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하는 펌

설치 하루만에 내려진 `5·18성화` │ 내일은 5.18입니다.

리차드 강 2007. 5. 17. 16:07

성당 설치 하루만에 내려진 `5·18성화`

광주교구 남동성당 설치 하루만에 내려진 홍성담의 `5·18 성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때 계엄군에 짓밟힌 광주를 예수의 고난과 연관지은 5.18 성화(聖畵)가 천주교회의 의뢰로 만들어졌으나 성당 안에 설치된 지 하루만에 철거돼 작가의 작업실로 되돌아갔다.

민중미술작가 홍성담(51)씨는 가톨릭 광주대교구 남동성당 본당 안에 설치하도록 9일 넘겨줬던 '오월 예수 14처' 유화 14점을 열하루만인 20일 회수했다. 그림들은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에 있는 작업실의 수장고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새로운 계기가 오지 않는 한 밖으로 내놓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광주대교구 측이 본당 밖에 갤러리를 마련해 전시하겠다고 제안했으나 작가 홍씨는 "원래 성당 안 묵상용으로 제작한 것이라서 갤러리 전시는 적절하지 않다"며 뿌리쳤다. 그는 " 5.18에서 가톨릭 외에 다른 종파와 대학생, 노동자 등의 역할도 적지 않았으며, 14처 성화를 성당 밖에 전시할 경우 5.18을 기독교만의 것으로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천주교 광주대교구 측이 '제작 의뢰 때의 조건과 달리 성당 안에 설치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뜻과 함께 주는 작품 비용을 거절했다. 책임이 누구에게 있든지 작품이 원래 계획대로 설치되지 않은데다 다른 돈도 아닌 교회 돈이라서 그냥 되돌려 보냈다고 했다.

◆ '오월 예수 14처' = 가톨릭 광주대교구는 지난해 5월 남동성당을 '5.18 기념 성당'으로 지정했고, 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홍씨에게 "14처 그림을 통해 광주 오월 예수를 형상화해 달라"고 의뢰했다.

남동성당은 5.18 민중항쟁 당시 전남도청 인근에 있어 민주 인사들이 모여 수습대책 등을 논의했었다. 82년부터는 서슬이 시퍼런 군사정권의 감시와 통제 속에서도 5월 17일마다 추모 미사를 열어 5월 영령들을 위로하는 한편 참상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앞장서 왔던 곳이다. 이같은 역사성을 살리는 뜻에서 남동성당의 본당 안에 설치할 새 14처 제작을 주문했던 것이다.

14처(處)는 예수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혀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은 다음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올라 못 박혀 죽어 묻히기까지, 예수의 고난을 14개 장면으로 그린 그림이나 조각. 천주교회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성화로 일반적으로 본당 안 양측 벽면에 설치된다. 신자들은 이 앞에서 '예수의 고난을 함께 한다'는 마음으로 묵상한다.

천주교 신자일 뿐만 아니라 5.18 민중항쟁에 몸소 참여했었던 홍씨는 천주교회의 주문을 기꺼이 수락했다. 그리고 1년 가까이 매진하며 혼신을 기울인 끝에 4월 8일 80호 크기(145㎝×97㎝) 의 유화 14점을 완성했다.

홍씨가 그린 14처는 크게 봤을 때 '예수 수난=광주 민중항쟁'이란 등식 아래 80년대 군사 정권에게 탄압받는 광주시민들과 고락을 함께 해 온 희망으로서 예수를 형상화했다.

제1처 '빌라도에게 유죄판결을 받으심'의 경우 손발이 쇠사슬에 묶인 채 신군부 앞에서 사형선고를 받는 장면으로, 제6처 '베로니카가 수건으로 예수의 얼굴을 닦아 드림' 의 경우 십자가를 맨 채 피범벅이 된 예수와 눈물을 흘리는 소녀의 손수건 등으로 표현했다.

