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통일

"좌초→침수→침몰” 해군 최초 보고는 왜 사라졌나│ 시사 IN 2010.04.27

리차드 강 2010. 5. 4. 19:19

외국 전문가들, 북한 공격보다는 "좌초" 침몰 원인 본국에 보고

     

     

침몰한 지 한 달 조금 안 되는 시점인 4월 23일. 천안함의 함수가 물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침몰 원인을 객관적으로 밝힐 수 있는 기본 조건이 드디어 갖춰졌다.

4월 넷째 주 현재로서는 ‘북한 공격설’이 사실상 ‘정론’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거대 신문권력들이다. 천안함이 ‘3인용에서 13인용으로 개조된 북한 반잠수정으로부터 공격을 당했다’는 기사를 출고했다가 다음 날에 ‘인간어뢰설’을 제기할 만큼 자유롭게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다.

범인은 정해졌으니 이제 흉기만 찾으면 되는 것이다. 그 ‘흉기’로 직격어뢰, 버블제트, ‘개조된 반잠수정’, 스텔스 잠수정, 스텔스 어뢰 등이 차례로 제시되고 있다. 앞으로도 뭐가 나올지 모른다.

△어뢰 폭발 시에 예상되는 물고기 떼죽음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고 △절단면 손상 부위가 버블제트 효과로 보기엔 너무 약하며 △어뢰라고 할 때 예상되는 굉음, 물기둥, 열기 따위 징후가 없다는 반론은 ‘인터넷에 떠도는 허튼소리’로 간단히 무시된다.

 

공중에서 녹화한 영상, 미군에 있다

이제 남은 것은 북한에 대응하는 방법밖에 없다. 보복 타격을 감행할 것인지 저강도 대응(북한 선박의 제주해협 통과 금지, 휴전선의 대북 방송 재개, 대북 선전물 살포)으로 맞설 것인지만 결정하면 된다는 분위기다. 물론 이른바 ‘친북세력 척결’은 전제조건이다.

그러나 주한미군 동향에 밝은 소식통에 따르면, 미군 측은 지난 3월26일 밤 천안함 침몰 시점을 전후로 하는 북방한계선(NLL) 일대의 공중촬영 영상을 확보하고 있다. 서해 상공에서 미군 측의 무인정찰기(UAV)가 북한 해군의 동향과 한·미연합훈련 상황을 녹화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미군은 평소에도 북한의 동향을 관찰하지만 한·미연합작전 때는 더 엄밀히 감시한다. 당시에도 훈련 중이었기 때문에 UAV가 상공에서 찍은 영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 열상감시장비(TOD)는 측면 촬영이지만, UAV는 위에서 찍고 정찰 범위도 넓기 때문에 더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그런데 당시 찍은 자료에서 미군 측은 북한의 도발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미국이 사건 초기부터 북한 관련설을 과감하게 부정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편, 또다른 소식통에 따르면, 민군합동조사단에 합류한 외국 전문가들이 본국에 보고하는 과정에서 북한의 공격보다는 좌초 등 함선 자체의 문제 때문이라고 침몰 원인을 보고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그러나 4월21일 국방부가 밝힌 바에 따르면, 미국 합동조사단과 체결한 MOA(국가 간 합의각서)에는 "한국 측 동의 없이(조사 결과를) 공개할 수 없다“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와중에 민군합동조사단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고 있다. ‘사건’의 한 당사자인 군이 현재 진행 중인 2차 합동조사단을 주도하는 데다 인원 구성, 민간인 역할 및 참여 비율 등이 전혀 공개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국회 국방위원회 의원들마저 이와 관련된 자료를 확보할 수 없는 형편이다. 국방위원인 민주당 안규백 의원실 이동윤 비서는 “우리는 합동조사단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 총 인원이 몇 명이고 그중 민간인이 몇 명인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지난 4월 16일 ‘외부충격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를 냈던 1차 합동조사단의 경우, 총구성원이 108명이었는데 이 중 민간인 24명이 포함된 것으로 발표되었다. 그러나 24명 중 18명은 국방과학연구소 등 정부 관련 기관 소속으로 밝혀져 ‘순수 민간인’은 고작 6명이었던 셈이다. 이 ‘순수 민간인’들이 조사에 어떻게 참여했는지도 밝혀져 있지 않다.

