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좋은 정태춘

보리피리 - 정태춘 (詩 : 한하운, 곡 : 백창우)│詩 노래

리차드 강 2009. 4. 10. 17:07

보리피리 - 정태춘

백창우 시를 노래하다 2 (2005)

詩 : 한하운 (1919-1975 함경남도 함주 출생)

CD 1 Track No.1 - 보리피리 - 정태춘 노래

 

보리피리

詩 : 한하운 / 작곡 : 백창우 / 노래 : 정태춘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꽃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 (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 닐니리

     

한하운의 詩 '보리피리'는 다양한 곡들이 있다. 백창우가 만들고 정태춘이 부른곡, 가장 많이 알려진 조념 선생의 곡(양은정의 곡은 조념 선생의 곡을 국악가요 형태로 편곡한 곡), 김진균의 곡 까지. 밑에는 가장 많이 알려진 조념 선생의 '보리피리'에 대한 글이다. 참고로 조념 선생의 곡 중에 70년대 민중가요의 대표적인 곡 '녹두꽃'이 유명하다.

"작곡가이자 바이올린 연주자이기도한 조념의 대표작 <보리피리>는 단순히 ‘닐리리 닐리리’라고 흥얼거리는 피에로적인 노래는 결코 아니다. 시인 한하운의 한 맺힌 인생의 총정리라고 할 수 있는 시에, 조념의 철학적 인생관에 입각하여 작곡한 수작 중에 수작이다. 단순한 선율과 향토적인 춤곡조의 선율, 단순한 화음과 리듬으로 처리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관현악 편곡으로 세밀히 분석하면 깊이 있는 선율과 부가화음, 리듬, 전개법 등이 아주 잘 표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 보육원 직원들과 함께한 모습(가운데 앉아있는 사람이 한하운)

     

한하운 시비를 찾아서

김구림(시인, 사진작가)

장능공원묘지

한하운 묘지 앞에 세워진 시비를 찾아가려면 경기도 김포시내로 진입하면서 이정표를 주시하면 장능으로 가는 표시가 나타난다. 장능 가는 길을 따라가면 고개를 넘어서면서 바로 우측엔 장능, 좌측엔 장능공원묘지가 있다.

이곳에 유택을 마련한 한하운의 본명은 태영. 함남 함주 출생으로 중국 북경대학을 졸업하여 함남·경기도 도청 등에 근무중 시 「전라도 길」 외 12편이 이병철 선(選)으로 발표, 나병의 병고에서 오는 저주와 비통을 읊어 문단의 주목을 끌었다. 시집 『한하운 시초』 『보리피리』 『한하운 시선집』 『나의 슬픈 반생기』 등이 있다.

…중략…

이승에서도 저승에서도 철저히 외로운 시인

묘지 관리인은 약속대로 오후 두시에 만나게 되었다. 60세쯤 되어 보이는 관리인은 몸은 튼튼하게 보였으나 수척한 얼굴에 어머님을 잃은 아픔의 흔적들이 짙게 배어 있었다. 나도 2년 전에 어머님을 여의고 그 슬픔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하필 경황중에 누를 끼치게 되어 그분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다.

그분은 한하운 묘지의 위치를 기억하고 있었다. 묘지를 보는 순간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도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시비가 세워져 있을 정도에서 벌초가 안 되어 있거나 초라하게 보인 묘지는 내 일찍 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묘지 앞에 세워진 몇 그루의 상록수는 20여년동안 한번도 손질한 적이 없어 보였고 묘지에는 잔디와 잡초가 반반 이었다. 나는 관리인에게 한하운의 유택이 왜 이곳에 마련되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20여년 전 일이라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전해 듣기로는 김포에서 부천으로 가는 길가에서 죽었기에 가까운 이곳에 유택을 마련하게 된 줄로 알고 있다.”라고 그는 말했다.

