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100대 명반

이문세 4집 '사랑이 지나가면' (SRB 1987) │ [대중음악 100대 명반]16위

리차드 강 2010. 12. 29. 21:40

이문세 4집 '사랑이 지나가면' (SBR 1987)

이문세 4집 '사랑이 지나가면' (SBR 1987)

이문세 Lee Moon-Sae (李文世,1959년- )

1. 사랑이 지나가면

 

 

사랑이 지나가면 - 이문세

(이영훈 작사, 곡)                                  

그 사람 나를 보아도 나는 그 사람을 몰라요.
두근거리는 마음은 아파도 이젠 그대를 몰라요
그대 나를 알아도 나는 기억을 못합니다.
목이 메어와 눈물이 흘러도 사랑이 지나가면

그렇게 보고싶던 그 얼굴을 그저 스쳐 지나며
그대의 허탈한 모습 속에 나 이젠 후회없으니
그대 나를 알아도 나는 기억을 못합니다.
목이 메어와 눈물이 흘러도 사랑이 지나가면

 

아티스트: 이문세

음반 이름: 이문세4
음반 구분: 정규, studio - 4집
발매 일자: 1987-03-10 / 대한민국
Album Releases: 1987.03.10 SRB

Credits
레코딩 엔지니어 :  최병철
레코딩 스튜디오 :  서울 스튜디오

드럼 : 강윤기
피아노 : 김명곤
레코딩 엔지니어 : 최병철
오케스트라 편곡 및 편곡 : 김명곤
디자인 : 황순근

Introduction

'사랑이 지나가면', '이별 이야기', '그녀의 웃음소리 뿐' 등의 연속 히트로 당시로써는 상상하기 힘든 판매고를 올리며 최고 인기 가수로서 입지를 확고히 하며, '제1회 골든 디스크상'의 영예를 차지한 앨범. (출처 : 이문세 홈페이지)

     

     

 Side A
1. 사랑이 지나가면
2. 밤에 머무는 곳에
3. 이별이야기 duet with 고은희
4. 그대 나를 보면
5. 가을이 오면

 Side B
1. 깊은 밤을 날아서
2. 슬픈 미소
3. 굿바이 (Good Bye)
4. 그女의 웃음소리뿐
5. 어허야 둥기둥기


(작사, 곡:이영훈 편곡:김명곤)
(작사, 곡:이영훈 편곡:김명곤)
(작사, 곡:이영훈 편곡:김명곤)
(작사, 곡:이영훈 편곡:김명곤)
(작사, 곡:이영훈 편곡:김명곤)


(작사, 곡:이영훈 편곡:김명곤)
(작사, 곡:이영훈 편곡:김명곤)
(작사, 곡:이영훈 편곡:김명곤)
(작사, 곡:이영훈 편곡: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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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이문세 -밤이 머무는 곳에 - 내 맘대로 한국 대중음악 싱글 200선

posted by 용추 2007/10/19

.... 중략...

 

시작은 이문세 4집의 '밤이 머무는 곳에'로 한다. 이문세의 3, 4, 5집은 이른바 한국형 어덜트 컨템퍼러리의 이정표라 할만 한 것인데 특히 4집은 내 생각에 그 중에서도 정점이 아닌가 한다.

좋은 작편곡과 세션맨들의 훌륭한 연주에 힘입어 이 별다른 재능없는 가수 -난 이문세가 탁월한 가창력을 지녔다는니, 뛰어난 가수라느니 하는 평가에는 동의할 수 없다. 그저 '이문세답게 부른다' 정도면 모를까, 그의 보컬은 지극히 평범한 정도를 벗어나지 못한다- 는 80년대 말, 90년대 초 한국 대중 음악의 한 봉우리를 이루게 된다.

좋은 곡들이 밟히는 가운데에서도 '밤이 머무는 곳에'라는 곡은, 대중의 인기를 얻었던 '사랑이 지나가면', '굿바이', '가을이 오면', '그녀의 웃음소리뿐', '깊은 밤을 날아서', '이별 이야기' 등과는 달리, 뭔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서늘한 느낌과 처연한 정서를 전해준다. 이문세의 목소리와도 가장 잘 어울리는 노래는 바로 이런 타입의 곡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5집부터 서서히 등장하는 곡 후반부 처절 모드 발성은 이문세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특히 1분 40초 즈음, 2절이 시작할 때 '밤이 가면 내게로...' 에서 첫 단어 '밤이'를 '바암이'로, 음을 살짝 흔들어주는 기막힌 센스를 놓치지 말자.

