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선의 여성음악인 열전 양희은, 삶과 꿈을 실은 진솔한 목소리 2005-05-13[최지선 _ 대중음악 평론가] ◀ 양희은의 첫 독집 음반 《아침이슬/Puff(고운노래 모음)》(유니버어살, KLS-26, 1971)과 두 번째 독집 음반 《서울로 가는 길/그 사이(고운노래모음 2집)》(유니버어살, KLS-40). 국내 팝송계의 경우 포크송 붐과 함께 많은 여자가수(특히 대학재학중인 아마가수)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데, 포크 싱거란 기타나 목소리에 못지않게 독특한 자기의 내면세계를 노래에 담을 수 있어야한다는 어려움 때문인지 아직은 몇몇 개성있는 가수를 빼면 모두다 성장과정에 있는 상태. 최근 여자 포크 싱거의 출현을 절감한 연예계의 집중각광을 받아 두드러진 여자포크 싱거의 선두 그룹으로는 양희은(20)과 김은희(22)를 들 수 있다. 양희은은 지난 1년 동안 특히 CBS의 집중지원을 받아온 탓으로 충분한 준비기간을 거친 셈인데 그의 노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나 <그날> 등에선 주디 콜린즈를 닮은 특유의 경지를 보이고 있다. 京畿女高를 거쳐 西江大 사학과에 재학중인 학생가수. 금년초부터 본격적인 연예활동을 시작했고 지난 2월 YMCA 「청개구리집」에서 가진 리사이틀을 통해 재질과 충분한 저력을 과시한 바 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작사작곡 미상인 대학가의 노래. 청순한 음색과 쾌활한 성격이 호감을 주고 있고 최근엔 빅살롱 코스모스 「성전」등에 겹치기 출연, 다운타운을 누비고 있다. 「한국의 포크 스타들 <10> 김은희 양희은」, 『일간스포츠』 1971년 6월 12일 양희은은 1970년대 초반 김민기와 짝을 이루며 한 시대의 상징이자 청년문화의 핵심으로 부상한다. 포크 가수들이 여러 막후인물들의 조력에 힘입어 느슨하게나마 포크 공동체를 형성해, 대학가뿐 아니라 명동을 중심으로 한 살롱가, 포크 음악을 틀어주는 방송가에 진출했는데, 그 중심에는 양희은이 있었다. 그녀는 한국 포크의 산실이었던, YWCA의 ‘청개구리’를 거쳐, 젊은이의 성지 ‘오비스캐빈’에 단골지기로 자리를 차지하며 한국 모던 포크 씬의 상징으로 군림하기 시작한다. 양희은은 킹 레코드를 통해 매년 한 장 이상씩 꾸준히 음반을 발표했다. 그녀가 발표한 첫 독집 음반은 1971년 《아침이슬/Puff(양희은 고운노래 모음)》이다. 국민 애창가요가 되어버린 전설의 노래 <아침이슬>이 수록된 음반이다. 부언하면 새로운 인물들의 곡들이 그녀의 음반을 통해 발표되었다. 바로 김민기와 김광희가 그들인데 이 음반에서 김민기는 두 곡(<아침 이슬>, <그 날>)을 작사 작곡했고, 김광희는 한 곡(<세노야 세노야>, 작사는 고은)을 작곡했다. 연주는 김민기와 더불어 이용복의 기타 협주로 단촐하게 이루어졌다. 특히 김민기 특유의 명민하고 단아하면서도 아기자기한 기타 연주와, 양희은의 맑고 청아한, 때로는 힘이 있는 목소리가 어우러져 새로운 파장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대개 이 당시의 관행처럼 이 음반도 번안곡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세 곡의 창작곡 이외에 나머지는 번안곡들인데, 피터, 폴 앤 메리(Peter, Paul & Mary)의 <Puff>를 비롯해 <Both Sides Now>, <Try To Remember> 등 음반 뒷면은 아예 번안곡들로 채워져 있다. ▶《서울로 가는 길/그 사이》 연주나 편곡의 측면을 보면 보다 다양한 편곡과 연주를 통해 풍성한 사운드가 표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민기(1971), 쉐그린(1971), 한대수(1974) 등의 음반작업에 참여해 포크 음악계의 ‘메신저’ 역할을 했던 정성조와, 그의 재즈 쿼텟(정성조 쿼텟)이 연주하는 드럼, 베이스, 플루트나 피아노 협연은 사운드를 보다 풍성하고 다채롭게 직조해내고 있다. 