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가요

불꺼진 창 - 조영남

리차드 강 2009. 7. 9. 03:32

불꺼진 창 - 조영남

컴백리싸이틀 (성음 1973)

조영남 Cho, Young-Nam 1945 -

No.2 - 불꺼진 창 (이장희 작곡)

 

불 꺼진 창

지금 나는 우울해,
왜냐고 묻지 말아요
아직도 나는 우울해,
그대 집 갔다 온 후로

오늘 밤 나는 보았네.
그녀의 불 꺼진 창을
희미한 두 사람의 그림자를
오늘 밤 나는 보았네

누군지 행복하겠지.
무척이나 행복할거야
그녀를 만난 그 사내가
한없이 나는 부럽네

불 꺼진 그대 창가에
오늘 나 서성거렸네
서성대던 내 모습이
서러워 말없이 돌아서 왔네

누군지 행복하겠지.
무척이나 행복할거야
그녀를 만난 그 사내가
한없이 부럽기만 하네

불 꺼진 그대 창가에
오늘 나 서성거렸네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아서
말없이 돌아서 왔네

말없이 돌아서 왔네

     

불꺼진 창의 주인은 누구인가? - 이장희 조영남, 오현란

한국 가요사에서 번안곡이 차지하는 비중은 양적인 면에서 창작곡에 못지 않다. 적어도, 대중 가요의 유아기라 볼 수 있는 70년대 까지 한국 가요의 절반은 외국의 것을 가사만 바꾼 번안곡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한국의 경제가 미국의 무상원조에 의지한 나머지 자생력을 잃었던 것처럼, 한국의 가요도 미국 흉내내기를 통해 그 싹이 자라기 시작했으니, 유명 팝 음악에 한글 가사만 살짝 얹은 번안곡의 남발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번안곡의 범위가 미국의 것에만 국한되지 않고, 유럽 음악에 까지 그 손길을 뻗쳤다는 정도겠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윤 심덕의 <사의 찬미>도 이바노비치Iosif Ivanovici의 곡에 가사를 얹은 번안곡이었고, 운동권에서 만들어지고 불려진 5.18 조가 <5월의 노래 2>도 미셸 폴나레프Michel Polnareff의을 일부 수정한 곡이니, 번안 가요의 범주는 가히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번안곡과 뉴사한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 중 하나가 개사곡이다. 원곡 가사 그대로를 번안해서 가사로 삼는 곡이 아닌 경우를 일컬어 개사곡이라고 하는데 대개의 번안곡들이 외국 곡의 가사를 그대로 번역해서 가사로 쓰지 않으니 번안곡보다는 개사곡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것 같고, 그 범위도 개사곡 쪽이 더 넓을 듯 하다.

개사는 또 다른 의미에서는 패러디의 기능도 함께 가진다. 기존의 가요의 가사를 비틀어 세태를 풍자한 운동권 가요들은 새로이 멜로디를 익혀야 하는 창작 운동권 가요와는 달리, 그 가사만 새로 외우면 되는 편리함으로 대중들을 쉽게 아우르는 역할을 해내기도 했다. 개사는 또한, 헌 옷을 벗기고 새 옷으로 갈아 입히는 패션의 역할도 해 낸다. 귀에 익은 멜로디에 당 시대의 정서를 담은 가사를 얹어 분위기를 환기시킴으로 해서 추억과 새로움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때 인기를 모았던 모 방송국의 짝짓기 프로그램에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어 절절하고 애잔한 분위기를 조성했던오 현란의 <원(願)>은 조 영남이 부른 <불꺼진 창>에 새 가사를 얹은 개사곡이다. 외국곡에 가사를 붙인 번안곡이 아니라는 말이다.

모 사이트의 지식 검색에서 원곡으로 소개되고 있는 이태리 가곡이 원곡이 아니라, <그건 너>,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작곡하고 노래한 이 장희가 작곡하고 가사를 붙여서 자신의 삼촌 뻘인 조 영남에게 주었던 순수 창작 가요 <불꺼진 창>이 원곡이다.김 도향, 손 창철이 함께한 듀엣 투 코리안즈의 곡으로도 발표가 되었었으며, 작곡자인 이 장희가 자신의 음반에 담기도 했던 곡이다.