-p.s) 좀전에 나는 '사랑이 지나가면', '굿바이', '가을이 오면', '그녀의 웃음소리뿐', '깊은 밤을 날아서', '이별 이야기'라고 썼다. 살벌하지 않은가.

글출처:  음악을 모독하지 마라

     

     

[대중음악 100대 명반]16위 이문세 ‘이문세4

-시화전 보는 듯 격조있는 사랑노래-

▲16위 이문세 ‘이문세 4’(87/서라벌레코드)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빛바래지 않은 사진과 같은 음반이 있다. 정치·사회적 격동기였던 1980년대 중후반, 대중음악도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었다.

뭐에 홀린 듯 한꺼번에 출현한 명반들과 새로운 창작자들에 의하여 음악마니아들 중 다수가 우리 음악으로 돌아서고, 팝송 위주의 라디오 편성구도는 역전된다. 그 복판에 이문세와 이영훈이 있었고, ‘이문세 4: 사랑이 지나가면’이 있었다.

신중현, 이정선 등 여러 작곡가들에게 곡을 받았던 이문세는 ‘이문세 3: 난 아직 모르잖아요’(1985)에 앞서 엄인호의 소개로 젊은 작곡가를 만난다. 이영훈이었다. 그리고 다음 앨범 ‘이문세 4: 사랑이 지나가면’은 모두 그의 곡들로 채워지는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화성적인 안정성과 구조적인 완결성을 중시한 이영훈은 클래식과 팝을 접목하고 새로운 조류를 수용했으며, 시적이고 회화적인 대중음악을 제시했다. 격이 있는 사랑노래를 만든 것이다. 여기에 과잉과는 거리를 둔 이문세의 분절적이고 절제된 창법이 맞물렸다. 이와 같은 가수와 작곡가의 이상적인 결합에 의하여 다시금 작곡가가 조명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풍부한 성량이나 가창력 등의 기교가 좋은 가수의 조건이 아님도 확인된다.

서정적인 발라드 ‘사랑이 지나가면’에서부터 현악연주가 두터운 붓이 된 ‘밤이 머무는 곳에’와 남녀 듀엣의 전형이 된 ‘이별 이야기’는 지금의 기준에서도 세련된 화법을 취했다. 신스 팝과 록을 반영한 ‘그대 나를 보면’과 포크송 ‘가을이 오면’ 등은 저마다의 색을 지니고 있었다. 당시엔 음반의 A면과 B면에 다른 무게를 두곤 했지만, B면의 ‘깊은 밤을 날아서’와 ‘슬픈 미소’, 그리고 ‘굿바이’에 이르기까지 모두 음악성과 대중성을 겸하고 있었다. 무그와 같은 색감 있는 악기의 이용과 뛰어난 연주자들의 세션은 앨범을 더욱 수려하게 색칠했으며, 편곡을 맡은 김명곤은 이영훈 못잖은 비중으로 기여했다. 이렇게 탄생한 곡들 대부분이 라디오 프로그램의 신청곡 차트를 점령했고, 음반의 판매고는 기록적이었다.

이 모든 장점들의 정점이자 가요사의 명곡인 ‘그녀의 웃음소리뿐’으로 대미를 장식한 ‘이문세 4: 사랑이 지나가면’은 대중가요의 완성도를 한 차원 끌어올린 작품이 되어 주류가요의 질적 성장을 견인했다. 그리고 팝송세대가 가요세대로 전환하는 데에 결정적으로 공헌한다. 또한 대중성과 예술성을 겸한 앨범이 그에 상응하는 성과까지 얻어낸 대표적인 사례였다. 일관된 흐름 안에 다양성을 녹여낸 ‘앨범’을 지향하여 ‘웰-메이드’의 교과서가 됨으로써 1980년대 대중음악의 부흥이 오버그라운드와 언더그라운드에서 함께 이루어졌음을 증언하는 결과물이다.

