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하여

장진영 - 세상 마지막 순간보다 슬픈건 나로 인해 눈물지을 당신입니다.

리차드 강 2009. 9. 3. 20:12

마지막 순간보다 슬픈건 나로 인해 눈물지을 당신입니다.

글을 시작하기 앞서,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오늘은 날씨가 무척이나 맑았다. 30도 가까이 된다고 했다. 9월달에 말이다. 오랜만에 짧은 반바지도 꺼내입고, 새로 산 커플티를 입었다. 비틀즈의 네 맴버들의 이름이 씌여진 티셔츠를 입고서는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옷을 구입했다고 해벌쭉 웃었다. 반바지에 반팔만 입으려니까 참 허전하더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위에 따로 걸칠만한건 없고. 결국은 나가는 길에 옷을 하나 구입하기로 했다. 집앞에 새로 생긴 작은 옷가게에 들려 옷을 구입한다. 만원밖에 안하는데 왜이렇게 마음에 드는지. 오늘 입은 옷이랑도 딱 어울리는게 완전 내 스타일이었다. 기분이 좋구나,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고. 간만에 학교 갈만한 맛이 난다고 할까. 저녁때는 왜그렇게 연어가 먹고싶은지, 남자친구와 함께 빕스로 출동하기로 한다. 5시 50분정도에 들어갔던 빕스에서 8시 50분에 나왔다. 먹는데 열중하기 보다는 떠들고 장난치는데 여념없었다. 가난한 학생이라 돈은 없지만, 오랜만에 맛난 저녁을 먹으니까 왜 그렇게 기분이 좋던지.. 그래, 오늘은 빌어먹게도 왠지 기분을 내고 싶은 그런 날이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평소처럼 씻기 전 컴퓨터를 켰다. 샤워를 하고 나와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모니터앞에 앉았고, 평소대로 네이버에 먼저 들어온다. 그리고 "사망", 장진영.이라는 알수없는 기사를 마주치게 된다. 혹시나 해서 묻는건데, 장진영이라는 사람. 내가 알고 있는 그 사람 맞아?라고 생각하면서 눈을 비벼보지만 화면 가득 보이는 얼굴은 '그래, 니가 알던 그 사람 맞아'라고 당차게 이야기하듯 그녀의 얼굴로 가득 차고 말아버린다. 있잖아, 혹시. 그런말 알고 있나? 균형이라던가, 상쇄작용이라던가, 작용반작용. 엔트로피의 법칙. 뭐 그런것들. 오른쪽은 왼쪽이 있기 때문에 밸런스를 이루는거고 나쁜일이 생기면 좋은일로 상쇄가 되어서 그 나쁜 것을 홀라당 잊어버리게 되는 것. 또는 내가 한대 기똥차게 무언가를 후려치면 그만큼 손바닥이 아프다는 것이나 우리 세상에 모든 에너지는 유한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고갈된다는 것.

그래서 하루종일 기분을 내고 들어오면 뭔가 안좋은 소식을 마주하게 되기때문에 들떠서 붕떠버린 기분이 차분해지고, 너무 조증에 걸린 사람처럼 실실 웃으면서 다니면 그만큼 무거운 소식을 안겨주어 조금은 자중하게끔 만들어주고. 그런것도 아니라면, 혹시 엔트로피법칙처럼 내가 하루에 쓸 수 있는 '기분 좋음'이라는 에너지는 유한하기 때문에 그걸 다 써버리고 나면 더이상 '기분 좋음'이라는 에너지는 써버릴수가 없는 고갈된 자원이 되어버려 나쁜것들만 내 안에 가득차버리게 되고...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수있겠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있잖아. 혹시, 혹시라도 내가 오늘 하루종일 똥을 밟고 새옷을 사지 못하고 우산을 가져나가지 않은 상태에서 비를 쫄딱맞고 들어와서 내 안에 에너지들이 모두 '기분 나쁨'으로 충만한 상태였다면.. 나는 혹시 "장진영씨가 완쾌했다고 합니다"라는 기사를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 ..말도 안되는걸 알지만서도,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어 버리는 순간이었다.

     

그녀와의 첫 조우는 영화 "소름"이었다.

