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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 걸작선-The Best Music of Bach | 音香 클래식

리차드 강 2015. 4. 9. 13:14

The Best Music of Bach

Bach, Johan Sebastian 1685. 3. 21-1750. 7. 28 독일

토카타와 푸가 BWV565

Brandenburg Concerto No.3

Brandenburg Concerto No.6

Brandenburg Concerto No.5

무반주 첼로조곡 BWV1007

나의 기쁨이 되신주 BWV 147

     

[작품]

기악곡, 3개의 《바이올린협주곡》, 6곡의 《브란덴부르크협주곡》, 무반주 바이올린의 소나타와 파르티타, 무반주 첼로를 위한 모음곡 등은 이 시기에 작곡된 것들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밝은 빛으로 충만되어 있는데, 이것은 바흐의 사회적 ·가정적인 행복이 반영된 것이라 하겠다. 20년에 아내 마리아 바르바라가 죽자, 이듬해 35세의 바흐는 안나 막달레나를 새로 아내로 맞이하였다. 그리고 그녀를 위하여 《막달레나를 위한 클라비어 곡집》 (《프랑스모음곡》도 포함)을, 그리고 장남 프리데만을 위하여 《인벤션》을 작곡하였으며,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도 이 시기에 정리된 것이다.

1723년 바흐는 라이프치히의 성토마스교회의 칸토르에 취임하여 죽을 때까지 27년간을 교회음악가로 보내게 된다. 그의 임무는 기악과 성악의 개인지도와 합창단의 훈련, 그리고 이 도시의 교회음악을 작곡하는 일이었다. 성토마스교회와 성니콜라이교회에서는 일요일마다 칸타타가 연주되었고, 성금요일에는 수난곡이 불려졌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의 하나님은 견고한 성이로다》 등을 포함한 140곡 이상의 교회칸타타, 《마태오수난곡》을 포함한 몇 곡의 수난곡, 《마니피카트》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나단조미사》 등 많은 교회음악이 작곡되었다. 이 라이프치히시기를 ‘교회음악의 시대’라고 부르는 것은 어느 면에서는 옳지만, 사실상 그는 이 때 대학생의 연주단체를 위해 많은 세속적인 칸타타와 클라비어 협주곡도 작곡하였고, 만년에는 대위법작법의 극치라고도 할 수 있는 《골트베르크변주곡》《음악의 헌정》《푸가의 기법》 등도 작곡하였다. 그러나 이 최후의 《푸가의 기법》은 급속히 쇠약해진 시력과 뇌졸중의 발작으로 미완성으로 끝났다. 결국 실명한 그는 7월 28일 오후, 복용해 온 약의 해독으로 급격한 전신 허약증세를 일으켜 별세, 성 요한교회의 묘지에 묻혔다.

 

[작풍]

바흐는 대략 17세기 초엽에서 시작되는 바로크음악의 총괄자라고 할 수 있다. 우선 그는 독일의 전통적인 대위법 예술 속에서 성장하였으며, 북독일의 북스테후데와 남독일의 파헬벨의 오르간음악의 작법을 습득하였다. 다음에 코렐리와 비발디로부터 이탈리아음악의 명쾌한 협주양식과 풍부한 화성, 그리고 라틴적인 형식감을 도입하였으며, 륄리와 쿠프랭에게서 프랑스음악의 섬세한 건반작법과 대담한 프랑스식 서곡을 배웠다.

이러한 당시의 온갖 음악의 전통과 각 국민의 양식이 바흐의 천재적인 개성 속에서 융화되어 긴장도가 높은 독특한 음악을 낳게 한 것이다. 그러나 바흐를 전통적인 보수주의자, 여러 양식의 총괄자로서만 평가하는 것은 잘못이라 하겠다. 그의 작풍에는 베토벤이 낭만파를 예견하고, 바그너가 20세기의 음악을 예견한 것과 같이, 훗날 발생한 고전파의 양식을 암시하는 많은 특성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기독교한국루터회가 뽑은 ‘세계를 빛낸 10인의 루터란’의 한 사람이다.

 

[푸가] [Fuga]

모방대위법에 의한 악곡형식(樂曲形式) 및 그 작법.

