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구성 및 해설
1악장 : 더 빠르고 생기있게(Allegro vivace e con brio) 바 장조 3/4
소나타 형식. 가볍고 즐거운 1주제로 갑자기 시작한다. 효과적인 한 마디의 쉼표 후에 바순 반주 위에서 2주제가 바이올린으로 연주된다. 발전부는 1주제를 사용하고 있으며 재치있고 유머가 있다. 재현부에 이어지는 코다는 리듬과 쉼표로 교묘한 절정을 이루어낸다. 마지막으로 1주제의 동기가 제시되어, 능숙하게 곡을 마무리한다.
이 악장은 그의 시기의 고전양식을 가장 잘 표현한 것으로, 세련되고도 유려한 유모어로 가득 차 있다. 거의 완전한 소나타 형식이지만 주제의 수는 많고, 제 5, 제 6처럼 하나의 동기를 일관하여 전개하지는 않는다. 제 1주제는 후반이 로코코풍의 꾸밈이 되어 되풀이되자, 경과악구가 이것에 잇는다. 셈을 더하여, 또한 리듬이 세분되어 가서, F, 내림A, D의 화음에 마침하여, 1마디의 게네랄파우제(Generalpause, 모두 쉼) 뒤에 제 2주제가 나타난다. 주목할 점은 형식의 관례로 보아서, 제 2주제가 C장조이어야 하는데, 실제로 F장조에서 한번 단 3도 아래의 D장조로 바슨을 지닌 바이올린에 나타나, 그 뒤 C장조로 목관에 재현하는 것이다. 이 흐르는 것 같은 악형(樂型)은 제1주제의 후반부의 동기에 유래한다. 이어서 현의 낮은음 감7의 분산화음에 의한 부분이 연주되고, 차차로 힘을 더하여 리드미컬한 부주제군이 계속해서 제시부를 마친다. 이 부분의 조는 감7의 화음을 매개로 하여서 자유로이 조바꿈 한다. 또한 이 부분은 제1주제의 동기에 뿌리 둔 것이다.
2악장 : 조금 빠르게 해학적으로(Allegretto scherzando) 내림 나 장조
발전부가 없는 소나타 형식. 리듬을 새긴 듯한 음의 진행은 멜첼의 동기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라고 하는데, 앞에서 언급했듯이 진위 여부는 확실치 않다. 이 음의 진행 위에서 1바이올린이 1주제를 연주한다. 매우 즐거운 악장이다.
상큼하면서도 품위가 있는 귀족적인 취향이 강한 악장이다. 로코코 스타일의 아주 우아한 음악의 범주에 속하는 악장이다. 그야말로 원숙한 대가 베토벤이 아니고서는 표현하기 어려운 감성이 강렬하게 느껴지는 음악이다. “이런 종류의 음악의 최고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하는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3악장 : 미뉴에트 풍의 속도로(Tempo di Menuetto) 바 장조 3/4
3부 형식. 드물게 스케르초가 아닌 미뉴에트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전후 악장(특히 스케르찬도인 2악장)과의 대비에서 생긴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고풍스럽고 우아한 곡이며,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느린 악장은 없다.
전형적인 고전적 형식에 따른 메뉴에토 무곡인데, 이 음악 역시 즐거운 표정과 품격 높은 무도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트리오 부분은 호른의 2중주를 중심으로 여기에 현의 분산화음이 붙고, 클라리넷과 바순이 가담해서 목가적인 느낌을 조성한다.
4악장 : 빠르고 생기있게(Allegro vivace) 바 장조 2/2
소나타 형식. 경쾌하고 즐거운 악장이다. 특히 발전부와 코다가 아주 충실하며, 악장 전체에 품위있는 유머가 흐르고 있다. 1주제는 아주 빠르게 움직이며 2주제는 따스하고 느긋하다. 악기 용법도 능숙하며 대위법도 충실하다.