이문세는 음반과 공연, 라디오에 활동기반을 두고 전담 작곡가 체제로 음반을 제작했다는 점에서 남달랐다. 언더그라운드 음악인들과 다른 선상에 있으면서도 TV 가수들과는 차별화하는 전략이었다. 이영훈의 곡들 역시 주로 이문세의 앨범에서 듣게 되는 희소성의 가치가 있었다. 그래서 이미지를 소모해버리고 화석화되어버리지 않을 수 있었다. 이는 라디오와 TV의 역할과 위상에 대하여 다시금 짚어보게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렇게 20년 전, 선곡은 물론 곡의 배열까지도 완벽한 가요-팝 앨범이 태어났고, 어느 가수와 작곡가는 그렇게 세대의 아이콘으로 남았다. 〈나도원|웹진 가슴 편집인〉〈선정 기획|가슴네트워크〉

     

     

◇이문세 프로필·출생 : 1959년
·데뷔 : 1978년 (CBS ‘세븐틴’ MC로)

·주요활동
-1983년 이문세 1집 ‘나는 행복한 사람’
-1984년 이문세 2집 ‘The Best: 그때 그랬어야’
-1985년 이문세 3집 ‘이문세 3: 난 아직 모르잖아요’
-1987년 이문세 4집 ‘이문세 4: 사랑이 지나가면’
-1988년 이문세 5집 ‘이문세 5: 시를 위한 시’
-1989년 이문세 6집 ‘이문세 6: 그게 나였어’
-1991년 이문세 7집 ‘이문세 ●: 가을이 가도’
-1993년 이문세 8집 ‘LEE MOON SAE: 오래된 사진처럼’
-1995년 이문세 9집 ‘Stage with Composer Lee Younghun: 후회’
-1996년 이문세 10집 ‘花舞: 조조할인’
-1998년 이문세 11집 ‘Sometimes: 내 마음 속의 너를’
-1999년 이문세 12집 ‘休=사람과 나무 그리고 쉼: 슬픈 사랑의 노래’
-2001년 이문세 13집 ‘Chapter 13’
-2002년 이문세 14집 ‘빨간 내복’

글 출처: ⓒ 경향신문 & 경향닷컴 2007-10-18

     

     

이문세 Lee Moon-Sae (李文世,1959년 1월 17일 ~ )

 

출생: 1959년 01월 17일 / 서울, 대한민국
데뷰 (Debut): 1978년 (나는 행복한 사람)
취미: 배드민턴

학력
-서울 광성고등학교
-명지대학교 기계공학과
-명지대학교 대학원 정보처리학과

가족: 아내, 슬하 1남
신체조건: 178cm, 80kg

 

프로필

- 수상경력
1985년 MBC 라디오부문 연기대상 우수상
1986년 골든디스크상
1987년 MBC 라디오부문 연기대상 최우수상 , 골든디스크상
1988년 MBC 10대 가수상, 골든디스크상
1989년 MBC 10대 가수상
1993년 골든디스크상, MBC 연기대상 MC상
1996년 MBC라디오 골든마우스상, KBS 10대 가수상

- 방송활동
1985~1996년 MBC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 DJ
1993년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MC
1996년 HBS스페셜 <이문세의 오래된 꿈읽기> MC
1997년~ MBC FM라디오 <2시의 데이트> MC

'이문세' 의 음악 활동: 박상원 / 노영심 (2000) / 이영훈

     

Track No.09 - 그녀의 웃음소리뿐

     

Introduction

유난히 얼굴이 긴 생김새 탓에 '마굿간', '홍당무' 등, 말과 연관된 닉네임으로 유명하며, 오랜 방송생활을 통해 DJ, 방송계 행사진행자 등으로 얼굴이 많이 알려진 이문세는 다재다능한 방송인으로서의 유명세만큼이나 20년에 다다르는 가수생활이 말해주듯, 오랜 경력을 지닌 베테랑 가수이다.