10년여 전부터 찾아온 사람은 거의 없으며 벌초도 매년 관리인이 해주고 있으나 금년에는 바쁜 탓으로 아직 손이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 보아도 음식 한번 차린 흔적이나 꽂 한송이 놓은 흔적이 없었다. 시비도 너비 30cm 높이 83cm로 지금까지 내가 확인한 시비 중에는 가장 작은 시비에 전면은 ‘詩人人韓何雲永泰之墓’ 후면에는 시 「보리피리」전문과 ‘1975.4 미망인 유임수 세움’이라는 글귀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보리피리 불며 봄언덕
고향사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인욕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전문

     

◀ 소록도 중앙공원에 세워진 한하운 시비./사진 ⓒ오마이뉴스 조호진

한하운은 생시에 별 탈없이 사회활동을 한 것처럼 알려져 있으며 그와 관련된 기록에도 나병은 완치되었는데 간장염으로 사망했다고 대부분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나병은 완치되는 것이 아니라 나으면 음성환자가 된다고 한다. 그는 월남하여 한때 방랑생활을 했다.

천형인 나병의 병고에서 오는 비통을 인내하면서 강인한 정신력으로 사회참여 내지 나병환자 시인으로서 큰 화제를 일으켜 한때 많은 시 독자를 얻기도 했다. 1950년 후에도 세 번이나 나병이 재발하여 남모를 고통을 느끼며 살다가 마침내 나병과 간장염의 합병으로 눈을 감았다고 국립소록도 병원의 한 관계자는 말한다.

이렇듯 생시에는 나환자로서 정신적 갈등과 실향의 아픔까지 겹친 불운의 한 시인, 그 시인의 초라한 묘지에서는 매운 연기가 침묵으로 솟아 순례자들의 눈시울을 적시운다. 눈물의 언덕을 지나 다시 눈물의 언덕에 누워 지금도 보리피리를 부는지, 장능공원묘지는 김포비행장과 가까운 거리에 있어 이륙하고 착륙하려는 비행기마다 독수리 발톱처럼 사납게 바퀴를 내밀고 그 폭음은 봉분의 늙은 잡초들을 흔들며 하늘을 찢는다.

이처럼 살아서도 죽어서도 철저히 외로운 한 시인의 묘지 앞에서 나는 무심히 돌아설 수 없었다. 꽃이라도 몇 송이 놓아드리고 싶었다. 시내로 내려가 가을 냄새 물씬 풍기는 하얀 국화 한 묶음을 사가지고 왔다. 하루라도 더 오래 피어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상석 위에 놓지않고 시비 앞에 땅속 깊이 꽂아 놓았다.

묘지 아래 차길을 따라가면 세한기계회사 곁에 큰 버드나무 한 그루가 있다. 버드나무 전면 도랑길을 따라가면 우측으로 아래서부터 아홉째줄 세번째 묘가 한하운 묘다.

소록도를 찾아서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속으로 찔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千里 먼 전라도 길 전라도 길

―<소록도 가는 길에> 전반부 생략

옛날 일제시대에 나환자들이 타고 다닐 차가 어디 있었겠는가. 걸어서 걸어서 순천 벌교를 지나 황톳길을 따라 고흥군 녹동에 도착, 배를 타고 소록도로 건너가야만 했다. 그것도 영하의 날씨 또는 여름 무더운 날씨에 환자의 몸으로 걸어서 가야 했던 그 고통스런 장면을 한하운은 시로써 잘 나타내주었다. 또한 하운은 나환자 구제운동에 크게 공헌하였다. 소록도 관계자에 의하면 “한하운은 소록도를 여러 번 다녀 갔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입원한 기록은 없으며 다른 나환자들을 위하여 다각적으로 동분서주하였다”고 말한다.

너들의 이름은 문둥이였다.
(중략)
굽신거리던 허리는 이제
대지를 굽어 하늘을 향하는
일하는 허리가 되었다.
어서 욕된 얼굴을 쳐들어라…(중략)
여기 정착지에 서서 이제 한없이
눈감고 죽어도 좋은
살아보는 나의 세월에 서 있다
꿈에라도 생각치 못한 나의 세월이여

―<어느 정착지>에서

위 시에서 나타나듯이 허리를 굽신거리며 빌어먹는 나환자들이나 얼굴이 험하여 고개 한 번 들지 못하고 살아가는 나환자들, 인간대접을 제대로 받지못한 수 많은 나환자들을 위하여 한하운은 노심초사하며 살았다. 그는 소록도 정착지를 돌아보며 ‘이제 한없이 눈감고 죽어도 좋은/살아보는 나의 세월에 서 있다.’라고 읊은 그분이 만일 지하에서 평화롭고 풍요로운 현재의 소록도를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즐거워 할까

소록도는 전남 고흥군 도양읍 녹동항으로부터 해상 600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으며 150만평 면적에 국립 소록도 병원을 중심으로 7개 마을이 있다. 국립 소록도 병원은 원래 1916년 소록도 자해원이라 칭하여 일본인에 의하여 설립되었다. 당시는 19만 9천평에 나환자 100명을 수용하였으나 1943년 말에는 5,575명의 많은 환자를 수용하였으며 1945년 해방 후 일부 불량 환자들의 폭동으로 80여 명의 희생자를 내기도 했다.