그리고, 같은 해에 미풍양속 침해를 이유로 세 가지 버전이 동시에 금지곡이 되어 버린 곡이기도 하다. 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이런 오해를 불러 일으킨 첫번째 책임은 오 현란 자신 또는,오 현란의 음반을 제작한 제작자가 져야 한다. 같은 노래에 불어 가사를 붙여서 <불꺼진 창>이라고 소개를 했으니, 누구든지 샹송이나 깐초네의 번안으로 오해할 충분한 소지를 제공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모든 책임을 오 현란이나 음반 제작자에게만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들이 져야 할 책임은 원곡을 정확하게 명시하지 않은 표기상의 오류 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더 큰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그 책임은 한국 가요를 필요 이상으로 경시하는 우리 감상자들의 몫이다.

오 현란의 <원(願)>은 원곡인 <불꺼진 창>의 뽕짝 필을 완전히 제거한 세련된 유럽 풍의 리듬 & 블루스 곡이다. 한국적 정서라고는 신파조의 가사뿐, 전체적인 분위기는 유럽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오 현란의 목소리나 창법도 상당한 매력을 발산한다. 너무 매끄러운 개작도 때로는 이런 웃지 못할 해프닝을 몰고 올 수 있는 일인가 보다.

그 두 개의 노래가 서로 상봉하는 순간 산지기도 오죽 당황스러웠으면, 저작권 관련 사이트에 접속해서 <불꺼진 창>의 작곡자를 찾아 봤을까. 낯이 뜨거워 질 일이다.

우리는 왜 우리 것을 이리도 가볍게 여기고 살고 있단 말인가. 세련된 분위기로 윤색된 새로운 노래가 귀에 익었다 싶으면, 우린 왜 바다 건너의 것으로만 여기게 되었을까? 시인 랭보Arthur Limbaud의 말처럼 먼 곳이 아름답게 보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가요의 태동기처럼 낯 두꺼운 번안과 샘플링이 또 다시 난무하는 21세기 가요계에 대한 불신감 때문일까? 다시 한 번 기억하자.

오 현란이 부른 <원(願)>은이라는 외국 가곡에 한글 가사를 붙인 번안 가요가 아니라, 한국 가요계의 유아기에 활동한 몇 안 되는 싱어 송 라이터 이 장희가 작사 작곡하고 조 영남이 처음으로 부른 <불꺼진 창>이라는 사실을.

출처: 山ZIGI VINAPPA  (http://blog.naver.com/vinappa)

[불꺼진 창]은 참 여러사람에 의해 불려지고 새롭게 다시 불리우고 있다.
조영남 이장희를 시작으로 김재성, 노길한, 지노, 투코리언스, 오현란등이 부른 각각의 [불꺼진 창]은 그 나름대로 모두 애절하고 감동적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왜 조영남의 [불꺼진 창]이 가장 와 닿는것일까? 마치 내게도 한번 정도 있었을만한 데쟈뷰와 같은 상황에서 미래에 있을지도 모르는 [불꺼진 창]을 바라보는 내 모습에 스스로 슬픔을 덜어본다.

     

     

조영남 Cho, Young-Nam 1945-

출생 : 1945년 04월 02일 / 대한민국
데뷰 (Debut) : 1969년 02월 (번안곡 '딜라밀라' 로 데뷔)
종교 : 기독교
취미 : 시 쓰기
특기 : 그림 그리기

학력
-서울 용문고등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 영어영문학과 중퇴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졸업
-미국 플로리다 트리니티 신학대학교 졸업

가족
남동생 조영수(테너 성악가).

프로필
- 대표곡: 제비 / 최진사댁 세째딸 / 고향의 푸른잔디 / 화개장터
- 기타 활동이력: 지구레코드사 전속(90) / KBS-TV 조영남쇼 M.C(90)

