 좀이 쑤시던 그녀가 발표한 <말도 안돼>는 강한 록 계열의 시도로 세인의 이목을 주목시켰다.
노래를 한 편의 시로 형상화하는 작곡가 한돌의 작품인 '조율'의 웅장한 코러스와 기승전결의 착실한 단계를 밟아나간 곡 진행은 차라리 감동적이라는 표현이 옳다. 앨범 중 고전적 발라드 풍의 애절한 사랑 노래로 사랑을 받았던 '이별못한 이별'은 강하고 록적인 분위기에 뭉뚱그려진 본작의 숨겨진 백미다.

70년대 중후반 4인조 포크 보컬 그룹 해바라기의 일원으로 등장한 한영애는 하나의 앨범이 얼마나 절대절명의 것인지를 본능적으로 꿰뚫어 보았다. 블루스를 탑재하고 86년 벽두에 나온 그의 첫 솔로 앨범과 <누구없소>에서 <바라본다>까지 숨막히는 긴장감이 팽팽하게 아로새겨져 있는 88년의 두번째 앨범에 이어 4년만에 발표된 이 앨범에 이르도록 그는 완전연소의 비등점에서 불타 오를 때까지 침묵에게 소리를 양보하는 집요한 견인주의의 작은 성채를 쌓는다. 어느 누구에게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없는, 일년에 한장씩의 '판'을 소모적으로 내놓아야 하는 스타시스템과 음반산업계의 강박관념은 그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송홍섭의 베이스, 박청귀와 신윤철의 기타, 배수연과 김민기의 드럼, 정원영의 키보드의 도움을 받으며 한영애는 그의 음악적 출발점인 모던 포크와 비상의 교두보 역할을 한 블루스에 기반한 그 특유의 록과 두터운 발라드의 실타래를 올올히 풀어 낸다. 한돌이 제공한 <조율>을 통해 그는 김현식도 미처 도달하지 못했던 통찰력과 보컬 카리스마의 결합을 일구어 내고 그의 첫 앨범의 대부인 이정선으로부터 선사받은 <이어도>의 여백을 그의 선배보다도 더 깊게 형상화한다. 그러나 이 앨범의 백미는 역시 앨범의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오로지 자신에 의한 첫번째 노래 <말도 안돼>일 것이다. 이 노래에는 그가 걸어온 모든 음악의 스타일과 이상이 스며들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은 '세상이 변했으니 어쩔 수가 없다고/변하는 건 당연해 어떻게가 중요해'라고 힘주어 말할 수 있는 그의 고집인 것이다.

     

 
     

한영애 [신촌블루스, 해바라기, 남사당] Han, Yeong-Ae

새로운 음악이 태동하던 1970년대 중반 신촌엔 당시 엄인호, 이정선, 김의철 등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

카페에서 음악을 듣고, 노래를 부르고… 그렇게 자유롭게 취미로 시작한 음악을 한영애는 직업처럼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런 시절 때부터 천성이던 거친(?) 특유의 허스키 보이스… 당시 신촌 일대에서 이름을 떨치던 김의철에 의해 "해바라기"멤버로 발탁되어 정식적인 음악세계로 발을 들여 놓기 시작한다. "해바라기"의 리더였던 김의철이 건강의 악화로 탈퇴하면서 또 한명의 거물인 이정선에게 바통을 넘긴 통기타 그룹 "해바라기"는 1집과 2집을 발표하게 되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가 담긴 음반을 내게 된 것이다. 이 시기와 비슷하게 한영애는 자신의 솔로 앨범을 내지만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정식 발매되지 못했다. 후에 모 음반사에 의해 자신의 허락 없이 무단으로 발매 된 음반 역시 실패하게 된다. 이때가 1978년 즈음… 한영애는 이때 가수활동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고 친구의 대학 연극 졸업작품의 뒷풀이 마당에서 우연한 기회에 연극무대 제의를 받게 된다.

한영애의 연극인으로의 활동은 극단 "자유극장"에서 시작되었다. 무려 6년 동안 가수 활동을 중단한 채 연극에만 몰두했던 것이다. 그 후 3년 동안의 휴식기간을 가지며 한영애는 음악을 잊지 못해 결국 가수의 무대로 돌아 오게 된다. 1986년 "여울목", "건널 수 없는 강" 등의 노래를 담은 "한영애 솔로 1집"을 발표하여 큰 호응을 얻으면서 가수로 복귀한 한영애는 수많은 개인 발표회와 신촌블루스 모임에 참가하며 각종 콘서트 활동을 한다. 2집을 거쳐 3집까지 공식 앨범을 발표하고 그녀는 63빌딩에서 아.우.성이라는 개인 발표회를 갖고 이 콘서트 실황을 앨범으로 발표하였다.

한영애는 이 시점을 그 전까지 자신의 음악에 획을 근 시기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새로운 음악적 전기를 맞고 싶어했다. 올해 7월 5집을 발표하기까지 한영애는 그녀의 의지대로 심플한 음악을 시도하였다. 어느새 한영애는 중견의 소리를 들어도 될 정도의 음악활동을 해왔다. 아.우.성 앨범을 기준으로 그 전의 험난한(?) 그녀의 음악활동에서 한영애는 긴 터널을 통과해 왔다. 힘들었다면 힘들었을 그녀의 음악은 이제 쉼을 얻었다. 음악을 아는, 음악활동을 할 줄 아는 한영애의 음악은 이제 넉넉함 과 여유로움이 묻어 난다. 아.우.성 앨범을 발표한 후 개인 콘서트, 다수의 연극과 옴니버스 위주로 활동하는 그녀는 이제 한국 블루스계의 여성 보컬로서 굵은 한줄기가 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