1982년 국립 소록도 병원으로 개칭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각종 시설물은 물론 운영 제도면에 많은 발전을 가져왔다고 한 관계자는 말한다.

한하운 시비는 공원 내 구라탑(救邏塔) 좌측에 있다. 시가 새겨진 빗돌은 1939년 소록도병원 제4대 원장 주방정계(周防正季)의 재직시 환자들이 바닷가에서 가로 370㎝, 너비 185㎝, 두께 60㎝의 돌을 목도해서 끌어다 놓고 망배석으로 사용해 오던 것을, 1972년 5월 17일 병원 개원 56주년 기념사업으로 시 「보리피리」 전문을 새겼다고 한다.

소록도 하면 우선 불결한 느낌을 갖게 된다. 한때는 나환자를 천형의 죄수처럼 사갈시 여겨왔음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현재 소록도를 한번이라도 방문한 사람이면 천형적 나병은 불치의 병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나병은 낫는다’라는 공원 탑에 새겨 놓은 푯말과 음성환자들이 열심히 노력하며 사는 모습 아래서 잘못된 선입감은 사라지게 된다.

현재 소록도는 유독(有毒)지대와 무독(無毒)지대로 이원화하고 있으며 유독지대(환자지대)의 경작지는 각 부락 공동으로 경작하고, 경작지 일부는 환자 개인별로 분할 배당하여 주로 채소를 재배토록 하고 있다. 앞으로는 경노동 수익사업을 연구 개발하여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면서 소득증대를 기할 수 있는 사업을 연구 개발하여야 할 것이라고 한 관계자는 말했다.

지금은 옛날 그 어렵던 시절을 찾아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아직 오염되지 않은 바다와 깨끗한 해수욕장 흰 구라탑을 중심으로 융단처럼 잘 손질된 잔디밭과 아름다운 상록수로 이루어진 병원 주변의 공원은 사철 변함없이 아름다운 곳이다.

또한 섬 대부분에 송림이 울창하며 갑만 굴곡이 수려하고 흰 모래밭과 푸른 소나무가 이어져 풍경이 아름답다. 일면 토질도 비옥하고 도처에 백화소차(白花蔬茶)가 무성하며 생활용수도 풍부하고 기후도 온화하다. 나환자 요양소가 아니라 낙원같은 느낌이 든다.

한하운 시비는 제주도 북제주군 애월읍 광명 2리 제주조각공원 신천지미술관에도 시 「보리피리」와 <파랑새>가 새겨진 시비 2기가 `세워져 있다.

나는/나는/죽어서/파랑새되어
푸른하늘/푸른들/날러 다니며
푸른노래/푸른울음/울어 예으리
나는/나는/죽어서/파랑새 되리/

―<파랑새>-

     

정태춘의 사랑과 人生과 永遠의 詩

정태춘 - 가수 겸 작곡가. 1954년 경기도 평택 출생. 1978년 자작곡 <촛불> <시인의 마을>로 데뷔하였으며, 1979년 MBC 신인가수상과 TBC 방송가요대상 작사부문상을 수상하였다. 1980년 가수 박은옥과 결혼하였고, 이후 <떠나가는 배> <북한강에서> <무진 새 노래> 등의 부부 합작 앨범을 제작 발표하였다. 특히 1990년 <아, 대한민국> 2002년 <정태춘 박은옥 20년 골든 앨범>고 10집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를 발표하였다.