조영남 Cho, Young-Nam 2

얼마 전 가수 데뷔 35주년 기념무대를 준비 한다는 조영남에 대한 기사를 보았다. 영국가수 탐존스의 딜라일라를 번안해서 부르던 때 나 역시 나팔바지가 탐이 났었고 어느 여학생 살던 집 창가를 지나칠 때 흥얼흥얼 따라도 했었는데 벌써 그렇게 35년이 지나갔다 싶어지니 노래 따라 세월 따라 세월무상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과거 그를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노래는 참 시원스럽게 잘한다 하였지만 타고난 재능 덕분으로 준비가 적고 정성이 적은 것 같은 느낌에 세상을 너무 깐보는 것 아니겠는가 싶어지는 기분이 과거 종종 들곤 했었다. 노래 끝 마무리 쯤 한 손을 치켜들고 도취한 눈빛으로 악단을 향해 ‘한번 더’를 외치는 때 오히려 난 왠지 모르게 노래 맛이 삭 가시곤 했었다. 다섯 번 이상 반복을 요청하는 때 난 그가 가수란 사실을 꽤나 오해하기도 했다. 오만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젊은 때의 이야기이고 지금은 그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그로 인하여 오히려 가수란 사람들에 대하여 갖게 되는 일종의 선견에 대하여 오해하지 않는다. 가수란 노래 부르는 것이 본업이니 히트곡은 무엇에 인기가 어느 정도이고 판은 몇 장이 팔려나갔는지 수순처럼 자연 따라 붙게 되는 세상이다. 아마 그에게 35년 동안 판은 몇 장정도 팔았냐고 하면 큰 실례가 될 것이다. 어느 프로에선가 먼저 순순히 자백을 하니 실례가 될 것도 아닌 듯싶기도 한데 인기 상관없이 여태 그는 노래를 한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초조한 빛이 없다. 지금 시중에 잘 나간다하는 가수들에게서 느껴지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세상살이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난 예술이나 문학은 어디까지나 그 출발은 감정의 끼이고 파격이라 생각해둔 적이 종종 있는데 그가 바로 딱 맞는 그 자리가 아니겠는가 싶다. 노래 백만 장이 팔린다고 기뻐할 것 같지도 않고 안 팔린다고 고개 숙일 것 같지도 않은 진정한 노래꾼이 바로 그가 아니겠는가 싶다. 묻어나는 자유분방한 의식 그대로 그의 삶은 규격화 되지 않았다.

나는 그가 떠오르면 자유의 실체가 다가서는 기분이 든다. 우리 같이 정형화 된 사회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쉽지 않은 파격세일이 바로 그가 아니겠는가 싶다. 그래서 또 생각나는 것이 질서란 의미와 파격이란 단어의 의미이다. 그의 삶의 질서는 여타 일반 사람에 비해 가지런한 듯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질서가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질서 속에서 파격이 이루어진다. 무질서 속에서는 파격이 갖추어지지 않는다. 혼돈일 뿐이다.

어느 날 우연히 보게 된 화투짝을 그림으로 형상화한 그 의식의 세계를 보고 그런 생각을 강하게 가진 적이 있다. 왜 하필 화투짝이었을까. 아마도 그가 예정대로 클래식을 전공하였다면 그의 그림의 소재가 화투짝은 아니었을 듯싶다. 화투는 일반가요 같이 늘 대하지만 고귀한 가치에 거룩하지도 않고 어떤 때 치사한 구석이 넘실대는 일반 현실의 한 단면이다. 그 역시 화투짝 만지듯 덕지덕지 치사한 구석을 고루 맛보며 흔하디흔한 대중 가요을 부르며 산다. 화투짝을 택한 것이 바로 그런 젖어든 그의 질서이며 파격이 아니었을까.

헌데 그 기사거리 아래 네티즌들 댓글의 반응을 보니 나의 그런 그에 대한 느낌과는 전혀 다르게 너무도 놀라운 무서운 말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보는 순간 너무도 황당해서 말이 이어지질 않았다. S대를 나온 것을 너무 우려먹고 다니느니 이젠 나이 값을 하라는 그런 식의 말들로 꽉 차 있었다. 세상이 험악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35주년 기념공연 축하한다하는 말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아무리 이름을 걸지 않은 네티즌의 자유의사라 하지만 이럴 수 있을까 싶었다. 그 아래 좋은 말 하나 붙여 놀까하다가 그만두었다.

그 말이 또 불씨가 되어 폐인들의 꼬리 글만 잔뜩 늘어날 것이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남을 좋게 봐주는 미덕이 참으로 아쉬운 세상이다. 그 나이 그런 무대를 갖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기쁠 것이라 믿어진다. 흠집 많은 세월 그 순탄하지 않았던 과거를 만지작대며 그 위치에 서서 노랠 한다는 것이 다른 가수라면 눈물이 먼저 떠오를 텐 데 그에게는 여전한 삶의 재미 한 구석이고 멋이다. 여러 면에서 그는 인생의 다양한 재미는 많이 느껴보고 산 존재라 여겨진다. 그래서 참으로 부럽다. 그의 자유와 파격이 탐이 난다. 삶에 파격이 없는데 무슨 스릴이 있고 흥미진진한 재미와 묘미가 넘쳐날까. 난 파격세일 상품의 느낌 같이 그런 삶이 요즘 꽤나 부럽기만 하다.

조성원 :: 2007-08-03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