 

“최초 상황에 주목하라”

더욱이 2차 민군합동조사단에 참여하기로 했던 민주당 추천 인사는 최근 사퇴를 통보했다. 그는 당초 4월22일 민주당 진상조사특위위원들과 함께 평택 2함대로 가서 함미를 직접 보기로 했다. 그러나 당일 오전 합참으로부터 함미를 보여줄 수 없으며 그 대신 서울의 합참본부로 들어오라는 전언이 왔다는 것이다. 조사 대상(함미)을 볼 수 없는 민간 조사위원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인지 의아하다.

이 민주당 추천 인사는 인터넷 정치웹진 ‘서프라이즈’대표인 신상철 씨다. 민주당이 신 대표를 조사위원으로 추천한 이유는, 그가 항해학을 전공한 데다 해군 및 조선회사 복무까지 ‘통섭’적인 경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신 대표는 항해학과를 졸업한 뒤 해군소위로 백령도, 대청도 등 NLL 부근에서 경계 근무를 수행했다. 전역한 뒤에는 해운회사를 거쳐 현대조선, 대우조선, 삼성조선, 대한조선공사 등에서 7년여간 신조선 감독 업무를 역임한 바 있다.

조사단 참여를 포기한 신 대표는 그 대신 단독으로 천안함 침몰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3월 27일 자 아시아경제신문 포토뉴스로 실렸던 해도이다. 이는 해군이 실종자 가족에게 천안함 침몰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자료다.

그는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해군이 백령도 남서쪽 근해의 한 지점(오른쪽 사진의 ☆표 자리)에 ‘최초 좌초’라고 표시한 것을 강조했다. 해도의 왼쪽 상단에 걸쳐, 이 지점의 평균 해수면이 6.4m이고 특히 ‘16시 57분과 22시 39분은 해수면이 가장 낮은 시각’이라고 펜으로 기록되어 있다. 더욱이 ‘최초 좌초’로 표현된 ☆표 지점은 등심선을 보면 해안단구(바다 밑에 솟아 있는 언덕)이며, 해당 시간대의 수심은 4m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해안단구는 매우 단단하다. “백령도 해안단구는 모래가 퇴적되어 매우 단단한 지질로 세계에서 단 두 곳인 백사장 활주로가 백령도에 있었을 정도다”라고 신 대표는 말한다.

신 대표는 해군이 기록한 대로 이 지점에서 천안함이 ‘최초 좌초’하면서 함미의 좌측 하단부에 크랙(균열)이 생겼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천안함이 계속 항해해서 함미로 해수가 유입되면서, 하단부의 크랙이 우측 상단부로 찢어져 결국 선수와 선미가 절단되었다는 것이다. 이 점은 이종인 알파잠수 대표(32~33쪽 인터뷰 참조)의 주장과 매우 비슷하다. 또한, 사건 직후 청와대 역시 해군으로부터 침수로 인해 침몰했다고 보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단호한 대처에는 투명한 조사가 필수

“선박(군함)이 얕은 수심에서 모래나 뻘 위에 얹히는 것을 좌초(agrounding)라고 한다. 천안함 함미에 측면 스크래치(긁힌 자국)에서 좌초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어선이나 상선과 달리 군함의 바닥 부분에 스크래치가 생기면 책임자가 중징계를 받을 정도로 큰 사고다. 결국, 크랙으로 해수가 침입해서 설계상 전혀 고려되지 않은 하중이 함미를 가득 채우면서 절단이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격실과 빈 공간이 많아서 함수보다 늦게 침몰할 함미가 맥주병처럼 가라앉았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이에 더해 신 대표는 4월23일 천안함의 함수가 드러나기 시작한 이후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3월27일 아침 백령도 용트림 바위 앞에서 떠올랐다가 오후에 사라진 함수와 4월 23일 떠오른 천안함 함수의 형태가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이 같은 신 대표 주장의 ‘진실성’과 함의는 천안함 함수를 조사하면 드러날 것이다.