 

책소개

누렁송아지 - (부제) 정태춘 노래 시 전집

이영미 편 / 한울 / 1989-11

80년대 들어 온몸으로 노래부르며 전국의 노동현장과 대학가를 누비던 노래꾼 정태춘의 80여편의 노래와 시를 엮은 것이며 아울러 대중문화평론가 김창남의 정태춘 작품세계에 대한 해설, 평소 절친하게 지내는 김영철이 최근 그의 변모된 모습에 대한 단상, 그리고 정태춘과 차미례의 인터뷰를 실어 그의 노래 세계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는 책

기도 의정부에서 태어나 열여섯 살부터 시를 쓰고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 1980년대 중반 포크 그룹 '노래마을'을 이끌며 '남누리 북누리', '나이 서른에 우린', '그대의 날',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햇볕 한줌이 될 수 있다면' 같은 노래를 발표했고, 어린이 노래패인 '굴렁쇠 아이들'을 만들어 전래 동요와 창작 동요를 음반에 담아왔다.

 

 정태춘 2

 이영미| 한울(한울아카데미)| 1994-06-25 발행

정태춘씨는 지난 1993년 10월, 신작음반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공륜의 사전심의를 거치지 않고 출판 하는 것으로 검열제도에 대한 저항을 다시 시작했다. 아름다운 노래 자체보다 노래가 불러일으킨 사건으로 더 유명해진 음반이 그것이다.

문화체육부는 한달 뒤 정태춘씨를 서울지검에 고발함으로써 대응을 시작했다. 이어 정씨의 관련법률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정’신청을 재판부가 받아들여, 검열문제의 위헌 여부를 가리는 일이 헌법재판소의 손에 넘어갔다. 정씨의 재판은 그 결과가 나오기까지 중단된 상태이다.

연극·노래평론가 이영미씨가 엮은 〈정태춘2〉는 그 ‘92년 장마, 종로에서’의 노래집이고 이 음반이 대중음악계에 불러일으킨 90년대 최대 사건의 보고서이다.권말 부록 ‘가요 작사·작곡가 정태춘의 공륜심의와 관련한 사례들’의 첫 사례이며 정태춘의 두번째 노래집. 가수로서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사전심의제도에 맞서 외로운 싸움을 시작한 정태춘의 삶의 이야기와 목소리를 엮은 책이다.

창문을 열고 내다봐요
저 높은 곳에 우뚝 걸린 깃발 펄럭이며
당신의 텅빈 가슴으로 불어오는
더운 열기의 세찬 바람….

공륜은 〈시인의 마을〉의 가사를 쓴 ‘오리지널 시인’을 찾아 잠시 헤맸다.그 시인이 바로 정씨임을 알고 나서는 “대중가요 가사로는 불건전한 요소가 짙어 부적절”하다고 평가했다.‘우뚝 걸린 깃발’도 ‘텅빈 가슴’도 그리고 ‘더운 열기의 세찬 바람’도 시가 아닌 대중가요에는 벅찬 단어라는 배려였다.- 안정숙 기자(1994-08-03 / 한겨레신문)

차례 - 시와 악보, 정태춘의 작품이야기들 / 내가 들은 음반 [92년 장마, 종로에서]
인터뷰-정태춘 VS 이영미 / 공륜심의와 관련한 사례들
가요의 검열제 철폐운동에 관한 일지 / 그외, 정태춘의 다양한 사진화보와 이야기글

 

정태춘

이영미| 한울(한울아카데미)| 1997

혼자서 고민하고, 자신을 변모시키면서 철저한 물적기반에 바탕한 대중가요의 메커니즘에서 빠져나와 사회의식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노래꾼 정태춘. 그의 80여편 노래와 시

차례
대중가수에서 새로운 노래문화의 일꾼으로/ 정태춘, 그가 가는 길/ 아! 대한민국(1989∼현재)/ 나그네(∼1975)/ 그리운 고향(1976∼1979)/ 그의 노래는(1980∼1985)/ 송아지 송아지 누렁송아지(1985∼1988)

 

노독일처

정태춘| 실천문학사| 2004.

도서관 소장정보 : 국립중앙도서관

가수 겸 작곡가로 유명한 정태춘 씨의 첫 시집이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이 그는 1980~1990년대 내내 한번도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의 편에 서서 노래해온 가수이다. “노래 앨범을 만들듯이 시집 한권을 엮었다”는 그는 이 시집에서 사람과 능력을 바르게 보고 평가하지 않는 예술판, 학벌에 따른 차별, 권력의 모순 등 천박한 세태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시도하고 있다.

