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갈망

개신교에서 바라본 공동번역 성서│거룩한 갈망

리차드 강 2009. 4. 10. 13:38

개신교에서 바라본 공동번역 성서

     

신·구교 협력 성과물이자 에큐메니컬 운동 결실

한국성서 번역사에 있어 가장 획기적인 사건을 꼽으라고 한다면 '공동번역 성서'(1977) 발행을 들 수 있다. 한국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신·구교가 연합해 우리말로 성서를 내놓게 된 것은 신·구교 자체뿐 아니라 민족문화사에 뜻 깊은 일이었다. 특히 "개신교 100년 역사와 가톨릭 200년 역사에 있어서 두 교회가 함께 쌓아 올린 기념비적 가치를 지녔다"고 평가 받았던 '공동번역 성서'는 세계 최초로 신·구교가 합동으로 낸 성경이기도 하다.

◇신·구교 내 번역분위기 형성='공동번역 성서'의 발행은 당시 개신교와 천주교 내부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성경번역 분위기와 연결돼 있다. 60년대 초 개신교의 문익환 목사는 개인적으로 성경번역을 추진하고 있었다. 문 목사는 복음동지회의 '새로 옮긴 신약성서 마태의 복음서' 번역작업에 참여한 경험이 있었으며, 세계적 성서번역 권위자인 나이다 교수를 만나 내용동등성 번역의 원칙을 터득하게 됐다.

이에 따라 63년부터 본격적인 성서번역에 착수하게 된다. "히브리어의 굵은 톱니를 핵문장으로 부수어서, 심지어 전치사 하나하나 속에서까지 사건어를 찾아내면서 우리말의 잘다란 톱니에 맞추어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재구성할 때에 비로소 성서의 신앙이 우리의 사고에 물리고 우리의 생을 돌려 기독교적인 새 문화 창조에 이바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문익환의 '히브리어에서 한국어로', 1974) 특히 문 목사는 성경번역에 있어 교회와 사회를 갈라놓는 말의 담을 허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말은 생각과 뜻의 표현일 터인데 성서에 담겨있는 그 깊은 뜻을 바로 알고 바깥에 전하려면 교회와 사회를 갈라 놓는 말의 담을 허물어야 한다."(문익환의 '새것, 아름다운 것')

천주교의 선종완 신부도 59년부터 개인적으로 구약성서 번역을 하고 있었는데 63년까지 9권의 성서를 번역했다. 이처럼 개신교와 천주교에서 성서 원문에 충실한 새로운 번역이 개별적으로 추진되다가 신·구 양교회 지도자들 간에 성서번역을 공동으로 추진하자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68년 1월 신·구교 대표들은 공동위원회를 조직하고 성경번역시 세계성서공회 연합회와 바티칸이 합의한 원칙과 공동위원회가 제정한 번역원칙에 따라 성경을 번역한다는 원칙을 세운다.

4년간의 노력 끝에 '공동번역 신약성서'가 71년 부활절에 나왔고, 구약 및 외경 완역본이 77년 출시됐다. 공동번역 명칭은 개신교와 천주교가 공동으로 수행했기 때문에 이름을 붙이게 됐다.

◇의역으로 이해도 높여=번역의 원칙은 축자적 번역이나 형식적 일치를 피하고 내용의 동등성을 취해 독자들이 원문을 읽는 사람과 같은 내용을 파악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고유명사는 신·구교가 현재까지 사용하는 명사가 같은 것은 그대로 두었고 그렇지 않은 것은 사전이나 교과서에서 쓰는 명칭을 따랐다. 이 두 가지가 아닌 경우에는 원어의 발음을 따랐다.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는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로, '유월절'은 '해방절'로, '랍비'는 '선생님' 등으로 어휘의 토착화를 추구했다.

공동번역 성서는 가로쓰기 한글전용 성서로 단락과 단락사이 각설표(O)를 사용하지 않았다. 내용을 요약하는 소제목들이 단락 사이에 붙어 있다. 외경이 붙어있는 천주교용 성경과 붙어있지 않은 개신교용 성경이 발간됐다. 천주교용 외경에는 토비트, 유딧, 에스델, 집회서, 바룩, 다니엘(추가) 등 9권의 외경이 들어갔다.

