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버리 돈키호테가 참여하는

굿자만사 ....미리내 & 유무상통...성지순례를 다녀와서... │ 포토 후기

리차드 강 2009. 6. 2. 07:17

미리내와 유무상통마을에서 굿자만사 기쁨에 넘쳐...

아빠 하느님...

유무상통마을 성당내 오른쪽 벽에 앞으로 보이도록 걸려있는 족자

사진을 찍는데 떨렸습니다. 3번찍었는데 3번 다 흔들렸네요..

그래도 올려 놓고 보니까 흔들린 사진 또한 멋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빠 하느님께 유무상통에서의 거룩한 미사와 신부님의 강론에 은총 받고

풍성하고 융숭한 대접을 받고 김명순 루시아 자매님께 감사를 드리고....

기도를 드리며 ...

     

남누리 북누리 - 노래마을 (백창우 작사, 작곡)

임희숙이 부른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 강영숙의 '사랑' 등으로 잘 알려진 시인 겸 싱어송 라이터로 노래마을 음반 1, 2, 3집 등 다수의 음반발표.

남누리 북누리 - 백창우 작사, 작곡

어느 누가 이을 건가 어느 누가 이을 건가
남누리 북누리 갈라진 우리누리

그 누가 찾을 건가 그 누가 찾을 건가
남누리 북누리 빼앗긴 우리누리

우리뿐일세. 우리뿐일세
이 땅을 딛고 살 우리뿐일세

함께 가세 함께 가세. 해방의 큰 춤추며
남누리 북누리 하나되는 그 날까지

우리뿐일세. 우리뿐일세
이 땅을 딛고 살 우리뿐일세

함께 가세 함께 가세. 통일의 큰 춤추며
남녘 땅 북녘 땅 통일되는 그 날까지

     

처음에는 이렇습니다.

누구나 다 만나서 서먹해지는 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 있으면 우리는 하나가 됩니다.

환영 굿자만사

버스에서 내려 유무상통 정문으로 들어서려는데...위의 문을 보고 갑자기 밑에서 부터 위로 큰 에너지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느분은 감동이었다고 하고, 어느분은 어쩌구....

갑자기 단어가 생각이 안납니다.

굿자만사 사람들

그래서 제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다들 모이고...자자...찍습니다...저기요...글자 가리지 말고...(호호호)

빈 십자가와 대치되는...2000년 만에 내려오신 예수님상

언제 만들어 졌는지...작가가 누구인지는 모르나 재료는 분명 나무를 썻다는 것..
유무상통 마을 소장

우리 인간들이 2000년 동안 계속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였으나 이제 그렇게 기념(?)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성모자(聖母子) 그림 - 유무상통 마을 소장

티없이 깨끗한 이미지의 성 모자상을 보면서 가만히 있어 보았습니다. 역시 한국의 미가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성모자(聖母子) 상 - 유무상통 마을 소장

아~ 얼마나 아름다운가.

성모자 상과 하늘문

하늘문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느님께로 가는 길에 놓여있는 대문일까?

 

굿자만사 회원들을 반갑게 맞아 주시는 유무상통마을 설립자 방상복 신부님

신부님께서 굿자만사 회원들을 위하여 마실 차를 ....

그리고 이곳에 온 모든 이들에게 관심을 보이셨다.

 

평화(平和)의 주(主) 예수상(像)

석가 죄불상 같은 이미지가 풍기는 예수 상이라고 할까?

예수의 부활을,

그리고 다시는 처형시키지 말아야 함을...

 