베토벤이 아니면 쓸 수 없는 변칙적인 센 리듬의 선율이 가장 여리게 현에 나타난다. 이 부분이 제2악장의 으뜸 선율과 아주 비슷한 것은 주목할 점이다. 이 선율이 이 악장의 근본 악상으로서, 때때로 다음의 선율이 대칭적으로 끼어져서 론도 형식을 이룬다. 그러나 주제와 조바꿈을 보면, 이 악장은 론도 소나타 형식이다. 악장 전체를 통해서 넘칠 듯한 열정이 오히려 적당히 억제되어서 파탄에 빠지지 않고 정리되어 가는 것은 경탄할 말하다. 여러 곳에서 들리는 3잇단음의 신선함, 이것에 의한 복합 리듬에 의한 클라이막스의 효과, 팀파니와 바순의 기발한 용법 등은 놀랄 만큼 독창적이고. 이 비교적 짧은 곡을 베토벤의 대표적 작품의 하나로 만드는 요인이 됐다. 결미부가 전부의 반을 차지한 것도 이 악장의 특징이고, 이 부분에 있어서 로맨틱한 감정을 느낄 수가 있다.
온가쿠노 토모샤(音樂之友社)에서 발간한 '음악 명곡 시리즈 라이브러리'에서 옮김
오이겐 요훔,Eugen Jochum (November 1,1902 – March 26,1987)
독일 태생의 지휘자.
오이겐 요훔은 대기만성형의 표본같은 지휘자로 특히 60세 이후의 레코딩에서 훌륭한 앨범들을 계속 내 놓았다. 독일·오스트리아음악의 정통적인 해석에는 정평이 나 있으며 특히 브람스,브루크너의 해석에 하나의 전형을 이룩한 공적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오이겐 요훔은 1902년 11월 1일,독일 아우스부르크 근교의 바벤하우젠(바이에른)에서 태어났다. 형 오토(Otto Jochum,1898-1969)는 합창 지휘자로서 오르간 주자이자 작곡가였고,동생 게오르크 루드비히(Georg Ludwig Jochum,1909- )는 지휘자였다. 요훔은 어릴 때부터 뛰어난 음악적 소질을 보였고,조부로 부터 오르간을배워 8세 때부터 교회의 예배 때에 오르간을 연주했다. 1914년 아우스부르크의 김나지움과 음악원에 입학하여 피아노와 오르간을 배웠고,양쪽에서 모두 수학했다. 이때 그는 바흐의 음악에 깊히 경도(傾倒)하게 되어 장차 음악가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1922년 뮌헨의 음악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발터스하우젠(Hermann von Waltershausen)에게서 작곡을,루트비히 마이어에게서 오르간을 사사했다. 그러다가 하우제거(Siegmund von Hausegger) 교수에 의해 그의 지휘적 재능이 인정되어 결국은 지휘로 전향하게 되었고,지휘과 마스터클래스에서 공부했다. 요훔에게 브루크너의 음악에 대해 가르쳐 준 사람이 바로 하우제거 교수였다.
1925년 마스터클래스를 마친 요훔은 뮌헨 국립가극장 보조지휘자로서 직업음악가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 이듬해에는 뮌헨 필하모니의 연주회에 데뷔하여 일약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때 그가 연주했던 프로그램에 벌써 브루크너의 <교향곡 제7번>이 들어 있었다.
1927년에 또 킬 시립오페라 극장에서 바그너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을 통해 오페라 지휘자로서 데뷔하여 모두 성공하였다. 이로 인하여 1927년에 킬 극장의 부지휘자로 초빙되어 1929년까지 그 곳에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오페라의 레퍼토리를 50곡 이상으로 넓혔고,또 이에 병행하여 뤼베크 악우협회의 지휘자도 지냈다. 또한 그는 함부르크에 가서 푸르트벵글러와 카알 무크의 연주를 자주 들었는데,그것이 후에 그에게 큰 도움이 되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요훔은 푸르트벵글러의 연주를 '유동적인 건축'이라고 형용했는데,푸르트벵글러도 요훔의 재능을 인정하고 1929년 그를 만하임 국립극장 악장으로 추천했다. 다시 그 이듬해에는 뒤스부르크 교향악단의 음악총감독으로 취임하여,2년 동안 호평을 받았다. 1932년 요훔은 드디어 수도 베를린에 등장하게 되었다.
브루크너의 <교향곡 제1번>의 연주가 인정되어,파울 힌데미트의 추천으로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제1지휘자로 임명되었고,동시에 1 시즌에 20회 이상 베를린 필을 지휘할 계약도 맺었다. 또 시립가극장이나 국립가극장에서도 객원지휘를 했는데,그런 결과로 요훔의 이름은 차차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하였다. 당시의 베를린은 명실공히 독일 음악의 중심지였다.
