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파야: 스페인 정원의 밤 중 코르도바산의 뜰에서│프랑스 인상

리차드 강 2014. 11. 28. 12:13

Noches en los jardines de Espana

파야 스페인 정원의 밤 중 코르도바산의 뜰에서

Manuel de Falla 1876~1946

En los jardines de la Sierra de Cordoba

 

Alicia de Larrocha, piano

London Philharmonic Orchestra-Rafael Fruhbeck de Burgos

     

에스파냐의 작곡가 파야의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작품.
작곡 : 파야 / 종류 :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작품 / 구성 : 3곡 / 제작연도 : 1916년

1916 년에 작곡되었다. 작곡가 자신이 ‘교향적 인상’이라고 말한 작품으로 <헤네랄리페에서:En el Generalife> <저 먼 곳의 무도:Danza lejana> <코르도바산(山)의 뜰에서:En los jardines de la sierra de Cordoba>의 3곡으로 이루어졌다.

남 에스파냐 안달루시아지방의 민속무곡 리듬과 선율적 특징 등을 소재로 한 인상주의적 작품으로, 《사랑은 마술사:El amor brujo》(1915) 《삼각모자:El sombrero de tres picos》(1919)와 함께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건축과 음악 : <스페인 정원의 밤>

음(音)들이 그려내는, 건축의 '외부공간'의 소묘

피 부 끝을 스치듯 지나는 한 줄기 바람. 그것의 한없는 가벼움과 산뜻함이 시간의 고요함과 만나면서 남기고 가는 어떤 부양(浮揚)의 느낌… 초가을의 어느 날 해 질 무렵 어느 나무그늘 밑에 그저 넋없이 앉아 다리를 쉴 때 문득 까닭없이 더께진 삶에 대한 회의감이 찾아들고, 대신 일상의 무게를 될 수 있는 한 덜어내 버린 매우 간소한 모습의 삶에 대한 갑작스런 그리움이 반사적으로 차오르는 건 무슨 일일까. 생각해보면 지중해 부근의 지방이라면 연중 대부분 이처럼 엷은 바람이 대지를 훑고 다닐 것 이다. 그래서 오랜 시간을 거쳐오도록 그 속의 얼핏 간소하나마 그지없이 풍요로운 삶과 공간이 퇴색할 줄 모르는 걸까. 한 낮의 거침없는 햇빛과 습기 한 점 머금지 않은 바람을 견디어내거나 또한 오히려 그것들을 즐기기 위해 모든 것들이 얄팍해지기로 작정이라도 한 모습들이다. 삶도 건축도 자연도 모두 최소한의 옷을 입고 바람에 잎새들이 서걱이듯 가난한 울림으로 넉넉한…

지중해의 강한 햇빛과 미풍은 어쩐지 건축의 독립성이랄까 내부공간의 의미를 무력하게 만들어 안팎의 경계를 오래전에 지워버렸을 것이다. 공간은 어느새 회랑을 미끄러지듯 빠져나와 코오트를 거쳐 정원으로 펼쳐지거나 발코니나 테라스로 이어져 자연속에 커다란 거실겸 식당이 간단히 마련되는 일이 흔하다. 흥미로운 것은 이같은 맥락에서인지는 모르나 어떤 공간에서 받은 인상을 음악으로 옮겨적은 사람들도 특정한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기 보다 훨씬 넓은 시야로 외부공간을 함께 엮어서 그려내려고 한다는 점이다. 건축에서 생각하는 외부공간이란 통상적으로 건축물과의 ‘관계’에 놓인 자연이나, 이를 닮은 ‘열려진’ 공간을 뜻하기 마련이다. 그런 탓인지는 모르나, 건축을 하는 사람으로서 음악 속에서 특정한 건축물과 이에 딸린 정원, 또는 외부공간을 그 주제로 삼거나, 아예 타이틀을 달아서 좀 더 직접적으로 묘사해내려는 의지를 굳이 감추지 않고 있는 작품들에 남달리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대개의 타이틀을 보면 장소 말고도 조경적인 요소나 청량감이나 시간대, 계절감등의 표현이 함께 따라다닌다. 단순한 정경의 묘사를 너머서 일종의 현상학적인 ‘장소성’(Genius Loci : the soul from the place)에 대해 작곡가가 개인적으로 파악한 내용을 음(音)을 빌어 새로운 환기(Evocation)를 유도하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외부공간과의 유기적인 연계가 당연시 되었던 전통이 언젠가 부터 사라지고 내부의 기능적인 편리함이나 건축의 조형적인 면에 지나치게 치우쳐 시야가 좁아진 최근의 디자인 경향을 슬며시 꾸짖는 듯한, 당시의 건축을 대하는 교양과 문화가 아닐 수 없다.

     

     

그 중에서도 건축의 외부공간에 대한 인상을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낸 음악이라면 어쩐지 스페인의 작곡가 파야(Manuel de Falla)가 1915년 40세 되는 해에 완성한 ‘스페인 정원에서의 밤’(Nights in the Gardens of Spain)을 들어봐야 할 것 같다.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교향적 인상’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곡은 말 그대로 드뷔시를 포함한 당시 프랑스의 인상주의적인 기법에 크게 영향을 받은 흔적이 짙은 음악이다.

그 가 즐겨 쓰는 남부 스페인, 즉 안달루시아 지방의 민속 무곡의 리듬이나 선율의 특성위에 민속 악기의 냄새와 집시풍의 향기도 물씬해져 마침내 독특한 국민주의 음악이 빚어졌다. 그러다보니 누가 들어도 곧 이슬람식의 궁전이나 정원이 자연스레 떠오르게 하는 효과를 손쉽게 얻었으리라.