이 같은 ‘북한 공격설’에 대한 반론에 김효석 민주당 의원도 뛰어들었다. 그는 4월20일, 보도자료를 통해 오스트레일리아의 수중어뢰 실험으로 폭파된 토렌스호 절단면 등 사진 10여 장을 제시하면서 “인양된 천안함 함미의 모습이나 각종 증언에 따르면 어뢰설은 신뢰하기 어렵고 사건 원인에 대해 납득이 안 되는 부분이 너무 많다”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천안함 침몰의 주범이 북한이라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는 가운데 “반대 가설”도 활발히 제기되고 있는 양상이다. 함수가 완전히 인양되면 본격적인 조사와 진상 규명이 가능하리라 기대된다. 어뢰설과 침수설은 물론이고 어뢰설을 근거로 활용되고 있는 지진파(34~36쪽 딸린 기사 참조)까지 엄밀하고 투명하게 검증되어야 하며, 합동조사단을 개편해 ‘관제 조사’ 시비를 미리 차단해야 할 것이다.

전 국민이 사회적 고통과 군사적 긴장까지 감수하며 ‘범인’에게 단호히 대처할 수 있으려면 이를 밝히는 조사 과정 역시 흠잡을 데 없을 정도로 투명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함미 긁힌 자국이 좌초 증거다”

스크래치는 전함이 어딘가에 얹혔다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

(시사IN / 이종태 기자 / 2010-04-26)

 

"함미 긁힌 자국이 좌초 증거다"

천안함 침몰 직후 ‘어뢰설’을 주장했던 이종인‘알파잠수’대표가 ‘침수설’로 생각을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인양된 함미에 폭발 흔적은 없었다”라고 강조한다.

해난구조 전문가인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대표가 인천일보(4월15일자)와의 인터뷰에서 ‘천안함은 침수로 인해 침몰한 것’이라고 주장해 논란이 일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어떤 이유 대문에 배에 물이 차서 한쪽으로 기울며, 무게를 이기지 못해 두 동강 난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어뢰 등이 터졌다면 생존자들은 코피가 지거나 고막이 찢어지는 등 이비인후과 계통의 부상을 입는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대부분 골절상을 입지 않았나”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종인 대표는 2003년 대청도에 1년여간 좌초했던 북한 유류 운반선, 2007년 말 태안에서 기름유출 사고를 낸 허베이 스피리트호 등에 대한 구조작업을 펼친 바 있다.

그가 운영 중인 알파잠수기술공사는 로이드선급협회(세계 최고의 선박 검사․감정․등록 기관), 노르웨이선급협회, 미국선급협회 등 국제적 선급협회의 인증을 받은 해난구조 전문업체이기도 하다. 4월21일 이종인 대표를 만나 그의 생각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질문했다.

‘침수설’을 제기한 뒤 항의를 많이 받지 않았나. 인터넷에서는 ‘빨갱이’라는 등 욕설을 퍼붓는 사람들이 많던데.

별의별 전화와 항의가 많이 들어왔다. 그러나 어떤 의견이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나 새벽 4시 30분에 뉴욕에서 전화해 격려해주시는 분도 있더라.

혹시 지금은 생각이 바뀌지 않았나. 북한이 어뢰를 발사해서 폭파했다는 설이 대세로 굳어지는 것 같다.

그때와 생각이 다르지 않다. 폭파가 아니라 좌초라고 생각한다. 어뢰로 배가 딱 잘려 침몰되었다면, 탱크(갈라진 부분 부근의 선체 외피)가 안쪽으로 함몰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함몰이 없고, 폭파에 따른 폭발음이나 섬광 따위도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뢰 맞은 배의 절단면은 단지 너덜너덜해서는 안 된다. 군함은 철판이 일반 상선에 비해 매우 얇다. 철판이든 플라스틱이든 폭발로 인한 단시간의 충격으로 잘라지면 절단면에서는 매우 불규칙한 곡선의 형태가 나와야 한다. 단면이 칼날처럼 된다.

그럼 천안함이 침수로 침몰했다는 당신의 가설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는 소린가.

그렇다 사고 직전인 3월28일 아침 KBS<일요진단>에 나갔을 때는 어뢰라고 진단했다. 그때까지 정보를 보면 원인은 어뢰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함장이 ‘꽝’하는 소리에 나와 보니 이미 함미가 사라졌고, 문도 안 열렸다지 않는가. 이런 경우에는 어뢰로 인한 폭발로 봐야 하는 거다. 그러나 함미가 인양된 이후 보니까 폭발로 볼 수 있는 징후가 오히려 거의 없었다. 그래서 ‘침수’라는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

다른 계기는?

