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문화

정겨운 '우리 읍내'│문화가 산책

리차드 강 2009. 5. 21. 17:26
연극 '우리 읍내' / 또 보고 싶다

정겨운 '우리 읍내' 2006-07-27 09:14
안녕하세요?
요즘 여름을 타는지 피로가 쌓여서 공연을 보고도 글 한 줄 쓸 여유를 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며칠 동안 마음 한켠에 담고 있었던 공연 이야기, 짧게라도 해 보려 합니다.
국립극단이 공연 중인 연극 '우리 읍내'.

원작은 미국의 극작가 손튼 와일더의 퓰리처 수상작 'Our Town'입니다. 미국 중서부의 소읍을 배경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잔잔하게 그려낸, 현대 연극의 교과서로 불리는 작품입니다. 국립극단 예술감독 오태석 선생은 이 작품을 경기도 가평을 배경으로 한 향토색 짙은 이야기로 번안했습니다.
한동네에 영희라는 여자아이와 준기라는 남자아이가 살았습니다. 둘은 같은 학교에 다니고, 함께 성장하고, 사랑하고, 결혼합니다. 과수원을 꾸리며 살아가던 두 사람은 아이를 낳던 영희의 죽음으로 헤어지게 됩니다.
어찌 보면 밋밋하고 단순한 줄거리입니다. 무대는 소박합니다. 별 장식 없는 사다리와 탁자 같은 물건들이 무대 장치의 전부입니다. 소품도 없습니다. 배우들은 마임하듯, 빈 식탁에 앉아서 보이지 않는 밥을 먹고, 보이지 않는 두부를 건네주고, 받고, 합니다. 손튼 와일더의 '텅 빈 무대'는 배우의 연기에 관객을 보다 집중하게 하고, 상상력을 발휘해 빈 무대를 채우게 합니다. 배우들은 모두 맨발입니다. 이 '맨발' 컨셉은 오태석 선생의 것입니다. 그야말로 '자연'이죠.. 극은 무대감독 역할을 맡은 배우가 이끌어갑니다. (다른 등장인물과 구별되는 무대 감독만 양말을 신었습니다.) 때로는 비약하고, 때로는 생략하며, 30년에 걸친 '우리 읍내'의 일상을 관객들에게 펼쳐보입니다.
무대 감독은 권성덕, 장민호, 두 원로배우가 번갈아 맡습니다. 마치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구수한 이야기처럼 들려 더욱 생생합니다. 어쩌면 무척 심심해 보이는 이 작품을 그야말로 '고전'으로 만드는 것은 이 단순한 줄거리 안에 촘촘하게 박혀 있는 '의미 있는 순간들'입니다. 특별한 것 없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생생한 감동을 발견하는 순간들입니다. 태어나고 자라고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죽는, 삶의 순간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작품을 보면서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이래서 교과서로 불리는 것이겠지요.
세상을 떠난 영희의 시각으로 애틋한 삶의 흔적을 보여주는 장면은, 아, 정말. "살면서 자기 삶을 제대로 깨닫는 인간이 있을까요? 매순간마다요?" 지나가면 절대 되돌릴 수 없는, 아프도록 소중한 삶이란. 이 작품의 시연회를 본 지난 주 목요일, 새벽 '커튼콜' 출연 때문에 잠이 부족했던 날이라, 조금만 지루하면 잘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미처 예상치 않았던 감동 덕분에, 피로하긴 했지만, 졸리진 않았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오태석 선생을 만났습니다. 선생 역시 맨발이었습니다. 잘 봤다는 제 얘기에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웃음을 짓더군요. 예전에 극단 '목화'에 취재하러 가서 자주 보던 웃음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교과서'로 불리는 만큼, 고등학교 연극반이나 대학의 연극 관련 학과, 서클에서 많이 하는 작품이랍니다. 국립극단에서 공연하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국립극단을 맡은 선생은 이 작품을 통해 '기본 중의 기본'을 다시 짚어보고 싶었나 봅니다.
선생은 '우리 읍내'를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예전 방학 때면 놀러가던 시골 외할머니댁 같은 정겨운 삶의 모습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사는 요즘 젊은이들이, 이 연극을 봤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저도 요즘 이 작품을 주변 사람들에게 권하고 있습니다. 화려한 대형 뮤지컬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심심한 작품일지 모르지만, 이 때문에 관객들은 더욱 상상력을 발휘하고, 이것저것 생각도 많이 하게 됩니다. 어쩌면 이게 다른 공연과 차별되는 연극의 매력인가 봅니다.
1938년 미국에서 초연된 이래, 지금까지 전세계에서 공연되지 않았던 날이 하루도 없다고 할 정도로, 시공의 벽을 넘어 공감을 이끌어내는 원작의 힘. 그리고 여기에 한국적 빛깔을 입혀낸 재창조의 힘. 이런 공연이 있어, 행복합니다.
(오태석 선생의 인터뷰를 제 블로그 http://ublog.sbs.co.kr/shkim0423에 올려놓겠습니다. 아 참, 이 작품을 창작 뮤지컬로 각색한 '우리 동네'도 대학로 나무와 물 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입니다. 지난 5월부터 공연됐는데, 관객 반응이 좋아 8월말까지 연장공연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같은 작품을 한국적으로 각색한 연극과 뮤지컬이 나란히 공연되고 있는 셈입니다. 뮤지컬도 보고 싶습니다. )
또 뵙겠습니다. 건강하게, 즐거운 여름 보내시기 바랍니다.
     