이 곡은 세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지는데, ‘헤네랄리페(Generalife)에서’―‘멀리서 들리는 춤소리(Danja lejana)’―‘코르도바(Cordoba)산의 정원에서’의 순으로 타이틀을 달고 있다.

첫 악장의 헤네랄리페는 우리가 잘 알듯이 그라나다의 알함브라궁을 서쪽에서 바라보는 역시 무어풍의 여름 별장으로 경사를 활용한 아름다운 정원을 갖고 있기도 하다. 중앙으로 물이 흐르는 마당, 계단식 샘물, 테라스, 모스크, 성벽등과, 잘 알려져 있듯이 지중해 지역에서는 상징적인 측백나무(Cypress)숲 등이 어우러진 정원의 인상을 여러 악기의 음색과 조성을 빌어 소묘하듯 그려간다는 느낌을 준다.

두 번째 악장에서는 멀리서 들려오는 집시풍의 레하나(lejana) 춤소리와 리듬을 소재로 보다 확장된 공간감을 연출하고 있다.

세 번째 악장에 서는 다시 코르도바산의 한 궁정과 정원의 공간적 사건을 적는다. 굳이 밤의 정서에 촛점을 맞춘 뚜렷한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이를 끝내 알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나, 아마도 다양한 춤곡과 리듬이 삽입된 것으로 보아 밤새워 계속되는 그들 특유의 춤잔치의 시퀀스(Sequence)를 음악의 틀로 삼으려 했던 것이 아니었을가 하는 짐작을 해 볼 뿐이다.

따지고 보니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이 건축과 외부공간의 인상을 기록하면서 한결같이 건축보다는 이를 애워싼 조경적인 요소들의 아름다움에 주목했던 사실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음을 문득 느낀다. 우리의 건축도 한때는 자연에 ‘허술하게’ 열렸었던 향수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옛 산수화의 화폭 한켠 끄트머리를 집 한 두채가 겨우 차지하고 있었을 그 무렵을 떠올려 보면 건축의 내부공간이란 것의 의미가 거의 힘을 잃고 삶과 건축이 그저 얄팍한 옷 하나 걸친 채 자연과 함께 공명하던 ‘가난한 풍요로움’이 있었지 않았을까. 지중해 부근이면 어디서든 엷은 바람에 한가로이 몸을 떠는 싸이프레스 줄기들 처럼.

자료 : 김 헌 건축가

     

마누엘 데 파야(팔랴) Falla, Manuel de

피아니스트였 던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우고 11세 때 공개연주회를 하였다. 마드리드의 왕립음악원에 입학하여 J.트라고에게 피아노를, 스페인 국민음악의 시조인 F.페드렐에게 작곡을 배우면서 에스파냐 민속음악을 되살려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으며, 1899년 2년만에 졸업하였다. 1905년 마드리드예술원 주최 작곡 공모에서 오페라 《허무한 인생》으로 최고상을 받는 한편 피아노 콩쿠르에서도 1위를 차지하여 작곡가와 피아니스트로 인정을 받았다. 1907년 파리로 유학하여 뒤카, 드뷔시, 라벨 등과 교우하면서 인상주의 음악의 영향을 받았으며, 뒤카의 조언으로 《허무한 인생》을 대폭 개작하여 1913년 니스에서 초연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1914년 귀국한 뒤 거의 완성되어 있던 《7개의 스페인 민요》와 《스페인 정원의 밤》 이 마드리드에서 초연되었다. 이듬해 발레음악 《사랑은 마술사》를 발표하였고, 1919년 발레계의 거물 디아길레프의 협조로 《삼각모자》를 런던에서 초연하여 대성공을 거두었으나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자 누이와 함께 그라나다로 거처를 옮겼다. 이곳에서 소편성의 관현악단 베티카를 창단하였고, 1923년 반다 란도프스키 부인을 위하여 《클라브생 협주곡》 작곡에 착수하여 1926년 완성하였고, 1925년에는 로마의 산타체칠리아음악원의 명예회원으로 추대되었다. 팔랴는 파리, 런던, 마호르카 등지를 자주 여행하였으나, 1934년 이후는 그라나다를 떠나는 일이 드물었다. 1938년 프랑코장군의 명령에 따라 개설된 에스파냐음악연구소의 소장이라는 직함을 얻었으나, 그는 당시 신병으로 브르고스에서 열린 임명식에 출석할 수가 없어 자택에서 선서식을 대신하였다. 1939년 스페인을 떠나 아르헨티나의 코르도바 근교 알타그라시오에서 살게 되었는데, 1946년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일반적으로 스페인의 국민주의 음악가로 알려져 있으나, 다른 국민주의 작곡가 알베니스나 그라나도스처럼 스페인의 민속음악을 그대로 소재로 삼지 않고, 안달루시아지방의 관능성과 카스티야지방의 금욕성을 혼합한 작품을 작곡하였는데, 이는 양친이 북부계와 남부계였기에 소재의 범위를 넓히지 않았나 생각된다. 후기에는 스트라빈스키에게 영향을 받아 그 당시 스페인에서 유행이었던 낭만주의적 경향 대신에 신고전주의적 경향을 띠었다. 강렬한 민족적 색채를 보편적 기법으로 표현하여 스페인 국민음악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대표작품으로 《스페인 소곡집》 《안달루시아 환상곡》 《7개의 스페인 민요》, 발레곡 《사랑은 마술사》 《삼각모자》 등이 있다.

아름다운 이웃은 참마음 참이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