우선 아시아경제신문이 게재했던 ‘해도 사진’(31쪽 참조)이다. 이 자료는 군이 실종자 가족에게 사고 경위를 설명하기 위해 ‘사건 직후’에 만든 자료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해도를 보면 백령도 서남쪽 근해의 한 지점에 최초 좌초‘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은가. 사건이 일어난 날 인천의 저조 시간이 오후 8시 29분인데, 백령도는 10시쯤 될 것이다. 수위가 계속 낮아지는 시간에 천안함이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배에 크랙(균열)이 생겼는데, 이후에도 전함이 움직이면서 물이 함미로 들어와 결국 가라앉았다고 생각한다. 크랙이 발생한 상황에서 전함이 계속 움직이면 물 들어오는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크랙도 점점 더 다른 부위로 번지게 된다. 결국 함미 부분에 물이 더 들어오면서, 함미는 조금 더 가라앉고 함수는 뜨게 되었을 거다.

그런데 함수의 무게도 대단하기 때문에 중력을 견딜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배가 무게를 이기지 못해 오른쪽으로 비틀리면서 찢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때 비틀어지면서 우그러진 자국이 선체 측판에 보이는 주름 아닐까. 배가 단숨에 잘렸다면 주름이 생기지 않는다. (긴 원통을 두 손으로 잡고 비틀어 자르는 시늉을 하며)이런 과정에서 절단면이 위쪽으로 휜 것이다.

천안함 함미에서 볼 수 있는 다른 물리적인 징후는 있는가.

우선 배 뒤에 프로펠러 블레이드가 휘었다. 암초 같은 것에 치였다고 본다. (해도에 나타난 것처럼 천안함이 좌초되었다고 할 때)사건 발생 시간이 썰물 시점이기 때문에 조류를 타고 이동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 경우, 좌초 지점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프로펠러를 돌려서 배를 움직이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프로펠러가 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고는 흔하다. 몇 년 전 대청도에서 북한 배(1100t 급의 유류 운반선)가 1년여 동안 암초에 좌초되어 있은 적이 있는데 그때도 구조를 맡았다.

함미의 좌측 하단에 검게 칠해진 부분을 보면 스크래치(긁힌 자국)가 있긴 하다. 그런데 배는 다 그런 거 아닌가.

(상선이나 어선은 아니지만) 전함은 그 부분에 스크래치가 있으면 안 된다. 전함은 아무리 작은 것도 뻘밭에 얹히면 안 되도록 만들어진 거다. 그 스크래치는 천안함이 어딘가에 ‘얹혔다’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다.

그렇다면 천안함 생존 선원들이 들었다는 소리는 무엇인가.

철판이 잘릴 때는 엄청난 소리가 난다. 심지어 종이 찢을 때도 소리가 나는데 쇳덩어리는 또 어떻겠는가. 더욱이 이 쇳덩어리 내부는 88m짜리 울림통, 즉 공명통이다. 예전에 무게 15만t, 길이 340m 배를 인천 앞바다에서 자른 바 있는데 그때도 엄청난 소리가 몇 차례에 걸쳐 났던 기억이 있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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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조 (국기에 대한 경례방법) 「대한민국국기법」(이하 "법"이라 한다)

제6조의 국기에 대한 경례는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른 방법으로 한다.

1. 제복을 입지 아니한 국민은 국기에 향하여 오른손을 펴서 왼쪽 가슴에 대고 국기를 주목(주목)한다.

2. 제복을 입지 아니한 국민 중 모자를 쓴 국민은 국기를 향하여 오른손으로 모자를 벋어 왼쪽 가슴에 대고 국기를 주목한다. 다만, 모자를 벗기 곤란한 경우에는 제1호의 방법에 따를 수 있다.

3. 제복을 입은 국민은 국기를 향하여 거수경례(거수경례)를 한다.

     

선언 - 노래를 찾는 사람들

노래를 찾는 사람들 3 (서울음반 1991)

노찾사 Noraereul Chatneun Saramdeul 1984

Side B1. 선언 2 (작사,곡:류형수) 전체 합창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