다석 유영모

스승이 그리운 시절; 이 시대의 스승은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요사이는 정말로 영혼의 스승, 진정한 스승이 그리운 시절이라고 말한다. 편집자는 원고를 청탁하는 말에서 이 시대가 정신공황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닌가 물었다. 그 말 속에는 어느 시절인가에는 진정한 영혼의 스승이 있었고 그래서 풍부한 정신을 맛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뜻으로 들린다. 그런데 그 말을 곰곰이 생각하여 본다. 정말로 진정한 스승이 있었던 시대가 있었을까? 다시 말하면 우리가 나중에 '그분은 참 스승이었다'고 말하는 그분이 살아 계실 때 그 시대의 사람들은 그를 참 스승으로 받아들였느냐는 말이다. 간혹 몇 사람은 그렇게 보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모르고 지나치면서 그냥 막연하게 이 시대에 왜 스승은 없는가 하고 개탄하면서 살았을 것이 분명하다. 또 어떤 사람들은 저 분은 진정한 스승이다 하면서 그에게 가까이 가기를 거부하거나, 가까이 갈 수 없어서 스승을 만나지 못한 경우도 많을 것이다. 사실 스승이 있다 없다는 만남의 경험에서 오는 것이지 않을까 한다. 그냥 어디에 덩그러니 떠 있는 달처럼 어디에서나 쳐다보거나 항상 불어오는 바람처럼 어디에서나 얼굴에 맞이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무엇인가 어떤 만남에서 스승은 빛이 나고 찾아지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스승이 없는 시대라고 하는 것도 거짓인지 모른다. 스승과 제자는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어떠한 형태가 되었든 이러한 만남은 무수히 많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을 난세라고 말하고, 진정한 스승이 없다고 말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굉장한 권위와 카리스마를 가지고 굉장히 큰 따르는 무리를 거느린다. 크고 작은 스승들이 무수히 많은 곳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그런데도 스승이 고갈된 상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그래서 난세인가?

우리가 위대한 스승이라는 사람들을 보면 별 것 아닌 사람들이 어느 날 굉장한 스승으로 떠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느 날인가 아주 적은 무리들, 아니 지극히 평범한 한 사람에게 빛이 반짝하는 말이나 행동으로 감동을 준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차차 퍼지고 퍼져서 어떤 사람들의 스승으로 인정받는다. 그를 통하여 빛을 보았고, 해방감을 느꼈으며, 고향과 같은 포근함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때로는 답답함을 풀게 되었고, 미래를 보며 어떤 비전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때부터 그는 스승으로 공인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스승이라고 하면 굉장한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어느 사람에게 반짝 빛나는 빛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위대하다고 하면 그와 같은 횟수가 많아지고 넓어지는 것뿐이다. 때때로 그와 같은 반짝 빛나는 밝음을 내 곁에 항상 붙어 있던 친구로부터 발견할 수가 있고, 우리 집 이웃에 허름한 옷 속에서 흰 이빨을 드러내놓고 히멀건히 웃는 아저씨에게서 발견하게 되며, 어떤 때는 내가 혼내주고 나무라던 자식이나 제자에게서 그것을 보기도 한다. 물론 힘들게만 보이던 지극히 평범하거나 좀 모자란 듯이 보이던 가까운 선생에게서 그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그 때 아- 하는 탄성을 지른다. 바로 저기에 그런 그윽하고 깊은 모습이 있었구나 하고. 그 만남이 귀하게 떠오른다. 여기에서 스승을 본다.

