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양극화의 그늘 ‘비정규직’ “차별없이 일하고 싶다”│교회 이제 비정규직을 말하다.

리차드 강 2009. 4. 10. 17:31

양극화의 그늘 ‘비정규직’ “차별없이 일하고 싶다”

 

# 여성, 비정규직+차별=이중의 질곡

여덟살, 여섯살 난 두 남매를 둔 최선희(보니파시아, 38, 가명)씨는 지난해부터 서울의 한 대형할인점에서 계산원으로 일하고 있다. IMF사태 이후 변변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다 비정규직인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남편의 월급만으로는 이리저리 쌓인 빚에서 헤어 나온다는 게 불가능한 일로 보였기 때문이다.

최씨는 보통 평일에는 9시간, 주말에는 11시간 동안을 꼬박 계산대 앞에 서서 일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면서도 화장실은 점심시간에 딱 한번 간다. 입사 초창기에 몇 번 자리를 비웠다가 매장매니저로부터 곱지 않은 눈길을 받고부터는 다른 동료들을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십중팔구 녹초가 되고 만다. 엄마를 애타게 기다렸을 아이들과 놀아준다는 것도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든 살아야겠기에 이렇게 하긴 하지만…. 사는 게 사는 것 같지가 않아요.”

오전반(오전 9시∼오후 6시)과 오후반(오후 4시∼11시) 2교대로 일하면서 한 달에 두 번 쉬는 최씨와 같은 계산원들이 손에 쥐는 월급이라곤 90만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4대 보험을 거의 적용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연차와 생리휴가를 쓰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기가 쉽지 않다. 일을 못 나가게 되면 자기 돈으로 일당 3만원을 주고 아르바이트를 대신 채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씨가 할인점 직원이 아니라 할인매장에 물건을 공급하는 납품회사에서 보낸 파견직 직원으로 이른바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감내해야 하는 일이다.

박봉이나 열악한 여건보다 최씨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비인간적인 대우다. “임신한 동료에게 일부러 힘든 일을 시켜 그만두게 만드는 것도 봤어요. 우리가 정규직이었다면 그랬을까요.” 그렇게 말한 최씨가 들리지 않게 긴 한숨을 뱉었다.

성희롱 사건도 심심찮게 벌어지지만 하소연할 데가 없다는 게 최씨와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아픔이다. 파견업체에 항의라도 하면 사용업체에 책임을 미루고 사용업체쪽에 얘기하면 곧바로 해고라는 부메랑이 돌아오기 때문에 쉬쉬하며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여성가장의 경우는 울며 겨자 먹기로 온갖 수모와 차별을 감당해야 해 이들의 삶의 질은 갈수록 악화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 구조화되고 있는 차별

통계청에 따르면 비정규직은 2003년 당시 460만명으로 전체 임금노동자의 32.6% 수준이었지만 2007년엔 570만3000명(35.9%)으로 4년 새 110만명 가량 늘어났다. 임시일용직을 포함할 경우 비정규직은 876만명(55.7%, 2007년 3월 현재)으로 증가해 60%대에 육박한다. 정규직과의 주요한 차별 요인이 되는 임금 격차도 커졌다. 정규직 월평균 임금을 100이라 할 때 비정규직 임금은 2005년 8월 50.9%, 2006년 8월 51.3%, 2007년 3월 50.5%로 나타났다. 시간당 임금은 각각 51.9%, 52.4%, 52.4%로,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임금 격차가 구조화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또한 통계청이 2003년 8월에 실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자료에 의하면, 경제위기와 맞물린 구조조정 과정에서 여성에 대한 우선 해고와 비정규직화가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여지면서 남자는 정규직이 452만명(54.6%), 비정규직이 376만명(46.8%)으로 정규직이 많은데 비해 여자는 정규직이 179만명(30.5%), 비정규직이 408만명(69.5%)으로 전체 여성노동자 10명 중 7명이 비정규직이어서 여성이 남성보다 비정규직 비율이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실로 인한 소득 양극화는 교육 양극화로 이어져 부모의 가난이 자녀에게로 되물림되는 현상이 고착화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건강 양극화 등 국민의 삶 전반의 양극화로 이어지며 다양한 사회문제를 양산하고 있다. 특히 각종 제조업과 사무직은 물론이고 전문직과 교육계 등 거의 모든 직종으로 비정규직화가 확산되면서 비정규직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차별도 일반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어느 새 계층과 신분마저 가르는 기준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당연시하고 이들을 깔보며 ‘이류시민’으로 여기는 인식이 은연중에 확산되면서 사회 전반의 의식마저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을 띠어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사목적 차원에서는 교회의 가장 기본 단위인 가정과 관련된 임신과 출산, 육아 등과 같은 문제가 비정규직 문제의 주요한 요인으로 떠오른 상황이어서 교회의 관심과 배려가 절실한 실정이다. 실제 노동 현장에서는 가정, 여성 사목 등과 관련된 문제의식이 확연히 부각된다.