블루지한 <새벽길>이나 휘파람과 웃음소리 등이 삽입된 <인형>처럼. <작은 연못>과 <백구>는 포크 음악과 불가분의 관련을 맺었던 강근식과 김민기의 기타 이중주로 빛을 발한다. 1973년에도 양희은의 ‘고운노래모음’ 시리즈가 발표되었는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나도 몰래(고운노래모음 제3집)》에는 김민기의 곡이 빠진 대신 두 여성 포크 음악인이 관여했다. 온전한 의미의 싱어송라이터로 기록될 방의경의 <불나무>와, 포크 음악계의 ‘얼굴없는’ 작곡가로 알려지기 시작한 김광희의 <가난한 마음>이 그것이다. 그외에 조동진(<작은 배>), 서유석(<하늘>), 신중현(<나도 몰래>) 등이 수록되었다. 1960년대 말 펄 시스터스, 이정화, 김추자, 박인수 등의 가수들의 노래를 통해 ‘잘 나가는’ 소울․사이키델릭 작곡가였던 신중현이라는 이름이 포크 가수 양희은과 그녀의 독집 앨범에 등재된 것은 《당신의 꿈/나도 몰래》(1973)에서이다. 이후에도 양희은은 이주원(<내 님의 사랑은>, <한 사람>), 김정호(<보고 싶은 마음>, <빗속을 둘이서>), 이수만(<세월이 가면>) 등 다양한 이들의 작품을 노래했다. 그후에도 그녀의 활동은 이어졌는데 양희은과 김민기의 재조우는 1978년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을 통해서였다. 1985년에는 하덕규의 곡인 <한계령>, <찔레꽃피면> 등을 노래했고, 1991년에는 이병우의 작품집을 발표했다. 최근에는 김의철과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한편 1970년대에 CBS <우리들>, <세븐틴>, <영 840>, <꿈과 음악사이에> 등 라디오 프로그램의 DJ를 맡기도 했는데 이것이 현재의 DJ라는 직업으로 이어졌다. 엘리티즘과 아마추어리즘, 순수주의와 자연주의, 그리고 무성성 ▶ 소울 작편곡가 신중현과 양희은의 만남을 보여주는 양희은은 김추자와 더불어 한국 여가수의 한 전형 혹은 새로운 여성성을 정립했다. 관능적이고 분방한 ‘소울 가수’ 김추자와는 대조적으로, 양희은은 이지적이고 단아한 ‘포크 가수’의 이미지를 표출시킨 것이다(상징적이게도 두 가수가 신중현 작곡의 동일한 곡 <나뭇잎이 떨어져서>를 부른 바 있다). 단적으로 말해 양희은의 노래들은 양희은 개인의 차원이 아닌 포크 전체의 상징을 그대로 드러낸다. 먼저 섹슈얼리티 차원에서 본다면 그것은 무성(無性)적인 혹은 중성적인 것이었다. 이점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모던 포크의 전반적인 속성을 알아봐야 할 것이다. 1970년대에 한국에서 꽃을 피운 포크 음악은 청년문화의 아이콘이었다. 잘 알려져 있듯 이때의 청년문화는 청바지, 생맥주, 그리고 통기타, 곧 포크 음악으로 상징된다. 그런데 이 청년문화 혹은 포크 음악은 대학생, 지식인 문화에 가까운, 일종의 엘리트주의를 근간으로 한 것이었다. 이 때 남녀의 구별은 중요하지 않았다. 또한 포크 음악은 별다른 테크닉을 요하지 않는,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악이었다. 통기타, 즉 어쿠스틱 기타의 쉬운 코드만으로도 누구나 노래를 (만들고) 부를 수 있었기 때문에 남성은 물론 여성에게 접근하기 쉬운 것으로 치부되었다. 그룹 사운드 음악 혹은 록 음악이 테크닉 중심주의에 경도되었다는 점에서 그 분야에 여성 연주자나 보컬리스트들이 드물었던 것과는 대비된다. 이것은 거칠고 강한 음악이 전통적인 여성성과 대비된다고 인식된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앞서 말했던 것처럼 포크는 관습적 여성성이 드러난 음악이 아니라 그것이 삭제된 것이었고 한편으로는 대학생 혹은 청년의 일부였다. 