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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의 '만종', 한국서 만난다.│그림과 音香

리차드 강 2009. 4. 22. 22:07

밀레의 '만종', 한국서 만난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공연이 아니라 전시회 얘깁니다. 다음달부터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오르세 미술관 한국 특별전'(4월 20일-9월 2일) 이 열립니다.  '오르세'는 '미술 교과서에 나오는 그림들'로 가득한 파리의 미술관인데요, 특히 한국인이 좋아하는 인상파 화가들의 걸작들이 많습니다.

'오르세 미술관 한국 특별전'을 소개한 다음 글은 예술의 전당 월간지 '아름다운 친구' 3월호에 실렸습니다.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처음에는 담당 분야도 아니라서 고사했었는데, 아주 전문적인 글보다는 그림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서 편안하게 쓴 글을 원한다는 얘기에 용기를 냈습니다. 사실 오래 전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오르세 미술관을 관람하고 깊은 인상을 받았던 기억도 있어 글을 쓸 엄두를 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니 공연 담당 기자가 여기저기 낀다고 흉보지 마시고 그냥 부담없이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10년 전 '예술과 패션의 도시'라는 파리를 처음 방문했을 때, 나를 가장 매혹시킨 것은 멋진 박물관과 미술관들이었다. 대부분의 일정을 박물관과 미술관 순례에 바쳤는데, 루브르 박물관도, 퐁피두 센터도, 로댕 미술관도 좋았지만, 최고는 오르세 미술관이었다.

오르세 미술관은 루브르 박물관과 마주 보는 건물이었다. 본래 기차역이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미술관을 처음 대하고는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이렇게 호화로운 건물이 기차역이었다니! 이 건물의 역사를 보니 그럴 만도 했다.

오르세 미술관의 전신 '오르세 역'은 파리 만국박람회를 계기로 시내 중심지의 열차 종착역으로 건설됐다. 설계자는 파리국립미술학교 건축학 교수였던 빅토르 랄루. 본래 오르세 궁전 부지였던 곳을 국가로부터 불하받은 철도회사는 부유한 승객, 고급스러운 시가지에 어울리는, 안락하면서도 화려한 건물을 원했다. 랄루는 화려한 석조물로 장식한 대담한 철골 구조의 건물을 설계했고, 세부 장식은 화가와 조각가들이 맡았다. 오르세 역은 2년여의 공사 끝에 1900년 7월 14일 문을 열었다.


이 건물이 역사로서 기능을 다한 것은 1939년이다. 철도 기술의 발전으로 더 이상 활용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이후 이 건물은 포로수용소나 영화 촬영장 등으로 이용되다가, 이 자리에 초대형 호텔을 건설하려는 재개발 계획에 따라 영원히 사라질 위험에 직면하기도 했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이 건물을 미술관으로 만들자는 논의가 시작됐고, 1986년 12월 마침내 오늘날의 오르세 미술관으로 문을 열었다. 멋진 '재활용'! 19세기말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역사(歷史)적인 역사(驛舍)가 19세기 미술의 요람으로 다시 탄생한 것이다.

     

오르세 미술관은 1848년부터 1905년까지의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특히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많은 그림들을 소장하고 있어 '인상주의 미술관'으로 불린다. 소장품의 규모에서는 루브르 박물관에 떨어지지만, 우수한 대표작만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는 오르세 미술관에서 드라마틱한 삶으로도 유명한 고흐와 고갱은 물론이고, 밀레와 루느아르, 드가, 모네와 마네, 피사로와 로트렉까지, 수많은 유명 화가들의 그림을 만났다. 일종의 문화적 충격이랄까. '미술 교과서에서만 봤던' 그 수많은 그림들을 눈앞에서 보는 감격이란! 그림의 향취에 취하다 보니, 미술관 내 카페에서 차를 마시면서도 뭔가 예술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지경이었다.

파리 여행을 다녀온 이후, 서양 미술사 관련 도서를 수십 권 사들여 읽어댔던 것은 아마 오르세 미술관에서 느꼈던 감흥이 큰 이유가 됐을 것이다. 나는 오르세 미술관을 꼭 다시 가보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아직 이 소망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니, 바로 그 '오르세 미술관'의 한국 전시회가 올봄 열린다는 소식에 귀가 번쩍 뜨이지 않을 수 없다.