◆설치 하루 만에 철거=홍씨는 3월 남동성당 사목회에 출석해 작업의 진행 상황 등을 설명하고 박수까지 받았다. 4월 그림 완성 직후 이미지를 디지털 파일로 광주대교구에 보냈다.

또 남동성당은 이달 초부터 '5월 예수 14처' 설치를 위한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12일 설치를 마쳤다. 이날 저녁 "아주 훌륭하게 됐다"고 성당 측으로부터 감사의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음날 갑자기 상황이 반전됐다. 홍씨는 "담당 신부가 다음날인 13일 낮에 전화를 걸어 14처 그림들을 떼어내야겠다며 양해를 구했다"고 전했다. 그 이유에 대해 신부는 "작품이 전통적인 성화의 이미지에 맞지 않다며 광주대교구에서 철거를 지시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홍씨는 "대주교께서 철거를 지시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엔 강력하게 반발했지만, 이젠 천주교회의 속사정을 잘 아는 신자로서 교구장의 말에 순명해야 하는 신부의 입장을 오히려 내가 위로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인테리어와 팸플릿 제작비용 등을 포함해 1억원이 넘게 드는 사업을 그간 신부 혼자 결정해 처리했겠느냐"며 "갑자기 일이 뒤집어져 신부만 입장이 곤란해진 것같다"고 말했다.

현재 남동성당은 14처가 걸려야 할 본당 안 양쪽이 하얀 벽에 당초 홍씨의 그림을 조명할 등들만 달려 있는 상태다.

◆홍씨의 14처 그림에 대한 반응들= 홍씨는 "오월의 예수를 형상화한다는 것은 작가에게도 도전이고 모험이었다"며 "5월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많이 정제시켰다"고 했다. 그는 또 "나의 미학적 근거에서 벗어나면서까지 철저한 고증을 거쳐 성당의 묵상용으로 제작했다"고 밝혔다.

홍씨의 작품을 본 일부 미술인은 "미학과 조형학적으로 완성도가 뛰어나다"고 평한다. 5.18 기념 성당으로 지정된 남동성당의 장소성과 민중의 예수라는 정체성, 5.18의 상징성과 잘 맞아떨어지는 작품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 예수의 14처를 광주 항쟁과 연계해 사실성과 상징성, 절제미를 적절하게 구사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내는 사람들도 있다.

한 천주교 신자는 "그림 사진들을 보니 너무 직설적이고, 섬뜩한 느낌마저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아무리 5.18 기념 성당에 설치할 것이라고 하지만, 종교시설에 그것도 묵상 기도용으로 설치하기에는 마땅치 않을 것같다"고 했다.

마치 시위대들이 들고 나가는 걸개 그림같다며 상징적인 표현법 등을 동원해 더 예술적으로 승화시키지 못한 게 아쉽다고 지적하는 미술인도 있다.

☞홍성담 씨는

서양화가이자 판화가. 55년에 전남 신안군의 한 섬에서 태어나 79년 2월 조선대 회화과를 졸업했다. 79년 '광주 자유 미술인회' 조직에 참여했고, 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선전요원으로 활동했다. 83년 '시민미술학교'를 개설해 미술대중화운동에 힘써 왔고, 87년에는 반(反)고문전과 한국민중판화전에 참가했다. 89년에는 '민족민중 미술인 전국연합'이 공동 제작한 걸개 그림 '민족 해방 운동사' 사진을 북한 평양축전에 보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이적표현물 제작.유포) 혐의로 구속돼 3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그의 구속 이후 독일.영국.미국 등지에서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판화전이 열리기도 했다. '우리시대 30대의 기수전' '오월 미술전' '민중미술 15년전' '동학 100주년 기념전' 등에 참가했다.

광주=이해석 중앙일보 기자 2006.05.22

     

노래를 찾는 사람들 3집, 1991

노래를 찾는 사람들

Track.10 - 임을 위한 행진곡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