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화염이 피어오르는 광경을 지켜볼 때만해도 여느 화재를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육중하고 우람하던 110층 건물 하나가 일순간 무너져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을 때, 나는 아직 그안에 있을 많은 얼굴을 떠올렸다. 같이 근무하던 동료직원들... 매일 아침 엘리베이터 안에서 눈인사를 주고받던 사람중에 누군가가 아직 그곳에 있을텐데...
점심시간 구내식당에서 양파링을 듬뿍 집어주던 그 까까머리 키큰 친구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혹시...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엄청난 상실감이 다가왔다. 빌딩이 무너지자 여기저기서 여인들의 흐느낌이 들려왔다. 금방이라도 누군가 옆에서 기관총을 난사할 것 같은 공포감이 나를 휩싸고 지나갔다. 그리고 나중을 위해 몇장의 사진을 휴대하던 디카에 담았다.
9.11 이후 미국사회를 바라보는 것은 개인적으로 행운이었다. 그들의 반응은 나의 경험과 예측을 벗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나에게 새로운 경험이었다.
1. 지각했는가?
9.11 이후 만난 한국사람들의 나에 대한 최고의 관심사는 당연히 ''어떻게 살아났는가?''였다. 평소보다 출근이 조금 늦었다고 응답하면 그들(친척, 친구, 동료할 것 없이)의 반응 "지각했구나"였다. 실제로 지각했는지에 관한 사실 확인도 없이 그렇게 단정지으며 출근을 늦게 한 것에 대한 책망의 분위기가 역력했다. ''살아난 것이야 다행이지만 지각했었군'' 이것이 대표적인 반응이었다.
하지만 현지인들의 반응은 달랐다. 살아난 것으로 충분했다. 출근시간 따위는 전혀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겨울이 되어 눈이 내리면 안전을 위하여 일찌감치 퇴근을 종용하는 사무실의 분위기를 보고 나서야 그들에게는 일보다 당연히 생명이 중요한 가치임을 알게 되었다.
2. 책임자가 누구지?
누가 잘 못해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 지 궁금했다. 언론에서 책임자 추궁에 열을 올려야 할 텐데. 방송의 어느 구석을 살펴봐도 책임자에 관한 얘기는 한 달이 지나도 두 달이 다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몇년이 지난 후 조사위원회에서 정보분석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 전부가 아니었나 싶다. 적어도 그 사회에 300년전 한 도시를 휩쓸었던 마녀사냥은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그들은 ''Bush is my President.''라고 외쳤다. 적어도 언론은 그런 지지자들을 보여주었다. 복구가 우선이었고 이를 수행할 정부에 대하여 국민들은 강력한 지지와 협력을 보내주었다.
3. 어용 언론?
언론은 너무도 정부에 충실했다. 감시자로서의 제4의 정부가 아니라 지지자, 해결사, 통합자로서의 제4정부의 역할을 수행했다. 나의 짧은 영어실력을 감안하더라도 동네북처럼 두들겨대는 언론의 행태는 볼 수가 없었다.
당시 여비서와의 스켄들로 언론으로부터 조롱을 받던 줄리아니 뉴욕시장은 순식간에 영웅이 되어 있었다. 방송은 줄리아니의 발표와 요청사항을 충실하게 시민에게 전해주고 지지를 보내주었다. 믿을 수 없은 강력한 협력관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누가 잘못했지?''라는 나의 습관적인 의문에는 대답해 주지않고 위기의 해결에만 주력하는 모습이었다.
4. 자원봉사
자원봉사의 위력은 대단했다. 구호품, 성금, 노력봉사 그리고 애도 모든 국민들이 적어도 이 중 한가지에 참여하는 것을 보았다. 알라바마주, 일리노이주, 유타주 할 것 없이 며칠씩 차를 몰고 달려온 자원봉사자가 한 둘이 아니었다. 맨하탄 서편, 월드 트레이드 센터(WTC)에 가까운 제이콥 센터(뉴욕의 COEX)가 자원봉사와 구호 및 복구 물품의 분배기지가 되었다.
이 부분에 언론은 당연히 충실이 도움을 주었다. 어떤 인력이 복구에 모자라는 지, 어떤 방법으로 자원봉사에 참여해야 하는 지, 충분하여 필요없게된 물품과 인력은 어떤 것인 지 자세한 정보전달을 담당해 주었다. 물론 그렇게 빠른 정보전달을 할 수 있는 것은 언론 특히 방송밖에 없었다.
5. Unsung Hero
그리고 그들은 9.11의 복구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을 영웅이라 불렀다. 상층부에서 지휘를 맏고 있는 사람들만을 그렇게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 불 끄러 빌딩에 들어가 순직한 수많은 소방관은 물론 자신의 임무를 다하는 경찰, 공무원, 음식 배달원, 자원봉사 모두 그들은 영웅이라 불렀다. 이름을 일일히 말할 수 없으니 unsung hero(무명용사)라고 불렀다. 당시 unsung hero는 항상 귓전에 울리는 버즈워드였다.
그들은 서로 영웅이라 부르며 서로 영웅이 되어 있었다. 험담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6. United We Stand
''뭉치면 산다.'' 다소 유치해 보이는 구호가 나타났다. 하지만 그들은 정말로 하나가 되어 있었다. 맨하탄을 다니는 대부분의 자동차에는 성조기가 매달려 있었다. 피부색과 상관이 없었다. 직업과 상관이 없었다. 심지어 할렘가 길거리에서 마약 파는 친구들이 모두 성조기 판매상으로 돌아섰다는 말이 들릴 정도였다. 2002년 붉은악마 티셔츠만큼 인기를 끌었다.
그들이 정부에 그렇게 지지를 보내는 것은 정부가 또는 국가가 자유를 지켜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내가 만나던 26세의 젊은 친구는 징병을 하면 당연히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당시의 분위기였다. 미국이 가진 최고의 가치는 자유이고 국민은 그 자유를 지켜주는 정부에 지지를 보냈다.
9.11을 직접 경험한 나는 우리 사회가 보다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협력 문화가 두텁지 못한 것이 항상 안타깝다. 반목과 남의 탓에 너무 익숙해 있는 것이 아닌가 반성도 해 본다.
참여정부는 우리에게 훌륭한 기회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 기회를 노무현 깎아내리기에 허비해 왔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이는 조중동 만이 아니다.
''말도 안되는 니가 대통령이 되다니! 어디 잘하나 보자''하는 것이 조중동류의 태도였고,
''뽑아주었으니 한 번 잘해봐. 내가 지켜볼께''하는 정도가 지지층의 주문이 아니었나 싶다.
이 정도의 지지로 잘 해낼 정부가 있을까? 있다면 그것은 강력한 독재정권 뿐일 것이다. 지지와 협력없이 민주적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국민이 만든 정부라면 국민이 함께 책임을 나눌 각오가 필요하다. 모든 것을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면 그것은 대통령에게 독재권력이 주어졌을 때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권력을 나누어 가진 모두가 함께 협력하여 가꾸어 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