함석헌의 경우 오산학교에 다닐 때 교장으로 잠깐 일하던 유영모가 부임인사에서 학(學) 자를 풀이하는 것을 보고는 감동하고 놀래 자빠진다. 그 순간 젊은 함석헌은 유영모를 향하여 모든 마음의 문을 열어 두었다. 숫기 없는 함석헌은 선생을 찾아 자주 만나서 깊은 대화는 못하지만 혼자서 마음으로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러던 중에 시절이 분분하여 유영모는 교장의 자리를 떠나게 된다. 그 때 기차역까지 바래다 드리는 길 걸어감에 유영모는 함석헌에게, '내가 오산에 온 것은 함 당신을 만나기 위함인 것 같소' 한다. 이것이 만남이다. 이미 이 두 사람 사이에는 나이와 선생과 제자라는 것을 떠나서 마음 속에서 순수한 감정들이 만나고, 내면에 있는 빛들이 서로 비추기 시작한다. 이미 아브라함 이전부터 있던 내 속에 있는 '그 님'이 서로 알아보고 반가워한다. 유영모의 말과 행동과 생각에서 함석헌은 무한한 계시를 받지만, 동시에 유영모는 함석헌에게서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을 본다. 이렇게 되니 자연스럽게 서로 존경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일본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함석헌의 활동이 유영모에게는 경이로움이면서 희망이었고, 집에 들어앉아 가만히 명상하는 유영모는 함석헌에게 든든한 뒷받침이 되었다. 그러니 일마다 함석헌은 유영모를 떠올리고 소리 없이 물었고, 유영모는 험난한 세상에서 온전하게 삶을 살아가는가 맘졸이면서 제자 함석헌을 그리워한다. 제자들의 모임에 스스럼없이 참석하여 배우고 격려하면서 함께 자란다. 언젠가 유영모는 온 식구를 동원하여 집안 청소를 깨끗이 하였단다. 누가 오기에 그렇게 하느냐고 물었단다. 귀한 손님이 오시기 때문에 준비하는 것이라고 하였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제자 함석헌이 온다고 하였기 때문이란다. 그는 제자 함석헌을 지극히 존경하는 자기 스승을 맞이하는 예로서 하였던 것이다. 어느 증언에 의하면 최남선이나 여운형 같은 사람들이 올 때에도 그렇게는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냥 몸뚱이 함석헌을 그렇게 본 것이 아니라, 그이의 몸을 입고 온 '님'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니 그 몸을 입은 그 '님'이 유영모에게 비치었기 때문이다. 사실 스승과 제자의 만남은 그 몸 속에 비치는 빛의 맞부딪침이다. 빛은 빛을 알아보는 것. 그래서 한 눈에 들어온다. 함석헌이 남쪽으로 내려온 뒤 유영모의 강의에 계속 참석한다. 유영모는 제자 함석헌의 강의에 맞바꾸어 참석한다. 어쩌면 그들의 강의는 무수히 많은 청중을 향하여 한 것이라기 보다는 하나밖에 없는, 속에 그 '님'을 품은 그 한 사람을 향하여 베푼 것인지 모른다. 말과 행동은 무수히 많은 군중을 향하여 할 때도 있는 것이지만, 그 무리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있는 '님의 빛'을 향하여 비추는 빛의 투사다. 즉 유영모의 강의는 가장 아끼고 존경하는 제자 함석헌의 영혼을 향하여 내던져졌고, 함석헌의 강의는 가장 두렵고 존귀한 스승 유영모를 향한 비추임이었다. 그러니 그 강의는 지극하고 간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정경이다. 이것을 사제동행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스승과 제자는 각각 자기의 고유한 길을 가야한다. 그들은 서로 갈라서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때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자식이 부모를 떠날 때 아픔이 있듯이, 제자가 스승을 떠나 독자 노선을 걸을 때 아프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빛이 제대로 비치려면 스승은 제자에게 길을 비켜주어야 하고, 제자는 스승을 파먹고 누르고 뛰어 올라야 한다. 때로는 배신으로 보이고, 때로는 타락으로 보이고, 때로는 오만불손이요 천하의 불효로 보일 지 모르지만, 때가 되면 탯집을 박차고 나오는 새생명처럼, 제자는 스승의 날개품을 박차고 나가야 한다. 스승이 품는 힘이 강하고 강할수록 박차고 나르는 힘이 더 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서로 자기 길을 갈 때는 소리가 요란할 수밖에 없다. 생명의 만남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떠남은 부메랑현상이다. 돌고 돌아 다시 근원으로 돌아온다. 그들이 주고받았던 말씀의 자리로 되돌아온다. 