원래는 ‘도주(逃走)’의 뜻으로 음악용어로는 둔주곡(遁走曲) ·추복곡(追覆曲) 등으로 번역된다. 그 전에는 카논을 뜻했으나 17세기 이후부터는 모방대위법에 의한 보다 완성된 음악형식과 악보 적는 법을 의미하게 되었다.

구조】 푸가는 역사적인 변화를 거쳐 그 발전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J.S.바흐의 시대에 이르러서도 여러 가지 형태를 보였으나 대부분의 푸가는 다음과 같은 공통된 특징을 지니고 있다. ① 정해진 수의 성부(聲部)를 지닌 대위법양식으로 되어 있다. ② 주제와 이의 모방이 악곡구성의 기초를 이룬다. 주제는 먼저 곡의 첫마디에서 제1성부로 나타나며 다른 성부들이 차례로 이 주제를 모방해 나간다. 이 때 주제의 원형과는 대개 5도 위나 4도 아래의 모방이 교대로 나타나며 뒤의 모방을 주제에 대한 ‘응답’이라고 한다. 제2성부가 응답을 시작하면 주제를 제시하고 끝난 제1성부는 대위구(對位句)를 이루게 되는데 그 관계는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그러나 성부가 주어지는 순서는 자유이다. ③ 이상과 같이 주제의 모방으로 이루어진 부분을 제시부(提示部)라고 하며 이 제시부의 사이사이에는 주제와는 별개의 자유로운 대위법에 의한 간주부가 끼이게 되고 푸가는 이 제시부와 간주부로써 이루어진다. ④ 위에서 든 공통된 특징 외에 주제의 확대 ·축소 ·자리바꿈 ·스트레토(응답이 주제가 끝나기 전에 나타나는 수법) 등의 수법도 자주 쓰이며 2개의 주제를 지니는 2중푸가나 3개의 주제를 지니는 3중푸가도 가끔 볼 수 있다.

역사 푸가의 선구자는 16세기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기악형식인 리체르카레 와 칸초네 등이다. 가브리엘리와 프레스코발디 등이 육성시킨 이들 형식은 독일에 들어와 17세기에는 푸가로 발전했으며 셰리, 샤이트, 프로베르거, J.C.F.피셔 등이 푸가의 대위법 기술을 다듬어 그 형식을 명쾌하게 만들어 나갔다. 이들의 업적을 이어받은 바흐는 푸가의 정점을 이룩하였으며 바흐의 푸가는 조성(調性)에 의거한 밀도 높은 대위법인 동시에 특히 인상 깊은 개성적인 주제를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바흐 이후 푸가는 독립된 형식으로 쓰이기보다는 흔히 다른 악곡의 한 부분으로 쓰였으며, 특히 베토벤 후기에는 소나타와 현악4중주곡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힌데미트와 버르토크 등의 작품에서 푸가의 뛰어난 형식을 찾아볼 수 있다.

 

[클라비어] [Klavier]

건반이 달린 현악기(쳄발로· 클라비코드·피아노 등)의 총칭.

오늘날 피아노의 뜻으로 쓰는 경우가 많으나 1775년경까지는 일반적으로 쳄발로나 클라비코드의 어느 한쪽 또는 양쪽을 다 가리켰다. 따라서 J.S.바흐의 《클라비어연습곡집》이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이라고 했을 경우의 클라비어가 어느 악기를 가리키느냐는 쉽사리 단정할 수가 없다. 그후의 P.E.바흐와 같은 세대의 작곡가들에게는 이 말은 클라비코드를 가리켰다. 또한 프랑스에서는 오르간이나 피아노 등의 건반악기의 건반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은 바흐 예술의 총합성을 잘 표명하고 있다. 첫째로 이 곡집은 당시에 유행하고 있던, 또 전해지고 있던, 즉 역사와 현재에 있어서의, 음악의 여러 양식의 총합이다. 그것을 바흐는 각별히 전주곡 파트에서 이루어 놓았다. 이어서 푸가는 라틴적 형식미를 중시하는 예술의 독일적 심화를 상징한다. 아울러 전주곡과 푸가의 짝을 이루는 것은 사색의 자유와 논리의 엄격에 대응한다. 둘째로 이 곡집은 독일적 음악이론의 집대성이다. 곡집의 제1권, 제2권이 24곡을 포함한 것은 근대적 음악에는 장단 합쳐서 24의 조성이 있기때문이다. 동시에 이 곡집이 잘못 번역되어 일반적으로 <평균율......>이라고 불리워지고 있는 것은 그 당시에 고안된 가장 새로운, 그러나 비 평균율의 이론에 의거하여 쓰여졌기 때문이다. 바흐의 <알맞게 조율된 클라비어를 위한 곡집>은 음악의 형태에 있어서 수학과 감성의 일체가 된 이론에 있어서 전적총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곡집은 바흐적인 심원한 총합을 이루기에는 한가지 결여되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바흐는 곡집 1권 말미에 S.D.G라고 적는것을 잊지 않았다.

