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좋은 정태춘

민통선의 흰나비 - 정태춘│통일은 먼거 같고

리차드 강 2009. 4. 10. 02:55
민통선의 흰나비 - 정태춘
9집 - 정태춘 박은옥 20주년 기념 (1998, HKR)
정태춘 鄭泰春 / Cheong, Tae-Choon 1954-
No.2 - 민통선의 흰나비
 
민통선의 흰나비
(작사:정태춘 작곡:정태춘 편곡:최성규)
맑은 햇살 푸르른 수풀 돌보지 않는 침묵의 땅
긴 긴 철조망 살벌한 총구 저 갈 수 없는 금단의 땅
바람에 눕는 억새 위 팔랑거리는 흰나비
저 수풀 너머 가려네 저 산도 넘어 가려네
기름진 땅 무성한 잡초 흐드러진 꽃밭에서 쉴래
소나무 그루터기 무너진 참호 녹슨 철모 위에서 쉴래
졸졸 시냇물 건너며 팔랑거리는 흰나비
저 강도 넘어가려네 저 언덕 너머 음
해 기울어 새들 날고 서편 하늘 노을이 지면
산봉우리 스피커 초소 위의 망원경 날갯짓도 조심조심
외딴 아기 새 둥지 위 팔랑거리는 흰나비
어두워지기 전 가려네 저 너머로
 
Credits
레코딩 엔지니어 : 윤정오
마스터링 엔지니어 : 서상환
기획사 : 삶의 문화 / 레코딩 스튜디오 : 한국음반 스튜디오 / 마스터링 스튜디오 : Sonic Korea
Recording Mixing Engineer 윤정오, 이훈희 (한국음반 B STUDIO) 최성규 (대전 Dream STUDIO) / Mastering 서상환 (Sonic Korea) / 사진 김승근 / 디자인 P&T / 진행 김영준 / 기획 제작 1998년 2월 삶의문화
굽이치는 임진강
     
민간인 통제구역의 초소
     
철조망 위의 철새
     
정태춘·박은옥 정동진 / 건너간다 삶의 문화/한국음반, 1998
'환멸의 90년대' 시대성찰
[정동진 / 건너간다]는 5년 간의 깊은 사색과 성찰의 산물이다. 그의 표현대로 '환멸의 90년대' 한가운데를 건너가면서 느낀 짙은 상념이 묻어난다. "흐르지 않는" "노쇠한 한강을 건너가"는 지친 도시의 사람들이 부대낀다. 중년의 정태춘은 그 가운데서 피로감에 휩싸여 "환멸의 90년대를", "천박한 한 시대를", "이 고단한 세기를" 쓸쓸하게 지나가는 동안 섣불리 희망을 얘기하지 않는다("건나간다"). [무진 새노래]의 기개, [아, 대한민국]의 격정과는 거리가 있음은 물론이다.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 얼굴마다 삶의 기쁨과 긍지가 충만한 살 만한 세상", 해방된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었던("이 어두운 터널을 박차고") 몇 년 전과도 사뭇 다른 목소리다. 나지막하고 차분한, 그러나 피로감에 싸인 목소리.
그런데 그 목소리는 도시를 벗어나게 되면서 놀라운 힘으로 전화된다. 박은옥이 부르는 첫 곡 "정동진"에서는 새로운 시작점 "정동진"의 동해 바다 위에서 쌍무지개를 발견한다. 부부가 함께 부르는 마지막 곡 "수진리의 강"에서는 변함 없는 들녘에서, 도회지 골목길에서 힘들고 고단하지만 꿋꿋하게 보내는 일상적 삶의 힘을 덤덤하게 그린다. 어쩌면 일상적 삶의 힘이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리라. 앨범을 규정하는 이상의 세 곡에서 정태춘은 여전히 빼어난 노랫말로 시각적 이미지를 뚜렷하게 그려내며 잔잔한 아름다움과 감동을 전해준다.
"민통선의 흰나비"에서는 철조망으로 분단된 땅의 현실을 노래하고 있으며, "5.18"에서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오월에 대해 분노를 담아 노래한다. 이 노래들에선 여전히 또렷한 정태춘의 비판적 사회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정신을 음악적, 예술적으로 승화하는 능력 역시.
이 앨범의 미덕은 무엇보다도 수려하고 우아한 편곡에서 찾을 수 있다. "정동진(1)"은 전반적인 곡조 진행, 특히 선율이 1984년 곡 "우리는"을 빼닮았다. 그렇지만 생동감 있는 기타 라인과 꿈틀거리는 슬라이드 기타는 이 노래의 주제의식과 걸맞는 생명력을 더해준다. 곡마다 적절하게 배치된 관악기와 현악기 연주는 지금까지 이들의 음반(그리고 거개의 한국산 음반)에서 늘 모자랐던 부분을 훌륭하게 보완해준다. "민통선의 흰나비"의 리코더와 스트링, "가을은 어디"의 재즈 감각이 가미된 세련된 클라리넷과 색서폰, "5.18"의 아코디언과 스트링, "건너간다"의 가슴 저미는 첼로, "수진리의 강"의 오보에와 혼...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들을 때마다 귀에 거슬렸던 판에 박힌 신시사이저와 드럼 프로그래밍을 생각해볼 때 이 앨범에선 무척 신경 쓴 느낌이다. 물론 시간적 여유를 두고 한 작업이기에 가능했겠지만 새로 가세한 편곡자 및 연주자 최성규에게 공을 돌려야 될 듯하다.
또 다른 조력자로서는 윤민석과 조동익이 있다. 멜로디언 소리가 아련한 세박자의 "들국화"와, 평온함 속에 소박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소리 없이 흰 눈은 내리고"는 '민중가요' 작곡가로 유명한 윤민석이 작곡한 사랑노래들이다. 정태춘이 아닌 작곡가의 곡을 부르는 가수 박은옥을 발견할 수 있다(박은옥의 솔로 음반을 구상 중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또 두 곡은 "정동진(2)"와 함께 조동익이 편곡하고 박용준, 함춘호 등의 연주자로 참여한 곡이기도 하다. 익숙한 (그래서 큰 감흥이 없는) 이들의 편곡과 연주보다는 정태춘이 작곡하고 최성규이 편곡한 곡들에 더 점수를 주고 싶다("정동진(1)"과 "정동진(2)"를 비교해서 들어보기 바란다).
[정동진 / 건너간다]에서도 여전히 말의 힘, 노래의 힘을 확인할 수 있다. 그 힘이 삶에 찌든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것이든, 멍하게 살아가다가 문득 일상을 돌아보게 만드는 깨우침이든, 세상의 불의와 부당함에 대한 분노와 변혁 의지이든 간에 말이다.  20020419
이볼 evol21@netsgo.com | editor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