오르세 미술관의 소장품이 한국에 선보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첫 번째 오르세 미술관 한국전은 2000년 10월부터 넉 달간 덕수궁 미술관에서 '인상파와 근대 미술'이라는 주제로 열려 3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을 끌어들였다. 7년 만에 열리는 오르세 미술관 한국전에는 회화 44점, 사진 30점이 선보인다. 이 중에는 19세기 대표 작가들의 걸작이 다수 포진해 있다.

     

The Angelus 1857-59 Oil on canvas
21 3/4 x 26 in. (55.5 x 66 cm) Musee d'Orsay, Paris

우선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로 꼽히는 밀레의 '만종'이 온다. 나는 오르세 미술관에서 본 밀레의 그림에 이끌려 그가 활동했던 퐁텐블로 숲 인근의 작은 마을 '바르비종'까지 찾아갔었다. 소박한 밀레의 아틀리에를 구경했고, '만종의 평야'라는 별칭까지 갖게 된 넓은 평야 한 가운데 눈을 감고 서 보기도 했다. 황혼녘 교회 종소리에 감자 수확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묵상에 잠긴, 가난한 농부 부부의 마음을 느껴보려 애쓰면서.

사실 밀레의 '만종'은 모사품이 넘쳐나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그림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진품을 만나는 것은 귀중한 기회다. 화가 박수근은 12살 때 인쇄도판으로 접한  '만종'에 감동해 밀레 같은 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 하는데, 하물며 진품의 감동은 얼마나 위력적인 것일까. 이 그림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뛴다.

     

The Fifer 1866 Oil on canvas
63 x 38 1/2 in. (161 x 97 cm) Musee d'Orsay, Paris

인상주의의 최고조를 빛낸 모네와 마네의 그림도 만날 수 있다. 마네의 '피리 부는 소년', 모네의 '아르장퇴유의 강가' 등이 온다. '피리 부는 소년' 역시 처음 만났을 때 깊은 인상을 받은 작품이다. 피리 부는 소년의 눈망울에 슬픔이 어려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황제 친위대 곡예단의 피리 부는 소년병을 그린 이 그림은 불필요한 장식을 과감하게 없애 소년의 존재감을 더욱 부각시킨다. 이 작품이 1866년 살롱 전에서 낙선하자, 당시 기자이자 비평가였던 에밀 졸라가 이에 항의하는 편지를 심사위원들에게 보냈다는 에피소드도 전해진다.

     

Degas: A Orquestra da Ópera, 1870.

발레리나들을 그린 작품으로 유명한 드가. 그러나 이번에 오는 '오페라좌의 관현악단'은 발레리나들이 주인공은 아니다. 발레 공연에 반주를 맡은 오케스트라가 주인공이다. 드가의 친구였다는 바순 연주자를 중심으로, 단원들의 표정과 동작이 정교하고 생생해서, 음악이 지금 들려오는 듯하다. 평소 무대 위 주인공인 발레리나들은 화면 뒤쪽에 머리가 잘린 채 그려져, 오케스트라를 빛내는 조연으로 등장한다. 주연과 조연이 뒤바뀐 그림. 눈에 띄지 않는 어두운 곳에서 묵묵히 연주하는 음악가들에게 찬사를!

인상주의 화가들이 가까운 가족이나 동료를 그린 작품들에서는 예술가들의 우애와 사랑을 느낄 수 있다. 통통한 장밋빛 뺨의 화사한 소녀들을 즐겨 그렸던 르누아르의 '줄리 마네'도 이런 작품 중 하나다. 처음 이 그림을 봤을 때, 제목의 '마네'라는 성 때문에 궁금했었는데, 알고 보니 화가 마네의 동생과 결혼한 인상주의 최초의 여성화가 베르트 모리조의 딸을 그린 그림이다. 고양이를 안고 있는 사랑스러운 8살 소녀 줄리 마네 역시 훗날 화가가 됐다.

     

Vincent's Bedroom in Arles Oil on canvas 56.5 x 74.0 cm.
Saint-Rémy: September, 1889 Paris: Musée d'Orsay

드라마틱한 삶으로 잘 알려진 고흐의 작품으로는 '아를르의 무도회장' '반 고흐의 방'이 소개된다. '아를르의 무도회장'은 고흐가 아를르에서 고갱과 같이 지내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던 시기의 걸작이다.