한국여성노동자회가 전국 8개 지역에서 운영하는 ‘평등의 전화’ 2007 상담사례에 따르면,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경우 성차별 상담에서 절반 이상이 임신, 출산으로 인한 해고 문제를 상담해, 4명 중 1명꼴인 정규직에 비해 2배 가까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비해 비정규직이 모성보호제도에 대해 문의하는 경우는 6.9%(63건)로 정규직(13.7%, 158건)보다 절반 이상 낮아 출산휴가나 육아 휴직과 같은 모성보호 장치가 ‘그림의 떡’에 지나지 않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 가정 여성 노동 사목 등 다양한 접근 필요

이러한 현실을 방치할 경우 인간의 존엄성, 공동선, 노동의 신성함 등 교회가 강조해온 그리스도적 가치는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실제 양극화가 속도를 더해가면서 교회의 보루라 할 가정마저 급격하게 붕괴되며 빨간불이 점멸하고 있는 실정임에도 사목적 대응은 사후약방문식 사회복지적 활동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게 교회의 현실이다. 물론 교구나 본당 차원의 모색과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신자들이 한마음으로 양극화 문제를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는 데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노동 환경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잘못된 길을 들어선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교회의 사목적 노력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김정한(토마스 모어, 51,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전문위원) 연구위원은 “교회 안에도 비정규직이 적지 않지만 그들의 처우나 정확한 실태조차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하고 “교구나 본당, 병원 및 사회복지시설 등 교회 내 각 기관이 놓인 현실에 따라 다양한 분석과 접근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또한 김위원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이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의 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준을 모색하고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특히 일선 전문가들은 사회복지적 측면에서 이뤄지고 있는 단선적 활동보다는 다양한 사목 영역과 활동 방식을 아우르는 유기적이고 종합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신자들이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을 놓치지 않고 자신들의 삶 속에서 가난한 이들과 연대할 수 있는 틀을 찾아나갈 수 있도록 지속적인 교육의 장을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제안한다.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 이강서 신부는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다양한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해 사목적 대안을 만들고 예언자적 역할을 수행해야 할 교회가 오히려 사회에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교회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익 중심, 이익 우선의 가치와 그를 향해 나아가는 사회구조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과 자세를 교회 안에서부터 확산시켜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8-02-03

가톨릭 신문 서상덕 기자 sang@catholictimes.org

     

다리 - 서울가톨릭 신학대학교 낙산 중창단(성신교정)

임쓰신 가시관 1986

서울 가톨릭 신학대학교 낙산 중창단(성신교정)

No.11 -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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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 곳곳에 수 많은 강이 흐른다
길고 깊게 흐르는 강 우리를 가른다
서로 물 건너 마주 바라보지만
아~ 만나지 못한채 그 눈길은 불신으로 가득차

어찌 강위로 다리를 우리 놓지 않는가
어찌 강위로 다리를 놓지 않는가
어찌 강위로 다리를 놓아 서로 만나지 않는가
어찌 다리를 놓지 않나 (다리를 놓지 않나)

강은 장벽을 쌓는다 노인과 젊은이 사이에
양편 언덕을 갈라선 부자와 가난한 이들
흑인들은 건너편 둑위에 있는
아~ 백인 형제들을 멀리서 바라다 본다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