소름(Sorum, 2001)

지금이야 워낙 자극적이고 충격적이고 섬뜩한 포스터가 많이 나와서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2001년 당시만해도 영화 <소름>의 이 포스터는 섬뜩하고 갓난아기의 손에서 피가 철철 흐른다는 점때문에 이슈가 많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지금 보면 코웃음이 핑 날지도 모르겠지만, 당시 이 포스터는 우리들에게 '정말 공포물'과 같은 이미지였고, 게다가 영화속 선영(장진영 역)이라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섬뜩함과 장진영의 말그대로 '소름'끼치는 연기에 많은 이슈가 되었던 영화였다. 물론 당시 미성년이었던 나는 이 영화를 그때 보지는 못했었다. 영화를 좋아했기 때문에 매주 일요일마다 텔레비전에서 하곤했던 접속,무비월드같은 프로그램 등에서 이 '소름'에 대한 이야기로 한창 열띈 이야기를 들려줄때마다 관심도는 점차 증폭되어만 갔지만 정작 내가 이 영화를 접할 수 있는 곳은 아무대도 없었다. (2001년만해도 지금처럼 다운로드같은것이 있지도 않았었다.)

한참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나서, 내가 이 영화에 대한 관심도가 저 밑바닥으로 가라앉다못해 희미한 잔연만을 남기고 다 타버린 성냥개비처럼 비쩍 말라갈때쯤, 나는 이 영화를 텔레비전에서 만난다.

     

사실 영화자체가 무겁고, 어둡고, 느리게 진행되기때문에 이 영화가 보고싶었던 것만큼 기똥차진 않았지만, 장진영이라는 배우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정말 제대로 내 머릿속에 새겨지는 기회가 된 것이다. '소름 꼭 봐봐. 영화 진짜 재미있어'가 아니라 '야, 너도 장진영 알아?'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영화가 바로 소름이었으며 그녀의 멍투성이 매맞는 아내, 선영이라는 캐릭터는 영화자체가 주는 지지부진한 느낌을 꿰뚫는 강한 임팩트를 내가 남겨주었었다. (사실 그때 장진영의 소름끼치는 연기는 신인상을 안겨줄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강한 어필에 성공했고, 많은 사람들이 이름도 잘 몰랐던 인지도도 별로 없었던 장진영이라는 배우에게 주목을 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생각보다 많은 관심으로 혹은 별관심없이, 그녀의와 첫번째 조우는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두번째 만남이 바로 이 영화였다.

국화꽃향기(The Scent Of Love, 2003)

김하인 작가의 장편소설 <국화꽃향기>를 원작으로 만들어낸 영화 국화꽃향기에서의 그 유명한 '희재'역할을 장진영이 맡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국화꽃향기'에서 박해일의 재발견을 이야기하며 (사실 이 영화로 박해일이 많이 뜨긴했었다) 그의 조금 남다른 느낌이랄까.. 보호본능이 일어나면서도 뭔가남자로서의 매력이 느껴지는, 그런 모습에 많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었지만,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진정한 히로인은 장진영이라는 생각을 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민희재의 역이 제대로 받쳐주지 않았다면, 그 몸부림을 감싸안는 서인하의 역이 각광받을 수 있었을까? 결국 이 모든것이 장진영의 덕분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가 없는 국화꽃향기는 없다.

지금이야 너무나도 흔해빠져버린 <대학교 캠퍼스 커플 + 사랑 + 반대 + 불치병/결혼>이라는 연애소설의 무슨 방정식이라도 되는 것같은 스토리라인이 이 당시만해도 굉장히 큰 센세이션이자 우리들의 눈물샘을 미친듯이 쪼아대는 커다란 감동 그 자체였었다. 김하인 작가의 모든것이 담겨있는 듯한 열정적이면서도 책장 한장한장에 가득 배어있는 국화향기 그득한 그 이야기들이 (하지만 그녀의 스토리 생산능력에도 한계가 있는지, '사랑에 미치다'는 국화꽃향기리턴즈같은 버전이다) 스크린에 옮겨지면서 우리들의 상상이나 생각을 함께 희재,인하로 옮겨진 영화 <국화꽃향기>.

나는 그 영화가 정말이지 좋았었다. 당시 성시경을 굉장히 좋아했었기 때문에 그가 부른 이 영화의 OST '희재'도 너무 좋아했었고, 한 겨울에 어울리는 차가운 바람과 그 속에서 살며시 차오르는 국화꽃의 은근하고 슬픈 그 향기같은 영화가 내 마음을 건드린듯했다. 어쩌면, 우리들이 장례식장에서 던지고 오는 그 국화꽃이라는 녀석이 그녀의 머리결에 그녀의 귓볼에 그녀의 뺨에 스며들어 있었기 때문에 희재는 그렇게 가버린 것이 아닐까? 사랑하는 남편과 자신이 살리고자 하는 한 아이만을 남겨둔체 말이다. 동전을 주우려고 할때, 국화꽃향기를 맡았다는 인하의 느낌은 그녀의 죽음을 말하던 암시였을까?

나는 지금에와서야 그런 생각을 해본다. 국화꽃처럼 향기만을 홀연하게 남기고 바람속에 사라진 희재와 같은 장진영을 잃고나서야 말이다.