'반 고흐의 방' 역시 너무나 유명한 그림이다. 마룻바닥 위에 놓인 나무 침대와 간이 탁자, 의자. 소박하고 별 장식 없는 침실. 고흐 자신은 '색채의 상징주의를 이용해 고요함을 표현하고, 방의 간결하고 단순한 모습을 부각시키고 싶었다'고 했다지만, 밝은 색상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그림자가 느껴지는 것은 그 이듬해 권총으로 자살한 화가의 비극적 종말이 연상되기 때문일까.

     

Self-portrait with Yellow Christ

고갱의 '황색의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은 고흐와 비극적인 이별을 한 고갱이 타히티로 건너가기 직전에 그려졌다. 고갱은 굵고 강한 선으로 매부리코에 짧은 콧수염, 위엄 있는 눈을 지닌 인물로 자신을 묘사했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 몸을 희생한 그리스도와, 소명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치는 예술가(곧 고갱 자신)의 운명을 대비시키는 듯 하다.

     

Femmes de Tahiti OR Sur la plage (Tahitian Women OR on the Beach)1891
Oil on canvas 27 1/8 x 35 7/8 in. (69 x 91 cm) Musee d'Orsay, Paris

'타히티의 여인들, 해변에서'는 생명력과 원시성을 탐구하던 고갱의 타히티 시대 대표작 중 하나다. 황금빛 모래사장, 에메랄드빛 바다를 배경으로 두 여인이 앉아 있다. 대담한 구도와 강렬한 색채에도 불구하고 그림에는 우울함이 스며있다. 강제로 들어온 서양 문명과 타히티 전통의 충돌을 그리려 했을까. 타히티 전통 의상을 입은 한 여인과, 목까지 올라오는 서양식 원피스를 입은 다른 여인의 생기 없는 표정이 슬프다.

몇 작품 얘기하지 않았는데도, 벌써 글이 이만큼 길어졌다. 미술 전문가도 아닌 내가 몇 번 사양한 끝에 결국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10년 전, 내가 지금보다 훨씬 젊었을 때 만났던 오르세 미술관이 그만큼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당시 오르세 미술관을 다녀오자마자 글로 남겨놨어야 할 감흥을 이 글을 쓰면서 이제야 정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르세 미술관 한국전에서 선보일 작품들은 미술관 전체 소장품 중에 극히 일부겠지만, 목마른 미술 애호가들에게는 단비 같은 소식일 터이다. 나는 아마 어렵게 한국 나들이에 나선 이 그림들을 만나면서, '오르세 미술관 다시 방문하기'를 내 인생의 '위시 리스트' 맨 꼭대기로 올려놓게 될지도 모르겠다.

김수현 기자 2007-03-16 shkim@sbs.co.kr

     

Bizet : L'Arlesienne Suite No.1

아를르의 여인 제 1조곡

Georges Bizet (25 October 1838 – 3 June 1875)

1. Prelude in C Minor , Allegro 

 

- 전주곡(prelude) : 제 1 막 개막때 연주된다.. 알레그로 C 단조,4분의 4박자, 먼저 프로방스 지방에서 크리스마스때 부르는 민요'세 임금님의 행진'의 선율을 힘차게 연주한다. 그리고 4회에 걸쳐 변주된다. 중간부는 안단테로 바뀌며 색스폰이 '백치의 동기'를 노래한다. 이 선율은 극중에 여섯 번 정도 나타난다. 마지막은 후레데리의 '고뇌의 동기'로 끝난다.

프로방스 지방의 민요 '세 임금의 행렬'의 선율에 의한 유명한 행진곡의 테마가 목관과 현의 투티로 힘차게 나타난다. 이 테마가 4회 반복을 한 후 Ab 장조 4/4박자로 옮겨 진다. 주인공 프레디에게는 백치인 동생이 있는데 이 분위기를 섹소폰이 구슬픈 가락으로 분위기를 이끈다. 이어 프레디의 고뇌를 담은 바이올린이 열정적으로 펼쳐지면서 마치게 되는데 여기에서는 아를을 사랑하는 프레디와 집안의 반대, 그리고 목장지기 미티피오의 등장이 줄거리이다.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