1978년 CBS 방송국의 '세븐틴'이라는 프로그램의 진행을 시작으로 해서 연예계에 발을 디디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1970년대 한국음악의 근간이 되었던 통기타 포크음악계에서 무명 가수로서의 음악 활동을 시작하면서 가수로서의 활동에도 그 첫발을 내디딘다. 그래서 그의 연예활동은 미미한 가수생활의 시작과 화려한 방송진행자라는 포지션을 언제나 병행해가며 진행됨을 알 수 있다.

1981년 8월 "나는 행복한 사람"을 발표하면서 가수로서의 활동을 시작, 1984년에는 2집 "파랑새"를 발표했찌만, 팬들의 주목을 끄는데는 실패한다. 오랜 고민 끝에 그의 가수로서 성공은 1985년 작곡가 이영훈을 만나게 되면서 그 빛을 발하게 된다. 이영훈과 함께 준비한 3집앨범 중 "난 아직 모르잖아요"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되면서 그해 방송 순위 1위에까지 오르며 인기 가수 대열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이런 인기는 1987년에 발표한 4집에까지 이어지고, 고은희와 함께 부른 듀엣곡 "이별이야기"는 현재까지도 꾸준히 리메이크되는 이별곡의 백미로 남게되면서 가수로서 이문세의 입지를 세우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며, 같은 앨범에 수록된 다른 곡 역시 인기를 얻어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판매고를 올리며 최고가수로서 인기를 확고히 한다. 이어서 1988년에 발표한 5집에서는 3,4집 만큼의 폭발적인 히트만큼은 아니더라도 "시를 위한 시"를 위시한 그의 대표곡이라고 할 수 있는 히트곡을 연이서 발표해 그 인기를 꾸준히 이어간다. 1989년에 발표한 6집은 이전의 인기와는 다른 개인적인 성찰이 담긴 앨범으로 자신의 음악적인 입지를 다졌으며 1991년 7집에서는 그동안의 자신의 음악과는 다른 변신을 시도하기도 한다. 1993년 8집에서는 이제까지 자신의 음악 동반자였던 이영훈놔 결별하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만들기 위한 발판을 마련한다. 이런 변신과 꾸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90년대 들어서면서 한국가요계의 판도변화와 인기장르의 변화는 이문세를 예전의명예를 지닌 가수 만으로 인식하는 하강곡선을 타게 된다. 1995년 발표한 9집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팬들의 기대에 못미치는 반응을 얻어 이런 하강세의 정점에 있을을 알게 한다.

9집의 실패를 계기로 이문세는 당시 새롭게 불기 시작하는 가요계의 젊은 감각을 자신과 화합하길 바라는 제스쳐를 취하는데, 스스로 기존의 단순한 앨범 제작 방식을 탈피해 보다 적극적으로 젊은 작곡가와 음악인들과 왕래를 하기 시작, 당시 왕성한 활동을 보이던 젊은 작곡자들을 비롯, 새로운 음악인들을 만나게 된다. 김현철, 유희열, 정원영, 이적 등과 함께 음반 작업을 하고 이소라와, 노영심과는 새로운 음악활동의 영역을 확장시키기 시작한다. 그 결과로 1996년에 탄생된 이문세의 10집 '화무'는 당시 유행하던 '추억'을 테마로 9집의 실패을 만회시킨 앨범으로 기억된다.

이런 인기 가수로서의 복귀를 향한 일련의 가수활동과 함께 계속되어온 방송활동은 가수로서의 음악적인 발판을 확고히 하기 위해 또 다른 결단을 요구, 급기야 1998년에는 10년동안 진행해온 라디오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마저 접고 11집 앨범을 발표하고 진정한 가수로서 돌아오게 된다. 이런 이문세의 노력은 가수로서의 활동 경력으론 노장가수라 부를만 하지만 기존의 자기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감각을 자신의 음악에 담으며 꾸준히 노력, 젊은이들과 30대 팬을 확보하고 있는 가수로 기억되며, 1999년 자신의 음악적 스승인 이영훈과 다시 의기투합애 만든 앨범 '애수(哀愁)'를, 2001년엔 13집을 발표하면서 꾸준히 가수활동을 이어오며 자신의 건재함을 확인시키고 있다.....

글출처: maniadb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