시인 도종환은 "이번 시집에 실린 많은 시들 중에도 노래가 되어 불릴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래가 되지 않고 그냥 시로 있는 것이 더 좋은 작품들도 많다”며 열정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이 시집의 가치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다. 손이 닿지 않는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듯이 읽는 내내 독자는 끊임없이 통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저자 | 이영미

대중예술 평론가. 고려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있으며, 강의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민족예술운동의 역사와 이론>, <노래 이야기 주머니>, <재미있는 연극 길라잡이>, <서태지와 꽃다지> 등이 있다.

     

시를 노래하다... 백창우

백창우 - 경기도 의정부에서 태어나 열여섯 살부터 시를 쓰고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 1980년대 중반 포크 그룹 '노래마을'을 이끌며 '남누리 북누리', '나이 서른에 우린', '그대의 날',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햇볕 한줌이 될 수 있다면' 같은 노래를 발표했고, 어린이 노래패인 '굴렁쇠 아이들'을 만들어 전래 동요와 창작 동요를 음반에 담아왔다.

여러 가수들에게 '사랑'(강영숙 노래),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임희숙 노래), '내 사람이여'(이동원 노래), '겨울새'(안치환 노래), '부치지 않은 편지'(김광석 노래) 같은 노래를 써 주기도 했다. 또한 '시노래 모임 나팔꽃' 동인으로 일곱 해째 나팔꽃 음반과 공연을 연출하고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를 비롯한 시집 네 권과 스스로 노래한 음반 두 장, <이원수 동요집>, <딱지 따먹기> 같은 동요 작곡집을 여러 장 냈고, 창작 동요집인 <보리 어린이 노래마을> 시리즈로 제44회 한국백상출판문화상 어린이.청소년 부문을 수상했다.

책소개 - 윤동주, 이육사, 이상, 한용운, 김소월, 김수영, 백석 등 한국인이 사랑하는 시인들의 시를 작곡가 백창우가 노래로 만들고, 이 노래를 어린이 노래패 '굴렁쇠 아이들'과 포크 가수들이 불렀다. 우리 근현대를 대표하는 시인들의 작품세계에 관해 다루는 에세이 한 권과, 32곡의 노래를 수록한 CD 2장이 함께 실려 있다.

그렇다, 사람의 가슴 속에는 시가 들어 있다. 그렇지만 그걸 모르고 사는 사람들도, 잊고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이 시들이, 이 노래들이 어느 날 누군가의 가슴에 민들레 꽃씨처럼 둥둥 날아가 앉았으면 좋겠다. - 백창우

추천글 1 - 시는 곡이 없으면 노래의 옷을 입지 못한다. 아무리 좋은 시도 시 속에 내재되어 있는 노래를 스스로 드러내 놓지 못한다. 그 노래를 끄집어내 주는 이가 있어야 한다. 그가 바로 백창우다. 백창우는 시 속에 숨어 있는, 결코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끝끝내 감추려고 하는 시의 노래를 기어이 드러내고 마는 영혼을 지니고 있다. 나는 그 영혼을 사랑한다. - 정호승(시인)

추천글 2 - 백창우는 음악적 소화력이 참 큰 작곡가이다. 소월의 시나 박남준의 시를 노래로 풀어 나가는 따뜻한 서정성이 있는가 하면, 이육사나 신동엽의 시를 밀고 가는 부드러운 힘이 있다. 동요적 발상에서 시대와 함께하는 운동적 리듬과 리얼리즘 시를 노래로 재창조하는 호소력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는 바이지만, 이상의 난해한 시를 해석하는 솜씨를 보고는 또 한 번 박수를 보낸다. 시를 노래로 만드는 일이 사실 쉬운 일이 아닌데 근대 문학 초창기 시에서 오늘의 시에 이르기까지 시간을 넘어서는 소화력, 근대와 탈근대를 아우르는 음악적 역량에 놀랄 뿐이다. - 도종환(시인)

     

보리피리 - 테너 엄정행

테너 엄정행 가곡집 제2집 (1988)

엄정행 Yeom, Jeong-Haeng (1943- 양산)

Track No.9 - 보리피리 - 테너 엄정행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