푸르트벵글러,발터,클라이버,레오 블레히 등 대지휘자들이 모두 베를린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제 30세의 요훔이 베를린에서 높히 평가되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1949년 요훔은 바이에른의 초청을 받고 뮌헨에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을 창립하고 그 상임지휘자로서 활약을 시작했다. 이 신설 오케스트라는 요훔의 뛰어난 지휘를 받아 단기간 안에 독일 제1급의 교향악단으로 성장했다. 이 시기에 루체른 음악제,에든버러 음악제,바이로이트 음악제 등에 출연하여 점차 국제적인 명성을 더해 갔다.
그후 1961년에 애두아르트 반 베이눔의 뒤를 이어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 관현악단의 상임지휘자로 취임하여 젊은 하이팅크를 보좌하게 되었다. 이 계약은 1964년까지 계속되었는데,그 동안 이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세계 연주여행을 함으로써 콘서트헤보우와 그 자신의 명성을 떨쳤다.
1969년 밤베르크 교향악단 상임지휘자 요제프 카이베르트가 급서함에 따라 동 악단의 예술감독 겸 수석지휘자로 취임하여 밤베르크 교향악단의 위기를 잘 수습하기도 하였다. 1970년에는 베를린 도이치 오페라의 해외연주에 동행하여 세계 각지에서 오페라를 지휘했다. 그후 런던 교향악단(1977년 이래 계관지휘자),런던 필하모니 등에서 지휘를 계속하였다.
요훔은 1987년 3월 26일,독일 뮌헨에서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85년 세상을 떠난 부인 마리아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베로니카 요훔(Veronica Jochum)은 미국 보스톤의 뉴 잉글랜드 음악원에서 피아니스트이자 교수로서 후진들을 양성하고 있다.
요훔의 음악은 지성적이고 명쾌하게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과장된 주정주의(主情主義)를 철저하게 배제하고 있으며,작품 그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감동력을 교묘하게 이끌어 낸다. 또한 그의 연주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뒤에 숨기고 객관적이고 고증적인 태로로 지휘에 임했다. 조지 셸이나 에프게니 므라빈스키처럼 자기의 의지를 작품의 해석에 침투시키려고 애쓰는 타입이 결코 아니다. 그의 연주는 리듬은 명쾌허지만 날카롭지는 않으며 솔직하고 담담하게 엮어 간다.
요훔의 예술의 밑바닥에는 기악적인 것보다 성악적인 성격이 깔려 있어서 그것이 장점도 되고 또 단점도 된다. 요훔은 특히 브루크너를 높히 존경하고 깊은 애정으로써 그의 작품을 연주했는데,요훔 자신이 경건한 카톨릭 신자라는 점도 브루크너를 많이 닮고 있다. 그가 남긴 브루크너의 앨범으로는 나이가 들어 내 놓은 앨범들에 아주 좋은 것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첫째로 꼽아야 할 것은 <브루크너 교향곡 전집>이다. 베를린 필하모니와 바이에른 교향악단을 지휘한 것인데,이것은 요훔 예술의 집대성이요 레코드 예술의 금자탑이다. 그리고 브루크너의 <종교곡집>도 같은 의미에서 요훔의 거대한 노작이다.
그가 연주한 바흐도 아주 좋은데 콘서트헤보우와 함께한 유서 깊은 바흐의 <마태 수난곡>과 <미사곡 d단조>가 그 중에서도 아주 탁월하다. 그리고 하이든의 <교향곡 - 런던>,모짜르트의 오페라 <후궁으로부터의 탈주> 전곡반,역시 모짜르트의 <코지 판 투테> 전곡반이 특기할 만하고,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 관현악단을 지휘한 베토벤의 <교향곡 전집>,보스톤 교향악단을 지휘한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모짜르트의 <주피터 교향곡> 결합반,말러의 교향곡 <대지의 노래>,오르프의 칸타타 <카르미나 브라나>,역시 오르프의 <카툴리 카르미나> 등이 한결같은 탁월한 명반들이다.
드레스덴 국립 오페라 극장 관현악단을 지휘한 브루크너의 <교향곡 제7번>과 <교향곡 제8번>도 특히 빛나는 명연이며,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 전곡반(그라모폰)도 귀중한 레코드이다.
 |
아름다운 이웃은 참마음 참이웃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