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생각하면 눈..

6월 항쟁 17주년 "마른잎 다시 살아나 이 강산은 푸르러"

리차드 강 2009. 10. 22. 08:23

6월 항쟁 17주년 "마른잎 다시 살아나 이 강산은 푸르러"

2004-06-10 10:28 | VIEW

 

10일은 6월 항쟁 17주년. 6월항쟁이란 87년 6월 한달 동안 전국적으로 일어 났던 전두환 독재에 대한 저항운동이었다. 이런 범국민적인 저항운동의 기폭제는 6월 9일 연세대생 이한열군이 머리에 최루탄을 맞고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사진 1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위 사진이 바로 그날 그의 모습이다. 다음날 재야와 통일민주당이 연대해 결성된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가 ‘박종철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 및 민주헌법쟁취 범국민대회’를 개최하면서 그해 6월은 뜨겁게 흘러 갔다.

 

 

20여일간 전국적으로 500여만명이 참가하여 4·13호헌조치 철폐, 직선제개헌 쟁취, 독재정권 타도 등 반독재민주화를 요구하였다. 6월 29일 전두환 당시 대통령과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통령후보는 마침내 국민 앞에 항복 선언을 한다.

한편 유시춘 전 국가인원위원회 상임위원은 9일 6월항쟁 관련 인사들과 노무현 대통령을 방문한 자리에서 "80년대 민주화 운동과 6.10항쟁 또 이어지는 7,8,9 노동자투쟁의 의의를 기념하기 위해서는 6월 10일을 국가기념일로 정할 필요가 있다"며 6.10을 5.18과 같은 국가 기념일로 정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등은 6월민주항쟁 국가기념일을 제정하기 위한 대국민 홍보 활동 등을 본격적으로 벌여나갈 계획이라고 밝힌 것으로 CBS가 보도했다.

도깨비 뉴스(동아일보 자회사)는 6월항쟁 17주년을 맞아 자료사진을 통해 87년 6월의 모습을 다시 본다.

 

87년 6월9일 시위 도중 머리에 최루탄 파편을 맞아 사망한
고 이한열씨의 시위 중 경찰이 대학생들을 향해 쏜 직격최루탄에 맞기 바로 전 모습

 

 

고 이한열씨가 87년 6월9일 시위 도중 머리에 최루탄 파편을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순간.

이 사진이 6월 항쟁을 대표하는 것이라 할 만큼 6월 항쟁을 관련자료에 가장많이 등장하는 사진이다. 서울에 주재했던 외신기자가 찍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루탄 속 `6.10시위`

연세대와 고려대에서 집회를 끝낸 대학생들이 10일 오후 서울서대문구 홍제동에서 차도에 누운 채 시위를 벌이던 중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하자 흩어지고 있다.

 

명동 시위 이틀째

6.10대회 가두시위뒤 명동성당에서 철야시위를 벌인 대학생들이 11일 오전11시반 성당입구에 벤치 문짝등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최루탄을 쏘는 경찰에 맞서 돌을 던지고 있다. 이날까지 이른바 넥타이 부대들은 관망하고 있었다.

 

경찰-시위대 충돌

서울 미도파백화점 사잇길에서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하자 방독면과 헬멧등으로 무장한 사진기자들이 취재를 하고 있다.

 

<6월항쟁> (1987.06.11) 불타는 바리케이드

서울중구 회현동 대로변의 가게에서 학생들이 탁자와 의자등을 들고나와 바리케이드를 친뒤 불태우고 있다. (솔직히 불을 피우는 것은 최루가스로 인한 역겨운 구토와 따가운 눈과 피부를 보호하고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다. - 어리버리 돈키호테)

 

명동의 대치

명동성당에서 10일밤 철야시위를 벌인 대학생들이 11일 이틀째 시위를 계속, 성당앞 도로를 점령해 벤치 문짝등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이날 오후에도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6월항쟁> (1987.06.11) 명동성당 계단 앞

명동성당에서 철야시위와 농성을 벌인 대학생들이 11일 오후 6시 성당입구 오르막길에서 `호헌철폐` `독재타도`등 구호를 외치며 이틀째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6월항쟁> (1987.06.12)

 

<6월항쟁>  (1987.06.12) 사흘째 서울 도심 시위

12일 오후5시반경 을지로2가에서 고려대생 5백여명이 도로를 점령한채 가두시위를 벌이며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6월항쟁>  (1987.06.13) 명동성당시위 나흘

명동성당에서 나흘째 농성시위를 계속중인 학생 시민등 3백50여명은 13일 오후 성당입구에서 스크럼을 짜고 `현(전두환)정권 퇴진`등을 요구했다.

 

<6월항쟁>  (1987.06.13) 대로의 연좌시위

대학별 `출정식`을 가진뒤 서울도심에 진출한 대학생중 일부는 13일 오후 5시반경 을지로 입구로터리의 차도에 연좌, 호헌철폐` `구속자석방`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6월항쟁>  (1987.06.14) 대치경찰 철수

명동성당 주변에 경계를 펴고 있던 경찰이 농성시위학생들에 대한 안전귀가를 보장(?)하기 위해 14일밤 10반경 철수하고 있다.

 

<6월항쟁>  (1987.06.18) 도심의 시위군중

18일 오후 7시반경 한국은행앞 길 옆에 세워둔 진압경찰 수송버스를 학생들이 도로 한 가운데로 몰고 나와 돌을 던지며 공격했다.

 

<6월항쟁> 87년 6월 서울 명동성당에서 민주화운동을 펼치고 있는 시민들.

 

<6월항쟁>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이한열.

쓰러진 이한열의 모습은 이후 6월항쟁 기간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그의 모습은 한참이 지나서야 공개됐다. (2003.6.10 서울=연합뉴스)

아마 당시 이 모습이 공개됐더라면 청와대가 불탔을 지도 모른다. 당시 이한열은 사실상 이미 죽었으나 이한열의 죽음은 정권퇴진을 의미하기 때문에 권력의 힘으로 사망발표가 강제로 미뤄졌었다.

 

<6월항쟁> 고 이한열 영정

1987년 6월 항쟁 당시 연세대학교 정문 앞에서 민주화 시위를 벌이다 경찰이 시위하는 연세대학교 학생들에게 쏜 직격 최루탄에 맞아 숨진 고 이한열(李韓烈)씨.

 

<6월항쟁> 연세대(1987.06.19)

 

<6월항쟁>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이한열씨의 영결식.

     

 - 이 사진 게시물은 동아일보에서 시위는 무조건 나쁜것으로 몰고가기위해 2004년 올린 것으로 어리버리 돈키호테는 판단하여 중간중간에 사진 설명을 내가 원하는데로 고쳤다.

     

마른 잎 다시 살아나 - 안치환

한열아 부활하라!! (연세대학교 총학생회 1987)

안치환   Ahn, Chi-Hwan 1966-

No.2 -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