나무는 한 번 자리를 정하면 절대로 움직이지 않아. 차라리 말라 죽을지라도 말이야.
나도 그런 나무가 되고 싶어. 이 사랑이 돌이킬 수 없는 것일지라도..

     

싱글즈(Singles, 2003)

영화 <싱글즈>는 내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의 세계, 말하자면 직장을 가지고 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친구들과. 여기서 친구들은 이성과 동성을 가리지 않는다, 돈독한 관계를 쌓아 몇년이상을 함께 절친으로 지내고 그 속에서 연애를 못해서(혹은 차여서!) 지금 성적으로 심적으로 괴로움에 가득차있는 20대 후반 혹은 30대 초반의 싱글들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왜 그렇게 이 영화가 재미있었는지 모르겠다. '나난'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캐릭터는 통통튀면서도 전형적이다. 그녀에게서 나는 많은 것을 보았다. 삶에서 중요한 가치는 과연 무엇일까? 순간의 쾌락 혹은 순간의 즐거움? 아니면 내가 원하는 무언가?

그것도 아니라면 사랑 혹은 결혼? 안정적이면서 부유한 삶? 잡을 수 있을때 잽싸게 낚아채야만 한다는 인생의 교훈? 그래, 많은 것을 생각하면서도 웃고 즐길 수 있던 영화였다. 이런 영화의 내면적인 이야기를 잠시 접어주더라도 영화는 자체만으로도 즐겁다. 결혼이 부담스러워서 떠나버린 남자친구, 상사가 잘못한 사안을 뒤집어쓰고 좌천당하고 말아버린 직장, 억울함을 호소할 곳 전혀없음, 귀엽다며 엉덩이를 자꾸 톡톡 치는 죽여버리고싶은 예전 직장 상사, 다른 남자한테 시집은 가되 계속 연애는 하자는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 밥만먹으면 지겨우니까 가끔 생각나는 라면같은게 바로 너라고 구박을 하는 여자, 그런 여자와 자버린 남자.

이 영화 속에서 나열되고 있는 상황들은 우리들이 인생을 살면서 한번 겪어볼수도 있을법한 이야기들을 위트있게 제시하면서 우리들이 혹은 싱글들이 직장과 연애, 연애와 결혼, 친구와 연인이라는 양갈레길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하느지를 한번더 고민하게끔 만든다. 뭐, 결론적으로 따지면 영화에서는 '다필요없고 걍 나 자신을 위해서라면 싱글도 상관없어!'라는 긍정의 힘으로 마무리하는 편이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은 영화의 결말을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이런저런 씁쓸함과 '아, 나도 서른인데'하는 한숨과 혹은 양갈레길에서 우측으로 틀어버릴 것인지 좌측으로 틀어버릴것인지를 결심하려는 굳은 주먹을 느낀다.

난 서른 살이 되기 전 인생의 숙제, 둘 중의 하나는 해결할 줄 알았다. 일에 성공하거나 결혼을 하거나. 지금 난, 여전히 일에 성공하지 못한 싱글이다. 그러면 어때? 마흔살 쯤에는 뭔가 이루어지겠지뭐, 아님 말고. 어쨌든 서른 살 이제 다시 시작이다.

‘나난’ 화이팅! 화이팅!

     

<싱글즈>까지만해도 장진영은 나에게 '마르고 키큰 여배우', 그리고 '연기 잘한다','짧은 머리가 잘 어울린다'가 고작인 배우였다. 그리고 더 이상의 관심은 없었다. 가끔 친구들의 입을통해 듣는 그녀가 누구랑 잤댄다, 누구랑 스캔들이 났댄다,하는 저질스러운 루머를 제외하고는 딱히 그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거나 듣거나 알고싶어하진 않았다. 무관심이었다.

나에게 그렇게까지 영향력있는 배우는 아니었으며, 그녀의 작품역시 재밌고 유쾌하지만 나에게 그만큼까지 영향력을 주는 것도 아니었다. 대한민국에 엄청나게 많은 '영화배우' 중 한명일뿐이었다. 그냥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나는 영화 한편에 장진영 정말 죽인다.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말하자면, '난 장진영 좋던데?'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게되는 그녀의 매력포인트를 잡은 것이다.