'공동번역 성서'의 특징은 주기도문(마 6:9∼13)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온 세상이 아버지를 하느님으로 받들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에큐메니컬 운동의 결실=공동번역 성서의 의미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60년대 일기 시작한 에큐메니컬 운동 정신이 맺은 구체적 결실이라는 것이다. 100년의 시차를 두고 진행된 신·구교 선교는 그동안의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양 교회는 대화와 일치보다는 갈등과 분쟁의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 에큐메니컬 운동 정신이 한국에서 성숙되었고 그 결실이 공동번역 성서인 것이다. 둘째 한국인의 손에 의해 직접 히브리어·그리스어 성경이 번역됐다는 것이다. 셋째 최신식 우리말 번역이라는 점이다. 토착적 어휘를 과감하게 채용하면서 한국 언어문화 속에 자리잡고 있는 성경의 중요한 위치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성공회대학교 양권석(성서해석학) 교수는 "공동번역 성서의 출간은 에큐메니컬 운동에서 의미있는 최초의 작업이자 최대의 업적"이라며 "성경의 문체를 문학적 소양을 가미해 현대적 정서에 맞게 번역했다는 면에서 의의가 크다"고 말했다.

공동번역 성서 왜 배척됐나

"전문학자들이 이루어 놓은 번역은 훌륭한 것이며 교리상의 문제를 놓고 지나치게 다루다 보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1972년 5월 한 일간지에 강신명 새문안교회 목사가 투고했던 글만 보더라도 '공동번역 성서'를 바라보는 한국교회의 시각이 어땠는지 알 수 있다. 강 목사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고 '공동번역 성서=천주교 성경'이라는 인식이 굳어져 한국교회 현장에서 점차 멀어져갔다.

'공동번역 성서'가 처음 출시됐을 때 청년층에서는 좋은 반응을 보였으며, 초판 4만부가 한 달 만에 매진되는 등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오랜 전통적 신앙습관에 젖어있는 보수적 신자들과 보수 교단측에선 신랄한 비판을 제기했다. 그 이유는 천주교 용어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

가장 큰 반발은 '하나님' 용어에서 시작됐다. '공동번역 성서'는 '하나님'을 '하느님'으로 사용했다. 1971년 '공동번역 신약성서'가 나오자 예수교대한성결교회는 총회에서 '하느님'을 사용한 것을 중대 과오라는 점을 내세워 사용 금지를 결의했으며, 서울 종교교회에서 열린 공동번역 성서 비판준비위원회에서는 "전혀 상반되는 천주교와 개신교에 의한 성경공동번역은 그 타당성이 결코 인정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에도 '하나님'은 한국 개신교의 유일신관을 드러내는 대표적 상징이었다. 이런 분위기이다보니 한국 개신교는 성경에 사용된 '하느님'이 범신론적 신관념을 가지고 있다며 거부했다. "신들린 번역이며 구약에는 성령모독죄가 있고 창조주의 칭호를 하느님으로 변조하였다…원본과 전혀 다른 번역으로 영혼에 공해와 오염을 준다."(주영흠, '현대사조' 7·8월호, 1980)

천주교 용어를 많이 사용해 천주교 성서라는 주장도 나왔다. 일례로 '공동번역 성서'는 성경 각권 중 사사기를 판관기로, 에스겔을 에제키엘로, 스바냐를 스바니야 등으로 표기했는데 다수의 성도와 목회자들은 여기에 심한 거부감을 느꼈다. 또 문장이 너무 평이해 경전으로서 권위를 상실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어쨌든 한국교회가 '공동번역 성서'를 거부한 것은 천주교에 대한 다소의 거리감과 새로운 것을 어색해하는 보수적 성향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성서학자 리진호는 이런 현실을 이렇게 지적했다. "성경 중심의 개신교에서 오류가 많은 성경을 사용하면서도 태연하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특히 새로운 세대나 처음으로 예수를 믿겠다는 형제들이 개역성경을 읽고 성경은 어렵고 잘 모르겠다고 포기하므로 예수로부터 멀리 떠나 버릴까 두렵다. 개역성경에 집착하고 현대어 성경을 외면하게 된 책임은 평신도보다는 교역자에게 있다고 보겠다."(리진호의 '한국성서백년사')

당시 일었던 논쟁에 대해 대한성서공회 전무용 성서번역실 부장은 "번역과정에서 원어의 발음에 따른다는 원음주의를 채택한다는 취지에 따라 용어가 그렇게 된 것이지 결코 천주교 용어를 일방적으로 따른 게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전 부장은 "공동번역 성서는 수려한 한국어 성경으로 딱딱한 직역성경의 문제를 크게 개선했다"면서 "당시 기감과 기장교단 소속 일부 교회에서 성경을 사용했으며 다수의 목회자들이 설교준비 때 이 성경을 활용했다"고 말했다.

[2008.10.08] 백상현 기자 hrefmailto100sh@kmib.co.kr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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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menico. Scarlatti 1685-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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