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사선 철길을 따라 민중의 가슴 차표를 쥐고 그대 오르네 철책 면류관 쓰고 저 언덕을 오르네
가시 쇠줄로 찢겨진 하늘 아픔은 결코 다르지 않다 압록강 줄기 그리움 일렁이며 흐느끼는 당신의 노래
우리 지친 어깨 일으켜 떨리는 손을 마주 잡는다 갈라진 조국 메마른 이 땅 위에 그대 맑은 샘물 줄기여
죽음을 넘어 부활하는 산 피투성이 십자가 메고 그대 오르는 부활의 언덕 위로 우리 함께 오르리
'그대 오르는 언덕'이라는 노래다. 작곡가 류형선이 대학교 4학년 때 늦봄 문익한 목사가 방북하는 것을 보고 이 곡을 지었다. 당시 문익환 목사는 수구 세력한테는 '정신병자'라는 욕을 먹고, 통일운동에 관심이 많던 사람들한테는 소영웅주의자니, 감상주의자니 하는 거친 비판을 들었다. 지금이야 다들 문 목사가 남북교류의 물꼬를 텃다고 칭찬하지만, 그 때만 해도 문 목사는 괜한 행동으로 통일운동을 얼어붙게 만든 장본인으로 낙인 찍혔다.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류 씨에게도 문 목사의 방북은 충격이었다. 그러나 문 목사가 영웅이 되기 위해, 혹은 자기 감정에만 사로잡혀 저지른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신앙인으로서 고뇌와 결단이 있으리라 여겼다.
생각의 끝은 "문 목사가 갈리진 조국 메마른 땅을 적실 물꼬를 텄다"는 것. 통일운동 조직의 이익을 생각하고, 자신의 안위를 계산했다면 목숨을 내걸고 그런 일을 감행하기는 불가능했으리라 여겼다. 게다가 그러한 용기는 역사 속에 신음하는 이들과 함께 하시는 신을 믿는 신앙에서 나왔다고 확신했다.
류 씨는 언제가 대중 집회 때 문익환 목사를 강단에 불러 이 노래를 불러줄 기회를 얻었다. 문 목사는 자신이 가는 길을 헤아리는 청년의 손을 꼬옥 붙잡고 시를 읊어주었다. 이 청년은 94년 1월 22일 문 목사의 진혼곡 '늦봄 가시는 길목'도 작곡했고, 떠나가는 상여 행렬을 앞에 두고 이 곡을 지휘했다.
문 목사에 대한 기억도 멀어지던 99년, 그는 백범 김구에 관한 2시간 가량의 뮤지컬 작곡을 제안 받는다. 그런데 곡을 쓰기 위해 백범의 삶을 좇을수록 백범이 아닌 늦봄이 보이는 것이다. 김구의 민족과 민중에 대한 애정, 외롭게 떠난 북한 행 등 문 목사와 닮은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다만 김구는 교과서에서 알게 된 먼 인물이고, 문 목사는 현장에서 눈으로 확인한 생생한 사람이라는 차이가 있었다.
▶ 작곡가 류형선 씨. ⓒ뉴스앤조이 신철민
뮤지컬을 마치는 데로 문 목사님에 대한 음반을 내겠다고 마음먹고 있을 때, 류 씨는 우연히 통일의 집(문 목사 생가)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문 목사가 감옥에서 찬송가 가락에 자신이 노랫말을 붙인 '옥중성가집'을 발견했다. 그는 이 노랫말에 가락을 붙이기 위해 시들을 아예 달달 외우는 정열을 쏟았다.
노래는 김원중·안치환·홍순관 등 문 목사를 존경하던 사람들이 불렀다. 이 소식을 들은 송정미 씨도 참여하는 뜻을 전해왔다. 모두들 뜨거운 마음 하나로 음반을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나온 음반이 '뜨거운 마음'이다. 민중과 통일에 대한 문 목사의 마음이고, 그가 가는 길을 뒤따르려는 자신과 음악인들의 마음이기도 하다.
"문 목사님은 항상 예수를 남을 위해 산 사람, 자신에게는 냉정하지만 남에게는 관대한 사람, 약자에게는 한없이 약하지만 강자에게는 당당한 사람으로 소개했어요. 평평한 말이지만, 사람들은 그 말을 가볍게 듣지 않았어요. 말하고 있는 목사님 자신이 그대로 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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