바로, 이 영화 때문에.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Between Love And Hate, 2006)

난 솔직한걸 좋아한다. 위선적으로 이야기하고싶지 않다. 이 영화는 저질이다. 욕이 쓸데없이 많다. 보통 서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부르는 호칭은 '년'이나 '놈'으로 시작하거나 끝나는 것이 이 영화의 주된 소통의 방법이다. 야하다. 몸을 파는 여자와 돈만있으면 유흥집에서 놀려고하는 남자들 사이에서의 이야기니 '야한 것'은 어쩔수없이 혹은 당연히 수반되는 것이다. 도덕적이지도 않다. 결혼은 다른 여자랑 하고 사랑은 여기서 찾으려고 하니 당연히 이건 '불륜'이다. 정말이지, 도덕의 '도'자도 볼 수 없다. 아무래도 좋다. 이 영화를 졸작으로 치부하거나 3류영화라고, 그보다 더 심하게 이야기해서 쓰레기 영화라고 이야기해도 좋다. 나는 상관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렇게 이 영화를 쓰레기통에 넣어버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좋아, 난 다 인정할게. 이 영화 정말 저질스럽고, 상스럽고, 야하면서 부도덕해. 다 인정할게. 그러니까 당신도 인정해. 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거지같은 남자랑 여자의 사랑이 우리들의 사랑만큼이나 무겁고 아프다는 것 말이야."

"인생 막장의 여자를 정말 잘 연기했지."

'그게 아니야'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 영화 속에서 장진영이 연기한 것은 인생막장의 여자가 아니다. 사랑의 막장에 서있는 여자를 연기한 것이다. 더이상은 뒷걸음칠 공간도, 앞으로 다시 다가설 공간도 없는 한 여자의 점점 더 가장자리로, 낭떨어지로, 절벽으로 밀려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이건 절대로 인생의 막장이 아니다. 직업의 귀천이 없다? 나는 그건 틀린말이라고 본다. 직업에 귀천은 있다. 하지만 사랑에는 귀천이 없다고 생각한다. 서울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미국에 한 주에 있는 어떤 대학으로 유학을 가서 그 넓은 미국, 그 넓은 공간에서 하필이면 한 여자를 그 순간에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게 되었다, 는 사랑이야기는 귀하고 시골 한 구석탱이 술집 창부와 고기나 팔고있는 삼겹살집 주인이 사랑에 빠졌는데 결국은 결혼못했다더라, 하는 이야기는 천박한가?

절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3류영화'가 아닌 것이다.

난 그녀를 보면서 참 많이 울었다. 여자로서, 애원이라는 것을 해본 사람으로서, 질투와 사랑을 해본 사람으로서, 무언가를 간절히 원했지만 가질 수 없음을 알게되었던 사람으로서.. 나는 그녀를 동정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동정받고 싶었다. 너보다도 불쌍해서 용기못낸 나같은 여자도 있다고.. 보통 영화를 볼때면 그 속에서 내 모습을 찾아내곤 한다. 아, 내가 이 여자였다면.. 내가 이 남자였다면. 이런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달랐다.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보면서 나는 한적한 시골 단란주점 앞 슈퍼마켓에 허접하게 세워진 평상위에서 그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소주잔을 기울이는 내 모습을 보았다. 나는 그렇게 영화를 통해서 그녀와 이야기를 했던 모양이다. 슬펐다고.. 연애는 가벼운데 사랑이 너무 무거워서 나도 울었다고.그 사랑의 무게야 개인마다 다를 수도 있겠지만, '무겁다'라는 사실만큼은 너가 하는 사랑도 내가하는 사랑도 다 똑같은것 아니겠냐고.. 그렇게 나와 그녀는 내 머릿속에서 한참이나 술을 나눠 마시면서 울고 또 울었다.

이 영화를 참 많이 봤다. 적어도 다섯번정도는 봤던것같다. 연아, 그리고 그 속에서 지독하게 부정하고싶지만 자꾸만 보이고마는 우리들의 사랑의 무게. 한번 진창 욕을 하고 돌아서고 싶지만 그럴수가 없는 우리들의 미친듯이 질기고 질긴 연결고리와 그렇게 질긴 연결고리가 끊어진 후에도 실타레를 붙들고 다시 누군가가 이 고리를 이어주기를 바라고 있는 우리들의 미련함. 우린 이 영화를 통해서 정말 많은 무거움을 보고 느낀다. 그리고, 나는 장진영이기때문에 이것을 보여줬음이라고 확신한다. 그렇게, 나는 장진영을 혹은 연아를. 너무나도 사랑했다. 동정했고, 공감했다.

     

아.. 오늘밤은 왠지 신나게 울다가 잠이들고 싶다. 갑자기 무거워진 가슴은 뻥뚤릴줄모르고 끊임없이 답답함이 차오르기만하고 그냥 안타까움이 여운으로 남아 눈시울에 시린다. 나는 연아를 이렇게 보내야만 하는 것일까?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리고 스스로 대답도 한다. 아직은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본 포스팅과 관련한 첨부사진들의 저작권은 '네이버 영화'에 있으며, 이 글은 개인적용도이고 불법사용/영리추구 목적이 아님을 밝힙니다.

출처 : welcome to my city.* | 나비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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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OST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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