포크의 아마추어리즘과 무성성이 결합된 이 형태를 ‘새로운 여성성’이라고 호명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또 한 가지, 포크는 자연스러움과 순수함에 입각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주로 전기 증폭에 의한 왜곡 없이 꾸밈없는 사운드를 표출했는데, 사운드만큼이나 포크 가수의 노래는 낭랑하고 청아한 목소리를 자랑했다. 사실 자연스러움 자체도 일종의 연출이자 일종의 왜곡이겠지만……. 어쨌든 이러한 사운드는 메시지와 보컬을 강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양희은의 음반들. 《불나무》(1972),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나도 몰래(고운노래모음 제3집)》(1973), 《내님의 사랑은/작은 배》(1976)(왼쪽부터) 이와 같은 포크 이데올로기는 양희은의 음악에 집대성되어 있다. 무성적 혹은 중성적인 분위기는 무엇보다 양희은의 외양을 통해 상징화된다. 자연스럽게 기른 생머리 혹은 짧은 커트머리와 함께 청바지에 셔츠 차림의 모습 말이다. 한편으로 양희은의 목소리는 또렷하고 정확한 발성, 낭랑하고 맑은 톤으로 당시 주류 음악의 과잉된 정서가 아닌 절제되고 관조적인 서정성을 표출한다.《고운노래모음 제2집》을 예로 들면 무언가에 대한 동경과 상념은 <아름다운 것들>(방의경 작사․외국곡)에 표상되기도 하고 길과 바람을 찾아 헤매이는 청년의 고뇌는 <아무도 아무데도 찾아갈 곳 하나없소>(<아무도 아무데도>)라는 독백에 담겨있기도 하다. 개인적인 내면의 고백이든, 정치적인 참여이든 개인이나 집단의 진실을 반영하고자 하는 포크의 이상(理想)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1978)(위),《찔레꽃 피면》(1985) 앞서 말한 것처럼 양희은이 부른 노래들은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는 보컬 및 메시지 중심적 구성에 입각해 성기고 담백하며 튀지 않는 연주(반주)가 주를 이룬다. 물론 양희은이 부른 노래들에는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 위주의 ‘통기타 순수주의’만을 고집한 것이 아닌 다양한 연주인과 작곡가들의 나름의 다양성이 첨부되어 있다. 앞에서 설명했듯 재즈 이력을 가지고 있던 정성조나, 소울․사이키델릭 작편곡가 신중현의 곡을 부른 것처럼. 1980년대에도 이주원, 하덕규, 조동진 등 한국의 대표적인 ‘언더그라운드’ 음악인들의 곡을 부르기도 했다. 물론 가창과 연주뿐 아니라 작곡도 스스로 하는 싱어송라이팅 능력이 포크 본연의 이데올로기였음을 상기해보면 양희은이 포크의 전형에 부적합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시대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모든 포크 가수가 자작의 가수가 아니었음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앞서 언급한 기사들을 보면 여성 포크 가수들이 아주 흔한 시대는 아니었다(본인이 작곡한 곡을 본인이 연주하고 노래하는 여성 포크 가수로는 방의경의 경우가 있다). 양희은의 목소리는 일개인의 노래를 뛰어넘어 한 시대, 특히 1970년대 초중반의 포크 공동체 그 자체의 모습을 현현한다. 또한 시대의 은유, 청년의 이상, 삶의 풍경을 때로는 토로하듯, 때로는 위무하듯, 때로는 결의하듯 이토록 진솔하고 씩씩하게 노래할 수 있는 여성 보컬리스트가 또 어디있겠는가. 나아가 꾸준하고 지속적인 생명력을 키워나갔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점이 아닐까. 편집 : [강문영] 출처 : 컬쳐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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