유영모는 제자 함석헌이 복잡하고 형편없이 돌아가는 현상세계에 관심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진리를 파기에 깊이 정진하고 촐랑대지 않기를 바란 듯이 보인다. 그러나 함석헌이 받은 시대의 말씀은 그것과 달랐다. 깊이 명상하고 사람들의 살림틀을 바꾸는 것은 둘이 아니라 한 가지라고 보았다. 그래서 사람을 사람답게 대접하지 않는 못된 세력을 향하여 빛을 비추지 않으면 안되었고, 말을 들을 귀가 있는 자를 향하여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죽을 때까지 마음으로 정진하는 스승 유영모와 죽을 때까지 사회를 향하여 몸과 맘을 던지는 함석헌의 길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일반사람들이 보기에 두 사람은 갈등하는 듯이 보이고, 딴 살림을 차린 듯이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근원은 하나다. 하나로 비치는 그 '님의 빛'을 각각 다르게 받았을 뿐이다. 아니 다르게 반사할 뿐이다. 두 사람이 받은 빛은 같은 빛이었지만, 반사하는 방향이 달랐을 뿐이다. 그러나 그 반사빛을 받은 또 다른 빛들은 같은 작용과 반응을 경험한다. 역시 그 반사하는 빛을 받아 그 속에 있는 '님의 빛'이 반짝이기 시작하는 점이다. 지금 이른바 유영모 제자들의 작업과 함석헌 제자들이 하는 작업이 합일에 도달하려는 움직임은 바로 이 점에서 의미를 찾는다. 유영모를 우리 시대의 빛으로 다시 보고, 함석헌을 이 시대의 빛으로 다시 볼 때 이 두 빛은 한 점에 모아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이 비쳤던 빛은 더 풍성한 모양으로 반사된 것이 증명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참 스승이 없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스승은 타고나는 것인가? 누구인가가 만드는 것인가? 자기 스스로 그렇게 되는 것인가? 지금 무수히 많은 선생들이 있다고 하는데도 이 시대의 스승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스승이 없다면 자기 자신이 스승이 될 맘을 왜 가지지 못하는가? 지금 우리의 상황과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을 생각하여 본다. 그 시대 이스라엘 역시 참으로 참담한 현실이 많았다. 나라를 잃고, 정신은 빠져버렸고, 쓸만한 인재는 나타나지 않고, 사회도덕은 땅에 떨어지다 못해 시궁창에 굴러 쳐 박혔고, 민중들의 사기는 밑 모르게 쳐질 대로 쳐진 상태였다. 어디에도 구원의 빛이 없고 손길이 보이지 않는 암담하고 암울한 상태였다. 듣느니 탄식소리뿐이요, 나느니 죽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때, 일반 씨 들의 탄식이 하늘에 닿았을 때 어느 깨끗한 맘에 깨달음이 있었고, 어느 깨끗한 반사기에 반딧불 같은 빛이 비쳤고, 어느 깨끗한 귀에 지극히 작고 부드러운 소리가 깊은 사랑 속에서 들렸다. 그 소리는 때로는 무섭게, 때로는 훈훈하게 파장을 타고 마른 풀밭에 불길처럼 번졌다. 들판에 널려 있는 마른풀은 씨 들의 간절한 마음, 하늘의 말씀, 시대의 소리를 기다리는 애타고 간절한 마음이다. 그러할 때 내 마음이 열리고 눈이 밝아지고 귀가 열려 울리는 스승의 소리를 느끼게 될 것이다. 분명히 어디엔가 한 사람 있어서 하늘과 땅과 진리와 역사와 사람의 소리를 모아듣는 일에 정성을 쏟고 있을 것이다. 그는 언젠가 간절한 우리 앞에 흙 같고, 물 같으며, 햇빛 같고, 고향 같은 사람으로 나타날 것이다. 결코 백마를 타고 오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모르게 내 곁에 와서 살짝 앉을 것이다. 그래도 못 알아맞히면 성난 파도가 되어 우리를 뒤덮을 것이다. 이 시대에 스승이 없음은 스승을 맞이하려는 마음이 간절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그가 와 있는데도 볼 수 없이 눈에 티가 끼었기 때문이고, 수없이 많이 던지는 말을 듣기에 지나치게 귀가 막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스승이 없다고 한탄하기 이전에, 내 속에 있는 스승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 그 빛을 받을 수 있는 반사경, 그 사랑을 담을 수 있는 마음 밭을 갈고 닦을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된다면 스승은 거기 그렇게 어엿이 계심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매우 든든한 마음이 자리를 잡겠지. 스승은 이미 내 속에 와 계신다.(2001년 4월 10일)