오태석/'우리 읍내' 사람들 | 인터뷰-사람들 이야기

연극 '우리 읍내'를 보고 나와서 국립극단 예술감독 오태석 선생과 마주쳤다. (오 선생은 이 작품의 번안을 맡았고 연출은 선생의 제자인 김한길 씨가 했다.) 원래 후배 기자가 취재해야 할 공연을 사정상 내가 대신 갔던 것인데, 처음에는 연출 김한길, 배우 권성덕 씨만 인터뷰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오 선생의 숨결이 깊게 느껴지는 이 작품을 보고 나니,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었다.
 
2006년 7월 20일,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 
국립극단에서는 이 작품을 처음 공연하는 것으로 안다. 이 작품을 택한 이유는?
저희가 학교 다닐 때 초등학교, 중학교 때 방학만 되면 시골 외가에 간다든지 할머니댁에 간다든지 했잖아요.
한달 가까이 메뚜기, 미꾸라지 잡고 거머리한테 뜯기고, 날짐승, 들짐승들이 어떻게 우리와 친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저녁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재미있는 얘기를 듣고, 이런 걸 들어가면서,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많은 것들을 풍부하게 경험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그런 시간이 요즘 젊은, 어린 친구들에게 없는 것 같아요. 공부 일과표가 너무 빡빡해서.
그런 시간, 그 때 우리가 시골에 있을 때, 읍내 가는 것은 요즘 얘기로는 디즈니랜드, 롯데월드에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어요. 그만큼 '풍부한' 곳이었죠. 거기에서, 사는 것을 사랑하고, 아이 낳고, 혼인하고, 죽고 하는, 누구나 겪는 과정을, 간단한 얘기를 들으면서, 본인들이 갖고 있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바쁘다 바빠 해서 남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시간을 찾아서 소중하게 만드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나, 이런 것을 젊은 사람들과 나눠보고 싶었어요.
 
배경을 한국으로 옮겼는데, 그 중에서도 가평을 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저는 사투리가 살아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빛나는, 영롱한 소리, 빛깔, 말의 때깔, 이 흐름, 이런 것이
상당히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전라도나 경상도 사투리는 너무 확연하게 틀리니까, 약간 위화감이 생길 것 같고, 그런 면에서 경기도 쪽 사투리는 크게 변별력은 없어요. 그러나 아까 들으신 것처럼 사투리인 것만은 사실이죠.
읍내라는 것이, 도시에서 좀 떨어진, 각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많은 것을 나누고 헤어지고 하는 그런 곳이라는 생각 때문에, 약간 사투리가 들어가긴 들어가야 하겠는데, 심하지는 않은 것이 좋겠다. 그래서 경기도 가평을 택한 것이죠.
수원, 인천, 이런 곳들은 또 거의 표준어에 가깝고, 가평은 그래도 조금 외지지 않나 싶어서 가평을 택했어요.
 
원작을 직접 번안하셨는데, 어떤 점이 바뀌었는지.
줄거리가 원래 단순해요. 엄청난 사건이 있다거나 그런 게 아니고, 학교 다니고, 적령기에 사랑하고, 결혼하고, 해산하다 잘못돼서 죽고, 그런 얘기라서 크게 바꾸지 않았어요. 다만 우리나라 말의 구어체, 말의 3,4조, 4,4조, 이런 운율을 살리려고 노력했죠.
아워 타운, 조지, 에밀리, 이렇게 하면 좀 먼 나라 얘기 같잖아요. '우리 읍내'라고 하면, 우리 말의 아름다운 흐름이 나와야죠. 우리들이 태어나고 사랑하고 죽는 얘기니까. 온 인류가 똑같이 겪는 평생 아니겠어요.
그래서 조지, 에밀리, 하는 것보다는 준기, 영희, 그렇게 해서 더 가까운 얘기로, 정말 '우리 읍내' 얘기로 했으면 했던 것이죠.
 