Soli Deo Gloria---오직 신에게만 영광이라는 말은 물론 바흐의 발명도 아니려니와 그만이 쓴말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 말이 바흐에게 특별한 뜻을 갖는 것은 기교적인 즉 인간의 손에 의해 창조된 음악이 좋은울림 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궁극에 있어서 신이 창조한 질서를 반조하기 때문이며, 또한 그 한도 안에서 아름다운 음악은 오직 신의 영광에 귀속되기 때문이다.

 

[칸타타] [Cantata]

'Wachet auf, ruft uns die Stimme' Cantata 140,

눈 뜨라고 부르는 소리 있어

 

17세기 초엽에서 18세기 중엽까지의 바로크시대에 가장 성행했던 성악곡의 형식.

이탈리아어의 cantare(노래하다)에서 파생된 말이다. 보통 독창(아리아와 레치타티보) ·중창 ·합창으로 이루어졌으나, 독창만의 칸타타도 있고 또 처음에 기악의 서곡이 붙어 있는 것도 적지 않다. 그리고 가사의 내용에 따라 세속(실내)칸타타와 교회칸타타로 대별된다. 칸타타는 17세기 초엽 이탈리아에서 생겨나 오페라에서 발달한 벨칸토 양식의 아리아와 서창풍(敍唱風)의 레치타티보를 도입하였다. 이탈리아에서는 주로 왕후 ·귀족들의 연희용으로 작곡된 독창의 실내 칸타타가 중심을 이루고 카리시미, 체스티, 로시 등을 거쳐 나폴리악파의 대가 알렉산드로 스카를라티에서 절정을 이룬다. 그 정형은 ‘레치타티보-아리아-레치타티보-아리아’라는 4악장 형식으로, 아리아에서는 화려한 콜로라투라의 기교가 구사되었다. 독일에서도 텔레만, 헨델이 이탈리아 형식의 실내 칸타타를 많이 작곡하였다.

프랑스의 칸타타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오페라풍의 양식을 따랐으며 캉프라가 뛰어난 작품을 남기고 있으나 이탈리아나 독일처럼 성하지는 못하였다. 처음에는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아 아리아와 레치라티보가 교체되는 독창 칸타타를 길러낸 독일은 18세기에 들어 그리스도교의 교회음악으로서 독일 특유의 칸타타를 발전시켰다. 그것들은 17세기 이래의 교회합창곡과 오페라풍의 아리아 ·레치타티보를 융합한 것으로 가사로는 자유로운 종교시에 성서의 구절이나 찬송가(코랄)를 곁들인 것들이 많다. 특히 중요한 것은 찬송가의 가사와 선율을 바탕으로 한 코랄칸타타이다. 이러한 독일의 교회칸타타는 매 일요일의 예배나 특정한 축제일에 교회에서 연주되었던 것으로 그날 낭독되는 성서의 구절이나 목사의 설교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었다. 북스테후데, 크나우, 텔레만 등이 많은 우수한 작품을 남기고 있으나 독일 교회칸타타의 절정을 이룬 것은 약 200곡에 이르는 바흐의 작품들이다. 형식과 내용의 다양성에 있어서 그것들은 바흐음악의 정수라고 부를 만하다. 그의 칸타타의 가장 전형적인 형식은 처음에 기악의 서주를 지닌 규모가 큰 대위법적인 합창곡을 두고 거기에 몇 개의 아리아 ·레치타티보 ·중창이 이어지며 단순한 코랄합창이 전곡(全曲)을 맺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칸타타는 바흐 이후에도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브람스, 프로코피예프, 베베른 등에 의해 작곡되었으나 칸타타의 전성기는 바흐와 더불어 막을 내렸다 해도 무방하다.

아름다운 이웃은 참마음 참이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