월간 '작은 것이 아름답다' 5월호
김 조 년(한남대 사회복지학부, 사회학)

사단법인 함석헌 기념사업회 http://www.ssialsori.net

방상복 신부님께서 닮고 싶어 하는 분으로...

나도 닮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마음이 춥군..

 

십자가에서 내려오신 예수 상

이 상은 몇년전에 성염대사님이 바티칸 대사로 임명 되어 가셨을 때, 교황 바오로2세께 선물로 증정된, 한국의 상징이라고 할 만한 상이 되었다.

배경의 하얀 바탕은 유무상통 마을 신부님 집무실겸 응접실에 걸려 있는 달력인데 그림은 없고 음력이 나오는 숫자가 엄청 큰 달력 종이였는데 김교훈 히지노 형제님께서 손수 들고 계셔서 이미지를 깨끗하게 찍을 수 있었습니다.

 

유무상통 마을

반갑습니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미사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하여 모두 앉아서 미사를 봉헌하는데...

 

신앙심 깊은 분들은...서서 봄

가관이라고 할 수 있지...요? ㅋㅋㅋ

 

부부

얄미울 정도로 하루종일 딱 붙어 다녔다는...우쒸

 

독서대

앉아서...묵상하기에 정말 좋은 .막 깊은 성호가 그어지겠다는...

Sign of the Cross

In the name of the Father
and of the Son, † and of the
Holy Spirit. Amen.

 

성 모자 상 스테인드 글라스

...

 

영성체

 

아빠 하느님

...

 

제대

...대자대비하신 ...

 

빈 십자가

이천년 만에 내려오시다...

 

감실

고전틱...

 

성령...빛

은총, 많이 받으셨습니까?

 

미사후...

한상진 교수님도 굿자만사 식구 되셨습니까?...

 

규빈이 히야찐따...와 굿자만사 여성회원들...

이 시간 만큼은 신부님께서 한 인물 빌려 주십니다.

 

미리내로 가는 길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이곳에 왔고 나눔을 통해 일치를 이루는 듯 했으나...

또 다시 다양한 삶을 사는 것처럼 각자가 알아서 도착지까지...

 

명강사...

나는 솔찍히 듣기 싫었지만... 많은 분들이 약 30분정도 되는 지루한 신성구 도마 형제님의 썰렁한 강의를 명강의라고 무려 1분동안 우뢰와 같은 박수를 쳐 주시고 서울로 올라올 때까지 칭찬을 아끼지 않은 명강사 였다고 하였습니다.

강의 내용은 "성(聖) 김대건 신부의 삶" 이었는데. 막힘없이 줄줄줄 나오는 김대건 신부님의 삶에 모든 회원들이 탄복과 감탄 그리고 아픔을 느꼈다는...제 옆에 있던 여성회원들은 김대건 신부의 참수형 얘기가 진행되자 안타까움을...표현했는데...정말 안타까운 모습으로 ..

 

울술나 의 묘

김대건 신부 어머님의 묘...

 

자원봉사자님 죄송합니다.

명강의를 듣고 다시 올라가니 자원봉사자님께서 한 가톨릭 학생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데 굿자만사 회원들에게 얘기를 들려주시다...몇몇 회원들 내려가고 그래서 제가 다 불러 냈다는....시간도 촉박한데 두번 들을 수 있나요?..주(酒)님이 기다리고 계시는 바람에..

 

미리내 성삼위 상이 없어진다는데...

그래서 그 앞에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뒷풀이

신나는 뒷풀이 시낭송에 노래와 하모니카 연주까지.

참석 못하신 분들은 정말 후회하셔야 할 자리였습니다.

후기는 글 잘쓰시는 분이 올려주실 것을 기대하며...

 

딱 걸렸습니다...

집으로 가기 위해 나오는데 할머님들이 너무 아름답게 옹기종기 모여서 담소를 나누고 계시길래 카메라를 보세요...그랬던....이런...

 

"굿자만사 성지 순례" 이미지 기록을 완성하면서...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이런 노랫말이 생각 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래 세라피나 자매님이 올리신 히야찐따를 하루 엄마 역할을 하며 보낸 시간을 질투의 눈길을 주며 보낸 저 같은 사람도 기쁘게 그리고 은총을 듬뿍 받으며 보냈는데 어제의 기억을 되살리기가 쉽지 않기에 다시 포토그래피 하였습니다.

성베드로의 집을 방문하고 후원하는 일도 있었는데 제 카메라 베터리가 너무 빨리 없어졌습니다. 리필용으로 하나 더 있었는데 충전이 되어 있는 줄 알았는데...그것도 간간하더군요...그래서 이번에 오후에는 사진을 못찍었다는...죄송합니다... 담에는 충분히 준비하고 만나겠습니다.

함께 하여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가정에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길.

백수재에서 2006-05-01 어리버리 돈키호테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