여백과 생략이 많은 작품이라 한국적 정서와도 통하는 것 같다.
네, 서양의 볼거리는 '꽉 찬 것'이죠. 그런데 우리 선조들 볼거리는 생략과 비약을 잘 엮어서 갔어요. 생략과 비약 부분이 많다는 것은 관객이 그것을, 생략되는 부분을 메꾸고, 비약되는 부분을 이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관객들과 연극을 같이 만들어가는 형식을 갖고 있어요.
이 작품은 미국 것이지만, 그런 면에서 동양적, 한국적 정서에 딱 맞아요. '거두절미'하고 가는 부분들이 일상에서도 많잖아요. 끊어서 가고 들어내고 가도, 다 만들어서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즐거울 수 있어요. 당신의 지혜와 경험과 상상력을 갖고 메꿀 수 있으니까요. 당신이 만든 공연이니까 더 좋은 것을 가져갈 수 있어요.
이 작품은 그런 만남, 그런 연습, '보기 연습'을 하기 좋은 작품입니다. 그래서 많이 생략했어요. 신발까지도. 조용하고 좋잖아요. 죽은 사람들이 신발 신을 수도 없고. (오 선생 자신도 맨발이었다.)
 
관객들이 '보기 연습'을 하면서 많이 배워가는 연극?
편안하게 격식없이 관객과 배우들이 같이 연극 만든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많이 비워놓고, 만약 이 연극을 밥상에 비유한다면, 물 좋은 조기 한 마리, 잘 씻은 무, 잘 생긴 파 한 단, 이런 아주 양질의 것들을 차려놓은 것이죠. 이것으로 찌개를 만들든, 국으로 만들든, 알아서 하십시오, 하는 것이죠.
관객들이 배운다는 것은, 관객 스스로 풍부한 볼거리를 만들어 가실 것이다, 가셔야 한다, 이런 것이죠. 다 채워주고 다 만들어 드리는 것에 익숙하다가, 이런 연극을 보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 될 거예요. 뭘 하는 즐거움으로 볼 수 있는 연극이죠.
 
저도 이 연극 90년 4월 어느날 봤습니다...날아온 멜의 제목이 눈에 ,,그리고 그 날의 단원들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다시 살아나더군요...제가 안양 근로자회관 기숙사에 살았었다가 나왔는데 회관 행사가 있었는데 프로그램 중에 연극도 있었습니다. 제목이 "우리읍내" 제가 우리읍내 피켓 광고 들고 안양 동네를 돌아다니며 선전을 했던 기억도 생생하고 전문 연출인들이 와서 지치고 힘들어 하는 노동자들에게 밤늦게까지 연극을 가르치던 생각이 납니다. 그날 아마 연극을 보고 남몰래 중간에 울었던 기억도 납니다...연기를 넘 잘해서...
     
어리버리 돈키호테도 이 연극을 오래전에 봤다는....

저도 이 연극 90년 4월 어느날 봤습니다...날아온 멜의 제목이 눈에 확 들어온 이유가 있었던거지요.
그리고 그 날의 단원들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다시 살아나더군요...제가 안양 근로자회관 기숙사에 살았었다가 나왔는데 회관 행사가 있었는데 프로그램 중에 연극도 있었습니다.
제목이 "우리읍내" 제가 우리읍내 피켓 광고 들고 안양 동네를 돌아다니며 선전을 했던 기억도 생생하고 전문 연출인들이 와서 지치고 힘들어 하는 노동자들에게 밤늦게까지 연극을 가르치던 생각이 납니다.
그날 연극을 보고 남몰래 중간에 울었던 기억도 납니다...연기를 넘 잘해서...
문성근씨가 예전에 진행하던 "그것이 알고싶다." 프로그램의 진행방식처럼 누가 첨부터 끝까지 오른쪽 무대에 서서 설명하는 모습도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연극대본을 한번 써서 진행한 적이 있었죠. 각색해서. 그때가 94년인가...성당에서 연극할때 ㅋㅋㅋㅋ
     
차이코프스키 사계 중 1월 화롯가에서
Peter Tchaikovsky 1840-1893
No.1 - The Seasons, Op.37b - January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